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서남북이
얼마 전 웅이는 개를 네 마리나 갖게 되었다. 누가 웅이에게 준 것도 몰래 데려온 것도 아니다. 주인이 있지만 매일 개들을 데리고 마음껏 놀며 재미있게 지내고 있으니 웅이가 주인이나 마찬가지이다.
웅이가 귀여운 강아지 네 마리를 처음 만난 것은 아카시아 꽃이 화사하게 꽃망울을 터트리던 오월 어느 날이었다. 웃뜸 수영이네 집으로 가는 인적 드문 산길에서 웅이는 강아지가 끙끙거리는 소리를 들었다. 이 외딴 곳에 개가? 둘러보니 널찍한 밭 한 쪽에 한 번도 본 적이 없는 개집이 하나 들어서 있었고 그 앞에서 수영이가 환하게 웃음을 머금고 서있었다.
판자로 엮은 투박한 나무 집이 굵은 기둥 받침에 얹혀 있었다. 앞쪽이 쇠창살로 막혀 있었고 올이 굵은 철망을 깔아 놓은 바닥에는 볏짚이 깔려 있었다. 그 안에서 강아지들이 쇠창살에 달라붙어 마구 꼬리를 흔들며 낑낑거렸다. 까만 눈동자가 별처럼 초롱초롱했다. 황금 빛 털이 매끄러운 누렁이였다. 태어난 지 얼마 안 되었는지 몸집이 작은 고양이만 했다.
“얼마 전에 귀농한 아래뜸 창수 아저씨가 여기다 농장 만들겠다면서 개집부터 지어놓은 거야. 아저씨는 아침과 저녁때만 강아지 먹이 주러 와. 춘천에서 하루 종일 귀농인 공부를 한대. 낮에는 우리가 마음대로 데리고 놀아도 돼. 웅이야, 어때?”
수영이가 눈을 찡긋거리며 개집 모서리에 달린 걸쇠를 풀었다.
문이 활짝 열리자 강아지 네 마리가 밖으로 훌쩍 뛰어내리더니 꼬리를 흔들며 달려들었다. 웅이는 한 마리를 번쩍 치켜들었다. 강아지가 앞발을 버둥거리며 웅이의 목을 혀로 핥았다. 목이 간지러워 웅이는 강아지를 땅에 내려놓고 내달렸다. 강아지가 재빠르게 뒤를 따라 달려왔다. 웅이는 강아지를 끌어안고 땅바닥에서 데굴데굴 구르며 장난을 쳤다. 옷에 흙쯤 묻어도 상관없었다. 그까짓 흙이야 탁탁 털어내면 그만일 뿐이다.
“웅이야, 네 마리라서 내가 동 서 남 북이라고 이름 붙였어. 동이, 서이, 남이, 북이……. 이마에 검은 점이 있는 강아지는 동이, 털빛이 제일 연한 강아지는 서이, 꼬리 끝 부분이 하얀 강아지는 남이, 주둥이가 뾰족한 강아지는 북이야.
웅이는 학교 수업이 끝나면 부리나케 강아지를 보러 갔다. 특히 남이가 제일 맘에 들었다. 남이도 웅이만 보면 반갑게 달려와 안겼다.
꿈같은 시간이 이어졌다. 강아지들은 하루가 다르게 쑥쑥 몸집이 커졌다.
행복은 오래 가지 않았다. 호숫가에 늘어 선 모감주나무가 노란 꽃을 소낙비처럼 토해내던 7월 웅이는 수영이에게서 청천벽력 같은 말을 들었다.
“웅이야, 동서남북이 모두 다 이번 여름에 춘천에 있는 보신탕집으로 팔려갈 거래. 아빠가 그러셨어.”
“보신탕집? 그게 뭔데?”
“개를 잡아서 음식으로 만들어 파는 집이야.”
웅이는 깜짝 놀랐다. 옛날에 여름을 건강하게 나기 위해 개를 잡아먹는 풍습이 있었다는 말을 들은 적은 있지만 지금도 그런 풍습을 지키는 사람들이 있다는 사실이 놀라왔다. 식인종 이야기를 들을 때처럼 팔뚝에 소름이 돋았다.
‘다른 개들은 어쩔 수 없다 해도 남이만은 살려야 해. 그런데 어떻게 하지? 살릴 방법이 없을까. 그래, 남이를 상여막에 감추어 두자. 들키면 큰 벌을 받게 될 지도 몰라. 그렇지만 남이가 살 수 있다면 어떤 어려움이라도 이겨내야 해. 할 수 있어.’
웅이가 남이를 상여막에 감추어 놓은 날 저녁 창수 아저씨가 동네방네 개를 찾아 돌아다녔다. 눈살을 찌푸린 채 개를 훔쳐가는 걸 본 사람이 없냐며 묻고 다녔다. 무척 사나와 보였다. 웅이는 가슴이 쿵쿵 뛰었다. 무서웠다.
며칠째 어두운 상여막에서 제대로 먹지도 못하고 운동도 못한 남이는 기운이 빠진 듯 잘 움직이지 않았다. 웅이는 겁이 덜컥 났다. 이러다 죽고 마는 게 아닌가 싶었다.
수영이가 좋은 생각을 해냈다.
“청운사 말벌스님한테 가서 부탁해보자.”
“왜? 스님께서 절에서 길러주실까?”
“그건 잘 모르겠어. 그게 아니더라도 말벌스님이라면 좋은 방법을 가르쳐 주실 거야. 지금 남이 데리고 청운사에 가자.”
말벌스님이 반갑게 맞아주셨다.
“웃뜸 산자락 묵정밭을 말하는 거냐? 창수가 거기서 개를 키우고 있단 말이지? 복날에 팔려고? 너희들은 그 개가 불쌍하다는 것이고. 흐음……. 얘들아, 일단 개는 여기 두고 가렴. 내가 춘천에 나가서 창수를 만나보고 오마. 너무 걱정 말고 돌아가거라.”
도티재를 넘어 집에 돌아오는 내내 웅이의 마음은 어두웠다. 말벌스님에게서 모든 사실을 다 듣고 나면 창수 아저씨가 웅이를 크게 혼내고 다시 남이를 만나지 못하게 할 게 틀림없다. 더구나 엄마와 아빠가 웅이가 한 일을 알게 되면……. 그 다음에 벌어질 일은 불을 보듯 빤하다.
‘남이를 청운사에 데려가는 것이 아닌데.’
웅이는 눈앞이 캄캄했다.
“안녕하세요? 마을에서 농사짓고 살겠다고 인사드렸던 박창수입니다.”
그날 저녁 웅이는 차임벨 소리에 이어 현관 인터폰 스피커에서 들리는 소리에 깜짝 놀라 숨을 죽였다.
‘창수 아저씨가 찾아 온 거야?’
방문을 살짝 열고 내다보니 현관문을 연 엄마가 창수 아저씨와 무슨 이야기인가를 나누고 있었다. 눈살을 잔뜩 찌푸린 아저씨의 모습이 도깨비처럼 무시무시했다.
‘아, 큰일 났네. 어쩌지. 도망갈 곳도 없는데.’
이마와 목덜미가 화끈거리며 땀이 솟았다. 심장이 쿵쿵 심하게 요동하며 아랫배가 묵직하니 아팠다.
남이에 관한 일을 알 리 없는 엄마가 웅이를 불렀다.
“웅이야, 웃뜸 아저씨가 너하고 할 이야기가 있어서 오셨다는구나. 잠깐 나와 보렴.”
웅이는 머뭇거리며 문을 나섰다. 얼굴이 발갛게 상기되면서 이마에 진땀이 솟았고 어깨가 옴츠러들었다. 아저씨와 눈을 마주칠 수 없어 고개가 푹 꺾였다.
그 모습이 심상치 않았던지 엄마가 다급한 목소리로 말했다.
“우리 웅이가 뭐 잘못한 거라도 있나요?”
이제 드디어 벼락이 떨어지겠구나. 웅이는 눈앞이 아뜩해지면서 울음이 터져 나올 것만 같았다. 그런데 아저씨 입에서 나온 말이 아주 뜻밖이었다.
“아니에요. 잘못한 거 없어요.”
‘어, 잘못한 거 없다고? 그러면 나를 혼내주려 오신 게 아닌가?’
웅이는 아저씨의 얼굴을 슬그머니 올려다보았다. 여전히 눈살을 잔뜩 찌푸리고 있었지만 화가 난 모습은 아니었다. 원래 인상이 사납게 보이는 것뿐인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제가 좀 알고 싶은 게 있을 뿐이에요. 웅이하고 이야기 좀 하고 싶은데 괜찮겠지요?”
엄마가 뭐라고 대답해야 할지 몰라 머뭇거리는 사이 아저씨가 웅이를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웅이야, 너하고 할 이야기가 있는데 네 방에 들어가도 되겠지?”
화가 난 사람의 목소리가 아니었다. 부드럽고 차분한 목소리였다. 자초지종을 알지 못하는 엄마는 무척 당황한 표정을 지었다.
“제가 들으면 안 되는 이야기인가요?”
엄마의 말에 아저씨는 미안하다는 듯 턱을 쓰다듬으며 눈을 끔뻑였다.
“우선 저희들끼리 이야기를 하고 나서 알려드리면 안 될까요?”
엄마가 웅이를 바라보았다. 뭐라면 좋겠느냐는 눈빛이었다. 웅이는 고개를 끄덕였다. 엄마가 답답한 표정을 지으며 한숨을 토해냈다.
“그러면 잠깐 실례하겠습니다.”
아저씨가 성큼성큼 웅이의 방으로 들어섰다. 웅이는 얼른 방문을 닫고 아저씨 앞에 똑바로 서서 고개를 깊이 숙이며 속삭이듯 작은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엄마가 들을까봐 겁이 났다.
“아저씨 잘못했어요. 제가…….”
아저씨가 손을 내저으며 웅이의 말을 중간에서 끊었다.
“잘못한 거 없다. 그러니 잘잘못을 가릴 것도 없다. 어떻게 된 일인지는 도현스님께서 다 말씀해 주셨으니 거기에 대해서 이러쿵저러쿵 이야기 할 것도 없다. 너희들이 내가 개를 길러 내다파는 일을 좋아하지 않으니 나도 하고 싶지 않다. 이런 문제를 생각하지 않고 서둘러 일을 시작한 내게 잘못이 있는 게다.”
아저씨 또한 웅이 만큼이나 작은 목소리로 속삭였다. 문 밖에 있는 엄마는 방안에서 무슨 이야기를 하는지 전혀 알 수 없을 것이다. 아저씨의 태도와 말씀으로 보아 웅이를 꾸중하러 온 게 아닌 것이 분명했다. 아저씨는 조용히 말을 이어나갔다.
“다만 한 가지 알고 싶은 게 있다. 개를 키워보겠니?”
아저씨의 물음에 웅이는 고개를 힘차게 끄덕였다. 정말 하고 싶은 일이다. 아저씨가 개를 주시려는 모양이다. 그렇다면 정말 반갑고 고마운 일이다.
‘그런데 개를 어디서 키우지? 아파트에서 기를 수는 없잖아.’
용솟음치는 기쁨 속에서 어두운 생각이 슬며시 고개를 들었다.
“네, 개를 기르고 싶어요. 그런데 집에서는 마당이 없어 기를 수 없어요. 엄마가 개털 알레르기가 있거든요.”
웅이가 힘없는 목소리로 대답하자 아저씨가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서 내가 제안을 하려 한다. 웃뜸에 있는 개집을 그대로 두고 개도 거기서 기를 터이니 언제라도 와서 데리고 놀도록 해라. 먹이를 주는 일이나 청소는 내가 알아서 하겠다. 물론 공짜는 아니다. 네가 할 일이 있다. 밭 한쪽에 염소 방목장과 토끼 사육장을 만들 생각이다. 염소와 토끼 기르는 일을 도와주렴. 낮에 점심시간 같은 때 와서 사료와 물을 확인하고 채워주면 돼. 그리고 토요일 오후 한 시간만 도와주면 충분해. 어떻겠니? 할 수 있겠니?”
우와, 이런 일이라면 하루 종일이라도 괜찮다. 웅이는 입이 함지박만큼이나 크게 벌어졌다.
“좋아요, 아저씨. 그렇게 하겠어요.”
“좋아, 그러면 사나이와 사나이의 약속이다.”
아저씨가 새끼손가락을 앞으로 쭉 내밀었다. 웅이도 새끼손가락을 내밀어 아저씨 손가락에 걸었다.
아저씨가 크게 웃음을 터트렸다. 크게 웃는데도 찌푸린 눈살은 펴지지 않았다. 몹시 화가 난 사람 같았다. 그 모습이 우스워 웅이는 자기도 모르게 까르륵 웃음을 터트렸다.
갑자기 터져 나온 웃음소리에 놀란 엄마가 살그머니 방안을 들여다보았다. 눈이 마주치자 웅이는 한손을 들어 올려 승리의 브이마크를 지어보였다. 엄마가 무슨 일이지 몰라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었다. 그 표정이 아주 우스꽝스러워 웅이의 입가에서 연신 벙긋벙긋 웃음이 터져 나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