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새에서 궁전으로 궁전에서 박물관으로 여기가 곧 인류의 역사 ▶루브르 박물관 전경│ⓒBenh LIEU SONG·wikipedia commons, public domain
박물관·미술관으로 통칭하는 뮤지엄은 인류 문화유산의 보고(寶庫)다. 인간이 이룩한 모든 정신적, 물질적 업적의 정수가 그곳에 있다. 박물관·미술관에 역사의 숨결이 살아 숨 쉬고 지역과 국가의 정체성이 아로새겨져 있는 것도 그런 이유에서다. 유럽을 대표하는 예술의 나라 프랑스에는 세계 최고 수준을 자랑하는 뮤지엄이 있다. 우리가 다 아는 루브르 박물관이다. 파리 한복판에 있는 루브르 박물관은 단순한 하나의 뮤지엄이 아니라 세계적인 관광 명소다. 루브르는 프랑스의 자존심을 넘어 인류 문명과 예술적 성취가 총체적으로 집약된 위대한 문화유산이기 때문이다. 고대에서부터 중세와 르네상스를 거쳐 근현대에 이르기까지 인류의 발자취를 루브르 박물관 곳곳에서 생생하게 확인할 수 있다.
▶14세기 중후반 루브르 성│©wikipedia commons, public domain (사진 출처: gallica.bnf.fr/ark:/12148/btv1b2000082q/f301.item)
최대 규모 컬렉션 1000만 관람객 시대 개척 소장품의 규모에서 루브르 박물관은 세계 최고 수준이다. 4대 문명의 탄생과 관련된 고고학적 유물을 비롯해 고대 그리스·로마, 이집트 예술과 기독교 문화 전성기를 음미할 수 있는 서양 문명과 중세를 거쳐 르네상스 예술에 이어 근현대 미술까지 무려 48만여 점의 방대한 컬렉션을 보유하고 있다. 루브르의 컬렉션은 질과 양에서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 압도적인 컬렉션에 어울리게 관람객 수에서도 세계 정상급이다. 2019년 초 깜짝 놀랄만한 뉴스가 외신을 타고 전 세계에 타전됐다. 단일 뮤지엄으로는 사상 처음으로 한 해 1000만 관람객 시대를 열었다는 내용이었다. 뉴스의 진원지는 루브르 박물관. 박물관 측이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2018년 1년 동안 무려 1020만 명이 찾아 연간 관람객 1000만 명 돌파라는 이정표를 세웠다는 것이다. 프랑스를 찾는 사람이면 누구나 루브르 박물관을 방문한다는 명성을 다시 한번 확인시킨 순간이었다. 루브르 박물관은 프랑스 왕실의 궁전인 루브르 궁전을 리모델링 해 탄생했다. 모태는 루브르 궁전이지만 루브르 박물관의 역사는 12세기로 거슬러 올라간다. 프랑스 왕국의 7번째 국왕 필리프 2세(1165~1223, 재위 1180~1223)가 12세기 말 강력한 왕권 확립과 외세의 침입을 방어할 목적으로 센 강변에 구축한 성벽 형태의 요새가 루브르 박물관의 역사적 뿌리다. 프랑스 국왕이라는 칭호를 맨 처음 사용한 필리프 2세는 위대한 왕으로 칭송돼 ‘존엄왕(Auguste)’이라는 별칭으로도 불린다. 이후 프랑수아 1세(1494~1547, 재위 1515~1547)가 사망하기 1년 전 요새 터에 루브르 궁전 착공의 첫 삽을 뜬 뒤 수 세기에 걸친 증개축 과정 끝에 현재의 골격을 갖추게 됐다. 루브르 궁전은 1682년 프랑스 왕실의 전성기를 이끈 ‘태양왕’ 루이 14세(1638~1715, 재위 1643~1715)가 왕실을 베르사유로 이전하면서 궁전에서 전시관으로 성격이 바뀌었다. 이때만 하더라도 주로 왕실에서 수집한 미술품을 관리하고 전시하는 폐쇄적이고 수동적인 의미의 전시 공간이었으나 프랑스 대혁명 시기인 1793년 궁전 내에 국립 박물관이 설치되면서 대중적인 뮤지엄으로 모습을 드러냈다. 특히 숱한 원정 전쟁에 나선 나폴레옹 1세(1769~1821) 때 소장품의 규모가 급속도로 확장되면서 매머드급 박물관으로 거듭났다. 나폴레옹 1세는 미술품 수집에 광적인 집착을 보인 것으로 유명하다. 나폴레옹 1세의 조카이자 프랑스 초대 대통령 나폴레옹 3세(1808~1873) 시절 사각형 형태의 본관 건물 두 채와 건물을 에워싸고 있는 두 개의 거대한 정원을 갖춘 오늘날의 루브르 박물관 틀이 완성됐다.
▶‘밀로의 비너스’ 앞에서 기념촬영을 하는 방문객들│ ©Fred Romero·wikipedia commons, public domain
▶루브르 박물관 드농관 전시 전경│ ©Fred Romero from Paris, France·wikipedia commons, public domain
미테랑의 뚝심 ‘그랑 루브르’ 프로젝트 1980년대 루브르 박물관은 대대적인 확장 공사에 들어간다. 마스터플랜의 이름은 ‘그랑 루브르’. 루브르 궁전 전체를 박물관으로 활용하고 대중들의 접근성과 편의성을 극대화한다는 취지로 각종 편의 시설을 갖춘 대규모의 지하 중앙홀을 건설한다는 야심만만한 이 계획의 연출자는 프랑수아 미테랑 대통령(1916~1996)이었다. 1981년 당시 현직 대통령이었던 지스카르 데스탱(1926~2020)을 물리치고 사회당 출신으로는 최초로 프랑스 대통령으로 당선된 미테랑 대통령은 1995년까지 14년간 재임했다. 이는 프랑스 대통령 사상 최장수 집권기록이다. 집권 첫해 미테랑 대통령은 프랑스 대혁명 200주년에 맞춰 루브르 박물관의 21세기형 변모를 꾀하는 ‘그랑 루브르 프로젝트’에 대한 강한 의지를 내비췄다. 루브르 박물관의 전면적인 증축 작업을 위한 설계 공모 현상 모집 발표가 있기도 전 노회한 한 중국계 미국인 건축가가 은밀히 미테랑 대통령에게 면담을 요청했다. 그 건축가는 자신이 비밀리에 만든 루브르 박물관 재정비 설계안을 미테랑 대통령에게 보여줬다. 설계안은 세 가지 점에서 파격적이었다. 하나는 루브르 박물관 북쪽 건물인 재무부 청사를 이전해 궁전 전체를 박물관 공간으로 사용하자는 것이었다. 루브르 궁전의 완전 박물관화(化)를 위해 필수적인 조치라는 설명이 뒤따랐다. 또 하나는 박물관 앞 나폴레옹 광장에 유리로 된 거대한 피라미드를 세우고 여기에 박물관으로 들어가는 새로운 지하 출입구를 만들자는 내용이다. 지하 출입구는 박물관의 모든 전시 공간으로 이어져 질서정연하면서도 수많은 관람객 입장이 보장되고 관람 동선의 효율성을 도모할 수 있다는 이유에서다. 마지막으로 광장 지하에 주차장, 쇼핑센터, 레스토랑 등이 들어서는 초대형 시민 편의 시설을 꾸미자는 제안이다. 이 건축가가 바로 최후의 모더니즘 건축가로 유명한 이오 밍 페이(1917~2019)다. 1983년 미테랑 대통령은 이오 밍 페이의 제안을 일부 수정한 ‘그랑 루브르 프로젝트’ 내용을 깜짝 발표했다. 프랑스 여론은 들끓었다. 100년 이상 루브르 박물관 건물의 한 동(棟)을 청사로 사용해온 재무부가 조직적인 반기를 든 것은 물론 프랑스 문화의 상징물 앞에 웬 이집트 유물이냐는 여론의 반대가 만만찮았다. 프로젝트 실행이 지연되고 급기야 예산 집행에 제동이 걸렸으나 미테랑 대통령의 뚝심과 1988년 그의 재선으로 1989년 마침내 새롭게 단장된 루브르의 모습이 공개됐다. 특히 높이 21.6m의 유리 피라미드는 루브르 박물관의 새로운 명소로 대표적인 ‘포토존’이다. 이오 밍 페이는 루브르가 프랑스의 보물인 것처럼 피라미드는 고대 이집트의 보물이니 보물 앞에 보물이 있으면 보물이 더욱 빛나지 않겠냐며 미테랑 대통령을 설득했다는 뒷얘기다. 루브르 박물관 개관 200년을 맞은 1993년 11월 18일에는 구 재무부 청사 건물이 리모델링을 끝내고 리슐리외 관(館)이란 이름으로 개관됐다. 동선이 자연스럽게 연결되는 루브르 박물관의 3개 전시관 명칭은 루이 13세 때 재상 리슐리외(1585~1642), 앙리 4세 때 재상 쉴리(1560~1641), 초대 관장이자 나폴레옹 1세의 이집트 원정에 동행한 드농(1747~1825)의 이름을 각각 붙인 것이다.
▶루브르 박물관 주변의 광활한 정원│ ©Poulpy·wikipedia commons, public domaingallica.bnf.fr/ark:/12148/btv1b2000082q/f301.item)
3개 전시관 48만여 소장품, 관람 동선 60km 루브르 박물관은 센 강과 인접한 드농 관, 리슐리외 관, 쉴리 관 등 본관 건물 3개 동과 나폴레옹 광장, 건물 주변의 광대한 정원으로 이뤄져 있다. 고대 이집트 유물과 근동(近東) 및 메소포타미아 유물, 그리스·로마 유물, 이슬람 유물, 중세예술, 르네상스 미술, 회화, 조각, 장식 예술, 소묘 및 판화 등 고대에서 19세기에 걸쳐 모두 48만 2000여 점에 이르는 어마어마한 컬렉션을 보유하고 있다. 루브르 박물관의 관람 동선은 유리 피라미드 출입구에 설치된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지하 1층으로 내려가 그곳에서 남쪽의 드농 관, 북쪽의 리슐리외 관, 가운데 동쪽의 쉴리 관 중 한 곳으로 입장한 뒤 박물관 내부를 모두 관람할 수 있도록 유기적으로 연결된다. 2021년 3월 소장품 전부를 온라인에서 무료로 감상할 수 있는 누리집(collections.louvre.fr/en/)을 공개한 점도 화제를 불러 모았다. 루이 14세와 루이 15세 때 소장품이 대폭 늘어난 데 이어 유럽 원정 전쟁 시절 나폴레옹 1세가 각국에서 전리품으로 가져온 미술품이 차고 넘치는 등 루브르 박물관의 컬렉션은 날이 갈수록 쌓여만 갔다. 1986년 기차역을 개조한 오르세 미술관이 개관하자 1848년 이후 작품들은 그곳으로 옮겨갔다. 센 강 일대를 포함해 박물관 전체가 세계문화유산인 루브르는 약 6만 600㎡ 규모(1만 8363평)에 관람 동선 총 길이만 60km에 이른다. 드농 관에는 루브르 컬렉션의 절대지존인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모나리자’를 비롯해 고대 로마 유물과 13~18세기 이탈리아 회화, 18세기 말~19세기 초 프랑스 미술 작품이 전시 중이다. 맞은 편 리슐리외 관에서는 함무라비 법전 등 고대 메소포타미아 문명과 북유럽 예술, 13~14세기 프랑스 회화를 감상할 수 있다. 쉴리 관은 황금비율(1:1.618)로 유명한 ‘밀로의 비너스’로 대표되는 고대 그리스 이집트 유물과 16세기~19세기 프랑스 회화 작품들을 상설 전시 중이다.
박인권 문화 칼럼니스트_ PIK문화연구소 소장으로 전 <스포츠서울> 문화레저부 부장과 한국사립미술관협회 팀장을 역임했다. 주요 저서로는 <시와 사랑에 빠진 그림> <미술전시 홍보, 이렇게 한다>, 미술 연구용역 보고서 ‘미술관 건립·운영 매뉴얼’ ‘미술관 마케팅 백서’ 등이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