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진 포구에 꼭 가야 할 일은 없었다.
기다리는 사람도, 남들처럼 정해놓은 맛집도 없었다.
그냥 그곳에 다녀오면 반가운 친구를 만나는 것처럼 기분이 좋아질 것 같았다.
오래전 서해의 영광 앞 먼 바다에 있는 아주 작은 섬에서 만난 팔십이 넘어 보이는 할머니는 열아홉에 이웃 섬에서 시집온 이후 한 번도 육지에 나가본 적이 없다고 하셨다. 삽교천에서 한진 포구로 가는 버스를 놓치고 나서 당진행 버스를 다시 기다리며 갑자기 오래전 영광 앞바다의 할머니 생각이 떠올랐다. 그러면서 나는 뭐 하러 이렇게 힘들게 돌아다니는가? 반문하였다. 그날 나는 한진 포구에 꼭 가야 할 일은 없었다. 기다리는 사람도, 남들처럼 정해놓은 맛집도 없었다. 그냥 그곳에 다녀오면 반가운 친구를 만나는 것처럼 기분이 좋아질 것 같았다.
한진 포구는 아산만의 입구에 안쪽으로 약간 고부라진 곳에 붙어있으며 깊은 해로가 안쪽까지 길게 이어져 있어서 옛날부터 뱃길이 잘 발달한 곳이다. 그곳 건너편에 보이는 포승 면 원정리(遠井里)에는 평택화력발전소와 LNG 기지가 있어서 지난날 잠깐 머물던 곳으로 나에게는 추억의 장소이다. 원정리는 지명에서 물이 멀다는 뜻으로 당시에는 발전소 공업용수 확보가 어려워서 멀리 아산만 근처에서 지하수를 이곳까지 끌어오기도 하였다. 그곳 염전이 있던 자리에 지금은 평택항이 들어섰고 커다란 화물선들이 연기를 내뿜으며 내는 소리가 이곳 한진항까지 들려왔다.
특히 기억에 남아 있는 것은 안쪽으로 수도사라는 암자가 있었는데, 그 암자에 조그만 옹달샘이 있었다. 원효대사가 중국으로 가는 배를 타기 위해 밤중에 그곳에서 잠을 자다가 목이 말라 물을 마셨는데 아침에 깨어보니 해골에 든 물이었다는 곳이다. 그러고 보면 이곳 아산만은 옛날부터 중국으로 왕래하는 중요한 포구였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한진포구는 서해 대교가 생기면서 포구 안쪽으로 커다란 산업단지가 들어서고 가까운 곳에 아파트 단지들도 생겨났다. 해안엔 길게 방파제가 만들어졌고 방파제를 따라서 모텔 등 건물들이 들어섰고 지난날과는 전혀 다른 모습이었다. 다행히 방파제 끝으로 지난날 포구의 흔적이 조금 남아 있어서 생선, 조개를 파는 아낙들이 늘어서 있고, 그늘막 아래에서 음식을 파는 곳에 제법 사람들이 붐비고 있었다. 최근에는 그곳에 규모가 큰 해상 테크를 길게 만들어 놓아서 멀리까지 나가서 서해의 넓은 바다를 한눈에 볼 수 있게 만들어져 있었다.
여행은 특별한 목적을 가지고 떠나기도 하지만 대부분의 여행은 어떤 의미를 발견하는 데서 오는 즐거움을 얻기 위해 떠난다. 그러기 때문에 여행은 의무감보다는 자발적인 기분에 따라 좌우된다. 그런 점에서 의미를 찾는 여행은 목적을 찾는 여행보다 철학적이고 초월적이다. 그 의미는 사람마다 다르며 자유로운 정신이다. 우리는 때때로 인생에서 짊어지는 무거운 짐을 내려놓게 되는 것은 목적의 성취보다는 의미를 발견하는 것에서 얻을 수 있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우리에게 목적만 있고, 의미가 없는 삶은 고달프다. 영광 앞바다의 할머니가 병들고 고단한 모습이 아직도 기억에 남아 있는 것은 이 때문인 것 같다.
이곳을 대중교통으로 이용하려면 교통정보와 시간 계획을 잘 세워야 한다. 당진에서 한진행 버스가 여러 대 있고 가는 길목에 있는 필경사(심훈의 상록수 집필 장소)를 들러 보려면 210번 버스를 타야 한다. 필경사에서 한진 포구까지는 기다렸다가 다시 지나가는 다음 버스를 타야 한다. 먼 거리는 아니기에 선선한 날씨에는 걸어갈 수도 있지만(약 2km) 길을 잘 알아보아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