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년 연속 포스트 시즌 진출에 실패한 롯데. 과연 롯데는 길고 긴 암흑기와 새로운 중흥 사이에 어느 길을 향해 뛸까(사진=롯데) |
“넥센이 마, 무신 프로팀입니까? 순 사기꾼들이지. 요즘 넥센 하는 꼬라지 보면 창피해 죽겠쓰요.”
시계를 돌리자. 때는 2010년 6월. 당시 롯데는 정규 시즌 4위를 달리고 있었다. 흥행 성적은 그보다 좋았다. 제리 로이스터 감독이 이끄는 롯데는 자신들만의 색깔을 구축하며 프로야구 전체 흥행을 이끌었다.
실제로 당시 롯데의 평균 홈 관중은 1만 7천813명. 8개 구단 가운데 압도적인 1위였다. 얼마나 롯데 야구와 응원이 재밌으면 다른 팀 팬들마저 사직야구장을 찾을 정도였다.
넥센은 반대였다. 같은 기간 넥센은 7, 8위를 오갔다. 초라한 팀 성적만큼이나 흥행은 더 부진해 홈 평균 관중이 5천963명밖에 되지 않았다. 홈 평균 관중 꼴찌였던 한화의 5천930명보단 흥행 성적은 양호했지만, 넥센의 연고지가 서울임을 고려하면 아쉬운 관중수였다.
그즈음 롯데 고위층을 만났을 때 들은 말이 바로 “넥센이 마, 무신 프로팀입니까? 순 사기꾼들이지”였다. 그는 한발 나아가 “요즘 (넥센)하는 꼬라지 보면 같은 프로팀인 게 정말 창피해 죽겠쓰요”라고 했는데, 표정만 보자면 그의 말은 진심이었다.
그가 넥센을 원색적으로 비난한 덴 나름의 이유가 있었다. 먼저 구단 규모였다. 2008년 현대 유니콘스가 해체 위기에 몰리며 등장한 넥센(당시는 히어로즈)은 KBO리그 입장에선 ‘리그 정상화를 이끌 구원투수’였다. 그러나 야구계는 그런 넥센을 ‘한탕을 꿈꾸는 불순 세력’으로 규정하며 ‘대기업 구단들이 노는 프로야구에 운 좋게 끼어든 행운아’로 불렀다. 롯데 말고도 몇몇 구단 역시 넥센을 ‘우리와 격이 맞지 않는 팀’이라 칭하며 KBO 이사회, 단장회의에서 대놓고 그들을 무시하곤 했다.
넥센의 잇단 현금 트레이드도 롯데를 비롯한 기존 구단들에겐 단골 비난거리였다. 운영비 문제로 힘겨워하던 넥센은 장원삼(삼성행), 이현승(두산행), 이택근(LG행) 등을 차례로 현금 트레이드하며 빈 곳간을 채웠다. 넥센 입장에선 고육지책이었으나, 다른 구단들은 “선수 팔아 운영비를 조달하는 팀이 무슨 프로팀이냐”며 “넥센의 현금 트레이드는 전체 프로야구를 파멸로 이끄는 최악의 선택”이라고 비난의 목소릴 높였다.
넥센을 향해 “순 사기꾼”이라는 거친 말이 쏟아낸 것도 잦은 현금 트레이드 탓이 컸던 게 사실이다.
 롯데로 이적한 황재균은 리그를 대표하는 3루수가 됐다. 이는 넥센으로 이적한 김민성도 마찬가지다. '만년 유망주' 김민성은 이제 황재균과 함께 리그를 대표하는 젊은 3루수가 됐다(사진=넥센) |
재미난 건 그런 롯데가 채 한 달도 안돼 넥센과의 트레이드에 제 발로 동참했다는 것이었다. 사연은 이랬다.
롯데는 그해 7월 20일 내야수 김민성과 투수 김수화를 넥센에 내주고, 넥센으로부터 내야수 황재균을 받는 2대 1 트레이드를 단행했다.
당시 기준으로 본다면 누가 봐도 롯데가 유리한 트레이드였다. 그도 그럴 게 당시 김민성과 김수화는 가능성이 폭발하기 이전이었다. 반면 황재균은 KBO리그에서 검증된 3루수였다. 특히나 그즈음 롯데는 3루수 보강이 절실했던 때라, 황재균 영입은 팀 전력 강화의 ‘화룡점정(畵龍點睛)’이나 다름 없었다.
‘넥센 때문에 창피해 죽겠다’던 롯데 관계자는 한 달 전 자기가 했던 말이 떠올랐는지 “마, 우짜다보니 일이 그리됐다”며 “그래도 뭐 뒷돈을 안겨준 것도 아닌데···”하고 말끝을 흐렸다. 현금 트레이드가 아닌 정상적인 트레이드였으니 그리 부끄러울 게 없다는 소리였다.
그러나 그의 말을 액면 그대로 믿기는 어려웠다. 시간이 흐르고, 롯데에서 흘러나온 정보를 취합하면 당시 2대 1 트레이드엔 현금이 포함됐다는 증거가 많다. 어쨌거나 롯데는 자신들이 그토록 비하했던 넥센을 파트너로 인정했고, ‘프로야구 전체를 파멸로 이끈다’던 넥센과의 트레이드를 주도했다.
당시 넥센 이장석 대표가 한 말이 지금도 기억난다. 이 대표는 “어려운 상황 속에 황재균이란 우리 팀의 보물을 롯데로 보내 내 자신에게 무척 화가 난다”면서도 “김민성과 김수화를 황재균만큼 좋은 선수로 길러내는 게 프로구단의 할 일”이라고 말한 뒤 “두 번 다시 ‘현금 트레이드로 구단 운영을 한다’는 소릴 듣지 않도록 목숨을 걸고 팀의 재정과 전력을 안정적으로 이끌겠다”고 다짐했다.
시대의 흐름을 따르지 못하는 롯데, 새로운 패러다임을 개척하는 넥센
 KBO리그에서 프로야구 원년 때부터 팀명이 바뀌지 않은 구단은 삼성 라이온즈와 롯데 자이언츠밖에 없다. 롯데는 누가 뭐래도 한국 프로야구의 발전을 이끈 전통의 팀이다. 하지만, 구태의연한 전통을 여전히 고수하고 있다는 평을 듣고 있다는 게 문제다. 반면 넥센은 국내 최초 프로야구전문기업답게 혁신을 무기 삼아 해마다 팀을 변화시키고 있다(사진=롯데) |
영원할 것 같던 롯데의 상승세는 2012년을 끝으로 중단됐다. 2013년부터 롯데는 로이스터 감독 시절부터 구축한 자신들의 색깔을 스스로 지워버렸다. 그리고 새로운 색깔을 칠했다. 성공했으면 달리 할 말은 없었다. 그러나 새 색깔은 치수가 맞지 않는 옷처럼 어색하기만 했다. 팀 성적도 떨어져 롯데는 지난해 5위로 포스트 시즌 진출에 실패했다. 올 시즌엔 7위로 2년 연속 가을 무대를 밟지 못했다.
흥행에도 빨간 불이 들어왔다. 올 시즌 사직구장 평균 관중은 1만 2천979명이었다. 홈 평균 관중 2만 597명을 기록했던 2009년과 비교해 8천 명 가까이 줄었다. 2010년과 비교해도 5천 명 정도 감소했다.
반면 ‘그게 프로팀이가’로 불렸던 넥센은 2012년을 기점으로 강팀으로 변모하기 시작했다. 2013년 정규 시즌 3위로 구단 창단 이래 첫 가을 무대를 맛본 뒤 올 시즌엔 정규 시즌 2위로 플레이오프에 선착했다. 그리고 플레이오프에서 LG를 꺾으며 사상 첫 한국시리즈에 진출하게 됐다. 홈 관중도 2010년에 비해 2천 명 가까이 늘었다.(2010년 4천996명, 2013년 7천494 명, 2014년 6천921명)
특히나 넥센은 서브 스폰서가 눈에 띄게 증가했는데 이젠 현금 트레이드는 고사하고, 다른 구단들로부터 “선수들 연봉을 그렇게 후하게 주면 우린 어떻게 하느냐”는 원망을 살 만큼 성공적인 재정 안정화에 다가서고 있다. 모그룹에 의존하지 않는 국내 최초 ‘프로야구전문기업’ 넥센은 ‘길면 3년, 짧으면 1년 내 망할 것’이란 일부 야구계의 예상을 보기 좋게 무너트리고 있는 셈이다.
그렇다면 어째서 롯데와 넥센은 불과 4년 사이에 전혀 다른 팀이 된 것일까. 이유는 하나다. 롯데는 여전히 구태를 반복하는 아날로그 팀으로 머물러 있고, 넥센은 야구전문기업답게 새로운 패러다임 속에 해마다 팀을 혁신한 까닭이다.
 넥센 염경엽 감독(사진 가운데)과 주요 선수들(사진=도현석 작가) |
감독 선임만 봐도 그렇다. 롯데는 양승호 전 감독 선임 이후 ‘묻지마 선임’을 되풀이했다. 묻지마 선임의 주체는 구단 최고위층이었다. 그들의 개인적 선호도에 따라 감독이 결정됐다. 감독의 비전과 능력은 그다음이었다. 아니 비전과 능력이 고려됐는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넥센은 달랐다. 2012년 김시진 전 감독이 물러난 뒤 넥센은 메이저리그에서나 할 법한 감독 인터뷰를 진행했다. 감독 후보군을 구단 대표인 이장석 사장이 차례로 면담하고, 그들의 능력과 비전을 면밀히 따졌다. 그렇다고 이 사장 혼자 결정한 것도 아니었다. 구단 내 여러 사람의 의견을 취합한 뒤 이를 종합해 ‘누가 우리 팀의 현재와 미래에 가장 적합한 감독’인지 판단했다. 염경엽 감독은 이런 복잡한 과정을 통해 탄생한 사령탑이었다.
만약 개인적 호불호로 감독을 따졌다면 염 감독은 넥센 사령탑이 되지 않았을지 모른다. 이 사장은 애초 염 감독에 대해 큰 호감이 없었다. 하지만, ‘염경엽’이란 야구인에 대해 종합 평가절차를 거치는 동안 그의 능력과 비전을 높이 샀고, 그의 새로운 면모를 알게 됐다. 그리고 염 감독이 팀의 수장이 되자 무한 신뢰를 보냈다.
이 사장과 염 감독이 손을 맞잡은 2013년부터 2014년까지 넥센은 과거의 약체 이미지를 탈피하고, KBO리그의 신흥 강팀으로 부상했다.
 시즌이 시작할 때마다 넥센 경영진은 목동구장에 나와 관중들에게 고갤 숙여 감사의 인사를 한다. 하지만, 올 시즌 초반 롯데는 이 시간에 CCTV를 통해 선수들의 일거수일투족을 감시했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사진=넥센) |
구단 경영진의 자세 역시 달라도 너무 달랐다. 롯데는 올 시즌 내내 내홍에 시달렸다. 안타깝게도 그 내홍은 여전히 현재진행형이다. 조금씩 밝혀지고 있지만, 롯데 구단이 불법 흥신소나 할 법한 선수단 CCTV 사찰을 일삼았다면 이는 보통 일이 아니다. 그것도 전국을 돌며 사찰을 일삼았다는 게 사실이라면 충격 그 이상이다. 롯데의 CCTV 사찰건을 전해들은 한 국회의원은 “만약 이것이 사실로 밝혀지면 이 문제는 국회차원에서 진상 조사해야할 사안”이라고 분개했다.(이 의원실은 현재 진상 조사에 착수했다.)
하지만, 더 충격적인 건 그럼에도 아직 누구 하나 책임지는 이가 없다는 것이다. 구단 경영진은 여전히 모르쇠다. 한 롯데 관계자는 “선수들이 프로답지 못한 행동을 계속해 어쩔 수 없이 예방 차원에서 한 것일 뿐 다른 의도는 없었다”고 항변했지만, 구체적으로 ‘프로답지 못한 행동이 무엇이냐’는 질문엔 답하지 못했다.
롯데는 굳이 CCTV로 사찰하지 않아도 선수 관리를 잘해온 팀이다. 로이스터 전 감독은 사생활이 선수생활에 지장을 줄 땐 그 선수를 주전으로 기용하지 않았다. 양승호 전 감독 때도 마찬가지였다. 그런 전통을 잘 이어온 롯데가 새삼 CCTV 사찰을 ‘선수들의 사고예방 차원에서 했다’고 주장하는 건 그래서 설득력이 떨어지는 항변이다.
넥센 역시 선수단 관리를 한다. 알려지지 않아서 그렇지 넥센의 선수단 관리는 철저함에선 롯데를 능가한다. 그러나 CCTV 사찰 같은 건 하지 않는다. 일단 넥센과 염 감독은 로이스터 전 감독처럼 사생활이 선수생활에 지장을 줄 때 그 선수를 주전으로 쓰지 않는다. 그리고 프로답지 못한 행동을 범했을 경우엔 어떤 형태로든 책임을 묻는다. 여기다 선수들의 일탈행동이 일어날 경우에 대비해 지역 내 각종 기관과 유기적 관계를 맺고 있다.
이는 일본, 미국 프로야구팀들이 하는 방법으로 덕분에 올 시즌 넥센은 선수단 관리 문제로 홍역을 앓거나 머리를 싸맨 적이 거의 없다.
‘구멍가게’ 롯데로 머물 것인가. ‘프로구단’ 롯데로 거듭날 것인가
 텅빈 사직구장에서 관중의 응원을 이끌고 있는 치어리더들. 롯데는 불과 몇 년 전까지 표를 구하지 못할 만큼 만원관중으로 넘쳐나던 팀이었다(사진=롯데) |
많은 야구인은 롯데의 하향세와 넥센의 상승세가 당분간 지속할 것으로 본다. 롯데 출신의 한 야구인은 “롯데의 구시대적 마인드와 시스템이 근본적으로 변하지 않는 이상 팀 성적과 흥행 가운데 어느 하나도 제대로 잡지 못할 것”이라며 “롯데가 과거의 암흑기로 회귀하는 건 이제 시간문제”라고 단언했다.
덧붙여 그는 “롯데 출신이라는 게 지금처럼 창피했던 적도 없다”며 “롯데가 마, 무슨 프로팀입니까. 구멍가게지”하고 긴 한숨을 내쉬었다.
어디서 많이 듣던 소리다. 그렇다. 4년 전 넥센을 가리켜 롯데가 한 말이다. 놀라운 건 역설적이게도 이제 롯데를 보고서 야구계가 ‘창피하다’며 고개를 돌린다는 것이다.
지금 이 시간에도 열심히 팀을 위해 뛰는 롯데 선수들과 직원들이 도매급으로 함께 비난을 받는 건 가슴 아픈 일이다. 하지만, 그 선수들과 직원들을 위해서도 롯데는 반드시 ‘프로’자가 창피하지 않을 진정한 프로구단으로 거듭나야 한다. 그렇게 할 의지나 용기가 없다면 구단 운영을 심각하게 고민해야 한다.
새 감독 선임으로 선수들을 상대로 행한 ‘조직적 불법 사찰’이 숨겨질 것이라고 생각하면 오산이다. 이제 몸통의 실체가 밝혀질 때가 됐다. 몸통이 누군지는 당사자들이 더 잘 알 것이다.
[박동희의 입장] 공필성 사퇴의 변 “모두 내 탓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