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을은 오래 전부터 있었다. 서울에도 농촌에도 두메산골에도, 지금도 변함없이 존재하고 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마을의 존재를 쉽게 느낄 수 없다. 특히 아파트 공화국이라 불리는 서울 같은 대도시에서는 더욱 그랬다. 그런데 최근, 하나씩 둘씩 마을이 살아나고 있다. 오래 전부터 살고 있었던 마을 사람들을 다시 한명씩 잇기 시작했기때문이다. 아이부터 어른까지 행복한 삶을 누리고 있는 서울 속 마을공동체를 소개한다.
글 심승훈 사진 송인혁(다뷰스튜디오)
▲ 성미산마을 동네책방 개똥이네 책놀이터
▲ 성대골 어린이도서관
마을공동체 맏형 ‘성미산마을ʼ마포구 성산동의 작은 산, 성미산 자락에 터를 잡고 있는 ‘성미산마을’은 서울의 마을공동체 가운데 가장 잘나가는 곳으로 꼽을 수 있다. 1994년 국내 최초의 공동육아협동조합 ‘우리어린이집’을 만들면서 마을공동체 싹이 돋기 시작한 이곳은 공동육아를 위한 어린이집은 물론 초・중・고교 통합과정의 대안학교와 다목적 공간인 마을극장까지, 다양한 커뮤니티로 활발한 활동을 이어가고 있다.
마을카페 ‘작은나무’에 가면 언제든지 낯익은 마을주민과 이야기를 나눌 수 있고, 카페 안에 있는 ‘풀빵구리’에서 주민들이 직접 만든 재미있는 물건도 구입한다. ‘두레 생협’의 친환경 농산물로 저녁 식탁을 꾸미고, ‘동네부엌’에서 유기농 반찬도 챙겨본다.
입지 않는 의류나 생활용품을 가져다 놓고, 필요한 다른 물건을 구입할 수 있는 ‘되살림가게’도 두레 생협과 나란히 자리하고 있어 마을주민이 자주 이용하는 공간이다.
성미산마을은 2001년 서울시의 성미산 개발에 반대하는 마을주민들이 성미산 지키기 운동을 전개하면서 세상에 알려지기 시작했다. 마을주민의 동의를 받지 않은, 마을주민이 반대하는 개발은 절대 용납할 수 없다는 것이 당시 마을주민의 일치된 의견이었다. 결국 주민의 강력한 의지로 서울시는 2003년 개발계획을 백지화했으며, 성미산마을은 이때부터 더 많은 마을주민들이 다채로운 공동체를 형성해 나가게 됐다.
지금도 성미산마을에서는 해마다 축제와 운동회 등을 통해 마을주민들의 하나 되는 모습을 확인할 수 있다. 최근 들어서는 마을공동체에 대한 사례를 배우겠다는 방문객이 부쩍 늘어나면서 아예 마을 투어프로그램까지 운영 중이다. 지난해 기준으로 300개팀 4천여 명이 성미산마을을 다녀간 것으로 집계됐다. 이래저래 성미산마을은 성공한 마을공동체로 주위의 부러움을 한 몸에 받고 있다.▲ 성미산마을 생협
걸음마 시작한 동작구 ‘성대골ʼ성미산마을이 자리를 잡은 마을공동체라면, 이제 막 마을공동체라는 옷을 입고 첫 단추를 채운 곳도 있다. 바로 동작구 상도동 ‘성대골’이다. 장승배기와 신대방삼거리 사이에 위치한 성대시장에서 걸어서 10여 분 올라가면 만나는 성대골은 서울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언덕배기 마을이다. 행정구역상 상도3동과 상도4동을 아우르고 있는 이곳이 성대골이라는 명칭을 얻기 시작한 것은 얼마 되지 않았다.
지난 2009년, 몇몇 주부가 지역시민단체의 도움으로 당시 전국적인 열풍처럼 번져나가기 시작한 작은 도서관 설립운동에 참여하면서 마을공동체 성대골의 역사는 시작됐다. 넉넉하지 못한 경제사정이지만, 남의 동네 일로만 생각했던 작은도서관을 우리 동네에서 우리 힘으로 만든다는 부푼 꿈을 실현시키기 위해 주민들은 동분서주했다. 생전 처음 모금함을 들고 다니며 성금을 모으고, 구청 등 관공서도 들락거렸다.
마침내 2010년 10월, ‘성대골 어린이도서관ʼ은 문을 열었다. 김소영 도서관장은 “맞벌이 가정이 많은 탓에 도서관을 찾는 어린이는 많았지만, 자원봉사자가 턱없이 부족했다”며 “운영진 몇 명으로 자원봉사를 시작했는데, 이제는 노하우가 생겨서 마을학교 자원봉사까지 도맡고 있다”고 밝혔다.
어린이도서관으로 자신감을 얻은 성대골 주민들은 지난 4월 마을학교도 문을 열었다. 교회 건물 3층에 자리한 ‘성대골 마을학교ʼ는 아이들 방과 후에 초점을 맞췄다. 연극, 다문화 요리, 숲 체험 등 마을에 살고 있는 숨은 재주꾼들을 발굴하여 교사로 임명했다. 아이들은 물론 자원봉사 주부들까지 신이 났다. 아이들이 없는 오전 시간은 주부들을 위한 공간으로 활용된다. ‘성대골 발전소’라는 에너지교실이 열리는데, 일본 후쿠시마 원전 폭발사고 이후 생활 속 에너지 줄이기를 실천하는 가정의 참여가 점점 늘어나고 있다.▲ 서촌 투어프로그램
우리는 서촌의 자랑 ‘품애’새로운 방식으로 주목받는 마을공동체도 있다. 바로 종로구 서촌에서 활동하고 있는 ‘품애’다. 앞서 소개한 마을공동체가 거점 중심이라면, 품애는 프로젝트 중심이라는 것이 독특하다. 2009년 장애인과 비장애인의 산행을 통해 인연을 맺은 마을 사람들이 2010년 일하는 엄마를 위한 공부방 문을 열고, 서촌 공방 가는 길이라는 지도를 제작하면서 마을공동체 품애가 탄생했다. 이후에 ‘효자동 프로젝트’라는 것을 통해 마을주민들에게 서촌의 역사, 애향심, 문화 그리고 이웃사촌 등 잊혀졌던 많은 것들을 생각하게 만들었다. 마침내 공방에서 작업하던 장인(匠人)들은 마을 전봇대와 담장에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고, 청년들은 어르신들을 위해 마을 언덕에 의자를 설치했다. 골목텃밭도 조성하고, 온 가족이 함께하는 영화제도 개최했다.
잔치의 본래 의미와 가치에 주목할 수 있도록 결혼식을 기부와 접목하는 착한혼인, 미혼모 돌잔치, 김장잔치, 명절잔치 등의 ‘착한잔치 프로젝트’도 눈길을 끈다. 특히 착한잔치 프로젝트는 서촌에 자리하고 있는 환경연합과 참여연대 등 시민단체는 물론 교회와 학교, 동주민센터 등 마을 구성원이 함께 참여하는 진정한 마을잔치로 이어졌다. 지난 4월 14일에도 궂은 날씨지만 마을주민이 어우러진 벚꽃잔치가 있었다. 김정찬 품애 이사는 “마을의 자원을 최대한 이끌어내는 것이 운영진의 역할”이라며 “좀 무모한 시도라고 생각되겠지만, 많은 분들이 직접 찾아가면 기꺼이 도움을 주는 경우가 많다”고 말한다. 품애 운영진의 노력 덕분에 국내 굴지의 로펌에서 근무하는 외국인 변호사들이 공부방 원어민 영어강사로 함께하고, 마을 교회에서 무료영화제가 열리기도 한다.
품애도 그렇고 성대골도 마찬가지다. 성미산마을은 더할 나위 없다. 대다수 마을공동체의 공통점은 아이들이 행복하게 살아갈 수 있는 마을을 만들어보자는 것에서 시작한다. 오늘날 우리 아이들 주변을 보면 행복을 저해하는 요소가 곳곳에 도사리고 있기 때문이다. 폭력도 없고 성적에 대한 고민도 없는 대신, 자신이 하고 싶은 것은 마음껏 하면서 뛰어놀 수 있는 마을. 아이들을 위해 시작했는데, 어른들이 더 행복해지는 삶. 서울사랑이 꿈꾸는 마을공동체의 참 모습이다.▲ <미니 인터뷰_ 유창복 성미산마을극장 대표>
“마을은 만드는 것이 아니랍니다”성미산에서 시작한 마을공동체가 서울 전역으로 확산되고 있다.
공동육아, 대안학교, 생협에 마을극장까지.
성미산마을의 성장과 발전을 함께해온 유창복 성미산마을극장 대표를 만나, 서울의 마을공동체가 나아갈 방향을 들어본다.
◎ 성미산마을에 들어가신 계기는…
저희 아이가 여섯 살 때죠. 그 때는 경기도 안산에 살고 있었는데, 아이가 하루 종일 상가 안에 있는 어린이집에 갇혀 있는거예요. 이건 아니다 싶어서 다른 곳을 알아봤는데, 다 거기서 거기였어요. 그 때 어디서 들었던 성미산마을이 생각났지요.
한 번 와보고, 마음에 들어서 바로 이사했지요.
◎ 성미산마을 성공요인을 꼽는다면…
아이러니하지만, 성미산 개발이죠. 2001년이었는데, 그 때 개발반대 운동을 하면서 주민들이 급속도로 단결됐지요.
더욱이 그 단결된 힘으로 반대 운동이 성공했잖아요.
이때부터 성미산 마을이라는 이름도 얻었고, 같이하는 사람도 많아졌으며, 공동체도 마구 생기기 시작했죠.
◎ 서울에서 마을공동체가 성공하려면…
마을을 만들겠다는 생각을 안하면 되죠. 마을은 만드는 것이 아니라, 살아가는 공간이라고 생각해요. 혼자 살고, 떨어져 살고 있는 일정한 공간의 사람들을 이어 놓으면 그것이 마을이 되는 것이죠. 마을은 주민이 잇는 것이지, 서울시에서 구청에서 만들어주는 게 아니에요.
관공서에서는 주민이 손을 내밀었을 때, 잡아주면 좋겠어요.
◎ 그래도 앞장서는 사람이 있어야…
흔히 마을에서 설치는 사람을 저희는 ‘마을백수’라고 불러요.
그런데 그 마을백수를 주민들이 “너 마을백수해라” 이렇게 해서 탄생하는 경우는 없어요. 마을주민들이 모여서 마을 일을 논의하다보면, 자연스럽게 마을백수가 탄생하게 되지요. 성미산마을도 공동체마다 마을백수가 다 달랐어요.
◎ 아파트에서도 마을공동체가 가능할까요…
요즘 건설회사의 아파트 마케팅 포인트가 생태에서 커뮤니티로 바뀌었어요. 시대가 달라진 셈이지요. 아파트는 주택보다 공동체 형성이 용이한 여건이에요. 평형이 같으면 사는 게 비슷비슷하거든요. 서울에서의 마을공동체 성패도 아파트가 쥐고 있다고 생각해요.
◎ 마을백수로서 꿈꾸는 마을공동체는…
마을공동체는 보통 아이들 수준에 맞춰져요. 유치원, 초등학생, 중・고생 등등. 그 수준에 맞게 공동체가 성장하고 발전하지요.
지금 성미산마을의 경우는 초창기 아이들이 결혼해서 다시 마을로 들어와 공동체에 합류하는 꿈을 꾸는 시기지요. 그 꿈을 이루기 위해서는 청년들의 마을살이를 가능하게 하는 마을기업 창업이 과제라 할 수 있죠. 아마, 해낼 거예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