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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서(序)
(1) 의송장사인귀강동서(1)
吾於平日尙論古之人而誦其詩讀其書而考古人之行則固萬萬不相同矣伯夷高蹈遠引而若將浼焉伊尹則憣然而起以天下爲己任焉柳下惠則油油然與之偕而不自失焉是三子者均是聖也而其行之不同何也其行之不同各出於志之所安也志之所安旣不相同而同謂之聖人可乎吾於此竊有疑焉而由一鄕至于天下之善士莫不與之上下其議論蓋無一人之能知古人之行者也吾友張季鷹仕於朝官至舍人一朝以不勝鱸魚之念乞骸而歸于江東朝之士大夫莫不出餞酒半有惜先生之歸而欲留者曰張君張君食君之祿而不正其國可乎方今戎狄亂華奸臣簒竊此忠臣義士協力共謀匡救之時也何其自愛其身而勇於敢退若是乎先生曰否丈夫之生斯世也事業不一而志之不同固萬萬矣孔子曰殷有三仁焉夫微子箕子比干皆賢人也或去或死或佯狂之不同而孔子同謂之仁者豈不以三仁之志同出於天理而無私心之故歟是故左右明主進退百官號令於廟堂之上沛澤於荒服之外使天下之民無一夫不被其澤者聖賢之所樂也不然則卷而懷之遯于荒野養性於飽暖之餘樂道於山林之間不求聞達而獨善其身者是亦聖賢之所安也吾於是固無一能焉雖然易曰用則行之舍則藏之天下有道朝廷淸明束帶結髮而鳧趨於鵷列高冠振笏而鳳鳴於朝陽致吾君於堯舜煕鴻號於無窮者是余之志也若夫掛冠而歸者豈余之志乎當今之時必不合吾志則尸位素餐立于人之本朝而道不行者豈非大丈夫之恥乎其所以退之者不可幸而致也秋風颯颯寒氣凜凜靑天萬里白雲掃盡碧水淸波共長天一色喚白鷳於籠中伴沙鷗於江上網得松江之鱸翦取園畦之菰把白酒而吟風臨淸流而賦詩滌世上之塵慮臥湖間之皓月屈抑欠伸惟適之意動容周旋不關於人如是則可以凌霄漢出宇宙之上矣豈可以旅進旅退患得患失蠅營狗苟而作堂上之燕哉此其大丈夫之處世也事業不一志趣各異而要其致則一也子以執一而論之不謬矣乎於是欲挽而止之者知終不可留而執盞言曰張君張君爵祿可辭其誰能之賄賂公行區區苟得知進而不知退以見錢神之譏者滔滔皆是而子獨脫然而歸豈不誠大丈夫哉先生曰否非敢自以謂爵祿可辭也貴適志而已矣吾於是聞先生之言壯先生之義而以爲聖賢之不同也或遠或近或去或不去歸潔其身而已向所謂聖之淸聖之和聖之任者吾於先生解之矣然則先生其誰之似乎庶幾乎用舍行藏之道歟座上之人各賦短篇以道其行吾亦記先生之言而爲之序云
우리는 평소 옛 사람에 관해 이야기하고 옛 사람이 지은 시를 읊으며 옛 사람이 지은 글을 읽고 옛 사람의 행실을 상고할 때 참으로 많은 부분에서 서로 다름을 알 수 있다.
백이는 세상을 피해 물러나면서 마치 그대로 있으면 자신이 더럽혀질 것처럼 생각하였고(2),
이윤은 마음을 바꾸어 일어나 천하를 자신이 책임지고 경영하였고(3),
유하혜는 세 번이나 벼슬에서 쫓겨났으나 물러가지 않고 끝까지 자신이 옳다는 소신을 꺾지 않았다.(4)
이 세 사람은 모두 성인이라고 할 수 있는데 그 행동이 이와 같이 서로 다른 것은 어째서 인가?
그들의 행실이 같지 아니한 것은 각자 자신의 생각하는 바와 일치하는 곳이 서로 다르기 때문인데 자신의 생각하는 바와 일치하는 곳이 이와 같이 서로 다른데도 불구하고 똑같이 성인이라고 불러도 되는 것일까?
우리는 여기에서 의문을 제기하지 아니할 수 없다. 조그만 시골에서 살아가는 하찮은 선비에서 시작하여 천하에 이름 높은 훌륭한 인물에 이르기까지 위로 아래로 여러 가지 의논이 없을 수는 없겠지만 사실은 대개 한 사람에 대해서도 제대로 이해하기는 쉽지 않는 것이 옛 사람의 행실이다.
우리의 친구 장계응이 조정에 나가 벼슬이 사인에 이르렀는데 하루아침에 고향에서 잡히는 농어 맛이 생각나 그것을 참지 못하여 나이가 많다는 이유를 핑계 삼아 벼슬을 버리고 강동 고향으로 돌아가니 조정 사대부들 중에 전별에 나서지 않는 사람이 없었다.
술이 반 쯤 취했을 때 선생이 고향으로 돌아가는 것이 안타까워서 붙잡아 두고 싶어 하는 사람이 말하기를;
장군이여, 장군이여, 그대는 임금의 녹봉을 먹고서도 어찌 나라를 바로잡지 않고 버리고 떠난다고 하는가?
지금 한창 융적들이 날뛰고 있으며, 간신들이 조정을 흔들고 있으니, 이는 충신의사들이 다 같이 힘을 합하여 함께 나라를 구할 지혜를 모아야만 할 때인데, 어찌 자기 몸 하나를 아끼기 위하여 물러나겠다는 용단을 내릴 수 있다는 말인가?
선생이 말하기를;
아닐세.
대장부로 태어나 세상을 살아가면서 하고자 하는 일이 한 가지만 있는 것이 아니고 뜻이 맞지 않는 경우도 또한 헤아릴 수 없이 많지 않는가?
공자께서 말씀하시기를 “은나라에 세 사람의 어진 사람이 있었으니 무릇 미자, 기자, 비간은 모두 어진 사람이다.(5)” 라고 하셨는데 세 사람은 조정에서 물러나거나, 간언을 하다가 죽임을 당하거나,
거짓으로 미친 척하는 등, 각각 현실 상황에 대응 방법은 모두 달랐지만 공자께서는 세 사람을 모두 같은 어진 사람이라고 평가하셨으니 어찌 세 사람의 뜻이 같은 하늘의 이치에서 나온 것이 아니라고 말할 수 있겠는가?
공자님께서 그렇게 말씀하신 이유는 그 사람들의 행동에 사심이 없었기 때문이라네.
그러므로 명철하신 임금님을 좌우에서 모시면서 모든 관리들의 진퇴를 결정하고 조정 대청 위 높은 곳에 앉아서 호령하고 죄수들을 사면하여 천자의 감화가 미치지 않는 먼 나라 밖에까지 천하의 모든 백성들로 하여금 그 혜택을 입지 않는 사람이 단 한 사람도 없도록 하는 것이 성현께서 즐거움으로 여기시는 것이라네.
그렇지 않다면 뜻을 거두어 황야로 물러나 숨어 살면서 생활에 불편함이 없고 다소 여유가 생긴다면 스스로의 바탕을 기르고 자연 속에 묻혀 즐겁게 살아가면서 출세하여 이름이 세상에 드날리기를 바라지 아니하고 남을 돌보지 아니하고 자기 한 몸의 처신만 온전하게 하는 것 역시 성현께서 원하시는 삶이라네.
우리는 이러한 것을 참으로 한 가지도 이룩하지 못하였도다.
그러므로 『주역』에 이르기를 “등용되면 도를 행하고, 버려지면 은둔한다.” 라고 하였으니 천하에 도가 있으면 조정은 맑고 깨끗해져서 띠를 둘러 머리를 묶고 나와서 품계에 따라 늘어선 수많은 관리들의 반열에 끼여 임금님을 알현하기를 바라며 높은 벼슬에 올라 태평성대를 이룩하여 우리 임금을 요순처럼 만들어 임금님의 이름을 널리 알려 무궁하게 하는 것이 바로 우리가 해야 할 일이라네.
이와 같은데도 벼슬을 버리고 물러나는 것이 어찌 나의 뜻이겠는가?
지금 상황을 볼 때 반드시 나의 뜻과 맞지 않는다면 재덕이나 공로도 없으면서 책임을 다하지 못하고 자리만 차지한 채 녹봉이나 받아먹게 될 것이니 조정에 남아서 도를 행하지도 못할 것인데 어찌 이것이 대장부로서 부끄러운 일이 아니라고 말할 수 있겠는가?
그러므로 물러나는 것을 두고 다행한 일이라고 말할 수는 없는 것이라네.
가을바람은 느끼기에 쌀쌀하고 찬 기운이 늠름한데 푸른 하늘은 만 리 먼 곳까지 흰 구름을 쓸어 없애니 푸른 물 맑은 파도는 먼 하늘과 함께 같은 색이로다.
백한은 새장에서 울고 모래사장 갈매기(6)는 물 위에서 짝을 찾는다.
송강의 농어를 그물질하여 잡고 밭두렁에서 부추 끊어 막걸리 한 사발에 풍류를 읊고 맑은 시냇물 가에서 시와 부를 지으며 세상의 명리를 탐내는 마음을 씻어 내고 강호에 누워 밝은 달을 보려고 하노라.
몸을 움츠렸다가 쭉 펴서 기지개를 켜고 내 마음 내키는 대로 살아가니 생활 속에서 몸가짐과 태도가 남들과는 아무 상관이 없도다.
이와 같이 한다면 하늘 높이 솟아올라 우주 밖으로 나갈 수도 있을 것인데 어찌 일정한 주견도 없이 남의 의견에 따라서 이리 저리 움직일 것이며 얻기 전에는 그것을 얻으려고 걱정하고 얻은 후에는 그것을 잃지 않으려고 근심하며 파리가 분주하게 날아다니는 것처럼 작은 이익에 악착스럽게 매달려 지붕 위에 이리저리 날아다니는 제비처럼 헛된 짓을 할 것인가?
이토록 대장부의 처세에는 하고자 하는 일이 한결같지 아니하고 뜻하는 바가 각기 다르지만 그 핵심은 오직 하나로 같기 때문에 공자께서 하나로 놓고 논평하신 것이니 잘못이 없지 않겠는가?
소매를 잡아 당겨 물러나기를 그만 두게 하려는 사람이 결국은 붙잡아 머물게 할 수 없다는 사실을 알고서 잔을 들고 이르기를;
장군이여, 장군이여, 벼슬과 녹봉을 사양하는 것이 누가 능히 할 수 있는 일인가?
뇌물을 주고받음이 아무 거리낌 없이 공공연히 행해지는 세상에서, 구구하고 구차하게 한 번 벼슬에 오르면 앞으로 나갈 줄만 알았지 물러설 줄은 몰라서 돈을 신처럼 받드는 사람들이 넘쳐나고 있는데 오직 그대 홀로 그곳에서 벗어나 고향으로 돌아간다 하니 어찌 진실로 대장부가 아니리오.
선생이 말하기를;
아니네! 감히 스스로 벼슬과 녹봉을 사양할 수 있다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의지를 귀하게 여겨서 의지에 따르겠다는 것뿐이라네.
우리는 여기에서 선생의 말을 듣고 장하신 선생의 올바른 자세가 성현들이 했던 것과는 다르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먼 옛날의 성현이나 가까운 근래의 성현들은 혹은 물러나고 혹은 물러나지 않기도 하였는데 돌아간다는 것은 자기 몸을 깨끗하게 보존하겠다는 것으로 이른바 성인으로서 맑은 자세를 지향하여 성인으로서 온화한 기질을 가지고 성인으로서 사명을 다하겠다는 것으로 우리는 선생을 이해하여야 할 것이다.
그러하니 선생을 누구와 비슷하다고 하겠는가?
바라건대 쓰임을 받으면 세상에 나와 자기의 도를 행하고, 버림을 받으면 물러가 은퇴하여 숨는 도리로서 이 자리에 앉은 여러 분들은 각자 부나 짧은 글로 그 도를 행함을 표현하니 나도 또한 선생의 말씀을 적어 서문으로 삼고자 하는 것이다.
* 각주 ----------------------------
(1) 擬送張舍人歸江東序. 사인 벼슬을 하던 장한(張翰)이 벼슬을 버리고 강동(江東)으로 돌아가는 것을 배웅하는 것으로 가정하여 지은 모의(模擬) 서문. 당나라 시인 이백(李白)의 시 중에 〈송장사인지강동(送張舍人之江東)〉이 있다.
(2) 『맹자』<공손추상>의 “맹자께서 말씀하시기를‘백이는 자기의 임금이 아니면 섬기지 아니하며, 자기 벗이 아니면 사귀지 아니하며, 악인들이 있는 조정에는 서지 아니하며, 악인들과는 말도 섞지 아니하였다. 악인이 있는 조정에 서서 악인들과 함께 말을 섞는 것을 마치 조복을 입고 조관을 쓴 채 진흙 마당에서 구르거나 숯 더미 위에 걸터앉는 것과 마찬가지로 여겼으며, 마을 사람들과 함께 섰을 때에도 마을 사람들이 쓰고 있는 모자가 비뚤어진 것만 보아도 옳지 않게 생각하여 아무 미련 없이 그곳을 떠나면서 마치 그 사람들로 인하여 자기가 더럽혀지기나 할 것처럼 하였으니, 그런 까닭으로 제후가 비록 아름다운 말로 인사를 건네더라도 받아들이지 않았는데 그것 또한 제후를 깨끗하게 여기지 않았기 때문이니라.’라고 하였다(孟子曰伯夷非其君不事非其友不友不立於惡人之朝不與惡人言立於惡人之朝與惡人言如以朝衣朝冠坐於塗炭推惡惡之心思與鄕人立其冠不正望望然去之若將浼焉是故諸侯雖有善其辭命而至者不受也不受也者是亦不屑就已)”를 인용한 것이다.
(3) 『맹자』<만장상>의 “이윤은 유신씨의 들판에서 농사를 지으면서 요임금과 순임금의 도를 즐기고 있었다. 그는 정의롭지 않거나 올바른 도가 아니면 천하를 녹으로 준다 하더라도 돌아보지도 않았고, 말을 4천 필이나 매어 놓고 기다린다 해도 돌아보지도 않았으며, 정의롭지 않거나, 올바른 도가 아니면 한 오라기 풀도 남에게 주지 않았으며, 한 오라기 풀도 남으로부터 받지 않았다. 탕왕이 사람을 시켜 폐백을 보내 초빙하였으나 태연하게 거절하면서 이르기를 ‘내가 탕왕이 초빙하는 폐백을 받아 무엇하랴? 내가 만약 그에게 간다면 내가 어찌 밭 가운데 살면서 요임금과 순임금의 도를 즐기는 것만 하겠는가?’ 하였다. 탕왕이 세 차례나 거듭 사람을 보내 초빙하자 그제야 번연히 마음을 바꾸고서 이르기를 ‘내가 밭 가운데에 살면서 요임금과 순임금의 도를 즐기는 것이 어찌 탕왕을 요임금이나 순임금같이 만드는 것에 비길 수 있겠는가? 내가 백성들을 요임금과 순임금의 백성으로 만드는 것에 비길 수 있겠는가? 내 어찌 나 자신을 직접 보는 것에 비길 수 있겠는가? 하늘이 백성을 세상에 낼 때는 먼저 터득한 사람 시켜 아직 모르고 있는 사람을 가르치게 만들고, 먼저 깨달은 사람을 시켜 아직 깨달지 못한 사람을 일깨우게 하는데, 나는 하늘이 낸 백성 중에서 가장 먼저 깨달은 자다. 내가 깨달은 도를 가지고 나머지 백성들을 일깨우련다. 만약 내가 일깨우지 않으면 누가 있어서 그 일을 담당하겠는가?’라고 하였다(伊尹耕於有莘之野而樂堯舜之道焉非其義也非其道也祿之以天下弗顧也繫馬千駟弗視也非其義也非其道也一介不以與人一介不以敢諸人湯使人以幣聘之囂囂然曰我何以湯之聘幣爲哉我豈若處畎畝之中由是以樂堯舜之道哉湯三使往聘之旣而幡然改曰與我處畎畝之中由是以樂堯舜之道吾豈若使是君爲堯舜之君哉吾豈若使是民爲堯舜之民哉吾豈若於吾身親見之哉天之生此民也使先知覺後知使先覺覺後覺也予天民之先覺者也予將以斯道覺斯民也非予覺之而誰也)”를 인용한 것이다.
(4) 『논어』<미자>의 “유하혜가 노나라에서 사사로 있을 때, 세 번 내쳤는데도 물러가지 않으니 사람들이 ‘자네는 왜 물러나지 않는가?’라고 물었다. 유하혜가 대답하기를 ‘정당한 도를 굽히지 않고 임금을 섬긴다면 어느 나라로 간들 세 번 내치지 않겠으며, 정당한 도를 굽혀서 임금을 섬기기 위해 어찌 조국을 버리고 떠나겠느냐.’라고 하였다(柳下惠爲士師三黜人曰子未可以去乎曰直道而事人焉往而不三黜枉道而事人何必去父母之邦)”를 인용한 것이다.
(5) 『논어』<미자>의 “미자는 벼슬을 버리고 떠났으며, 기자는 노예가 되어 숨어 살았고, 비간은 간언을 하다가 죽었다. 공자께서 말씀하시기를 ‘은나라에 세 어진 사람이 있었다.’ 라고 말씀하셨다.(微子去之箕子爲之奴比干諫而死孔子曰殷有三仁焉)”를 인용한 것이다.
(6) 갈매기와 오리는 은거하는 선비의 친구. 한명회(韓明澮)는 벼슬에서 물러나서 오리와 갈매기를 친구 삼는다면서 한강 건너편에 압구정(鴨鷗亭)을 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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