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을 던져 버릴 때가 있고 돌을 거둘 때가 있으며 안을 때가 있고 안는 일을 멀리할 때가 있으며 (전 3:5)
나와 아내는 시계를 좋아한다. 요즘은 시계를 사는 사람이 별로 없다는데 우리 집에 와 보면 두 개의 화장실에 각각 시계가 하나씩 있으며 서재와 침실에 하나씩, 또 거실에는 두 개가 있다. 지금 몇 시쯤 되었을까 해서 둘러보면 곧 알 수 있게 시계가 보여야 한다. 그중 오래된 것은 둘 다 거실에 있는데 하나는 결혼 20주년에 기념으로 산 것으로 AA 타이프의 건전지 하나를 넣는 쿼츠(quartz) 시계인데 35년이 지났다. 또 하나는 뻐꾸기시계이다. 미국에서 그 시계를 보고 신통해서 꼭 사서 오고 싶었는데 그러지 못했다. 그런데 한국에 와서 몇 년 되었더니 시계점에서 그것을 팔고 있는 것이었다. 나도 샀지만, 친척이나 지인들에게도 선물로 사 주었다. 그 뒤 이 시계는 1989년 말에는 인기 상품이 되었고 실제로 1995년 8월에는 국내 TV 쇼핑몰에서 판매 상품 1위가 되기도 했다. 그러니 내가 가지고 있는 뻐꾸기시계는 30년인 넘은 셈이다.
한때 이 시계가 고장 난 일이 있다. 그 당시 유성에 있는 한빛아파트에 존경하는 목사님이 계셔서 자주 갔었는데 나오는 길에 그 아파트에 있는 한 시계점을 발견하였다. 그래 그곳에 시계를 맡겼더니 말끔히 고쳐 주었다. 그전에는 뻐꾸기가 나오다 말고 엉거주춤 서 있거나 엉뚱한 시간을 치거나 해서 한때는 버리고 새 시계를 살까? 하는 생각도 하였다. 우리나라도 그때는 뻐꾸기시계의 유행 기간이 지나서 많은 사람이 분리수거함에 그 시계를 흔히 버리곤 하던 때였다. 그러나 그 시계점 사장에게 많은 전문 지식을 얻어 지금까지 별문제 없이 잘 지내고 있다. 그런데 이번에 또 문제가 생겼다. 한 시간을 덜 치는 것이다. 그래서 장침을 한 바퀴 돌리면 제대로 치겠지 하고 돌렸더니 어떻게 된 것인지 장침과 단침이 함께 움직여 주어야 하는데 따로따로 움직여 엉망이 되어 버렸다. 이제는 버릴 때가 되지 않았느냐고 아내는 말했지만 30여 년을 같이 실아 온 시계인데 쓰레기통에 버릴 생각이 나지 않았다. 우리 몸도 고장이 나서 병원에서 고치면 또 몇 년은 아무 일 없이 잘 지내지 않는가?
옛날 수년간의 전화번호부를 다 뒤졌는데도 그 시계 수리점이 나오지 않았다. 그러다 생각 난 것이 명함을 모아놓은 수첩이었다. 거기서 나는 <한빛 시계 수리 전문점>을 찾아냈다. 전화했더니 <카이저> 제품인 것을 알고 너무 오래되어서 부속품을 찾을 수 있을지 모르겠다고 말하면서 찾았다 하더라도 기본 수리비 6만 원은 각오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인터넷을 검색했더니 지금도 그런 제품은 팔고 있는데 18만 4천 원이었다. 값보다도 나는 어떻게 하든지 30년 넘게 지낸 그 시계와 함께하고 싶은 생각이 들었다. 그 시계를 달래서 잘 고쳐 살지 않으면 내 몸도 잘 달래서 살 수 없을 것 같은 생각이 들어서였다. 뻐꾸기가 울지 않으면 어떤가? 시간만 맞으면 그냥 함께 지낼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하였다. 사실 한번은 내 동생이 와서 자고 갔는데 그 시계 소리 때문에 한숨도 자지 못해 혼난 적도 있다. 우리가 뻐꾸기 소리를 꺼놓으면 되는데 그리 못했다. 막내아들 집에는 탁상초인종 시계를 사 주고 온 일이 있다. 그 시계는 태엽을 감아 주어야 웨스트민스터 차임이 울리는데 그들은 그 소리를 별로 듣고 싶어 하지 않는다. 그러나 우리가 찾아가면 꼭 태엽을 감고 차임벨을 십오 분마다 듣는데 의무적인 것 같았다. 어쩌면 뻐꾸기시계는 소리를 내지 않는 것이 많은 사람에게 유익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였다. 소리를 안 내면 뻐꾸기시계가 아니겠지만.
이 정교하게 만들어진 시계는 우연의 산물이 아니다. 영혼만 있다면 인간과 마찬가지인데 어떻게 버릴 수가 있는가? 물론 영혼은 없다. 그러나 오래 같아 살다 보니 영혼이 있는 것처럼 교감이 된다. 모든 일에는 때가 있다. 날 때가 있고 죽을 때가 있다. 그러나 그것은 내 뜻이 아니다. 그렇다면 이 시계도 내 뜻대로 지금 버리면 안 된다는 생각을 한다. 돌을 던져 버릴 때가 있고 돌을 거둘 때가 있다지 않은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