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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적은 필요하다
천적없는 세상
여우에게 잡아 먹히는 토끼 입장에서 보면 여우가 없는 세상이 되면 얼마나 좋을까 생각할 것이다. 그러나 생태계 전체로 보면 먹고 먹히는 관계는 필요하다. 천적은 생태계에서 꼭 필요한 존재로서 만일 천적이 없다면 더 큰 혼란이 초래될 것이다. 생물종은 대부분 매우 높은 생식능력을 갖고 있기 때문에 개체군(population)은 급속히 성장하도록 되어 있다. 바람에 흩날리는 민들레 꽃씨가 새나 곤충에 먹히지 않고 한 겨울을 보내고 모두 발아한다면 이듬해 봄에 들판은 온통 민들레로 뒤덮일 것이다. 한 쌍의 파리는 약 15일 동안 자라서 200마리의 새끼를 낳는다. 만일 모든 새끼가 살아서 다시 번식한다면 7개월만에 지구 크기의 파리떼가 될 것이다. 그러므로 천적이란 한 종의 생물이 급격히 증가하는 것을 막고 생태계의 균형을 유지시켜 주는 역할을 하는, 매우 필요한 존재이다.
오스트레일리아는 1억 년 전에 유라시아 대륙에서 떨어져 나간 대륙으로서 아시아와 유럽에서 흔한 동물들이 이곳에는 없었다. 토끼는 물론이고 여우나 늑대, 호랑이도 없었다. 1859년에 호주로 이민을 간 유럽인들은 무심코 12 마리의 집토끼를 데려갔다. 호주에는 풀이 많다고 하니 토끼를 길러서 고기를 먹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그러나 천적이 없는 새로운 환경에서 번식력이 강한 토끼들은 폭발적으로 증가했다. 암토끼 한 마리는 일년에 15~30 마리의 새끼를 낳는다. 12 마리의 토끼는 140여 년만에 2억~3억 마리로 불어났다. 심지어는 1km2에 무려 3000마리의 토끼가 몰려 있는데, 이런 곳에서는 깡충거리는 토끼로 인해 언덕 자체가 들썩거리는 것처럼 보일 정도였다.
이처럼 불어난 토끼는 호주의 환경과 농업에 엄청난 피해를 주었다. 농작물이 직접 피해를 입는 것은 물론이고 양과 소에 먹일 풀도 부족하게 되었다. 풀이 사라지면서 흙이 씻겨나가고 토양의 담수능력이 줄어들어 땅이 메말라갔다. 호주 정부와 농민들은 토끼를 없애기 위해 모든 수단을 동원했다. 농장 주변에 울타리치기, 토끼 굴에 연기 밀어 넣기, 독약 바른 미끼 놓기, 엽총 사냥, 개와 족제비를 이용한 사냥, 고양이와 여우 등 천적 풀기 등이 시도되었다. 그런데 새로 들여온 여우는 토끼를 없애기는커녕 엉뚱하게도 토끼와 함께 숫자가 늘어났다. 요즘 호주는 세계에서 여우 가죽을 가장 많이 수출하는 나라가 되었다. 토끼는 집단의 70%가 죽어도 1년 안에 원래의 숫자를 회복하는 강한 번식력을 과시했다. 모든 방법이 실패한 후에 결국 과학자들은 미생물 무기를 투입하였다. 1997년에 토끼를 죽이는 바이러스를 배양하여 풀어놓기 시작하면서 사태가 진정되기 시작하였다. 바이러스를 살포한 지역에 대한 모니터링을 해 보니 8주 안에 90%가 죽었다. 여우같은 큰 동물이 아니고 눈에 보이지 않는 미세한 바이러스가 천적이 된 것이다. 그러나 아직 토끼와의 전쟁은 끝나지 않았다. 토끼가 바이러스에 대한 면역력을 회복하여 다시 대륙을 점령할 지 두고 볼 일이다.
황소개구리의 천적은?
우리나라에서는 1990년 대에 황소개구리가 한때 커다란 사회문제로 대두된 적이 있다. 황소개구리는 북미가 원산지인데 1970년대에 식용개구리로 도입되었다. 황소개구리는 길이가 20cm나 되고 물고기, 새, 토종개구리, 심지어는 물뱀까지 닥치는대로 잡아먹는데 마땅한 천적이 없어서 급격히 불어나 전국의 하천과 호수를 점령할 기세이었다. 주무부처인 환경부에서는 1997년 4월 황소개구리의 모습과 생태, 위해성 등을 담은 포스터를 전국에 뿌리면서 황소개구리와의 전쟁을 선포했다. 이어 5월 24일에는 전국의 시민, 공무원, 군인 등 1만 명을 동원하여 황소개구리 소탕작전을 벌였다. (나도 그때에 TV를 보았는데, 총 대신 뜰채를 든 군인이 “최후의 한 마리까지 소탕하겠습니다”라고 큰 소리로 외쳤다.)
이듬해인 1998년 5월 8일에는 당시 환경부장관을 비롯한 공무원, 시민 등 1천명이 경기도 안성천에서 황소개구리 소탕작전을 벌였지만 하루 종일 단 1마리를 잡는 초라한 전과를 올렸다. 이튿날 신문에서는 “황소개구리 소탕 정보 샜나?”등의 꼬집기 기사가 났었다. 야행성이고 동작이 빠른 황소개구리를 요란한 행사를 통해서 멸종시킨다는 것은 처음부터 불가능한 작전이었다. 어쨌든 당시에 많은 황소개구리들이 수난을 당했는데, 살생을 금하는 불교에서는 이러한 소탕작전을 탐탁하게 생각하지 않은 것 같다. 어느 사찰에서는 그때에 잡혀 죽은 황소개구리를 위해 제를 지내고 무덤까지 만들어 주었다고 한다.
그렇다면 황소개구리의 천적은 없을까? 1998년 봄에 경북에서 산란기를 맞은 두꺼비가 황소개구리 등에 올라타 가슴을 죄어 죽이는 모습을 찍은 사진이 보도되었다. 언론에서는 황소개구리의 천적이 두꺼비라고 성급히 보도를 했다. 그러나 하루가 지나서 양서류의 전문가가 설명하는 바에 의하면 두꺼비는 힘들게 알을 낳는 암컷을 돕기 위하여 배를 뒤에서 꽉 눌러준다고 한다. 그런데 가끔은 배우자를 착각해서 다른 종의 양서류와 짝짓기 행동을 하다가 종종 암컷이 죽기도 한다는 것이다.
천적이 없던 황소개구리는 2000년대에 들어서서 돌연 줄어들기 시작하였다. 무슨 일이 일어났을까? 전문가의 설명에 의하면 최근에 급증하는 왜가리, 백로, 해오라기 같은 새들이 황소개구리를 잡아 먹기 시작하였다고 한다. 부리가 긴 새들은 처음에는 황소개구리의 정체를 몰라서 쳐다보기만 하다가 우연히 황소개구리의 맛을 알고 난 후에 천적으로 변하였다는 것이다. 웅덩이와 연못에 사는 소금쟁이도 황소개구리의 알을 즐겨 먹기 시작하여 천적이 되었다고 한다. 또한 황소개구리와 같이 북미 원산인 붉은귀거북(일명 청거북), 블루길(일명 월남붕어), 큰입배스 등의 외래종이 황소개구리의 올챙이를 잡아먹는 중요한 천적이 되었다고 한다. 어쨌든 천적이 자연적으로 생기면서 황소개구리는 줄어들고 현재는 생태계의 한 일원으로서 자리를 차지하고 균형을 유지하고 있다고 한다. 생태계에서 먹고 먹히는 관계에서 교란이 일어나면 시간이 흐르면서 나름대로 해결책이 나타나서 문제가 해소된다고 볼 수 있다.
동물의 천적 피하기
동물들은 나름대로 지혜를 발휘하여 천적을 피하고 종족을 보존하려고 한다. 배추벌레는 배춧잎처럼 녹색이기 때문에 천적의 눈에 잘 띄지 않는다. 이처럼 동물의 색이 주위 환경의 빛깔에 반사되어 천적의 눈에 잘 띄지 않게 하는 것을 보호색이라고 한다. 하늘을 나는 새는 언제나 등이 어두운 색이고 배는 밝은 색이다. 포식자가 새의 위에 있으면 등의 어두운 색과 아래 땅바닥의 색이 어울려서 잘 보이지 않고, 천적이 그 새의 아래에 있다면 배의 흰색이 밝은 하늘빛과 어울려서 잘 보이지 않게 된다. 레이더가 나오기 전 활약하던 B-24 폭격기도 이러한 새의 보호색법을 이용하여 색칠을 했다고 한다.
바다에 사는 갈치는 비늘이 겹친 구조로 되어 있어서 빛을 반사하여 금속성 은빛을 낸다. 갈치가 강한 빛을 반사하면 눈이 부신 천적은 놀라 도망치게 된다. 천적에게 일시적으로 무서움을 주는 일종의 번개효과라고 말할 수 있다. 야행성 발광 어류는 등에 광센서를 지니고 있어서 위쪽에서 오는 빛의 세기를 측정하여 배에 붙어 있는 발광기의 광도를 조절한다. 밤바다에 달빛이 비치면 아래로 그늘이 생겨 쉽게 발각되므로 둘레에 맞는 알맞은 정도의 빛을 아래로 비추어 그림자를 없애는 전략이라고 한다. 이밖에도 많은 동물들이 주변의 색깔과 같게 하여 천적을 피한다. 카멜레온은 빛에의 노출과 주위 온도에 감응하여 피부색이 수시로 변한다. 오징어, 문어 등의 연체동물도 주변 환경에 따라 그때 그때 색깔을 바꾼다. 이러한 전략들은 모두 빛을 이용하는 생존전략이라고 볼 수 있다.
색깔 외에도 무늬를 발달시켜서 천적을 피하는 곤충도 있다. 나비박물관에서 보니 어느 종류의 나비 날개에 날카로운 매의 눈이 박혀있는 것처럼 무늬가 보인다. 나비를 매로 착각한 천적은 덤벼들 수가 없는 것이다. 얼룩말은 얼룩무늬가 세로로 되어 있는데, 빨리 달리면 세로로 배열된 희고 검은 무늬가 형체를 알아볼 수 없게 포식자의 눈을 흐리게 한다. 물고기도 돔처럼 몸높이가 높은 것은 세로로, 몸체가 가늘고 길다란 것은 가로로 무늬를 배열한다. 움직일 때에 전자는 좌우로, 후자는 상하로 움직여서 얼룩말처럼 혼란 효과를 내기 위한 것이다.
그밖에도 동물들은 다양한 방법으로 천적을 피한다. 도마뱀은 필요에 따라 꼬리를 자를 수 있는 능력이 있다. 천적에게 꼬리가 잡히면 끊어지는데, 끊어진 꼬리는 거칠게 꿈틀대어 그 동안 도마뱀은 적에게서 탈출 할 기회를 갖게 된다. 종류에 따라서는 자발적으로 꼬리를 끊을 수 있는데, 위험이 다가오면 상대에게 꼬리를 던지듯 끊고서 달아난다. 천적을 만나면 죽은 체하여 위기를 모면하는 동물도 있다. 너구리가 대표적인데 대단히 겁이 많아서 추격을 받으면 정말로 기절하기도 한다고 한다. 미국에 사는 주머니쥐는 죽은 체 할 때에 눈만 감는 것이 아니고 혀를 내밀고 송장 썩는 냄새까지 낸다고 한다.
식물의 천적 피하기
동물과 달리 식물은 움직일 수 없기 때문에 천적을 만나면 대책 없이 먹히고 만다. 식물이 아무런 저항도 하지 않는다면 식물은 살아남지 못하고 숲은 사라질 것이다. 식물도 나름대로 천적에 대항할 수 있는 수단을 개발하였다. 벌레가 잎을 공격하면 희생되는 잎이 재스민이라는 향기를 내어 벌레의 공격을 알린다. 신호를 받은 주변의 잎은 2, 3분 안에 해충이 먹으면 소화불량이 되는 탄닌 같은 떫은 물질을 만들어 내어 벌레의 공격을 막아낼 수 있다. 식물에 약용 성분이 많고 잎에서 쓴 맛이 나는 것은 식물이 천적을 물리치기 위하여 동물이 먹을 수 없는 독성 화학물질을 만들어서 저장해 두기 때문이다.
식물이 공격을 받으면 공격자의 천적을 유인하는 물질을 분비하기도 한다. 이런 유인물질의 종류는 현재 20가지 이상 밝혀져 있다. 이들이 분비하는 물질은 휘발성가스 성분으로 자스민산, 살리신산, 에틸렌 등 다양하다. 야생 장미의 어린 순은 유난히 연하고 단물도 많아 진딧물들의 공격을 받기 쉽다. 진딧물이 공격하면 장미는 어린 순에서 특수한 휘발성 기체를 만들어 공기 중으로 신호를 보낸다. 이 가스는 주변의 식물들에게 적이 출현했으니 대비하라는 일종의 경보이면서 동시에 공개적인 구원 요청 신호이다. 아군인 곤충들은 장미가 분비하는 구원 요청 물질을 정확하게 이해하고 있으므로, 신호를 감지한 무당벌레들은 장미로 모여들어 진딧물을 잡아먹는다.
무당벌레의 공격을 받은 감자 역시 구원투수를 부르는 특유의 비린 향기를 내뿜는다. 이 냄새를 감지한 빈대들은 안테나를 움직이면서 먹이감을 안내하는 향기의 진원지를 향해 나아간다. 옥수수는 자신의 알갱이를 갉아먹는 애벌레의 타액에서 애벌레의 종류뿐 아니라 나이까지도 알아낼 수 있다. 만일 왕성한 식욕을 갖는 어린 애벌레로 판단되면 적극적으로 저항물질을 분비하지만, 고치를 만들기 직전의 늙은 애벌레로 판단되면 간단한 방어태세만 갖춘다고 한다.
세상살이에 어려움 없기를 바라지 말라
이처럼 천적은 생태계의 균형을 유지하는데 꼭 필요한 존재이다. 이러한 이치는 인간세상에서도 마찬가지라고 생각된다. 불교에서 전해 내려오는 지혜를 모은 보왕삼매론의 두 번째 구절은 다음과 같다. “세상살이에 어려움 없기를 바라지 말라. 어려움이 없으면 업신여기는 마음과 사치한 마음이 생기나니, 그래서 성인이 말씀하시되 근심과 곤란으로써 세상을 살아가라 하셨느니라.” 이 구절은 생태계에서 먹고 먹히는 관계가 필요하며, 특히 천적(여기서는 어려움)은 필요한 존재라는 생태계의 원리를 그대로 나타낸다고 볼 수 있다.
역사학자인 토인비(1889~1975)는 세상에 나타났다가 사라진 수많은 문명을 연구한 결과 ‘도전과 응전’이라는 말로 문명의 흥망성쇠를 표현했다. 외부로부터 도전이 왔을 때에 적절히 응전하는 과정에서 문명이 번영하며, 도전이 없으면 문명은 정체되고 결국은 멸망한다는 것이다. 거시적으로 보면 하나의 문명에도 어려움이 필요한데, 생태계의 용어로 말하자면 문명이 유지되려면 천적이 필요하다고 말할 수 있다.
요즘 대학생을 보면 안타까운 마음을 금할 수 없다. 내가 졸업하던 시기는 우리나라 경제가 팽창하던 때여서 대학을 졸업하기만 하면 누구나 직장을 쉽게 잡을 수 있었다. 그러나 요즘은 경제가 어렵고, 일자리는 모자라고, 대학생 수는 엄청나게 증가하여서 취직하기가 하늘의 별따기 만큼이나 어렵게 되었다. 졸업생이 공무원 시험이라도 합격하면 학교에 축하 플래카드가 걸린다. 그러나 취업이 어렵다고 실망하지 말자. “아프니까 청춘이다”라는 말이 있듯이 세상에는 어려움이 있기 마련이다. 어려움이 있는 것은 비정상이 아니고 정상이다. 생태계를 구성하는 모든 생명체는 어려움을 이겨내면서 살아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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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추천시: 독감/최종수
누군가를
더 사랑하라며 타오르는
몸뚱이.
누군가를 더 그리워하라며
타오르는 불길!
너처럼 눈물 흘리리라
너처럼 뜨거우리라
사랑하리라
불덩이
고열로
투쟁하리라
흥미로운 글입니다.
천적은 없어야 좋은 것이 아니고 꼭 필요한 것이라는 이야기이군요.
교협은 총장에게 새로 나타난 천적입니다.
총장은 천적을 너무 미워하지 말고,
천적과 함께 살아가는는 것이 결국은 도움이 된다는 이치를 빨리 꺠닫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