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서 제9장(자유의지), 25.2.16, 박홍섭 목사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서 제9장은 자유의지를 다룹니다. 5항으로 이루어져 있고 1항은 자유의지의 정의, 2항-5항은 무죄 상태, 죄의 상태, 은혜의 상태, 영광의 상태에서 자유의 선택 범위에 관한 내용입니다.
1항. 하나님께서는 사람의 의지에 본성적(생득적) 자유를 부여하셨는데, 이 의지는 강압이나 본성의 어떤 절대적 필연성 때문에 선 혹은 악을 지향하도록 결정되어 있지 않다(마 17:12, 약 1:14, 신 30:19).
2항. 인간은 죄를 짓기 전 무죄 상태에서 하나님 보시기에 선하고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일을 원하고 행할 자유와 능력을 가지고 있었다(전 7:29, 창 1:26). 그러나 인간은 가변적이어서 그 상태에서 타락할 수도 있었다(창 2:16-17, 창 3:6).
3항. 인간은 죄의 상태에 빠짐으로 구원을 수반하는 어떤 영적 선을 향한 의지의 모든 능력을 전적으로 잃어버렸다(롬 5:6, 8:7, 요 15:5). 따라서 자연인은 이 선을 전적으로 싫어하고(롬 3:10, 12) 죄로 죽었기 때문에(엡 2:1, 5, 골 2:13), 스스로의 힘으로는 회심하거나 그것을 위해 자신을 준비시킬 수 없다(요 6:44, 65, 엡 2:2-5, 고전 2:14, 딛 3:3-5).
4항. 하나님께서는 죄인을 돌이켜서 은혜의 상태로 옮기실 때, 죄 아래 있던 본성적 속박으로부터 그를 자유롭게 하시고(골 1:13, 요 8:34, 36), 오직 자신의 은혜에 의해서 그가 자유롭게 영적으로 선한 것을 원하고 행할 수 있게 하신다(빌 2:13, 롬 6:18, 22). 그러나 그는 자신에게 남아 있는 부패로 인해 선한 것을 완전하게 원하거나 선한 것만을 원하지 않을 뿐 아니라 도리어 악한 것을 원하기도 한다(갈 5:17, 롬 7:15, 18-19, 21, 23).
5항. 사람의 의지는 영광의 상태에 있을 때만 완전하고 불변하는 자유를 얻어 오직 선만을 향하게 된다(엡 4:13, 히 12:23, 요일 3:2, 유 1:24).
해설
1. 그리스도가 이루신 구원을 성령이 적용하실 때 사람의 자유의지 문제는 격렬한 토론의 핵심이었습니다. 신앙고백서는 8장의 중보자 그리스도와 10장 이후 구원의 서정 사이에 9장의 자유의지를 배치하여 성령께서 택한 자들에게 그리스도가 이루신 구원을 적용하실 때 인간의 자유의지가 어떤 역할을 하는지를 다룹니다. 택한 자들은 성령의 사역에 기계처럼 반응합니까? 아니면 자신들의 의지로 자유롭게 반응합니까? 신앙고백서 제9장은 이 문제를 다루면서 사람의 의지에는 어떤 자유가 주어졌으며 그 의지의 자유가 사람의 상태에 따라서 어떻게 변하는지를 설명합니다.
2. 9장 1항은 하나님께서는 사람의 의지에 본성적 자유를 부여하셨다고 자유의지가 인간의 본성에 속함을 밝히고 있습니다. 자유의지가 인간의 본성이므로 자유의지가 없는 사람은 인간이라 할 수 없습니다. 본성적 자유가 있기에 사람은 선이나 악을 선택할 수 있는 도덕적 존재가 되며, 본성적 자유 자체는 인간의 상태에 따라서 달라지지 않고 그대로 유지됩니다. 그렇다면 자유가 무엇입니까? 1항은 자기 마음대로 하는 것이 자유가 아니라 강제당하지 않는, 강요받지 않는 의지가 자유라고 말합니다. 자유의지의 본질인 ‘강요받지 않음’은 어떤 상태에서도 손상 없이 그대로 유지됩니다. 예를 들면 무죄 상태의 아담과 하와가 선악과를 따먹었을 때 그 누구에게도 강요받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자신의 의지로 자유롭게 따먹었습니다. 이는 인간이 죄의 상태가 된 이후에도 그대로 보존됩니다. 아우구스티누스는 죄의 상태에 있는 인간을 죄를 안 지을 수 없는 상태, 죄만 선택하는 상태라고 했는데 이때도 인간은 강압이나 강요로 죄를 선택하지 않습니다. 자신의 자유의지로 죄를 선택합니다.
3. 자유의지의 두 번째 특징은 본성의 어떤 절대적 필연성으로 선이나 악을 향하여 움직이지 않는 것입니다(약 1:14, 신 30:19). 자유는 절대적 필연성에 따라 어떤 도덕적 결정을 하는 것이 아닙니다. 사람이 절대적 필연성으로 행동한다고 하면 이는 자유의지를 가진 인격적이고 도덕적인 존재가 아니라 마치 기계처럼 프로그램화되어 행동할 수밖에 없는 운명론적이고 결정론적인 존재가 될 수밖에 없습니다(스프로올,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 해설2, 14). 그러므로 강압이나 강요가 없더라도 절대적 필연성에 따라 선과 악을 선택하면 자유라고 할 수 없습니다.
4. 자유의지와 자유 선택은 구분할 필요가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인간 본성에 주신 자유는 강요받지 않는 의지의 자유이며 절대적 필연성을 따르지도 않습니다. 이처럼 인간 본성으로서의 자유의지는 인간의 상태에 따라 영향을 받지 않습니다. 그러나 자유의 선택 범위는 인간 상태에 따라 상당하게 달라집니다. 무죄 상태에서 인간은 자연적으로 선을 추구하게 되어 있었지만(전 7:29, 창 1:26), 유혹의 힘으로 악을 선택할 수 있는 자유가 있었습니다(창 2:16-17, 창 3:6). 이를 2항은 “인간은 하나님 보시기에 선하고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일을 원하고 행할 자유와 능력을 가지고 있었기에 자유의지로 선을 선택할 수 있지만, 악을 선택하여 타락할 수도 있는 선택의 가변적인 상태였다”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5. 죄의 상태로 떨어진 인간은 이전에 가졌던 능력을 상실하여 선을 선택할 수 없게 되었습니다. 죄의 속박 아래서 아무런 강요나 강압 없이 악만 자유롭게 선택하게 되었고 하나님의 은혜 없이는 구원에 이르는 영적 선을 선택하는 능력을 회복할 수 없게 되었습니다. 자기 힘으로 자신을 회심시키지도 못하고 회심에 이르도록 준비시키지도 못합니다(요 6:44, 65, 엡 2:2-5, 고전 2:14, 딛 3:3-5). 그러나 죄의 상태에 있는 인간의 심각성을 강조하다가 하나님께서 부여하신 강요당하지 않는 자유의 본성, 절대적 필연성에 의하지 않는 자유의 본성까지 부정하는 일은 없어야 합니다. 본성적 자유가 남아 있어야 인간은 선이나 악을 선택할 수 있는 도덕적 존재가 되며 죄와 악에 대한 책임을 물을 수 있습니다. 죄의 상태에 있는 인간도 여전히 본성적 자유를 가지고 있으므로 죄에 대한 책임을 벗어날 수 없습니다.
6. 구원받은 성도는 선을 선택할 수 있는 능력이 회복된 은혜의 상태 아래 있게 됩니다. 성도는 그 은혜의 상태에서 자유롭게 선을 선택할 수 있지만 여전히 남아 있는 육신의 부패와 죄 성의 영향을 받습니다. 그 결과 은혜의 상태에서도 완전하게 선을 원할 수 없고 선한 것만 선택할 수도 없습니다. 이를 하이델베르크 요리 문답은 신자의 가장 선한 행위도 완전하지 못하며 죄로 오염되어 있다고 했습니다(62 문답).
7. 그러나 육신의 부패에서 완전하게 해방되어 자유롭게 선만 선택할 수 있는 때가 옵니다. 언제입니까? 죽음을 통해 영광의 상태에 이를 때입니다(엡 4:13, 히 12:23, 요일 3:2, 유 1:24). 성도가 죽으면 몸은 흙으로 돌아가고 영혼은 하나님께 즉시 돌아갑니다. 그때 의인의 영혼은 완전히 거룩하게 되어 가장 높은 하늘에서 영접을 받는데 거기서 빛과 영광 가운데서 하나님을 뵈옵고 몸의 완전한 구속을 기다립니다. 그러다가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 때 흙으로 돌아간 육신이 영광으로 다시 살아나 그리스도의 몸과 같이 영광스럽게 변화되는 영광의 상태에 이르게 됩니다. 이때 사람의 의지는 오직 선만 지향하며 완벽하고 변함없는 자유로움을 지향합니다. 무죄 상태에서는 가변적이었던 자유가 영광의 상태에서는 불변하여 악한 것을 생각하지도 않고 생각할 수도 없게 됩니다. 이를 요약하면 ‘무죄한 상태’에서 인간은 선과 악 중 하나만 선택할 수 있으며, ‘죄의 상태’에서는 악만 선택할 수 있고, ‘은혜의 상태’에서는 선과 악 둘 다 선택할 수 있으며, ‘영광의 상태’에서는 선만 선택할 수 있습니다.
8. 지금 성도는 은혜의 상태에 있습니다. 선을 원하기도 하지만 남아 있는 부패로 인해 악한 것도 원합니다(롬 7:21, 23). 육체의 소욕은 성령을 거스르고 성령의 소욕은 육체를 거스르면서 이 둘이 사는 내내 왔다 갔다 합니다(갈 5:17). 그러므로 성도는 이런 현상이 자기 안에 일어나더라도 자신의 구원을 의심하지 말고 오히려 악을 싫어하고 선을 행하는 믿음의 싸움을 싸워야 합니다. 성도가 죄를 지었을 때는 은혜의 상태에 있으므로 그 죄에 대한 징계를 받고 연단 받을지언정 무죄의 상태에서처럼 타락하여 죄에 속박된 상태로 떨어지는 일은 없습니다. 그러나 죄를 지을 때마다 크게 슬퍼하고 한탄하며 죄를 짓지 않겠다는 굳은 다짐으로 피 흘리기까지 죄와 싸우면서 영광의 상태를 소망하며 사모해야 합니다.
9. 하나님의 주권과 인간의 자유는 상반되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 인간에게 자유의지를 주셨기에 인간의 자유의지는 하나님의 주권을 인정할 때 의미가 있습니다. 진정한 자유는 하나님 없이 자기 마음대로 사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주권을 인정하고 하나님의 뜻 가운데서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고 섬기는 삶입니다. 이는 오직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으로만 가능하기에 성도는 늘 가난한 마음과 애통한 마음, 온유한 마음과 의에 주리고 목마른 마음으로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을 구하며 살되 영광의 상태를 소망해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