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 낭송반에서

[은빛바다]

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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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장을 그만 둔 후
일중독?증세가 있었는지 뭔가를 하지 않고 시간을 보내면 마음이 허한 경우가 많았다.
그래서 매주 월요일은 시(詩)낭송반에 공부하러 간다.
주차할 곳이 마땅찮아 집에서 지하철을 타고 버스로 환승해야하는 먼 거리임에도 불구하고
내가 좋아서 하는 일은 산넘고 물건너서도 가는 편이다.

시 낭송반 선생님은 수더분한 외모이지만 
시 한편을 낭송할 때의 목소리는 마치 풍경소리를 듣는 듯 마음을 울린다.
평균 연령 60세 정도의 중년들이 모여서 좋은 시 한편을 맛나게 먹는 법을 배우는 시간이다.
다 아는 한글에 그냥 줄줄 읽으면 되지 , 별 다른 게 있나 싶겠지만
마음을 가득 넣어 감정을 살리면, 듣는 이의 가슴에 꽃물을 들이듯 번지게한다.
아주 우연한 기회에 들어본 '치자꽃 설화'라는 시낭송은 그 배경음악과 너무나 잘 어울려 
오랫동안 내 가슴에 남아 있었던지라 용기를 내어 신청한 지 이제 두어달 된다.
그러니까 나는 아직 풍경 소리와는 한참 먼 신참인셈이다.
83세의 남자 한 분도 계신다.혹자는 그 연세의 남자 분이 뭔 시낭송이라 하시는 분이 있을 수도 있지만
사랑 시(詩)에  관한 한 연륜이 잔뜩 묻어나는 중후한 목소리로 낭송을 하실때면,
우리 모두가 여주인공이 된 듯한 기분으로 박수를 보낼 정도로 멋지시다.
선생님의 설명을 듣고 시범을 듣고 나면 돌아가면서 한 연, 또는 한 편씩 읽어간다.
같은 시라도 낭송자의 목소리에 따라 감정의 기복에 따라 시 한편은 전혀 다른 맛으로 태어나기도 한다

오늘은 문체부 장관이 되신 도종환님의 '저무는 강, 등불 곁에서 '라는 시를 한 편 받았다
암으로 먼저 간 아내를 그리는 시같아서 슬퍼졌다.
100만부 이상 팔려 화제였던 '접시꽃 당신'이라는 시집도 떠올랐다.
암투병하면서 금반지를 팔아 학비를 대던아내, 결혼 삼년째 ,둘째를 낳은 지 몇 달되지 않는 아내의 아침은 어김없이 
머리카락 한 줌씩 빠지고, 점점 병이 깊어 앙상한 뼈만 남아가는 아내를 눈물겹게 바라보며 적어내려간 절절한 시 편들.
그 당시 한 지아비의 아내에 대한 애틋한 사랑이 얼마나 많은 세상의 아내들을 울렸던지..
나도 그 중의 한명에 속한다.
울면서 한 편 읽고,심지어는 화장실까지 들고 들어가서 울면서 읽었던 기억이 있다.
그러던 그가 뜻밖에 재혼을 한다고 하지않는가
나의 남편도 아니였지만, 이런 날벼락같은 ? 심정의  배신감은 이루 말할 수가 없었다.
그건 비단 나만이 아니였나보다.
인터넷은 온통 위선자라는 비난과 원망으로 가득찼고 독자들은 냉정히 돌아섰으며
심지어는 집 앞에까지 와서 시위를 하던 아줌마도 있어서 
시인님은 너무 겁이나 인터넷을 들어가지도 못했다는 이야기까지 나돌정도였으니
마음을 좌지우지하는 그 시집 한권의 위력을 알 수 있지 않을련지..

재혼에 관해 티브에서 들은 내용이 생각난다.
얼마전, 동치미란 프로에 상처를 한 유명한 남자 탈랜트 한 분이 나왔는데
그 분의 이야기가 기억에 남는다.
아내를 잃고 얼마 뒤, 정신과 의사가 아내와의 금슬을 물어서 37년 결혼생활이 너무 행복했다고 이야기를 하니
그 의사왈 , '그러면 빨리 여자분을 소개받아 재혼을 하라'고 했단다
남자는 완강히 거부하며 명색이 해병대 출신이고 갖은 어려움도 겪어내었기에
아내에 대한 추억만으로도 잘 살아 갈 수 있다고 단단하게 대답하고 돌아온 후,
한달, 두달이 지나니 길거리에 다니는 여자들이 아내로 보이면서
자꾸 헛것이 보였고 아내가 염색해주던 머리를 혼자서 염색하다보니 런닝셔츠가 다 물들어버린 자신을 보고 
목욕탕에서 대성통곡을 하며 주저앉았다고 한다.
우울하게 세 달이 지나고 어느 다리를 지나다가 강물을 보니 한 순간 뛰어내려 죽고 싶다는생각이 들어 무서워졌다고했다.
겨우 마음을 추스려 집으로 온 그는 의사선생님께 상담 후 여자 분을 소개받아 이제는 잘 살고 있다고 한다.

이야기가 한 참 옆으로 갔다.
오늘 받은 시 - '저무는 강, 등불 곁에서 ' 중 4연쯤 
돌아가면서 읽는데 여기저기서 훌쩍거리는 소리가 들린다.
이 나이, 누가 울어라고 하면 저렇게 소리없이 울겠는지.
읽고나서는 무안함을 감추기 위해. 에구 주책을 부려 죄송하다고 하고 앉았지만
나역시 그 까만 글자, 몇 줄 위에 멈춰진 마음이 자꾸만 시야를 흐리게 했다.
뚝!뚝..
시 한편이 월요일 아침 , 여기저기서 눈자위 빨개진  아줌마들을 만들었다.
서로를 보며 멋쩍은 듯 웃었지만 사실은 서로 다 알았다.
나름의 상처가 있었고, 이제 우리의 나이는 남의 아픔조차도 껴안으며 아파할 줄 아는 나이가 된 것이다.
울면서 , 소리없이 울고 나서.
나는 참 평화로워졌다.
아무런 사심도 개입되어지지 않은, 오로지 순수한 마음이 만들어낸 맑은 눈물.
여러 곳에서 살던 서로 알지 못하던 사람들끼리 
오직 시 한편으로 맺어진 관계지만 우리를 이렇게 참하게 묶어가는 것은 
이 맑은 눈물의 마음이 아닐까 한다.

사실, 월요일은 많이 바쁘다.
취준생 아들 도시락도 싸주고 식구들 아침까지 대충 챙기고 나갈려면.
그래도 이 시간이 자꾸 기다려지는 것은 삭막하여 부석거리기만 하던 나에게  
촉촉한 비가 내려 폭폭한 흙이 되어지고, 뒤엉켜져 무거워진 나를 풀어내는 시간이기 때문이 아닐까 한다.
시를 잘 쓰지는 못하지만
시 읽기를 너무 좋아하는 나는 내가 존경하는 사람들의 상위권에 시인님들을 꼽는다.
마음을 건드려주는 한 줄의 시가 나를 웃기기도 하고 울게 만들기도 하여
나는 어떤 사람인지. 어떻게 살아가고 싶은 사람인지를 알게 해준다.
한때 충북대학교의 교수님이 출간하신 /시 읽는 기쁨/ 
책의 제목처럼 그 느낌을 충분히 받은 오늘.
아.. 집안일이 아무리 많고 ,주위가 나를 흔들어도 
오늘은 기꺼이 해내고 ,흔들리지 않을 자신이 생겼다.
시읽는 기쁨.
몇 줄의 힘에  맑은 눈물을 기억하며 
다시 세상이 따뜻해진다. 

2017.11

[여름사랑]

내가 그대로두길 잘했구나 생각했어요
은빛바다 를 즐겨찻기에서 지우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글을만나고 마음이 따뜻해지고 기뻐요
건강히 사셨다니 반가와요 늘 평안하셔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