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종호의『나는 불온한 선비다 』에는 한국사에 남아 후대에게 말을 건네는 세상과 다른 꿈을 꾼 조선의 사상가들이 소개됩니다. 불온한 선비 9인의 삶과 고난, 이루지 못한 꿈이 있죠. 그들이 '불온한 선비'인 것은 당 대 주류의 부패한 정치와 정쟁들에서 다른 세상을 꿈 꾸었기 때문이죠. '사람'이 '사람답게' 살 수 없는, 길을 잃은 한국사회에서 움켜잡고 싶은 힘을 얻습니다. 송도 3절로 지칭되는 자연 속에 자신의 삶을 맡긴 채 새로운 사회의 인재들을 키우는 일에 전념한 조선시대 학자 화담 서경덕이 마음에 가득 찹니다.
그의 삶에 현대를 살아가는 이들의 상상력을 더해 한 편의 이야기로 만날 때는 더 큰 삶의 울림을 줍니다. 그가 바라던 새로운 조선은 올 수 없었기에 새로운 시대 역시 열릴 수 없었지만요. 그와 같은 꿈을 꾸는 이들이 한국사회에서도 ‘불온한’이들로 불리던가요. 역동적인 역사의 지난한 시간을 지나면서 얼마나 많은 이들이 지향하는 새로운 가치, 모두의 선을 위해 희생을 해 왔던지요. 그들을 훔쳐보며 흉내라도 내고 싶은 간절함도 넘치는 여름밤입니다.
파란많은 한국사회에는 사유화된 권력형 부정부패와 변절, 무책임 등이 공동체의 가치를 훼손시켜 왔습니다. 그래도 지난 시대에서 저들만의 방식으로 잘못된 시대에 저항했던 이들의 움직임은 지속되고 있습니다. 부패가 넘쳐도 그 속에서 새로운 사회를 열기 위한 것을 기꺼이 헌신하는 이들이 있어서 아직은 숨을 쉬는 거겠지요. 정치가 제대로 작동되지 않으면 사람은 죽어나갈 수밖에요. 어느 때나 나라를 이끌어가는 지도자의 생각과 마음가짐은 중요하지요.
지도자에게는 확실한 정치 목표가 있어야 하고, 그것을 달성하기 위해 끊임없는 공부가 필요합니다. 또한 언론을 존중해야 하며, 귀천을 가리지 않고, 누구의 말이든 그것이 옳으면 받아들여야 한다는 것을 화담은 말합니다. 그의 말은 지도자에게 국한된 것은 아니었습니다. 너와 나 할 것 없이 사람이라면 마땅히 그런 노력을 기울여야 공동체가 지속된다 합니다. 모르기 보다는 제대로 앎을 위한 그 어떤 노력도 하지 못하는 상황이 더 나쁜 것은 아닐지 싶습니다.
지극한 마음으로 현재를 살아가는 내게는 그 어떤 이론도 딱히 없습니다만 사람이 사람을 껴안아 줄 수 없는 곳, 무장해제되는 한 개인으로 살아가는 일은 늘 휘청거립니다. 굳이 내 안의 것을 표현할 수 있다면 ‘무지개빛 사랑’으로 이름 지은 '일곱 가지의 사랑' 분류 정도일 겝니다. 그것 또한 개인적 취향으로 만든 것이니 내세울 것은 아니지요. 하지만 나로부터 시작되는 사람을 귀하게 여기는 마음들이 세상의 흐름을 바꿀 수 있다는 믿음만큼은 단단합니다.
책에서 만난 수많은 저자들과 나눈 마음에서 조금씩 찾아낸 삶을 살아내려고 하는데 그것이 그리 어려운 것만은 아닐 겁니다. 그 만큼의 겪음이, 화담의 ‘머물음’이 내게도 있었는데 미처 알아차리지 못했음이겠지요. 화담이 말하는 ‘머물음’은 단순히 머무른다는 의미가 아니었거든요. 지극히 옳은 것을 의미하는 ‘지선(至善)’에 마음을 정하고 움직이지 않는다는 뜻입니다. 옳음이라는 말이 참으로 힙겹게 버티고 있는 한국사회이지만 그 가치의 실현을 위해 노력한 이들은 늘 있어왔으니까요.
‘지선’은 생활의 여러 부문에서 얼마든지 있을 수 있고, 그에 따라 ‘머물음’도 또한 여러 가지로 정해질 수 있습니다. 화담은 만물, 만사에 모두 머물음이 있어야 한다고 말하는데 이 책의 저자는 서경덕을 ‘비범한 보통인’으로 풀어 놓았더군요. 헛된 이름으로 실용만을 외치는 현대인들에게 화담 서경석의 삶은 해결의 실마리를 건네주고 있습니다. 보통인들이 더 많은 세상일텐데 아직 그들의 힘이 가득 차오르지 못한 것이겠지요. 불온한 마음으로 사람다움을 찾아가려는 노력을 포기하지 말아야겠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