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크로드의 오랜 숨결이 멈추지 않고 흐르는 곳, 신장 카슈가르의 심장부에 섰다.
끝없이 펼쳐진 역사적 대지의 한가운데서 마주한 이드가 모스크(Id Kah Mosque)는
투명한 햇살을 받아 특유의 부드러운 노란빛을 뿜어내고 있었다.
그 노란빛은 화려하지 않았다.
마치 오래된 사막이 수천 년의 세월을 머금어 바랜 것처럼, 조용하고 단단한 빛이었다.
모스크 앞 넓은 광장에 들어서자마자 이국적이면서도 묘한 긴장감이 감도는 풍경이 눈에 들어왔다.
한편에는 삼삼오오 모여 기념사진을 남기는 여행객들과 한가로이 거니는 현지인들이 있고,
다른 한편에는 이 지역의 독특한 위치를 보여주듯 육중한 장갑차가 광장 한쪽을 지키고 있었다.
그것은 단순히 관광지를 지키는 경비가 아니었다.
19세기 후반 좌종당(左宗棠)의 군대가 이곳을 재정복하며 반란을 진압했던 격동의 역사부터,
1930년대 군벌 시대에 위구르족 지도자들의 목이 내걸렸던 비극의 무대,
그리고 비교적 최근인 2014년 친정부 성향의 이맘이 암살당하며 삼엄한 통제의 기폭제가 된 사건까지—
수 세기 동안 이어진 민족과 종교 갈등의 서글픈 단면이 장갑차의 무게감 위에 겹쳐 보였다.
철저한 통제와 평화로운 일상이라는 이질적인 두 풍경이 묘하게 버무려진 광장.
그러나 노란 모스크의 정문은 그 모든 피비린내 나는 역사를 품어 안은 채 담담하게 서 있었다.
웅장한 이슬람 양식의 아치형 정문과 하늘을 향해 곧게 뻗은 미나레트(minar)는
정교하면서도 소박한 아름다움을 지니고 있었다.
이슬람의 상징인 초승달 장식이 얹어진 탑을 바라보며,
아주 오래전 이 사막의 오아시스 도시를 거쳐 갔을 수많은 상인과 순례자,
그리고 소용돌이치는 역사 속에서 자취도 없이 사라져 간 이들의 발걸음을 상상해 보았다.
그들이 이 광장에서 무엇을 빌었는지는 알 수 없다.
다만 그 바람들이 쌓이고 쌓여 이 노란 벽을 이루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사막의 열기를 머금은 바람을 뒤로하고 모스크 내부로 향하는 길,
뜻밖에 울창한 수림이 눈앞에 펼쳐졌다.
하늘을 가릴 듯 높이 솟은 포플러 나무들이 만들어내는 초록색 터널은 마치 다른 세상으로 들어가는 문 같았다.
초록색 목조 아치 위에는 붉은 등롱이 마주 보며 걸려 있어,
이슬람 문화와 중국풍의 색채가 오랜 세월 동안 어떻게 섞이고 녹아들었는지를 한눈에 보여주었다.
충돌이 아니라 침윤(浸潤)—두 문화는 싸우기보다 서로의 빛깔을 조금씩 흡수하며 이 공간 안에 공존하고 있었다.
사원의 본당과 회랑에 들어서자 정성스레 가꾼 장인의 손길이 고스란히 전해졌다.
천장을 떠받치고 있는 짙은 초록색 목조 기둥들은 거대하면서도 아늑한 공간감을 만들어냈다.
가장 감탄을 자아낸 것은 천장과 벽면에 새겨진 문양들이었다.
기하학적인 아랍풍의 무늬와 화려한 색감의 천장 장식은 고개를 들어 한참을 바라보게 만들 만큼 매혹적이었다.
오랜 세월 동안 색이 바랬을 법도 한데,
여전히 그 섬세한 격자무늬 창틀과 벽면의 디테일은 우아함을 잃지 않고 있었다.
기둥 사이로 들어오는 은은한 빛을 따라 회랑을 걷다 보니,
잔혹했던 역사의 상흔과 마음속 복잡한 소음들이 일순간 가라앉았다.
기도라는 행위가 어째서 건축 안에서 이루어지는지, 그 이유를 이 공간이 몸으로 가르쳐주는 것 같았다.
다시 광장으로 나오니 사막의 마른 바람이 뺨을 스쳤다.
사원의 노란 벽을 배경으로 다정하게 걸어오는 이들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시간이 멈춘 듯한 고대의 모스크와 그 앞을 바쁘게 살아가는 현대인들.
카슈가르 이드가 모스크는 단순히 종교적인 공간을 넘어,
실크로드가 남긴 거대한 문화의 융합과 그 뒤에 숨겨진 격동의 연대기,
그리고 그 속에서 묵묵히 이어져 온 삶의 현장이었다.
노란 벽은 오늘도 아무 말이 없었다. 다만, 그 침묵이 무겁지 않았다.
긴 세월을 버텨온 것들은 대개 그렇듯, 더 이상 설명하지 않아도 되는 품위를 가지고 있었다.
마실정회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