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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시36분, 돌탑에서 통나무계단을 버리고 왼편의 바위돌과
흙이 섞인 된비알을 타다
턱에 올라 뒤돌아
툭 트인 지나온 458봉과
금정산 능선을 조망하고
송전철탑을 지나
14시42분, 많은 등산객들이 앉아서
좌로 멀리 장산과 황령산, 금정구 동래구 해운대구
부산진구등 시가지를 한눈에 내려다보고 있습니다.
동래구와 북구 경계선을 따라 가다
14시45분, 오른편으로
'KBS만덕 TV.R'송신철탑을 지나
널찍한 산책로를 걷는데
14시56분, 오른편으로 넓은 공터에
노천이동음식점이 나타납니다.
왼편 갈림길에 이정표
[한신APT650m 금정산철학로]와
'향토순례코스 남문3km 어린이대공원1.3km,라고
음각한 작은 석비가 세워져있고
동편으로 늪지가 있어 동래구청에서 세운...
*2003년7월17일(木)雲雨
▲낙동정맥종주26구간(금정산 북문~개금고개)*사진51컷
제26구간 : 左금정구, 동래구, 연제구, 부산진구,
右북구, 사상구
♠참 고
▶동래구[東萊區]
면적 16.70㎢
인구 29만 396명(2003.1)
가구수 9만 2781세대(2003.1)
행정구분 14동
구청 소재지 동래구 복천동 381
동쪽으로 해운대구, 북쪽으로 금정구, 서쪽으로 북구, 남쪽으로 연제구(蓮堤區)에 접한다.
관할구역은 수민동, 복산동, 명륜 1~2동, 온천 1~3동, 사직 1~3동, 안락 1~2동, 명장 1~2동의
14개동으로 이루어져 있다. 구청 소재지는 동래구 복천동에 있다.
1957년 생긴 동래구는 그 동안 세(勢)가 늘어남에 따라 일부를 남구·해운대구에 할양했다.
또, 1988년에는 서동(書洞)과 복천동 사이의 산을 잇는 선을 경계로 그 북동쪽을 금정구로
분리했으며, 1995년 3월 연산동(連山洞)·거제동(巨堤洞) 지역을 신설된 연제구에 넘겨주었다.
《삼국사기》에 나오는 거칠산국이 있었던 곳으로 추정되는 유서 깊은 곳이다.
1980년에 발굴한 복천동(福泉洞) 고분에서는 금동관·무기 등이 출토되었고, 남구와 경계를
이루고 있는 배산의 정상 부분과 산복 부분에서 이중의 토성이 발견되어, 이곳에 고대국가
가 있었다는 흔적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임진왜란 당시 동래는 동래경찰서 뒤편에서 전신전화국 부근, 옛 동래여고 뒷산, 동래고교
부근을 성곽으로 두르고 있었다. 그 성내가 그대로 지금 동래구의 중심을 이루고 있다.
동래경찰서 뒤쪽 전 대동병원 자리는 임진왜란 당시 남문이 있던 곳으로 일본군이
"중국을 치러 갈 테니 싸울 테면 싸우고 아니면 길을 빌려 달라"
고 했을 때 송상현(宋象賢) 부사가
"죽기는 쉬워도 길을 빌려줄 수는 없다"
고 결사항전의 결의를 보인 곳이다. 수안동(壽安洞) 수안파출소 동쪽에 있는 고건물은 바로
동래부의 동헌으로 송부사가 순국한 지점으로 알려져 있다.
동래고교 동쪽, 안락로터리 북서쪽에 있는 충렬사는 임진왜란 당시 순국한 송부사를 비롯
해서 부산진첨사 정발(鄭撥) 장군 등 호국영령들을 모신 곳이다. 또 온천(溫泉)1동 금강공원
에는 임진왜란 당시 전사한 관민의 유해를 모신 '동래의총(義塚)'이 있다.
동래부 동헌 건물을 앞에 둔 동래시장은 지난날 전국에 이름났던 5일장의 하나로, 기장의
미역과 갈치, 철마의 산나물, 구포의 배와 삼베, 연산동의 참외, 금사동의 죽제품 등이 유명했다.
문화재로는
동래패총(사적 192), 동래복천동고분군(사적 273), 동래부사청동헌(부산유형문화재 1),
망미루(부산유형문화재 4), 독진대아문(부산유형문화재 5), 동래향교(부산유형문화재6),
충렬사 (부산유형문화재 7), 장관청(부산유형문화재 8), 고려오층석탑(부산유형문화재13),
동모(부산유 형문화재 18), 동파두(부산유형문화재 20), 군관청(부산유형문화재 21),
동래학춤(부산무형문화재 3), 동래지신밟기(부산무형문화재 4), 충렬사제향(부산무형문화재5),
가야금산조(강태홍류)(부산무형문화 재 8), 동래고무(부산무형문화재 10),
동래읍성지(부산기념물 5), 송공단(부산기념물 11), 임진동래 의총(부산기념물 13),
온정개건비(부산기념물 14), 내주축성비(부산기념물 16), 이섭교비(부산기념물 33) 등이 있다.
▶연제구[蓮堤區]
▶부산진구[釜山鎭區]
▶북구[北區]
▶사상구[沙上區]
♧산행 코스(26차)
10시15분 북문
10시42분 원효봉
10시58분 4망루
11시48분 동문
12시22분 대륙봉
13시00분 케이블카식당
13시58분 458봉
14시26분 만덕고개
14시45분 KBS만덕중계탑
15시26분 만남의숲
16시27분 611봉
17시02분 백양산
17시55분 삼각봉
18시21분 405봉
18시35분 헬기장
19시15분 개화초교정문
총 9시간
♣참여 대원(3명) 하종관, 오지호, 남상기,
☞☞☞☞오늘이 제헌절이란 걸 알면서도 태극기도
내걸지도 않고 집을 나섭니다.
지금까지 국경일에는 항상 태극기를 계양했지만
근래 법을 만든 일부 국회의원등 지도층이 법을 지키지 않는
사건이 연이어 보도되기 때문인데 곧 후회합니다.
길거리는 물론, 주변의 아파트를 눈을 비벼 봐도
태극기는 볼 수 없습니다.
무거운 마음으로 대티지하철역으로 내려갑니다.
산악회는 이미 지난 4,5월에 편법으로 몰운대에서 북문까지
북행 구간종주를 마쳤으나 당시 어머니의 위독과 별세로
참여 못했든 마지막 두 구간,
지난 이른 봄 20구간 백운산을 오르면서 하 대장
그리고 오 대원과의 약속한 남행순으로의 종주,
그 실행을 오늘로 결정하여 지하철을 탄 것입니다.
하 대장은 9시 약속시간보다 5분 빨리
범어사 지하철역 출구에서 기다리고 있습니다.
밤부터 장마비와 호우가 내리겠다는 예보 속에
하늘은 흐리지만 오히려 산행하기에 좋을 것 같은
예감을 하며 범어사 순환버스를 타고 올라가
짙푸른 경내에 들어섭니다.
하마비와 일주문을 거쳐
대웅전 앞을 지나 후문으로 빠지면서
하 대장이 오 대원과 통화,
3망루에서 만나기로 합니다.
계곡의 넙적 바위 길로 올라가는데
앞에서 프레임배낭에 아기를 업은 젊은 부부가
너덧 살의 사내아이의 손을 잡고
올라가는 한 가족등산객을 만납니다.
자연을 가까이 하는 건강한 가족을 보는 즐거움에
산에서 이런 가족을 만나면 그렇게 기분이 좋을 수가 없어
뒤에서 앞에서 캠코더와 디카로 담습니다.
흙이 빗물에 씻겨 내려가
뿌리가 노출된 비탈과
통나무를 박아 만든 계단을 오르면서
행여 생나무를 잘라 만든 게 아니기를 기대합니다.
오른편으로 고당봉을 쳐다보며 턱에 올라서고
10시12분, 북문안으로 들어갑니다.
지난 25차 종주 때 비구름과 빗발 속에
제대로 촬영 못 했든 주변을
캠코더와 디카에 담고
10시15분, 왼편성벽을 따라 올라가는
불규칙한 돌계단을 오릅니다.
한동안 오르다 뒤돌아보니
오른편으로
지난번 우중에 올라섰든 계명봉과
그 능선이 이어지고
그 앞쪽으로 금샘의
뾰족한 암괴가 시선을 끕니다.
여기서 잠시 금정산의 유래를 옮겨보기로 합니다.
‘동국여지승람, 동래부지의 동래현 산천조에 의하면,
"금정산은 동래현 북쪽 20리에 있는데 산정에 돌이 있어 높이가 3장(丈)가량이다.
그 위에 샘이 있는데 둘레가 10여척이고 깊이가 7촌(寸)가량으로 물이 늘 차 있어
가물어도 마르지 않으며 색이 황금과 같다.
금어(金魚)가 5색 구름을 타고 하늘로부터 내려와 그 샘에서 놀았으므로 산 이름을
금정산이라 하고, 그 산 아래 절을 지어 범어사(梵魚寺)라 이름했다"
고 기록되어 있다.’
그 왼편으로 고당봉이
더욱 뚜렷하게 나타납니다.
한편 고당봉(姑黨峰)의 유래는 아래와 같습니다.
지금까지 무려 7가지의 이름으로 불리거나 씌어져 왔다.
1740년 편찬된 《동래부지》에 나오는 지도에는 '고암(姑岩), 고당봉(姑堂峰), 고담봉
(高潭峰), 고단봉(高壇峰), 고당봉(高堂峰), 고당봉(姑黨峰), 고당봉(高幢峰)이라 하여
어느 것이 진짜 명칭인지 분간하기가 어렵다.
고당봉의 명칭에 대해서는 1994년 8월 금정구청에서 산 이름 찾기 고증작업 추진으로
'고당봉(姑堂峰)'과 '고당봉(高幢峰)'의 두 가지 의견으로 함축하여 역사(민속)학자 및
향토사학자들의 의견을 들어 공식적으로 고당봉 정상에는 고당봉(姑堂峰)으로 확정
하여 기념표석은 세웠다.
일설에 의하면 할미(姑)가 이곳에 집(堂)을 짓고 살았다 하였으며 그래서 금정산을
여신(女神)의 산으로 신성(神聖)시 되어오고 있는 것이다.
다시 올라가면서 오른편으로
지난번 고당봉을 오르면서 넉넉히 보았을 터인데
비바람과 비구름으로 못 봤든
낙동강을 처음으로 조망합니다.
당시 비구름과 폭풍우속에 고전했든 일이
새삼스럽게 떠오릅니다.
10시39분, 이정표[4망루0.6km 3망루2.4km 동문3.3km 남문6.5km]를 지나
10시42분, 콘크리트 표지석[양산25 1992재설]만 박혀있는
원효봉에 가볍게 올라섭니다.
11시 방향으로 부산외항과
1시 방향으로 낙동강 하류까지 한눈에 들어옵니다.
10시58분, 4망루 도착.
오른편으로 금정산의 암반의 특성,
토르(Tor)에 관한 자세한 지질학적인 분석
설명간판이 세워져 있습니다.
11시4분, 왼편으로 암벽타기 부체바위를 지나 내려가다
지나온
무명바위를 촬영하고
도중에 하 대장이 친구를 만나 이야기가 길어져
먼저 내려가다 나도 모르게 3망루를 지나치고
11시21분, 0.2km 거리의 ‘나비바위’ 표지판이 붙어있어
성벽 쪽으로 가
캠코더와 디카에 담습니다.
그리고 바위사이 좁은 길로 이어지는
성벽 길로 내려갑니다.
바위를 타는 길이 이어져 시간이 지체될 것 같아
다시 넓은 편한 길로 나와
3망루에서 오 대원과 합류한 하 대장과 교신하고
11시48분, 동문에서 합류합니다.
산성고개를 건너기전의
대륙봉이 눈앞에 버티고
산성마을로 이어 화명동으로 빠지는
아스팔트 2차선을 건너
넓은 길을 두고 조망이 좋다는
가파른 성벽 길로 오릅니다.
잠시 턱에 올라
지나온 능선을 조망하고 좌로
분재 같은
작은 반송 한 그루를 디카에 담고
12시22분, 옛날 대륙산악회가 암벽타기 훈련을 하여
붙여진 이름이라는
‘대륙봉119조난’ 표지판이 세워져 있는
너럭바위에 올라섭니다.
많은 등산객들이
앞이 확 트인
바로아래의 부산대학 운동장과
금정구를 조망하고
뒤돌아 산정의 바위 생김새가
코끼리가 낙동강 물을 마시고 있는 형상을 하고 있어
산봉우리를 불명으로 파리봉이라 이름 붙였다는 파리봉과
산정 형상이 마치 닭의 벼슬모습을 닮았다는
상계봉(上鷄峯)을 촬영합니다.
12시30분, 바위사이 길을 내려 평지를 걷다
또 다른 대륙봉이정표
[금정산역사탐방로 북문4.9km 동문1.4km 2망루1.2km 남문1.8km]
를 지나칩니다.
도대체 어디가 진짜 대륙봉인지 알 수 없습니다.
12시39분, 오른편으로 이동음식점을 거쳐
좌로 2망루를 모르는 사이에 지나치고
12시47분, 케이블카입구 갈림길이정표
[동문2.6km 온천장2.4km 남문0.3km 케이블카종점 0.5km]에서
남문을 버리고 케이블카종점 쪽 임도로 내려갑니다.
갈림길에서 지난번에 맛있게 먹었다는
보리밥을 먹겠다며 케이블카 종점 쪽으로
내려가다 입구에서 또 다른
아기를 등에 진
보기 좋은 가족등산객 팀을 발견하고
캠코더와 디카에 담고
13시, 종점 옥상에 있는
보리밥집으로 올라갑니다.
차례를 기다려
보리밥 비빔밥과 막걸리를 한잔씩 하고
밥값을 내겠다고 주인을 찾아가니
기여 하 대장이 먼저가 계산을 합니다.
13시40분, 자리에서 일어나 되돌아가다
갈림길에서
왼편으로 꺾어져 평지를 걷습니다.
13시50분, 좌로 긴 암괴가
옆으로 누워있는 코스에서
암괴 중간부분에
이름을 알 수 없는 식물이 뿌리내려
자라고 있는 신기한 광경을 발견하고
생명의 신비와 그 강인한 생명력에 경탄하며
캠코더와 디카로 소중하게 담습니다.
13시55분, 너덜 길과 돌탑사이로
좌로 조망하며 가다
13시59분, 전면이 확 트이는
458봉에 당도합니다.
좌로 사직동 아시안게임 주경기장과 동부산.
앞으로 찾아
올라갈 백양산 자락이 보이고
그리고 오른편으로 만덕동과 낙동강하류,
3시 방향으로 상계봉 자락에
양각석불과 사천왕상이 유명한
석불사 암벽이 보이고
그 아래로 만덕사지가 있습니다.
14시13분, 한동안 이 시원한 풍광을
바쁘게 디카와 캠코더에 담고
뚝 떨어지는 내리막을 탑니다.
14시17분, 오른편으로 나타나는 약수터에서
시원하게 목을 축이고
잡초가 무성한 천주교 묘지를 거쳐
아스팔트로 포장된 만덕고개 길에 내려서
아스팔트를 따라가다
14시29분, ‘동래구’와 ‘북구’ 경계 표지판이 붙어있는 지점에서
왼편으로 다시 가파른 통나무계단의 등로에 오릅니다.
14시36분, 돌탑에서 통나무계단을 버리고
왼편의 바위돌과 흙이 섞인 된비알을 타다
턱에 올라
뒤돌아 툭 트인 지나온 458봉과
금정산 능선을 조망하고
송전철탑을 지나
14시42분, 많은 등산객들이 앉아서
좌로 멀리
장산과 황령산, 금정구 동래구 해운대구 부산진구등
시가지를 한눈에 내려다보고 있습니다.
동래구와 북구 경계선을 따라 가다
14시45분, 오른편으로
‘KBS만덕 TV.R’송신철탑을 지나
널찍한 산책로를 걷는데
14시56분, 오른편으로 넓은 공터에
노천이동음식점이 나타납니다.
왼편 갈림길에 이정표[한신APT650m 금정산철학로]와
‘향토순례코스 남문3km 어린이대공 원1.3km,라고 음각한
작은 석비가 세워져있고
동편으로 늪지가 있어 동래구청에서 세운
’아무르산 개구리 보호지역, 이라는
유리창 안내간판이 서있습니다.
15시1분, 계속 이어지는 산책로를 거쳐
‘향토순례코스 어린이대공원0.9km’석비와
침엽수 숲길이 이어지고
통나무계단을 내려
15시12분, 갈림길 이정표[남문3km 백양산 만덕0.3km 어린이대공원]숲에
당도하여 엄마 따라 소풍 나온
어린이들이 다람쥐와 술래잡기하는
또 다른 자연을 디카로 잡느라
잠시 부산을 뜹니다.
다시 통나무계단을 올랐다
내려
15시26분, 갈림길이정표[당감 남문 백양산 어린이대공원 만덕]가 서있는
‘만남의 숲’에 내려섭니다.
벤치에 앉아 잠시 간식을 하고
세 사람이 '만남의 숲' 간판을 배경으로 기념촬영 후
15시41분, 하 대장이 좀 힘들다고 예고하든
된비알을 오릅니다.
16시, 작은 턱에 올라 뒤돌아보니
상계봉과 지나온 능선, 만덕동이 내려다보이고
16시15분, 두 번째 턱에서 뒤돌아보니
더욱 넓은 시야에
좌로 낙동강이 한눈에 들어옵니다.
마지막 된비알을 거쳐
16시18분, 자기는
만남의 숲에서 한 번도 쉬지 않고 올라온다는
7학년 노익장을 자랑하는 노장등산객이
마지막 턱에서 일장 자기소개를 하고 있는데
디카로 촬영하겠다니까
하 대장이 노익장에게
“갑장(동갑)이라고 기념 촬영해 드리는 모양 입니더!”
라며 웃습니다.
16시20분, 방화초소를 거쳐,
마치 소백산 비로봉의 넉넉한 능선처럼
넓은 방화선은 초지로 변신하여 길게 뻗어있고
16시27분, 바람이 세차게 부는 돌탑이 있는
611봉에 가볍게 올라 뒤돌아봅니다.
고당봉은 구름에 가려있고
70노익장은 되돌아갑니다.
백양산 정상은 또 다른 봉우리로 이어지는
짙은 초록방화선 능선 끝에 보이고
왼편으로 대한해협을,
오른편으로 낙동강을 끼고
바위사이 길을 거쳐
옛날 봉화대가 있어 부쳐진 이름의
밋밋한 불웅령[佛熊嶺]을 지나
초지에 숨은 앙증스러운 야생화를
디카와 캠코더에 담고
느긋하게 올라갑니다.
17시2분, 바위사이 길을 거쳐
옛날 이 산에 흰 수양버드나무가 있어
불려진 백양산[白楊山] 고스락에 올라섭니다.
해발641m. 다시 바람이 거세게 부는 백양산 돌탑
작은 ‘白楊山’정상비 옆에
어느 애국자가 꽂아놓았는지
작은 태극기가 펄럭이고 있습니다.
정맥은 마지막 용트림을 하며
차기에 지나갈 엄광산을 건너 몰운대로 뻗어있는데
잠시 아침에 오기로 태극기를 계양하지 않고 나온
자신을 꾸짖습니다.
서남쪽으로 벤치 3개가 놓여있고
뒤돌아보니
멀리 고당봉이 잿빛 비구름에 덮여있는걸
발견하고 마음이 바빠집니다.
17시8분, 산불감시초소를 거쳐
하산 길을 재촉합니다.
17시17분, 거대한 인조암석에
愛鎭峯이라 새긴 잘록이에 내려섭니다.
이건 분명 잘록인데 봉이라 부쳐진 연유를 알 수 없고
부산진 모 구청장 이름으로 거창한 설명비가 별도로 서있는데
앞으로 낙동정맥을 타는 산꾼들과
자연을 사랑하는 수많은 사람들의
입방아에 오르내린다면
이건 두고두고 사서 욕먹는 게 아닐까요?
그 시간과 예산으로 장학 사업이나,
문화 사업에 투자했더라면 하는
아쉬움 속에 오르막을 탑니다.
17시28분, 낙동강 하구와
사하구 엄궁동이 내려다보이는
바위 무명봉을 바위사이로 넘고
17시34분, 산불감시초소 옆을 거쳐
내리막을 지나
17시44분, 돌탑 옆을 통과하면서
드디어 고당봉에서 날아온
가는 빗발이 떨어지기 시작합니다.
저만큼 아래에 송전철탑이 보이고
잰걸음으로 내려가
17시50분, 묘지 앞에서 기다리는
두 사람과 합류합니다.
17시52분, 송전철탑을 지나
17시55분, 암괴가 어지러이 엉켜있는
그 중 바위하나가
삼각형으로 생겨서인가
해발454m의 삼각봉에 오릅니다.
정상에는 사상산악회에서 세운 의젓한
‘삼각봉’이라고 새긴 정상비가
울퉁불퉁한 바위 위에 세워져 있고
그 밑에는 등산로 안내판까지 세워놓았습니다.
하산 길은
왼편으로 돌아가는
첩첩히 쌓여 뻗어 내린 암괴와 암괴,
등로는 급하게 떨어지는
바위무더기사이로 이어집니다.
바짝 긴장하며 내려갑니다.
흙길을 거쳐
18시7분, 오른편으로
신라대학 갈림길에서 왼편으로 빠집니다.
또 다른 바위 길을 지나
18시11분, 바위봉에서 뒤돌아
삼각봉을 캠코더에 담고
18시21분, 두 여자가 앉아 이야기하고 있는
마지막 암봉인 405봉에 오릅니다.
엄광산은 바로 아파트 숲으로 변한
개금고개 건너편에 보이고
하산할 헬기장은
10시 방향으로 내려다보입니다.
빗발은 간간이 떨어지고
촬영 중에 캠코더의 테이프가 바닥이 납니다.
좌측으로 돌아 된비알을 내려
18시35분, 헬기장에 당도합니다.
먼저 테이프를 교환하고
뒤돌아 쳐다보며
캠코더와 디카로 405봉과
지나온 능선을 담습니다.
이제 송전철탑이 보이는
야트막한 능선을 계속타고 내려갑니다.
18시47분, 갈림길에서 좌로 내려가면
임도에 떨어지고
임도 따라 가다
돌탑에서 오른편으로 꺾어집니다.
18시52분, 송전철탑을 지나
얼마가지 않아 빗줄기가 굵어져
각자 준비한 우의를 입습니다.
두 번째 송전철탑을 지나
바위사이 길로 내려가다
19시5분, 오른편으로 송전철탑을 보며
채전 밭 옆을 빠져 내려가니
‘산불조심/입산금지’간판이 세워져있고
오른편으로 꺾어져
작은 개울을 건너 올라서니
블록 한 개가 계단으로 만들어놓았고
바로 변전소 입구
콘크리트 포장로의 비탈길입니다.
황당한 건
비탈길의 철제 배수로 뚜껑을 무심코 밟다가
그만 미끄러져 엉덩방아를 찧고,
철문이 잠겨있어 옆으로 빠져나오니
왼편으로 개화초등학교 정문이
말없이 웃으며 지켜보고 있습니다.
비는 계속 내리는데
제헌절에 국기를 달지 않고 산행에 나선
인과응보로 생각하다 크게 재치기를 합니다.
마지막으로 개화초등학교 정문을 캠코더로 촬영하니
화면하단의 시간이 '7.15.pm'로 표시하고 있어
북문에서 시작하여
9시간의 산행이 끝났음을 알려줍니다.
우선 하 대장이 수소문하여
동네 공중목욕탕을 찾아 문 닫기 직전이지만
세 사람이 가족탕으로 전세? 내어
개운하게 목욕하고 오 대원의 제의로
비를 맞으며 도로건너편의 삼계탕 집에 들려
삼계탕과 인삼주로
오늘의 낙동정맥 무사종주를 자축, 건배함으로써
26차 낙동정맥 종주 일정을 마무리 짓습니다.
산 벗-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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