여러분은 자신의 뇌를 본 적이 있으신가요? 아마 병원에서 MRI(자기공명영상촬영)나 PET(양전자단층촬영) 검사를 해 본 경우가 아니라면 본인의 뇌를 본 적은 없으실 것입니다. 우리가 보는 뇌 이미지는 주로 인터넷에 올라와 있는 뇌 해부도나 촬영 사진, 또는 실험실에서 본 뇌구조 모형이 전부입니다.
직접 눈으로 확인할 수 있는 얼굴이나 팔, 다리와 같은 다른 신체 부위와 달리 뇌는 분명 내 몸의 일부이지만 볼 수 없습니다. 그렇기에 뇌가 부지런히 일하고 있다는 사실은 분명 알지만, 어느 부위가 어떻게 작동하며 어떻게 움직이는지 혹은 변화하는지는 알기가 어렵습니다.
의학계와 심리학계에서는 전통적으로 영유아기에 뇌가 발달하고 나면 더 이상 변화하지 않는다는 것이 정설이었습니다. 그래서 발달심리학에서는 발달을 위한 ‘결정적 시기(critical period)’가 존재하며 이때 적절한 인지, 정서, 신체적 발달이 이루어지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고 보았습니다.
그러나 뇌과학 연구가 활발히 이루어지면서 뇌 발달 및 성장이 영유아기에만 국한되는 것은 아니며, 일생 동안 지속될 수 있다는 사실이 밝혀졌습니다. 바로 ‘신경가소성’으로 말이지요.
신경가소성(Neuro Plasticity)은 뇌의 신경계가 환경 변화와 경험, 주변 자극의 영향에 의해 구조와 기능을 바꾸면서 재조직되는 현상을 의미합니다. 그렇기에 한 번 형성된 신경회로가 늘 그 역할이나 경로에만 머물러 있지 않고 상황에 따라 가변적으로 역할이나 경로를 수정할 수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살면서 새로운 지식이나 기술을 끊임없이 배우기도 하고, 반대로 사고나 질병으로 인해 신체 일부나 뇌의 특정 기능을 상실하기도 합니다. 그럴 때 신경가소성이 우리를 변화한 상황에 잘 적응할 수 있도록 돕습니다. 새로운 지식이나 기술이 우리에게 필요하고 중요한 것이라고 판단될 때, 자주 사용될 때는 뇌에서 적절한 영역을 할당하여 해당 임무를 수행할 수 있도록 신경회로가 생성됩니다.
반대로 특정 신체 또는 뇌 기능을 사용하기 어려운 경우에는 그것을 대체하면서 생존에 도움이 되는 방식으로 적응하는데, 이를 ‘기능적 보상’이라고 합니다. 예를 들어, 시각장애인이 점자를 읽을 때 시각피질 영역이 활성화되거나, 시각피질에서 청각이나 후각과 같은 다른 종류 자극을 처리하면서 부족한 시각 정보를 상쇄할 수 있도록 돕는 것입니다.
이처럼 신경가소성을 통해 우리는 뇌가 고정적 기능이나 역할에만 머물러 있지 않고 적응을 위한 최적의 상태를 끊임없이 추구한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렇기에 우리는 자신의 지능이나 능력이 선천적으로 결정되어 있다거나, 더 이상 노력해도 나아지지 않을 것이라는 수동적이고 패배적인 태도에서 벗어날 필요가 있습니다.
미국 버클리대학의 심리학자 마르크 로렌츠바이크(Mark Rosenzweig), 에드워드 베네트(edward Bennet), 마리안 다이아몬드(Marian Diamond)는 실험을 통해 풍부한 환경과 보통, 결핍된 환경에서 자란 새끼 쥐들이 뇌 성장에서 어떤 차이를 보이는지 관찰했습니다.
그 결과 풍요로운 환경에서 성장한 쥐들은 운동, 기억, 학습, 감각 정보를 처리하며 경험에 반응하는 역할을 하는 뇌피질이 더 무겁고 밀도가 높았으며, 신경계 효소인 아세틸콜린에스테라제의 활동성이 높고, 더 많은 신경교가 형성된 것을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이 실험은 실제 생활환경이 아닌 인위적인 실험실 환경에서 이루어졌다는 점, 풍부한 환경에 놓인 쥐들에게는 실험자와의 물리적 접촉이 있었기 때문에 환경 자체가 아닌 접촉이 영향을 미친 것일 수 있다는 점이 한계로 지적되었습니다. 그러나 이 연구는 환경이 뇌 발달에 미칠 수 있는 영향에 대한 시사점을 보여 주었으며, 신경가소성에 대한 후속 연구를 활성화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습니다.
한편 신경가소성은 뇌경색, 뇌출혈, 뇌졸중, 치매나 파킨슨 병과 같은 퇴행성 뇌질환, 교통사고를 비롯한 외상으로 인한 뇌손상 치료 및 재활에도 활용되고 있습니다. 각각의 질병이나 외상 후 뇌 손상에서 나타나는 신경학적 기전을 파악하고 신경회로 및 인지기능을 회복하는 데 신경가소성 원리를 적용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이는 새로운 신경회로를 만들고 재조직하기 위한 훈련, 뉴런 간 시냅스 연결 강화 등을 통해 이루어집니다.
우리 뇌가 끊임없이 변화하고 주변 환경 및 상황에 적응해 간다는 것은 그만큼 우리의 역할이 중요함을 뜻합니다. 좋은 자극과 환경, 행동과 습관은 신경가소성이 우리에게 긍정적인 방향으로 작용할 수 있도록 하는 이정표가 되어 줍니다.
그러나 반대로 건강하지 않은 습관이나 자극은 신경가소성이 우리에게 결코 도움이 되지 않는 방향으로 작동하도록 할 수 있습니다. 끊어야지 하면서도 어느새 담배에 불을 붙이고 있는 나, 이제는 그만 마셔야지 하면서도 “딱 한 잔만”이라고 하면서 어느새 술잔을 기울이고 있는 나를 발견할 때처럼 말이지요.
익숙한 습관과 패턴은 신경가소성이 음주나 흡연과 관련된 도식을 형성하게 하고, 술을 마시거나 흡연을 할 때 느끼는 도파민 분비를 통해 보상중추가 같은 자극에 계속 반응하게 합니다. 그리고 점점 더 많이, 자주 그런 자극을 추구하게 합니다.
하지만 우리의 신경가소성은 잘못이 없습니다. 신경가소성은 그저 우리의 행복과 안녕을 기원하며 최적의 상태를 유지하기 위해 최선을 다한 죄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건강한 행동과 습관, 환경을 제공할 책임 온전히 나에게 있는 것이지요.
신경가소성이 우리의 행복을 위해 쉬지 않고 열심히 일해주는 것처럼, 이제는 우리가 신경가소성이 최선의 방식으로 기능할 수 있도록 해 주어야 할 때가 아닐까요?
광화문숲 정신건강의학과 의원 | 정정엽 원장 2023. 3. 17. 0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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