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화생물학으로 풀어본 우리 몸의 비밀]
목숨 부지하고 자손 보호…‘불안한 잠’ 흔적
<25> 잠잘 때 REM이 발생하는 이유는?
알이엠(REM). ‘빠른(Rapid) 안구(Eye) 운동(Movement)’의 약자다. 잠을 잘 때 눈꺼풀 속의 눈동자가 재빠르게 이리저리 움직일 때가 있는데, REM이란 바로 ‘이 기간의 잠’을 가리키는 용어다.
꿈을 꾸면서 무언가 움직이는 모습을 보기 때문에 REM이 발생하� 것 같지만, 시각능력이 없는 갓 태어난 아기나 배속의 태아, 심지어 시각장애인에게서도 REM이 발생하기에 ‘꿈에 보이는 움직이는 모습’과 별 관계가 없는 것 같다.
사람에게만 REM수면이 있는 게 아니라, 고양이나 다람쥐와 같은 포유류는 물론이고 조류에게서도 REM이 관찰된다고 한다. 여기 제시한 그림은 성인(成人)의 수면 중에 일어나는 뇌파의 변화를 나타낸 것이다.
무장해제 곯아떨어지는 것보다
포식자 공격 피해 생존 확률 높아
그림 상단의 베타(Beta)파(波)는 깨어서 활동할 때 나타나는 뇌파로 주기가 13~30Hz 정도 된다. 헤르츠(Hz)란 사이클(Cycle)과 같은 의미로 1초 동안에 일어나는 진동회수를 의미한다.
그 밑의 알파(Alpha)파는 8~12Hz로 눈을 감고 있을 때나 편안히 쉴 때 발생한다. 그 아래의 세타(Theta)나 델타(Delta)파는 더 깊은 잠에 들었을 때의 뇌파다. 그림에서 보듯이 총 7시간 가량 잠을 잔다고 할 때 1시간 30분 정도의 간격으로 4회의 REM수면(Sleep)이 발생한다.
REM이 일어나는 동안에 뇌의 신경활동은 각성시(覺醒時)와 똑같기에, REM수면을 ‘깨어 있는 잠’ 또는 ‘역설적인 수면(Paradoxical Sleep)’이라고 부른다. 성인의 경우 전체의 잠 가운데 20~25%, 갓 태어난 어린아이의 경우는 전체 잠의 80% 정도가 REM수면으로 이루어져 있다고 한다. 거꾸로 해석하면 ‘REM이 없는 깊은 잠’의 길이에서 성인이나 영아는 별 차이가 없다.
‘REM수면’을 해명하는 여러 가지 학설이 있다.
‘개체발생의 가설(Ontogenetic Hypothesis)’에서는 REM수면을 통해 뇌신경에 자극을 가하여 뉴런 간의 연결이 보다 견고해지게 만들어 신경계를 발달시킨다고 풀이한다. 성장기에 잠을 박탈하면 행동장애가 오고, 뇌의 부피가 줄어들며, 뉴런이 사멸한다는 점, 그리고 나이가 들수록 REM수면의 양이 줄어든다는 것을 그 증거로 삼는다.
그런데 진화생물학과 관련하여 신뢰가 가는 이론은 ‘파수꾼 가설(Sentinel Hypothesis)’이다. 이는 1966년에 프레드릭 스나이더(Frederick Snyder)가 주장했던 이론이다. ‘쥐, 고슴도치, 토끼, 붉은 털 원숭이’의 경우 REM수면 직후 살짝 깼다가 다시 잠에 드는데, 이런 수면 습관을 가질 경우 포식자의 공격을 피해서 생존할 확률이 높아진다. REM수면 중에는 조그만 자극에도 쉽게 깬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밤새 안녕하셨어요?”가 아침 인사였듯이, 위험한 일들은 대개 밤에 일어난다. 무장을 해제하고 곯아떨어진 한밤중에도, ‘선잠’과 같은 REM수면이 4~5회 발생해야 위험을 피해서 목숨을 부지할 확률이 높다.
그런 유전인자를 갖는 사람만이 자손을 남기고 보호할 수 있었다. ‘어른이 되어서도 남아 있는 REM수면’에 대한 진화생물학적 풀이다. 사성제(四聖諦) 가운데 고성제(苦聖諦)를 실감케 하는 ‘불안한 잠’의 흔적이다.
김성철 교수
동국대 경주캠퍼스 불교학과
[불교신문 2836호/ 2012년 7월28일자]
☞'진화생물학으로 풀어본 우리 몸의 비밀' 목차 바로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