촘롱은 ABC Trek에서 가장 큰 마을이다.
트레킹 시즌 내내 세계 각국의 여행자들로 북적이지만, 시즌 끝자락이 되니 분위기가 달라졌다.
애플파이로 유명한 게르만 브레드도 문을 닫았고, 트레커들을 상대하던 점포들도 대부분 닫쳐있다.
맑았던 하늘에 아래쪽에서부터 구름이 올라오더니, 이내 촘롱 하늘을 낮게 덮는다.
지나는 이 없는 계단 위로 서너 마리의 개들만 활개를 친다.
전망 좋은 롯지 마당에 앉아, 하릴없이 상념에 잠긴다.
에너지바를 두 개나 밀어 넣었는데도 배속은 여전히 허전하다.
애플파이 굽는 냄새가 그리워진다.
게르만 브레드를 닫고 떠나버린 멋진 콧수염의 독일인이 괜스레 원망스럽고,
빵집에서 일하던 늘씬하고 예쁜, 깊고 짙은 갈색 눈망울이 매력적이었던 아가씨도 떠오른다.
그 아가씨에게 반해 지누단다로 내려가던 길에 돌아보고 또 돌아보다가
그만 넘어졌던 한국 총각도 생각나고,
애플파이 한 판을 걸고 벌였던 가위바위보 게임의 왁자지껄한 흥겨움도 그립다.
그나저나, 도착 예정 시간보다 한 시간이 지났는데 왜 안 오나
비적비적 일어나 추일레에서 촘롱으로 오는 산등성이 길이 보이는 곳까지 가봤지만, 그림자조차 보이지 않는다.
다시 돌아와 원래 자리로 와 앉는다.
이어폰을 끼고 박은옥이 부른 “꿈꾸는 여행자”를 들으며 흥얼거린다.
그러나 전망은 온통 구름에 가려버려, 흥취도 덩달아 가라앉는다.
이 노래는 설산이 보이는데서 들어야 제 맛인데.
이번엔 안치환 – “행여 지리산에 가시려거든”.
이 노래를 들을 때마다 울컥해지는 건…
살면서 죄를 많이 지어서인가?
…제길.
이런저런 노래를 들으며 혼자 놀다 보니 슬며시 한기가 든다.
몸을 털고 일어나 이번에는 위로 난 계단 쪽으로 올라가려는데, 꼭대기에서 사람이 나타난다.
가이드 다와와 오대장… 이제야 오는군.
뒤이어 마치 히말라야 온 산을 다 돌고 돌아오는 분위기로 한 분, 두 분 모습을 드러낸다.
블랙봉님과 봉우리님이 가장 앞,
그리고 이번 팀의 좌장이신 허선생님이 비교적 씩씩하게 내려오신다.
마치 전장에서 돌아온 전우를 맞이하듯, 손을 맞잡으며 반가움을 나눈다.
“마실님 덕분에 여기까지 왔어요.”
곧이어 이대표와 중간 그룹이 도착하고,
마지막으로 조선생님과 쌍계가 합류한다.
조선생님도 “마실님 덕분에 왔어요.” 하시는데,
속으로 ‘역시 난 어른들에게 잘 먹히는 캐릭터인가 보다’ 생각하는 찰나—
옆에 있던 반쯤 넋이 나간 얼굴로 내려온 박대표님이,
“위에서 보는데 웬 부자 네팔인이 오대장이랑 얘기하는 줄 알았어요.
그 한마디에 빵 터졌다.
그렇게 난 부자 네팔인으로 등극했다가, 이후 원화 가치가 떡락하듯 거지 네팔인으로 추락했다.
오호… 한식이다.
며칠 만에 마주하는.
점심을 먹고 잠시 정비를 한 뒤, 빤히 보이는 시누아로 출발한다.
하지만 밥을 먹고 나니 몸이 더 무거워져 걷기가 만만치 않다.
무조건 후미.
천천히 쌍계와 함께 후미에서 걸으며 몸을 추스린다.
내리막 계단, 계단.
내리막 계단 중간쯤, 사원에 들러 마니차를 돌리며 무사 안녕을 기원하고,
계곡 끝까지 내려와 다리를 건넌다.
이제 다시 오르막 계단, 계단.
그 끝에 시누아.
다행히 로우 시누아에서 멈춘다.
어퍼 시누아까지 안 가는 게 얼마나 다행인지.
롯지에 짐을 풀고 나서 다이닝룸에 모였다.
걷는 데 문제가 있는 몇 분에게 테이핑을 해주고,
쌍계를 협박(?)해 닫힌 점포 문이라도 열고 구해오라 했던 “꼰 스트링 팔찌”를 한 분씩 손목에 매어드린다.
”무사 완주와 평생 안녕”을 기원하며, 홀로 헤맸던 사흘간의 외로움을 풀었다.
꼰 스트링 팔찌는 꼰은 매듭, 스트링은 끈을 뜻하며,
매듭을 지어 만든 실 팔찌로, 주로 행운, 우정, 보호 등의 의미를 담고 있다.
심플하면서도 다양한 디자인이 가능하여 패션으로도 손색이 없고,
불교, 힌두교, 민속신앙 등에서 부적, 기원의 의미를 가진다.
팔찌를 착용하면 악운을 막고 행운을 불러온다고 믿으며 왼손에 착용해야 효과가 있다고 한다.
착용하면서 소원을 빌고, 팔찌가 자연스럽게 끊어지면 소원이 이루어진다고 믿으며
타인이 매어주는 것이 더 효과적이라고 한다.
왁자지껄.
시누아에서의 저녁은 고기가 나온다.
오늘은 닭백숙.
이제 이 윗쪽으로는 고기를 가져갈 수도 먹어서도 안된다.
식사 시간은 활기찬 수다로 가득 찬다.
그래, 이게 트레킹의 맛이지.
저녁을 마친 뒤, 내일의 운행을 위해
보온재인 온수를 병병 담아 각자의 방으로 흩어진다.
하지만 저녁 시간이 아쉬운 몇몇은 남아
발아래로 들어오는 마을의 불빛을 바라보며 담소를 나눈다.
오늘도 쉽지 않은 하루였을 텐데,
내일은 본격적으로 고도를 올리는 더 빡센 일정.
일행과 합류한 덕분인지,
파죽이었던 몸 상태가 빠르게 회복되는 게 느껴진다.
“그래… 사람은 어쨌든 함께여야 하는 거야.”
마실정회동
첫댓글 시누아 닭다리 내놔요~~ 난 구경도 못했어요...ㅜㅜ
닭다리는 …박혜선대표님이 알거임. 나두 절대 모름. 분명히 젤 불쌍한 사람이 먹었을거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