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탄 축하 유감
불교계 인터넷 매체에 포탈사이트 이버 다음 네이트의 초기 상단에 부처님오신날 축하 로그를 달았다는 기사가 떴다. 자연 금번 부처님오신날 한국기독교장로회 섬돌향린교회에서 조계사 일주문 앞에 내 건 불탄 축하 현수막 이미지가 떠올랐다. 유일신을 믿는 이들이 이웃 종교의 교주에 탄신을 축하해주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닐 것이다. 불신지옥 예수천국을 외치고 다니는 이들이 적지 않고, 또 말끝마다 다른 종교를 폄훼하는 이들이 다수를 차지하고 있는 기독교계에서 내건 불탄 축하 현수막은 칭찬 받아 마땅하다고 할 수 있다. 그런데 현수막 디자인이 참 묘했다. 무슨 말인가. 먼저 향린교회에서 일주문 앞에 내건 현수막을 보자.
좌측의 연꽃 등 둘은 위로 향해 있는데, 우측의 세 등은 아래로 향하고 있다. 연꽃이 아래로 저렇게 필 수 있을까 아니 연등이 저렇게 켜질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면서 망상 잡념이 일어났다. 요즈음 현수막은 예전에 비하면 값이 아주 싸다. 컴퓨터와 포토샵과 같은 프로그램의 발달로 제작이 수월해지면서 현수막 값이 저렴하다. 예전 제작단가를 생각하면 그렇다. 해서 관련 문안과 함께 현수막을 신청하면 디자인 값도 없다는 느낌이 들 정도로 싼 가격과 어떻게 이렇게 빨리 할 수 있을까 싶을 정도의 짧은 시간에 시안을 만들어 의뢰자에게 검토를 요청하는 것을 여러 번 경험했다. 향린교회의 축하 현수막은 디자인하는 이의 의도인지, 아니면 의뢰자의 요구에 의해서인지 연화 연등이 아래로 피고 밝혀지고 있다. 유일신을 믿는 한국기독교 입장에서 타 종교의 교조를 인정하고 축하해주는 순수한 마음은 보이니, 이 현수막 디자인은 디자인 하는 이의 미감에 의해 디자인되었다고 생각이 되기도 하지만 자꾸만 불손한 의도가 떠오르는 것은 나의 과민 반응인지 모르겠다. 그렇다면 네이버 다음 네이트의 불탄 축하 로그를 보면서 이야기를 좀 더 나눠 보자.
네이버의 연화는 위나 앞으로 피었고, 다음의 연등은 평범하며, 네이트의 팔각등은 추상화가 심하다는 느낌이다. 붉은 빛과 녹색의 등을 줄에 매달았다. 네이버의 연등 가운데 작은 연등도 아래로 향하고는 있지만 자연스럽다. 그런데 향린교회의 연등처럼 아래로 향해 떨어뜨려지거나 쏟아져버리는 느낌이 든다.
또 네이버는 불교계에서 공식적으로 사용하는 ‘부처님오신날’을 쓰고 있다. 하지만 다음과 네이트는 ‘석가탄신일’이라는 국가공식명칭을 쓰고 있다. 이에 반해 향린교회의 축하 문구는 존칭과 내용이 순수하다. 예전부터 불가에서는 부처님 오신 날을 성탄일이라고 하였다. 그런데 예수님 탄신일을 성탄절이라고 하면서 부처님 오신 날은 '석가탄신일'이라고 고유명사를 넣어 변별하게 되었다. 나중 것이 먼저 것을 밀어내고 자리를 차지한 형국이다. 우리 사회 전반에 이와 같은 것이 하나 둘이 아니지만 서구화 과정에 기성의 전통에 대해 ‘석가’처럼, 외부인이 우리 내부를 구별하여 인식할 때 사용하는 ‘한’자를 달아야 되는 세상이 되었다. 한식, 한복, 한옥 등. 부처님오신날은 오래 전부터 우리 민족이 사용해온 성탄일이다. 굳이 ‘석가’라는 고유명사를 더하는 것은 외부자의 입장이다. 그런데 1500년 이상 늦게 이 땅에 수입된 타 종교의 교주에게 ‘성탄절’이라는 일반명사를 내주고 ‘석가’라는 고유명사를 표시해야 하는 현실을 가볍게 보아서는 안 될 것 같다. 석가탄신일이라는 건조한 명칭 대신 불자들부터라도 오래전부터 호칭됐던 성탄일을 번역했다고 할 수 있는 "부처님오신날"로 쓰고 불렀으면 좋겠다.
향린교회의 아래로 향하는 연등의 비정상적인 발화에 (불신지옥을 외치는 이들의 희망처럼 불교가) 아래로 떨어지기를 바라는 염원이 결코 담겨 있지 않을 것이다. 축하문구로 볼 때 그 진정성은 충분히 묻어 있으니까 말이다. 그런데 왠지 아쉬움은 잘 가시지 않는다. 향린교회 현수막 디자인은 가볍게 연등 문양을 따서 대칭하여 문안을 만들었다고 보이지만 축하 현수막을 만들 때는 자칫 잘못하면 의도가 왜곡될 수 있다는 것을 검토했으면 좋았을 것이다. 현수만의 구도로 볼 때 굳이 연등을 아래로 뒤집을 필요가 있었다고 보이지 않는다.
네이버처럼 연등을 추상화했다면 몰라도 그렇지 않고 구상적인 연등이라면 위치의 상하의 대비만 가지고도 얼마든지 진흙에 피어나는 것과 세상을 밝히는 것을 형상화할 수 있었다고 보인다. 부처님 오신 날의 의미를 드러내고 축하하는 현수막 디자인에 굳이 연등을 뒤집어 놓아 무엇을 표현하고자 했는지 알 수 없다. 선의로 한 축하에 괜한 트집으로 읽을 분도 계시겠지만 감각의 시대에는 점 하나, 빛깔 하나에 불과할지라도 의미는 다양하게 변하므로 선택할 때는 신중을 기해야 되지 않을까 싶다.
2015.5.27. 우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