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일이면 설이다. 흩어졌던 가족들이 다 모였다. 오랜만에 온 식구가 모였으니 정담은 서로 다투듯 오고 갔다. 어른들에 질세라 손자들도 가을 논두렁에 메뚜기처럼 뛰어다닌다. 평소 아내와 둘이 있을 땐 절간이 따로 없었다. 이렇게 일 년에 몇 번, 사람 사는 집처럼 훈훈한 온기가 돌때는 아궁이 가득 불을 지핀 사랑방처럼 열기가 돈다. 무엇보다도 손자들의 재롱에 내 마음이 흐뭇해졌다.
내 마음이야 한량없이 기뻤지만 방에 오래 앉아 있으니 며느리들한테 슬쩍 미안한 생각이 들었다. 음식 하느라 정신이 없을 터인데 간간히 내 간식까지 챙기는 참한 모습을 보니 내가 갑자기 미운 늙은이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아무리 세월이 좋아서 시아버지와 며느리 사이가 허물없다지만 그래도 ‘시’자에 대한 며느리들의 고충은 내 딸을 통해서 간접적으로나 알 수 있는 부분이다. 그래서 자리를 비켜 주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즐겨 찾는 뒷산에나 다녀와야겠다 싶은 생각에 지팡이를 챙겨들고 집을 나섰다. 그리 높지 않은 산이지만 계절을 느끼기엔 가장 좋다. 봄이 오면 수풀과 나무가 울창하여 꿩이며 뻐꾸기 같은 산새들의 울음소리가 심심찮게 들리며 야생화의 꽃향기가 짙은 야산이다. 그것들을 보는 재미가 손자 녀석들 재롱을 보는 재미만큼 좋다. 소나무를 비롯해 오리목, 아카시아등 여러 잡목들이 옷을 벗고 입는 것을 보아 온지 반세기를 넘겼다. 아직 겨울추위가 가시지 않아서인지 매서운 찬바람이 앙상한 나뭇가지들을 훑고 지나지나가는데 문득 가슴에 뜨끔한 기운이 느껴졌다.
이상하게도 오늘은 평소 때보다 숨이 빨리 찼고 가슴이 답답했다. 시간이 지날수록 더욱 심해져 왔다. 음식을 먹고 급체했을 때처럼 가슴이 답답하더니 이어서 어깨 쪽으로 심하게 결리기 시작했다. 가슴을 손으로 툭툭 쳤다. 손가락 지압점도 눌러보고 명치끝도 손으로 꾹 눌러 세월이 가르쳐준 민간요법으로 다스려보았지만 차도가 없었다.
아침밥을 먹으면서 먹었던 문어회가 문제였던 모양이다. 이가 시원찮아 먹지 않으려고 했는데 며느리가 어찌나 살갑게 ‘아버니임 아버니임 부드럽게 삶았어요.’하는 바람에 며느리 기분도 맞춰줄 겸 문어회를 맛있게 많이 먹었다. 그것이 문제였다 싶었다.
통증은 자꾸 심해져 가슴에 쌀가마를 올려놓은 것처럼 무거웠다. 하는수 없이 정상까지 오르지 못하고 중도에서 집으로 돌아오고 말았다. 집에 도착하자 상비약으로 준비해둔 소화제와 사이다를 마시고 침으로 손가락, 발가락을 찔러 피를 내고나니 통증이 조금 가시는 것 같았다. 순간, 아 이제 살았구나 싶었다. 그런데 그 시원함은 잠시 다시 가슴에다 큰 바위덩어리를 올려놓은 것처럼 더 아프더니 이내 가슴이 터질 것 같다가 다시 빡빡하게 조여드는 느낌이 들었다.
옆에서 보던 아내가 안 되겠다며 나를 끌다시피 해서 동네에 있는 의원으로 갔다. 행여 연휴라서 진료를 하지 않으면 어쩌나하고 걱정을 했는데 다행히 진료를 하고 있었다. 의사선생님께 아픈 상태를 소상히 말 했더니 고개를 갸웃거리며 진료를 하더니, 소견서를 써 주면서 다급한 목소리로 말했다.
“얼른 큰 병원으로 가 보십시오. 시간을 지체하시면 큰일 납니다.”
“정초부터 와이래 겁을 주는 기요?”
평소 잘 알던 의사라 내가 농담으로 받아들였더니 농담할 시간 없다며 빨리 큰 병원으로 가라고 사정없이 떠밀어냈다.
아내와 나는 쫓겨 나오듯이 병원을 나왔다. 어느 병원으로 갈까 생각할 겨를도 없이 나는 집에서 얼마 멀지 않은 동강병원으로 이미 걸어가고 있었다. 그 옛날 신라 김유신의 말이 그랬던 것처럼 그냥 집 근처에 있는 병원이니 나도 모르게 그쪽으로 발길이 향했던 것이다. 더 큰 병원으로 가야하지 않겠냐는 아내의 말이 내 뒤를 쫑쫑거리며 따르고 있었다. 그러나 나는 그 소리가 귀에 들어오지 않았다. 우선은 통증이 갈수록 심해졌고 집 근처에 동강병원이란 커다란 병원을 두고 어딜 간단 말인가 하는 내 고집스런 생각이 한몫을 했다. 그런데 이것이 내가 제2의 삶을 살게 된 탁월한 순간의 선택이었다.
동강병원에 도착하자 바로 응급실로 들어갔다. 동네 의원에서 받아온 소견서를 응급실 의사에게 건넸다. 소견서를 본 의사는 빠르게 진료를 끝내고 응급조치를 시작했다. 자그마한 알약을 한 알주면서 넘기지 말고 혀 밑에 넣어있으라고 했다. 통증은 심했지만, 뭐가 뭔지 알 수 없는 상황에 나는 눈만 멀뚱하게 뜨고 시키는 대로 했다. 그 와중에 시간이 지날수록 통증은 더욱 심해서 눈앞이 캄캄해왔고 온몸은 식은땀으로 젖어갔다.
살면서 이다지 아픈 경험은 별로 없어서 그랬을까. 갑자기 ‘죽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엄습했다. 그것은 심한 통증 때문이기도 했지만 너무나 바쁘게 서두르는 의사와 간호사들의 손놀림 때문이기도 했다. 텔레비전에서나 봤던 그런 모습, 소리 없는 자막의 긴박한 그 모습이 내 눈앞에서 펼쳐지고 있었다.
내가 진료를 하는 사이 아내는 집에 알렸고 식구들은 모두 병원으로 모여들었다. 급하게 진료가 끝나자 나는 수술실로 들어갔다. 통증을 더 이상 참을 수 없다는 생각이 들었을 때 나는 아득히 먼 곳으로의 배를 탔다. 그다음은 기억이 없다. 그저 평온했을 것이라는 생각을 해 본다. 최소한 조금전까지 느꼈던 그런 고통은 하나도 느낄 수 없었기에.
얼마의 시간이 지났을까. 나는 잠에서 깨어났다. 정신을 가다듬고 사방을 살펴보니 입원실 침대 위에 누워있었다. 침대 옆에는 아들과 아내가 수심에 가득한 모습으로 나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나는 긴 잠에서 부리로 톡톡 껍질을 깨며 금방 깨어난 알처럼 입을 쏙 내민채 빙긋이 웃으며 아내에게 첫 말을 했다.
“어찌 된 거여? 지금 몇시여?”
그때서야 아내는 눈물을 주르르 흘리며 ‘앞으로 또 놀라게 할거냐’고 뒷말을 수습도 못하고 내 손을 잡고 입을 맞추며 잘 견뎌내고 살아줘서 고맙다고 했다.
아내를 통해 내 병의 자초지종을 들었다. 급성심근경색이라고 했다. 조금만 더 늦었더라면 나는 이 세상 사람이 아니었다는 말도 덧붙였다.
“동강병원 덕택에 당신은 다시 태어난 거예요.”
사람의 생명이란 초를 다투는 찰나에 있다는 것을 알고 나니 ‘이 시간’ ‘이 장소’ ‘이 사람’ ‘이 병원’ 그리고 ‘이 의사’가 얼마나 고마운지 말로 표현할 수 없었다. 사람은 커다란 고비를 넘어봐야 소중함을 안다고 했던가. 칠십이 다 되어가는 나이에 진심어린 감사의 마음을 가져보지 못하고 살았으니 ‘헛살았다’말이 절로 나왔다.
동강병원에서 새로 얻은 내 삶은 생명을 새로 얻었다기 보다 인생철학을 배우는 계기가 되었다. 늑장부리지 않고 자신의 일처럼 일사천리로 서둘러 본분을 다해준 의사의 소신, 멀고 큰 곳에 대한 선입견을 가졌던 아내나 내 마음에도 큰 믿음을 심는 계기가 되었다. 누구든 ‘현재’라는 것에 최선을 다하는 것이 가장 아름답고 값지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 후 나는 첫 수술을 마치고 일주일 뒤 두 번째 수술을 했다. 수술결과가 좋아 회복이 빨랐고 이주동안 입원하고 조기 퇴원을 할 수 있었다. 퇴원하는 날 의사는 내게 조곤조곤 설명을 해 주었다. 급성심근경색은 심장근육에 산소와 영양분을 공급하는 관상동맥혈관의 급성패색으로 심근이 괴사되는 질환이었다.
나는 관상동맥 확장수술을 하면서 쇠파이프를 다섯 개나 심장에 넣었다. 그로인해 심장장애 3급의 판정을 받게 되었다. 한참 동안 월 2회씩 의사를 찾아 검진을 받고 약을 먹었다. 지금은 경과가 좋아 월 한 번씩 의사를 찾아간다.
그 후로 힘든 일을 하면 숨이 매우 차다. 그래서 의사에게 여쭈어보았더니 호흡과 심장수술과는 연관이 없다며 호흡기질환 검사를 받아보라고 했다. 호흡기관련 검사를 모두 했으나 큰 문제는 없었다.
그동안 여려 사람들에게 심장질환에 대하여 이야기를 나누었더니 나와 같이 급성심근경색수술을 받은 사람이 많았다. 그 사람들 중 결과가 좋은 사람도 있는가하면 손과 발이 차고 숨이 차며 호흡이 곤란한 사람들도 있었다. 또 시간을 다투는 위급한 중병인줄 모르고 시간을 지체하거나 큰 병원을 찾느라 허둥대는 사이, 또는 병원에서 진료하는 도중 시간을 놓쳐 생명을 잃었다는 이야기도 들었다.
나도 저승 문턱의 절반은 다녀온 셈이다. 저승 문턱에 ‘턱’ 걸려 넘어지면서 다시 이승으로 오게 된 것은 동강병원이라는 낮은 문턱이 있었기 때문이다. 늑장부리지 않고 빨리 문턱을 낮추어 준 병원과 진료에 최선을 다해 초스피드로 수술을 해 준 의사와의 인연이 내 운명을 바꾸어준 계기가 되었다. 운명이란 것은 어쩌면 찰나의 선택일지 모른다.
이런 저런 생각을 하며 오늘도 산을 오른다. 다람쥐와 청설모들의 곡예 하는 모습을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으면 ‘살아있다는 것이 참 행복이구나’싶고 산새들이 지저귀는 소리를 들으니 ‘저 소리마저도 감사할 일이구나’싶다. 급성심근경색으로 만난 인연들, 그것은 내 인생 칠십을 더 소중하고 맛나게 수 있게 된 계기가 되었다.
첫댓글 일등으로 축하글 답니더.
고울 문학이 태동할 때부터
함께였던 엄 선생님.
진짜로 축하드려요.
에 또~
고울 총무로서도 아주 기쁩니다.ㅎㅎ
저는 이등으로 축하합니다.
이제 큰 상도 받으셨으니
건강에 더욱 유의하시고
좋은 글 더 많이 쓰시길요~~또 부담드렸나요?ㅎㅎㅎ
용서하시소~~
ㅎㅎㅎ 나도 삼등으로 축하를..!
묵묵하게 전진하시던 모습을 봐서
언젠가 이런 일 저지를 줄 알았습니다.
노장의 역활을 멋지게 해 주셨으니..
앞으로 책 한권 내시는데도 문제는 없겠습니다.
파티 준비해야겠네요~! ㅋㅋㅋ 화이팅~! ^^*
축하합니다.♪ 축하합니다.♬ 대상 받으심을 축하합니다. ♪♪ ♬
4번째라고 쓰고있는 사이 올리셨군요. 이 독수리를 어찌하면 좋을
까요.
에고 4등은 등외라 알아주지도 않는데....
그러나 축하는 해드려야지요.
축하합니다. 건강하시구요.
축하합니다..늘 노력하시는 모습 정말보기좋았고요..영광의 대상수상을 다시한번 축하드려요..
세상에 아름다움이 많이 있는데 엄두진 선생님을 만날때마다 사람에 대한 아름다움을 느낍니다.
어느 누구가 흉내 내기도 어려운 것 선생님께서는 하고 계시니까요.
그건 그렇고 여러 문우님들께서도 분발하셔서 좋은 소식 많이 접하도록 바라면서 기원합니다.
엄선생님, 축하드립니다~
바쁜 시간 쪼개어 마음담은 작품이 좋은 결과를 얻어 더욱 기쁘실 것 같습니다.
더 건강하시고
앞으로 축하할 일이 더 많이 생길거라 기대합니다.^^
추카추카 드립니다.
열정적으로 노력하시는 모습이 정말 보기 좋습니다.
항상 건강하시고 계속 발전하시길 바랍니다.
엄선생님 축하드립니다. 건강하시옵소서. 많은 축하 드립니다.
엄선생님, 축하드립니다. 선생님의 글을 읽으니 선생님이 아니면 누가 대상을 받겠는가 싶을 정도로 잘 쓰셨습니다. 그 모습 그대로 멋진 작품입니다. 선생님, 축하드립니다. 멋진 인생을 사시는 선생님, 멋집니다. 화이팅입니다.
저는 영광의 인물과 전화 통화릉 하였지만 너무 감동적인 글 읽으며 눈물이 났습니다. 선생님을 만나뵈었기때문아닐까요.생생하게 그 상황이 그려집니다.다시 한번 축하 드리며♥♥♥♥♥♥♥
축하드립니다.
노력하면 노력하는 마큼 결실을 본다고 하드니..
존경스럽습니다.
운명 읽으면 읽을 수록 다급했던 그때의 상황이 생생히 그려집니다.
다시한번 축하드리며..
저두 그 열정 이어받고 싶습니다.
엄선생님 축하드립니다~ 건강하세요...
축하드립니다. 역시~~~~~~~
축하드립니다. 운명이란 제목이 들어맞네요. 글이 짧게 잘 정돈되어 읽기도 편해서 좋습니다. 7순이 넘으신 분이고 택시에서 퇴고를 하신다고요? 주작가님 방송에 한번 소개하고 싶네요.
잉? 어디로 사라지셨다고 난리던데요?
어디 댕기오셨습니까?
우리 엄선생님 방송에 나오면 너무 좋죠.
한 번 기획해 보셔요.제가 적극 도울게요^^
방송에 나와도 손색 없을 정도로 열심히 사시는 어르신이죠.
엄선생님 진심으로 축하드립니다. ~ 이글이 바탕이 되어서 더 많은 작품이 세상에 빛을 보리라 믿습니다.
선생님들 너무너무 고맙습니다. 꾸뻑
오늘에야 매일을 열었더니 와~~~내 생애 이렇게 축하 받기는 처음.
정신이 어떨들 내가 꿈속이 아닌가 머리를 흔들어 본다.
인사가 늦어 지송합니다.꾸뻑
선생님들의 성원에 힘입어 더욱 노력하겠습니다. 다시 한번 감사드림니다.
오후 2시에 시상식에 참석했더니 상금은 없고 병원 진료상품권 한장 어딘가 모르게 떨지근 하더군요.
엄선생님~
엄청 축하드립니다~
엄시미 좋으시겠어요~ ㅎ
엄눈동안 였군요~ 제가 며칠간 자리를 비웠더니 이런 경사가 있었군요~ ㅎㅎ
샘 고맙습니다. 모두들 이렇게 칭찬을 해주니 어떨들 합니다.
선생님 축하드립니다.
새로운 삶을 살 수 는 계기가 되었네요.
세상사 모든 것은 인연에 이루어 진다고 합니다.
선생님과 동강병원은 아마도 큰 인연이 아닌 가 싶습니다.
다시 한반 축하드립니다.
선냉님 고맙습니다. 선생님 말씀처럼 인연이 깊은가 봄니다. 삶음 얻었는데 상까지 받게되니.
나이는 숫자에 불과하다는걸 몸소 보여주시는 선생님,
진심으로 축하합니다~~
상금 대신 받으셨다는 진료상품권은 나눌수도 없을낀데 우짤꺼나....
진짜로 상금 많이 주는 곳에서 또 좋은 소식 얻으셔서
저희에게도 콩고물 조금 떨어지게하소서~~^^
선생님 고맙습니다. 고물 뿐이겠습니까 인절미에 고물을 무쳐드리지요. 지금도 언제든지 좋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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샘 칭찬이 따불. 너무 과분하게 하늘이 빙글빙글
축하드립니다. 동병 상련입니다. 저는 파이프 3개이니 저보다 고참이십니다.
암튼 큰 상에 힘입어 더욱 활발하소서
아이고 선생님 오랜만입니다. 잘 계섰지요.
저에게 이렇게 과찬을 부끄럽게 쓰리. 우째든 고맙심더.
선생님께서도 스댄드가 3개라니 죽을 고비를 넘겨섰네요. 건강 하시기 바랍니다.
큰형님 5개면 앞으로 50년 확실히 보장 받으셨습니다. 더 왕성하시소. 고맙심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