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상 22:6-23, 사울과 도엑의 잔인한 살육, 24.7.17, 박홍섭 목사
다윗이 유다 땅에 왔다는 소식을 들은 사울은 측근들을 소집하여 왜 아무도 자신 편을 들지 않느냐고 비난하고 다윗과 자신 중에서 누구의 말을 듣는 것이 너희에게 득이 되는가를 잘 판단하라고 공박합니다. 이에 에돔 사람 도엑이 아히멜렉 제사장이 다윗을 선대하고 골리앗의 칼을 준 사실을 알려줍니다. 사울은 신하들에게 아비멜렉과 제사장을 죽이라고 명하지만 아무도 하나님의 제사장을 죽이려고 하지 않습니다. 그러자 도엑에게 명하고 도엑은 아히멜렉과 제사장 85명을 죽이고 그 자녀들과 가축들까지 도륙하는 대학살극을 벌입니다. 이 잔혹한 학살극에서 살아남은 아비멜렉의 아들 아비아달이 다윗에게 가서 이 사실을 알리자 다윗은 자신 때문에 일어난 참상을 괴로워하면서 아비아달을 보호합니다(6-23).
도엑은 다윗과 아히멜렉과 아무 원한 관계가 없습니다. 그런데 왜 이렇게 잔혹한 살육극을 벌입니까? 그는 에돔 사람으로 사울의 목자장입니다. 이방인이 이스라엘에서 이런 권력을 얻었으니 대단한 정치꾼임을 알 수 있습니다. 그는 사울에게 밭과 포도원과 정치적인 지위를 다 줄 수 있음을 힘과 권력이 있음을 알고 지금이 사울에게 잘 보여서 자신이 부상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다른 신하들과 달리 다윗을 도와준 제사장 아히멜렉을 포함해서 85명의 제사장들과 그들의 모든 가족과 가축들을 죽이는데 거리낌이 없습니다.
여기서 우리가 생각해야 할 부분이 하나 있습니다. 왜 하나님께서 이들의 죽음을 막아주지 않고 사울과 도엑의 만행을 지켜보고만 계셨는가 하는 점입니다. 그들의 죽음이 애매하고 억울하게 보이지 않습니까? 다윗이 아히멜렉을 찾아오지만 않았어도 그들이 죽는 일은 없었습니다. 갓 선지자가 다윗에게 유다 땅으로 돌아가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라고 전하지만 않았더라도 이 참극은 일어나지 않았을 것입니다. 왜 하나님은 갓 선지자를 통해 다윗을 유다로 돌아오게 하시어 사울을 격발시키고 아히멜렉과 85명의 제사장들과 그들의 가족이 이렇게 죽도록 허락하셨을까요?
창세기에 보면 아벨이 가인에게 억울한 죽음을 당합니다. 아벨은 잘못한 것이 없습니다. 하나님께 믿음의 제사를 드렸을 뿐입니다. 그런데 하나님께 제사를 거부당해 분노한 가인에게 죽임을 당합니다. 하나님은 아벨을 가인의 살인으로부터 지켜주지 않았습니다. 마태복음을 보면 주의 사자가 요셉에게 현몽하여 헤롯이 아기를 찾아 죽이려 하니 아기와 마리아를 데리고 애굽으로 피하라고 지시합니다. 헤롯이 아기 예수를 죽이지 못하자 심히 노하여 베들레헴과 그 모든 지경 안에 있는 두 살 아래의 모든 사내아이를 죽이라고 지시하고 너무나 많은 아이들이 예수님 때문에 죽습니다. 이때도 하나님은 가만히 계셨습니다.
다윗 때문에 제사장들이 죽임을 당하고, 아벨이 하나님 때문에 죽임을 당하고, 사내아이들은 아기 예수 때문에 죽임을 당하는 이런 일들은 무엇을 의미합니까? 일단 우리는 세상에서 망하고 죽는 것 자체가 실패가 아님을 기억해야 합니다. 우리에게는 죽음이 가장 큰 실패이고 고통이고 아픔이고 상처이지만, 하나님은 때로 우리의 가장 큰 실패와 넘어짐과 죽음을 통해 일하십니다. 받아들이기가 쉽지 않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그렇게 일하시기도 하신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왜 죄 없는 아히멜렉과 제사장 85명과 그의 가족들이 이렇게 잔혹하게 죽임을 당해야 합니까? 우리가 다 이해하고 알 수는 없지만, 여기에도 선하신 여호와의 분명한 뜻이 있음을 믿어야 합니다.
그 뜻이 무엇일까요? 우선, 이 일을 통해 사울과 도엑이 대변하고 있는 하나님 없는 세상과 인생이 결국은 어떤 정신과 원리로 살아가는지를 똑똑히 봅니다. 이 일이 아니면 사울의 신하와 이스라엘은 사울이 이 정도로 잔인한 사람인지를 몰랐을 것입니다. 사울이 누구입니까? 이스라엘이 그토록 원했던 힘 있는 왕이었습니다. 그가 나타났을 때 모든 이스라엘이 그를 좋아하고 사랑했습니다. 그런데 그런 그의 모습이 이러합니다. 그는 자신의 권력과 힘을 유지하기 위해 다윗을 죽이려고 하고 무고한 제사장들을 잔인하게 학살했습니다. 하나님이 주신 권력을 오히려 하나님이 기름부어 세운 다윗을 제거하고 제사장을 서슴없이 죽이는 데 사용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이 주신 힘으로 하나님을 대적하고 있습니다. 이스라엘이 그토록 원했던 인간 왕의 실체가 그러합니다. 그런 면에서 아히멜렉과 85명의 죽음은 애매하고 억울한 죽음이 아닙니다.
이들의 죽음은 사울과 도엑의 악행과 죄의 진면목을 적나라하게 드러내는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이들의 죽음은 재수 없는 죽음이 아닙니다. 사람을 잘못 사귄 결과도 아닙니다. 이들의 죽음은 하나님 없는 사울과 도엑의 악함을 드러내고 하나님이 택한 의인의 편을 들다가 당한 의로운 죽음이며 다윗의 고난에 동참한 죽음입니다. 동시에 이 사건은 엘리 제사장 집안을 향한 하나님의 심판이 성취된 사건이기도 합니다. 사무엘상 2장에서 엘리 제사장의 집안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을 기억하십니까? 엘리의 두 아들 홉니와 비느하스가 하나님 앞에서 심각한 악을 행하였습니다. 여호와의 제사를 멸시했고, 회막에서 수종드는 여인들과 동침하여 여호와를 멸시했습니다. 엘리는 이런 아들을 하나님보다 더 중하게 여겨 바르게 감독하고 지도하지 못했습니다. 하나님은 홉니와 비스하스를 죽였고 엘리의 집안도 심판받을 것이라고 예언하셨습니다. 아히멜렉은 엘리의 집안에 속해 있습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다 이해하지 못하는 이 사건은 엘리 집안에 대한 예언의 성취로 하나님의 공의의 집행이기도 합니다.
놀랍지 않습니까? 아히멜렉과 그에게 속한 제사장들의 죽음이 한편으로는 다윗의 고난에 동참한 의로운 죽음인 동시에 다른 한편으로는 엘리 제사장 집안을 향한 하나님의 엄중한 공의의 집행이기도 하다니요. 그리스도의 십자가가 그러합니다. 예수님의 십자가를 보십시오. 왜 하나님의 아들이, 죄 없는 거룩한 예수님이 그렇게 죽임을 당해야 합니까? 그러나 하나님은 아무 죄 없는 예수 그리스도의 의로운 죽음을 통해 하나님의 공의와 하나님의 자비를 동시에 실현하심으로 우리를 구원하셨습니다. 이런 하나님의 일하심을 세상의 관점, 우리의 관점에서 보면 이해하기 힘들 때가 많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렇게 일하십니다.
그럼 우리는 어떻게 살아야 합니까? 우리가 보기에 억울하게 죽어간 아히멜렉을 보십시오. 그는 사울의 위협에도 당당했습니다. 사울이 “네가 어찌하여 이새의 아들과 공모하여 나를 대적하여 그에게 떡과 칼을 주고 그를 위하여 하나님께 물어서 그로 오늘이라도 매복하였다가 나를 치게 하려 하였느뇨”라고 겁박했을 때 그의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왕의 모든 신하 중에 다윗같이 충실한 자가 누구인지요? 그는 왕의 사위도 되고 왕의 모신도 되고 왕실에서 존귀한 자가 아니니이까? 내가 그를 위하여 하나님께 물은 것이 오늘이 처음이니이까 결단코 아니니이다 원컨대 왕은 종과 종의 아비의 온 집에 아무것도 돌리지 마옵소서 왕의 종은 이 모든 일의 대소간에 아는 것이 없나이다”라고 담대하게 진실을 말했습니다(14-15).
그렇게 아히멜렉이 죽었습니다. 그와 관계된 사람들도 죽임을 당했습니다. 하나님 없는 관점으로 보면 얼마나 허무한 삶이고 허무한 죽음입니까? 그러나 하나님의 관점에서 보면 그들은 의미있게 살다가 의미있게 죽었습니다. 죽음이 전부가 아닙니다. 이 땅에서의 삶이 전부가 아닙니다. 고린도전서 15:19을 찾고 말씀을 맺겠습니다. “만일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가 바라는 것이 다만 이 세상의 삶뿐이면 모든 사람 가운데 우리가 더욱 불쌍한 자이리라” 성경은 우리가 바라는 것이 이 세상의 삶뿐이라면 그리스도인은 가장 불쌍한 자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저와 여러분이 살아가는 믿음의 참된 보상은 이 땅에서가 아니라 영원한 내세에서 주어집니다. 그 영원한 보상이 없다면 우리는 가장 불쌍한 인생으로 보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하나님이 계시기에 불쌍하지 않습니다. 가장 낮은 자리에서도 가장 위험한 순간에도 심지어 죽음의 순간에도 하나님이 함께하시기에 세상이 모르는 하나님의 위로와 복을 누립니다.
우리 앞에 두 길이 있습니다. 사울와 도엑의 길, 다윗과 아히멜렉의 길이 있습니다. 사울과 도엑은 이 땅과 이 세상만 바라고 여기에서 성공과 권력의 길을 가다가 다른 사람을 죽이고 다른 사람의 눈에 피눈물을 흘리는데 아무 거리낌이 없는 삶을 살았고 다윗과 아히멜렉은 하나님의 말씀을 좇아 살다가 도망자가 되고 의로운 고난을 당하고 죽임을 당하는 믿음의 길을 갔습니다. 세상 사람이 볼 때는 힘을 가지고 있고 그 힘으로 반대자를 이기고 죽이는 사울과 도엑의 길이 더 지혜로운 길 같습니다. 그러나 그 길의 마지막은 영원한 멸망이고 지옥의 뜨거운 불 못입니다. 다윗과 아히멜렉의 길은 지고 도망다니고 고난을 당하고 죽는 것 같지만 영원한 생명의 길입니다. 영원한 보상이 약속되어 있습니다. 우리 앞에 남은 길을 하나님과 그의 영원한 약속을 바라보고 믿음으로 걸어갈 수있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