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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 03. 19. 3
정부에 기업·상품 이력[무게·부피·가격·실제 용량의 변화 조사·정리] 조회 부서 신설
+형법도 쌍방 과실 처벌·보상 도입·확대
+변호사 제도의 진실 왜곡·주객 전도의 위험
+뒷 배경[빽]·권력]과 돈의 힘
(사용 단어 참고-음절·발음 구분: 요흔[요한: John]/ 예·수스 크흐리스트[예수 그리스도: Je·sus Christ]님)
세상에는 실제 진실을 떠나서 발각되거나 드러나면 죄로 성립되는 경우가 너무 많습니다. 실제 행위가 어떻든 간에 증거가 드러나지 않거나, 여론 재판을 받지 않으면 진실로 둔갑하는 경우가 부지기수 입니다. 아무리 범죄를 저질러도 증거가 없으면 무죄인 경우가 많습니다. 물론 본인의 양심에 기록되어 구원 받지 않으면, 죽음 이후의 심판을 피할 수는 없습니다. 심증은 늘 가지고 있지만, 정죄할 수는 없습니다. 진실 여부 보다는 드러난 증거나 법적 대응의 적절한 대처에 따라서 묻혀집니다. 법도 중요하지만 진실, 곧 사실을 중시하는 사회가 되도록 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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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에 기업·상품 이력[중량·부피·가격·실제 용량의 변화 조사·정리] 부서 신설
우리들은 많은 상품을 접합니다. 식품이나 공산품 등을 필수불가결하게 생활에 이용하며 삽니다. 물가가 오르거나 상황이 변하면 수많은 기업에서는 원가를 절감하고 인건비를 낮추는 등 이윤을 남기기 위해서 온갖 노력을 기울입니다. 당연한 이치일 것입니다. 과거에는 정부에서 강압적으로 어느 정도의 통제를 하여서 서민들이 피부에 닿는 것은 최소화 되었지만, 지금은 지나친 통제는 시민 단체나 여러 이익 단체의 화살을 맞을 것입니다. 그래서 지금은 여론 재판이 심합니다. 소비자들은 정보화 시대이지만, 아직은 구체적인 정보에 약합니다. 이것은 사회 단체의 몫이 아니라, 정부에서 누구나 쉽게 알수 있는 특정 부서에서 기업이나 상품의 지난 이력을 공개해서 기업 스스로가 자중하고 반성하면서 적정한 가격을 유지하도록 간접 통제를 해야 된다고 봅니다.
주위를 보면은 가공 식품이나 약품이나 공산품 등에서 무게나 크기, 곧 중량이나 부피가 차이가 나는 것을 봅니다. 이것은 강제 통제 차원을 넘어 사회의 정의 차원에서 국민들 마음에 불신을 씻어내는 차원에서 반드시 짚고 넘어가야 할 부분입니다. 물론 구원 받지 않은 상태에서 그 누구도 완전한 양심을 지킬 수도 없고, 구원 받았다 하더라도 양심을 다 지킬 수 없습니다. 성경적 실행을 다 할 수 없습니다. 세상 사람보다 더 못할 수도 있습니다. 구원 받은 후에 하나님의 마음으로 하나님의 법-신유언의 서신서들-을 지키다가 가는 것입니다.
수많은 상품들이 가격을 올리지 않은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부피나 중량을 줄여서 가격을 올린 것입니다. 가격 변동이 심한 채소나 과일은 그때그때에 가격이 달라서 비교하는 것이 어렵지만, 기존 제품이 있는 경우에는 그 크기나 중량의 역사를 정확하게 조사하여 정부에서 알려서 그 기업의 정직성과 과거 여러 과오나 고의적인 속임에서 진정으로 돌이키고 있는지 국민이 검증하게 해야 합니다. 강제적인 법 집행을 떠나서 그 기업이 그나마 진실되게 상품을 제조하고 판매하는지, 진정으로 뉘우쳤는지 국민들이 알아서 신뢰의 정도에 따라서 상품을 구입하게 해야 합니다. 아무리 법이 그물망 같이 쳐져도 걸리지만 않으면서 속으로는 편법과 위장으로 겉만 번지르르하게 눈가림만 한다면 그것은 국민 정서에 악영향을 미칩니다. 스포츠 선수들의 트레이드 제도가 실제 삶에서 기존 직장이나 조직에 대한 충성도를 약화시키는 쪽으로 마음의 세계를 형성해서 이혼도 늘고 이직이 느는 것과 같은 맥락입니다.
정부에서는 개인의 전과를 기록하고 차후에 참고로 하듯이 기업이나 상품이나 어떤 국가 기관이나 조직의 이력도 일부 국가적인 이익에 반하는 내용을 제외하고 일목요연하게 정리하여 기업이나 상품의 진실성을 검증하는데 사용하도록 해야 합니다. 중요한 것은 실수가 고의적 범죄보다는 얼마나 반성해서 동일한 범죄를 저지르지 않느냐를 봐야 할 것입니다. 또 실제는 속이고 편법을 쓰지만, 법에만 걸리지 않으려는 위선, 눈가림을 철저히 적시해야 할 것입니다.
무엇보다 피부에 닿는 것은 특정 제품이 수십년 동안 크기나 중량을 줄여서 가격을 인상한 역사를 한 눈에 보이게 정리해서 기업이나 상품을 통해서 제조자나 판매자 들의 양심이 예민하게 해야 할 것입니다. 가공식품이나 약품 등이 얼마나 크기가 작아졌습니까? 얼마나 무게가 줄었습니까? 이것은 눈속임이며 국민 정서를 속이는 쪽으로 선도하는 좋지 않은 기업 문화입니다. 법이 아니라, 실제 생산 과정에서 있는 그대로 물건을 만들어서 적정한 이윤을 남기는 문화를 만들어야 할 것입니다.
정부에서는 철저한 조사와 정리로 사회 분위기를 이끄는 조직이나 기업의 문화를 진실되게 하는데 숙고의 계기가 될 수 있도록 기대를 해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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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법도 쌍방 과실 처벌·보상 도입과 확대
세상 법에도 법 조문을 떠나서 진실성 여부에 촛점을 맞추는 쪽으로 문화가 조성되었으면 합니다. 우리 사회를 보면 실제 진실은 둘째 문제입니다. 법에 저촉만 되지 않으면 양심이나 사실 여부는 넘어 갑니다. 증거가 나타나지 않으면 실제 일어난 진실 여부는 크게 중요하기 않게 다룹니다. 법이 중요하지만, 법을 잘 이용하거나 변호사를 잘 수임하면 빠져나오는 것을 수없이 봅니다. 실제 사실을 따지는 쪽으로 국민 정서가 형성되어야 할 것입니다. 우리는 자동차 사고 등에서 쌍방과실을 많이 경험한다는 얘기를 듣습니다. 전에는 일방적인 과실 처리가 많았으나, 요즈음은 현저한 잘못이나 어떤 책임도 없는 경우를 제외하고는 대부분 정도나 가해 정도의 차이로 쌍방과실로 한다고 합니다.
이것은 이제 형법 등에도 보다 더 피부에 닿게 적용해야 된다고 봅니다. 지금도 형량이나 보상 등에서 그러한 제도를 시행하는 것이 사실이지만, 어떤 결과를 놓고 여론 재판을 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형법에도 고의성이나 계획성 등을 봐서 법 이전에 실제 사실을 중시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법 자체를 문제 삼는 것이 절대 아닙니다. 법을 이용해서 사실을 왜곡해서 교묘하게 처벌을 빠져 나오는 것을 이야기 하는 것입니다. 사실은 책임이 있고, 가해자인데도 법에만 걸리지 않게 증거를 유리하게 바꾸거나 상황을 바꾸어서 사실을 왜곡하는 것을 지적하는 것입니다.
어떤 사람들이 서로 감정이 격해서 싸우다가 한 사람이 죽으면 그 결과에 따라서 살인자로 처벌을 받고, 죽은 자의 잘못은 묻히는 경우가 많습니다. 처벌이나 보상 보다는 사실 여부가 중요합니다. 증거나 변호를 떠나서 죽은 자라도 잘못이 있다면, 그에 대한 잘못을 인정하고 상대에 대한 처벌에서 일정 부분 감안해야 된다고 봅니다. 결과가 나쁘면 원인이나 고의성이나 악의적인 의도도 덮히는 경우가 많습니다. 아무리 끔찍한 결과가 벌어졌다고 해도, 그 원인과 과정 결과를 따져서 설사 죽었다 하더라도 서류상이라도 책임은 따져야할 것입니다.
법과 결과 보다도 사실이 더욱 중시되는 분위기가 조성되어야 합니다. 눈가림, 위장, 속임 등의 문화는 나라를 속이 썩게 만듭니다. 이것이 성경의 진리입니다. 성경은 특정인만 교회에서 지키는 것만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사람들이 교회에서부터 지켜야 하지만, 사회 전체에서 지켜져야 하는 법입니다. 실제 생활의 법입니다. 그 출발이 구원과 교회일 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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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호사 제도의 진실 왜곡·주객 전도의 위험
위의 글과 맥을 같이 하는 내용입니다. 우리들은 경제 사범이나 정치 사범의 법 집행에 있어서 편파적인 잣대로 적용되는 것을 보고 위화감을 느낍니다. 일반 서민들은 고위층 법 따로, 서민 법 따로로 느껴집니다. 경제 사범이나 정치 사범 등은 먼저 여론 재판을 받고, 증거가 없으면 대부분 진실이 묻혀집니다. 아무리 심증이 있어도 물증의 증거가 없으면, 사실 여부는 크게 상관하지 않습니다. 어떤 현저한 결과가 있더라도 확실한 증거가 없으면 넘어가는 경우가 많습니다.
변호사의 홍수 시대에 이제 죄는 크게 중요하지 않고, 변호사를 잘 수임하느냐에 따라서 형량이나 보상 등의 결과가 좌지우지 됩니다. 물론 죄 자체가 없어지는 것은 아니지만, 변호사의 영향에 따라서 그 결과가 엄청나게 차이가 납니다. 심지어 변호사의 능력이나 변호사 사무실의 힘에 따라서 가해자나 피해자가 바뀌는 것을 봅니다. 증거 취득의 능력이나 사회적인 힘을 가진 변호사 사무실의 권력은 놀랍다는 생각 외에는 들지 않습니다. 힘 없는 일개 서민은 정말 로펌 회사의 힘은 두려울 정도입니다. 정부 고위직 출신이나 권력의 핵심에 있던 검사, 판사 분들이 변호사로 자리를 옮기는 것은 이른바 파워 게임으로 보입니다.
실제 사건이나 범죄의 유무보다는 변호사 사무실의 능력이 더 앞선다는 생각이 듭니다. 많은 분들이 변호사 사무실을 개설하는데, 이것은 사실을 밝히는 차원이 아니라, 어떤 사건을 법으로 잘 활용해서 이기고 빠져나오느냐에 더 큰 비중이 있어 보입니다. 억울한 사건일 경우에 당사자를 대신해서 조사하고 입증해서 사실을 가려야 하는데, 이미 변호사 제도는 돈과 파워 게임으로 변질되어 사실 여부와는 관계 없이 이기기 위한 제도로 변한 것 같습니다. 물론 순기능과 기본적인 제도는 없어지지 않겠지만, 사실 보다는 이기는 게임인 것 같습니다. 돈과 권력이 실제 사실 보다 힘이 센 것 같습니다. 현저한 범죄나 사회적인 이슈가 된 범죄에는 아무리 큰 로펌 회사도 바꾸기는 힘들겠지만, 로펌 회사나 변호사의 능력은 사건의 본질의 사실을 바꾸는 경우가 많아 보입니다.
법은 중요합니다. 그러나 법을 이용해서 이기고 빠져나오는 것에 초점이 맞추어 지면, 보상이나 처벌을 떠나서 하나님께옵서 아시는 사건의 본질, 실제 사실을 밝히는데는 소홀할 것입니다. 변호도 중요하지만, 사실을 증명하고 판가름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봅니다. 물론 검사나 판사 분들이 그 역할을 해야 하지만, 변호사 제도가 지나치게 파워 게임으로 흐르면 사실 왜곡이나 주객 전도가 더욱 심해질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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뒷 배경[빽·권력]과 돈의 힘의 세상
암암리에 세상은 권력과 돈의 힘의 세상입니다. 이른바 권력의 빽이 있으면 왠만한 경우에는 빠져 나오거나 벗어나는 것을 많이 봅니다. 나아진 부분도 있고, 정도의 차이가 있지만, 뒷 배경은 사회 전반에 걸쳐 있습니다. 북한 정권이 권력을 세습하고 족벌 체제에 많이 치우쳐 있지만, 남한에도 공직자 집안이나 교육자 집안이나 빽이 알게 모르게 작용해서 취업이나 취직에 많은 비중을 차지하고 있습니다. 특히 검사나 경찰이나 고위 공직에 친인척이 있으면 큰 영향을 받습니다. 쉽게 빠져 나오거나 가해자나 피해자의 주객이 전도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공직도 이러하니 일반 회사는 친인척이 중요 직책을 독식하는 것을 조사하지 않더라고 매스컴을 통해서 자주 접합니다. 사학 재단이나 기업은 물론이고 어떤 기업의 고위직에 있는 사람의 입김이면 줄을 닿는다는 구실로 친인척이나 돈으로 그 줄을 잡아야만 취직이 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물론 유능한 인물은 공개 경쟁에서도 입사하지만, 어중간한 실력이나 스펙을 갖춘 인재들은 정말 힘든 취직의 관문에서 좌절과 절망을 경험합니다.
뻭이라고 하는 뒷 배경은 차후의 힘을 위해서 자기 친인척이나 자기 세력을 확장하는데 사용하여, 세상이 온갖 인맥으로 연결되어 실력이나 성실도 보다는 빽이 앞서는 것을 봅니다. 빽은 돈보다도 앞섭니다. 정이 많은 일을 성사시키는 문화인 우리나라에서 빽은 필요한 부분도 있겠지만, 청산되어야 할 독소로 보입니다.
자본주의의 무한한 경쟁과 자유민주주의 폐단은 연예인이나 운동 선수들의 천문학적인 스카우트비나 연봉이라는 것을 통해서 악영향을 미치는 경우가 많습니다. 돈 앞에서는 연고지나 기존의 친밀도도 넘어서서 어떤 집단의 이익이나 오랜 친목도 필요 없습니다. 어제의 적이 오늘의 동지가 되고 또 떠나는 등, 어떤 성실도나 근면성을 보는 것 보다 그 순간의 실력으로 사람을 평가하는 것으로 흐르고 있습니다. 그것이 사회 분위기를 조장하는 것이 문제입니다. 청소년들이 연예인들이나 운동 선수들을 우상으로 섬기고 돈의 노예가 되도록 하는 무서운 제도입니다. 아무리 좋은 교육을 한다고 하더라도 실제 묵인되고 용인되는 사회의 분위기가 있는 한 효과가 없을 것입니다. 우리모두 한 번 생각해 보십시다.
명예를 취하였으면 돈과 권력은 자제해야만 합니다. 권력을 취하였으면 부와 명예를 자제해야만 합니다. 부를 취하였으면 명예와 권력은 자제해야만 합니다. 세상의 어느 것을 취하여도 마지막 날에는 수증기와 같이 헛된 것들 주의 헛된 것입니다. 다 취하려면 반드시 문제가 발생해서 부끄러움을 당하는 것입니다. 욕심은 반드시 죄를 낫습니다.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것이 모든 지혜와 장수와 부의 시작입니다. 어려움을 당하거나 부끄러움을 당하였을 때가 하나님을 만날 때입니다. 남이나 세상 원망하지 말고 자기 자신이 지어서 양심에 걸려 마음판에 기록되어 있는-남이 알거나 알지 못하거나] 죄들만 생각해야 합니다. 자기 지은 죄들에 대해서 양심이 아파하지 않으면 결코 하나님을 만날 수 없습니다. 지옥에 가서 모든 죄들이 기억날 때에 양심이 깨어 납니다. 영원한 고통 속에서 이를 갈며 후회해도 이미 늦습니다. 두번 다시 돌이킬 기회가 영원히 없습니다. 육체가 살아 있을 때에, 자기 자신이 생각들과 혀들과 눈들과 손들로 지은 온갖 죄들에 아파하여 지옥 불에 마음이 갔다 와서, 실제 육체가 죽었을 때에 영원한 고통의 장소인 유황 불 호수로 가지 않도록 자기 지은 죄들에 대해서 양심이 예민하게 하십시다. 지은 죄들에 대한 통회를 통해서 성경으로 마비된 양심을 깨우십니다. 그리고 저주의 나무 십자가 상에서 대속의 피를 흘리시도 죽으신 예수스 크흐리스트님을 바라보십시다. 죄들의 크고 작고 많고 적음의 문제입니다. 자기 자신이 지은 죄들에 얼마나 아파하느냐의 문제입니다. 완전한 죄인된 마음에 성경을 펴십시다. 하나님 앞에 자기 자신이 지은 각종·온갖 죄들을 솔직히 토해 내고 통회의 속울음을 우십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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