흑백 텔레비전 - 노혜정
내가 초등학교 다닐 때는 흑백 텔레비전이 있었다
하지만, 집집이 텔레비전이 있는 건 아니었다
마을 이장님 댁이나 잘사는 집에만 텔레비전이 있었기에
아이들은 이장님 댁으로 우르르 몰려가 만화영화를 보곤 하였다
밤에는 어른들이 아이들은 일찍 자라며 쫓아 버리고
어른들만 보여 연속극이나 사극을 시청하곤 하셨다
가끔 전설의 고향을 보기도 했는데 그중에
"덕대골 내 다리 내놔!"라는 걸 보고 너무 무서워서
밤에는 혼자 통시깐 (뒷간) 도 못 간 적 있었다.
어느 해, 가을 추수를 마치고 아버지께서
책상다리 텔레비전을 집에 들여오셨다.
기분이 너무 좋아 하늘을 날아갈 것만 같았다.
여닫이문을 열고 숫자 버튼에 맞춰 돌려가며
원하는 채널 방송을 볼 때마다 참 신기했다.
그런데
바람 불고 비 오는 날에는 안테나가 빙 돌아가서
텔레비전이 안 나올 때면 아버지께서 지붕 위로 올라가
안테나를 빙글빙글 돌려 보라고 하셨다.
나는 안테나 방향을 맞춰 돌려가며 큰 소리로
" 아버지 됐어요? 아버지 나와요?" 하면서 계속 돌리면
아버지께서는 "왼쪽으로 돌려, 오른쪽으로 돌려, 조금만 더"
하시며 겨우 맞춰놓고 지붕 아래로 내려가면
찌직 하면서 까만 줄이 화면을 흐리게 하고 안 나올 땐
또다시 지붕 위로 올라가야 하는 번거로움이 있었다.
책상다리 여닫이문 텔레비전은 위가 넓고 좋아
탁상시계와 동생 분유통, 원기소, 비오비타 올려놓고
텔레비전이 고장이 나면 전파사에 맡겨 수리 하여 사용하시다가
수명이 다한 흑백 텔레비전은 조심스레 브라운관 떼어내고
양말이나 수건 수납장으로 사용하기도 하셨다
드르륵 여닫이문이 열렸던 책상다리 텔레비전
역사 속으로 사라져 버린 흑백 텔레비전 이제는
박물관에서나 볼 수 있는 골동품이 되었다.
첫댓글 ㅋㅋㅋㅋㅋ
우습나요?ㅎ~
옛 추억으로 남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