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日, 전쟁범죄 역사지우기 하나 (한인 징용수용소가 세계문화유산?)
동아일보 2008-08-15
일제강점기에 강제 징용돼 일본에 끌려갔던 조선인들이 묵었던 건물을 일본의 지방자치단체가 유엔교육과학문화기구(UNESCO·유네스코) 지정 세계문화유산으로 만들려 하는 것으로 확인됐다.
일제강점하 강제동원피해 진상규명위원회(진상규명위)는 일본 나가사키(長崎) 시가 나가사키 항구 서남쪽으로 18.5km 떨어져 있는 하시마(端島) 섬의 여러 건축물들을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받기 위한 작업을 추진하고 있다고 14일 밝혔다.
진상규명위는 일본 내 시민단체인 ‘나가사키 재일(在日)조선인의 인권을 지키는 모임(인권모임)’을 통해 이런 사실을 확인했다고 설명했다.
나가사키 시는 시 홈페이지에서도 하시마 섬의 세계문화유산 지정을 추진하고 있다고 밝혔다. 1910년 만들어진 하시마 섬의 건축물은 일본 최초의 철근 콘크리트 주거용 건물로 근대화의 유산이라는 것이다.
이에 대해 진상규명위 측은 “나가사키 시가 조선인 강제 징용이라는 역사적 죄과를 쉬쉬하면서 무인도로 남아 있는 하시마 섬을 관광지로 개발하려 한다”고 비판했다.
문제의 콘크리트 건물은 4∼7층짜리 10여 동으로 하시마 섬의 해안을 따라 서 있다.
진상규명위에 따르면 1939∼1945년 강제 징용된 조선인 500여 명은 하시마 탄광에서 일하며 일본인 노동자와 함께 이 건물에 흩어져 생활했다. 하시마 탄광은 일본 미쓰비시사가 소유했던 것으로 태평양전쟁 당시 일본에서 석탄 생산량이 가장 많은 탄광 중 하나였다.
일본의 인권모임이 하시마 탄광 사망자의 ‘매·화장 기록서’를 확인한 결과 당시 조선인 강제 징용자 122명이 이 섬에서 숨졌고, 사인은 두개골 함몰, 익사, 압사 등이었다.
하시마 탄광에 강제 징용됐던 피해자 박준구(87) 씨는 “그 섬은 높은 방파제와 거센 파도로 탈출할 엄두조차 낼 수 없는 그야말로 생지옥이었다”고 회상했다.
그는 또 “조선인들은 전쟁 말기 위험한 작업에 집중 투입됐으며 탄광 관리인들의 폭력에 시달려야 했다”고 덧붙였다.
진상규명위 이재철 홍보담당관은 “나가사키 시가 조선인들의 한과 아픔이 서린 하시마 섬을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하려는 것은 일본 정부의 ‘어두운 역사 지우기’와 맥을 같이하는 것”이라며 “앞으로 나가사키 시의 움직임에 따라 적절한 조치를 취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세형 기자 turtle@donga.com
일본이 "나가사키의 교회군과 그리스도교 유적"의 기독교 성지로 나가사키현을 포장하여 세계문화유산 등재를 추진하고 있다.
나가사키현는 바다를 사이에 두고 중국대륙과 한반도와 마주하고 있기 때문에, 오래 전부터 대륙과의 교통의 요충지였다.
17 세기 이후는 포르투갈, 네덜란드 등과의 무역항도 설치되었으며 한때는 기독교 포교의 중심지였다. 1597년 2월 5일.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천주교도 추방령에 의해 일본인 신자 20명과 외국인 신자 6명이 본보기로 처형되었다. 이들은 일본 성인으로 추대되었다.(아래글 참조)
현재 일본 전역의 10% 해당하는 교회군이 밀집되어 있는 나가사키현은 태평양 전쟁시 원자폭탄 투하지역이기도 하다. 아니러니인 것은 폭탄이 떨어진 곳은 바로 나가사키에 가장 먼저 세워진 교회인 우라카미성당이였다고 한다.
출처 : http://artworks-photo.sakura.ne.jp/book/nonf/densetu/den9/index.html
나가사키 종교전쟁
「神宮寺가 불타고 있다.」 神宮寺는, 스이코천황 5년(597)에 (쿠다라)백제에서 와 입궐한 림성태자가 묘켄 존왕(북두성) 수법 도장으로 한 것을, 홍인연중(810~823), 사가 천황의 임금의 기원으로 절이 건립되어 나가사키는 그 지료가 되었다. 지금의 스와 신사, 스와 공원, 지사 관사, 사쿠라노바바 중학교를 포함한 광대한 것이었다.
나가사키의 신사 불각을 조사해 보면, 창립이 대부분이 1600년 이후에 되고 있다는 것을 깨달을 것이다. 이것은, 나가사키의 역사로 일어난, 크리스찬에 의한 신사 불각의 대대적인 화공 사건의 탓이다.
주지대로, 나가사키는, 1571년, 포르투갈등의 무역을 위해 개항되었다.
크리스찬의 이야기는 다양한 책에 자세하게 쓰여져 있으므로, 여기에서는 상세를 생략하지만, 이 시기로는, 나가사키의 신사 불각 있어 원 있는 크리스찬에게 있어서의 이교도의 박해가, 빈번히 일어나고 있었던 것이다.
나가사키의 신사나 불사가, 외국의 신의 교도에게 화공 되는 것을 일본의 종교가가 침을 흘려 보고 있다고(면)은 생각되지 않는다.
오다 노부나가는, 종교라는 것 보다, 유럽의 바람을 받는 것이, 상업의 발전에 막대한 영향을 받는 일을 다 알고 있어 너그러운 태도를 보인다.
나가사키의 땅은, 데우스의 신을 외치는 이교도들에 의한 파괴의 폭풍우가 불어 거칠어지고 있었다.
단지 신사 불각의 구워 토벌해 사건이, 일본인의 지금까지의 종교관으로부터 동떨어지고 있던 것은, 당연으로, 그러므로에 일본 교도 불리고 있는, 신불 혼합의 애매한 종교관으로는 크리스트교의 공포가 치솟았던 것도 이해할 수 있다. 왜 모르는 것일까.나는 그 일이 이상하다.
원본 長崎宗教戦争 「おお、神宮寺が燃えている。」 長崎の神社仏閣を調べてみると、創立がほとんどが1600年以降となっているのに気がつくであろう。 長崎の神社や仏寺が、外国の神の教徒に焼き打ちされるのを日本の宗教家が指をくわえてみてるとは思えない。 長崎の地は、デウスの神を叫ぶ異教徒たちによる破壊の嵐が吹き荒れていた。 なぜ知らないのだろうか。僕はその事が不思議である。 著 竹村倉二 |
첫댓글 일본인들의 정신상태는 너무나도 독특한 캐릭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