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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 나라와 로마서 3(Kingdom of God and Romans)- 빙산의 일각인 로마서의 믿음에 대한 숨은 내면의 의미를 보다
할렐루야! 은혜가 풍성하신 하나님 아버지! 만물이 무르익는 가을에 우리의 성경의 이해도 풍성케 하사 주님의 나라가 이 땅에 속히 건설이 되어 모든 믿는 백성이 주님과 함께 평안하게 살게 하소서! 온 세상의 무질서와 불의가 주님의 나라가 건설됨으로 물러가고 이 땅에 의와 평강과 희락의 나라가 건설이 되어서 모든 믿는 백성이 주님의 찬양하며 주님의 오심을 고대하게 하여 주옵소서! 전쟁이 없고 핍박이 없는 평화로운 시기에 성경 말씀을 깊이 이해하는데 모든 노력을 성도들이 다 기울일 수가 있게 인도하여 주옵소서!
샬롬! 추석 연휴가 시작이 되었습니다. 새벽에 아는 사모님과 함께 시장에 가서 장을 보고 음식을 같이 만들었습니다. 아내가 없기에 아들과 함께 사모님께서 주신 나물과 겉절이로 맛있는 아침을 먹고 쉬면서 저녁 밤 근무 준비를 하다가 힘이 생겨 다시 로마서의 이해로 왔습니다. 이제 우리가 살펴볼 주제는 하나님의 의로부터 칭의가 나오는데 이 칭의는 예수님에 대한 믿음임을 말씀을 드렸습니다. 그리고 이 믿음에 대해서 빙산의 일각의 표현을 쓰면서 우리가 자세하게 살펴보아야 할 내용이 있음을 말씀드렸는데 오늘 이 부분에 대해서 같이 은혜를 나누겠습니다. 먼저 제가 로마서 정리를 위해서 작은 책을 만들었는데 그 책의 주요 그림을 올립니다. 로마서를 읽고 정리하는 일이 너무나 중요하기에 1억 원의 상금을 걸고 그 내용을 읽고 정리하게 할 계획이 있고 이를 도표로 만들었는데 로마서를 읽기 전에 먼저 반드시 하박국서를 읽어야 하고 그리고 그다음에 또 갈라디아서를 읽어야 하고 그 다움에 로마서를 정리를 해야 하기에 이렇게 상금을 걸고 세 성경을 읽고 온 국민이 정리하게 하는 콘테스트를 진행하고자 기회를 보고 있습니다.
로마서의 이신칭의에 대해서 설명을 드리고자 하면서 로마서 전체 이해에 대해서 위의 파워포인트로 로마서가 그냥 로마서를 읽음으로써 쉽게 이해가 되지 않음에 대해서 말씀을 드립니다. 위의 12개의 파워포인트 자료 중에서 오늘 우리가 논할 주제는 믿음이라는 빙산의 일각 아래에 숨겨진 올바른 의미를 이해하여 이신칭의의 올바른 의미를 이해하자는 것입니다. 이를 아래 파워포인트로 설명한 것입니다.
로마서에 나타난 이신칭의는 로마서 3장 21-22절의 말씀에 완벽하게 있고 그 내용은 다음과 같습니다.
롬 3:21. 이제는 율법 외에 하나님의 한 의가 나타났으니 율법과 선지자들에게 증거를 받은 것이라
22. 곧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모든 믿는 자에게 미치는 하나님의 의니 차별이 없느니라
여기서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으면 어떻게 칭의가 되는가에 대해서 알아야 하는데 그 내용은 23절부터 26절에 있으며 앞의 시간에 검토를 했습니다. 그리고 칭의되는 믿음에 대한 설명이 로마서 1장 17절에 있는데 하박국서의 인용입니다. 그리고 같은 내용이 4장에 아브라함의 신앙으로 창세기의 내용이 있습니다. 이를 보면서 우리는 믿음의 의미에 대해서 올바로 이해를 해야 합니다. 그리고 그리고 하나님께서 이렇게 예수님을 믿으면 의롭게 되도록 하신 하나님의 의와 사랑에 대해서 고찰을 해 보아야 합니다. 그리고 이렇게 믿으면 의롭게 되는 칭의에 절차가 존재함도 같이 알아보아야 할 것입니다.
믿음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는 하나님의 나라에서 중요한 요소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믿고 예수님을 믿고 그분의 말씀인 성경을 믿는 것은 신앙생활의 기초입니다. 그리고 믿음을 통해서 의롭게 되기도 하고 믿음을 통해서 복을 받기도 하며 믿음으로 성경의 말씀이 진리이며 말씀대로 하나님께서 온 세상을 창조하시고 인간과 만물을 창조하심을 아는 것입니다. 이렇게 믿음은 중요합니다.
우리는 앞에서 예수님을 믿음을 통해서 모든 사람이 차별이 없이 의롭게 될 수가 있음을 보았습니다. 이를 신학적으로 이신칭의라 부르며 로마서의 중요한 주제이며 그리고 루터와 캘빈의 이에 대한 주장으로 개신교가 태동하게 되었음을 설명을 드렸고 대부분의 개신교 신자와 천주교 신자도 이에 대해서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 왜 하필 인간이 예수님을 믿을 때 하나님으로부터 의롭다 인정을 받게 되는가에 대해선 우리가 깊이 이해를 해야 되는 부분이 있습니다. 우리가 위대한 인간 즉 칭기스칸이나 시저나 혹은 공자를 믿는다고 의롭게 된다고 절대로 하지 않습니다. 그리고 우리가 자연을 믿고 거대한 구조물을 믿는다고 의롭게 된다고 하지 않습니다. 오직 예수님을 믿을 때만 의롭게 된다고 하는 것입니다. 모든 사람이 죄를 범했고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하는 상태에 있는데 이런 죄로 물든 인간이 정의로운 하나님으로부터 의롭다 인정을 받는 것은 오직 예수님을 믿을 때만 가능한데 왜 우리가 예수님을 믿을 때 하나님으로부터 의롭게 되는지 반드시 알고 믿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로마서 3장 21-26절에 이에 대해서 자세하고 설명을 하고 있고 전번 시간에 영문을 통해서 살펴보았습니다. 다시 이를 말씀드리자면 우선 예수님의 신분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십니다. 그리고 죄가 없으시며 흠이 없으신 분이십니다. 하나님께서 자신의 독생자를 모든 인류의 죄를 대속하기 위한 제물이 되게 하셨습니다. 인간의 죄는 그 대가가 피 흘림이며 죽음입니다. 피 흘림이 없으면 죄의 사함이 없고 죄를 지으면 죽게 되어 있기에 인간이 그 죄악으로 영생을 누리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오셔서 십자가를 지시고 피를 흘리시고 온 인류의 구원을 위해서 희생하셨습니다. 이제 죄인인 인간이 이를 믿으면즉 예수님을 자신의 구세주로 받아들이고 자신이 죄인임을 고백하고 회개하면 예수 그리스도 이름의 세례를 통해서 죄를 용서받게 됩니다. 이제 과거에 지은 죄가 해결이 되었습니다. 죄가 없는 상태가 되었습니다. 하나님의 백성이 되었습니다. 죄의 문제가 예수님을 믿음을 통해서 해결이 되었기에 하나님으로부터 의롭다 인정을 받게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죄를 용서받은 믿는 성도에게 성령께서 선물로 오십니다. 하나님의 성령의 인을 치시는 것인데 이렇게 하나님의 작품이 믿는 성도는 되고 하나님의 새로운 창조물이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런 과정을 통해서 과연 언제 성도가 의롭게 되는가에 대해선 믿을 때가 맞지만 믿음에는 이런 절차적인 흐름이 있는데 어떤 상태가 되었을 때 과연 성도가 의롭게 되는가에 대해서도 잘 이해를 해야 우리가 칭의에 대해서 올바로 이해가 되는 것입니다. 이 과정의 이해를 돕는 성경의 구절이 사도행전 2장 38절의 말씀입니다.
행 2:37. ○그들이 이 말을 듣고 마음에 찔려 베드로와 다른 사도들에게 물어 이르되 형제들아 우리가 어찌할꼬 하거늘
38. 베드로가 이르되 너희가 회개하여 각각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고 죄 사함을 받으라 그리하면 성령의 선물을 받으리니
39. 이 약속은 너희와 너희 자녀와 모든 먼 데 사람 곧 주 우리 하나님이 얼마든지 부르시는 자들에게 하신 것이라 하고
예수님을 믿는다는 것은 그냥 내 마음대로 믿는 것이 절대로 아니고 교회에서 성경에서 말씀하시는 절차를 지키면서 믿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예수를 믿는다는 의미 속에 먼저 믿음의 대상이 되는 예수님이 어떤 분이시며 그분의 어떤 일을 하셨는지 알고 믿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예수님을 믿기 위해서 교회에서 행하는 절차가 있는데 그 절차를 지키면서 믿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먼저 내가 예수님 앞에 죄인이라는 인식과 고백과 회개가 필수입니다. 내가 죄인이 아니면즉 의로우면 구세주 예수가 필요가 없고 그리고 회개도 필요가 없습니다. 예수님을 인정하지도 믿지도 못하는 세상의 불신자의 상태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을 믿는다고 하면 먼저 예수님께서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믿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분께서 죄가 없으시며 흠이 없으신 분이신데 온 인류를 죄에서 구원하시기 위해서 피를 흘리시고 십자가에 못이 박혀 죽으심을 믿는다는 것입니다. 즉 내 죄를 위해서 예수님께서 나 대신에 피를 흘리시고 돌아가신 사실을 믿는다는 것입니다. 인간이 하나님 앞에서 죄인임을 인식하고 고백하고 되었으면 죄의 심각성과 결과에 대해서 알게 되었으니 과거에 하나님과 예수님을 모르고 지은 죄에 대한 회개가 반드시 필요하게 되는 것입니다. 죄에 대한 회개는 자신이 과거에 지은 죄에 대해서 그 죄가 자신을 죽게 하였음을 인정하고 그 죄의 심각성을 인식하고 그 죄를 지은 일에 대해서 잘못을 고백하고 이제는 그런 모든 죄에서 돌이켜서 하나님께서 예수님께서 성령께서 인도하시는 데로 예수님의 증인의 삶과 선한 삶을 사는 것을 말합니다. 죄인이 죄를 용서받고 또 과거와 같이 지속해서 죄를 짓는다면 이런 사람을 죄에서 돌이켜 회개한 사람이라고 할 사람을 없습니다. 반드시 칭의가 되기 위해서는 이렇게 회개가 필요하게 되는 것입니다. 이렇게 회개하고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 이름의 세례를 받으면 성경 말씀대로 죄를 하나님께 용서받게 됩니다. 이렇게 된 성도는 반드시 성령을 또 선물로 받게 된다고 하십니다. 이렇게 성령을 받게 되면 이런 사람을 하나님께서 의롭다 하시는 것입니다. 바울을 비롯해서 사도행전의 성도나 로마서의 성도는 모두가 이런 절차를 잘 지켜서 예수님을 믿고 성령을 받고 그리고 의롭다 인정을 받게 되는 분들이었습니다. 예수를 믿고 의롭게 되는 의미와 그 과정을 설명을 드렸습니다. 이와 함께 하나님께서 이렇게 예수님을 통해서 의롭게 되는 길을 허락하신 것은 하나님께서 정의로우신 분이심을 나타내고 또 예수님을 믿는 분을 정의롭게 하시는 분이라는 것을 나타내려 하심이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의 대속을 통해서 과거에 지은 우리의 죄를 용서하시게 된 것은 이미 하나님께서 우리의 과거에 지은 죄를 벌하지 않고 간과하셨기 때문이라고 설명합니다.
그다음이 과연 예수님을 믿으면 의롭게 되는데 어떤 믿음으로 의롭게 되는지 그 믿음의 연륜 혹은 강도에 대해서 성경은 또 자세하게 말씀하시고 있습니다. 이는 로마서 1장 17절의 하박국서의 믿음과 로마서 4장 17-22절의 아브라함의 믿음을 통해서 설명을 하십니다.
즉 하박국 선지자와 같이 믿을 때 그리고 아브라함과 같이 믿을 때 의롭게 된다는 설명입니다. 의롭게 된 대표적인 두 분의 신앙을 통해서 그분들이 어떻게 하나님으로부터 의롭다 인정을 받게 되었는지를 우리는 반드시 이해하고 우리도 그분들이 믿은 데로 믿어야 비로소 의롭게 된다는 사실도 알고 믿어야 합니다. 하박국서 2장 4절의 인용이 로마서 1장 17절이니 이를 우리는 살펴보아야 합니다.(공동 번역과 표준 새 번역)
합 2:4. 멋대로 설치지 마라. 나는 그런 사람을 옳게 여기지 않는다. 그러나 의로운 사람은 그의 신실함으로써 살리라."
4. 마음이 한껏 부푼 교만한 자를 보아라. 그는 정직하지 못하다. 그러나 의인은 믿음으로 산다.
하박국서는 오직 3장으로만 되어 있는 짧은 예언서로 하박국 선지자가 기원전 약 607년 경에 쓴 예언서입니다. 이 시기는 북 이스라엘이 앗수르에 의해서 망하고 남 유다도 바벨론에 의해서 망하기 직전입니다. 이 시기에 남유다는 율법이 해이해지고 정의가 사라졌으며 정의롭게 살고자 하는 사람이 살기에 어려운 시대였습니다. 정의로운 하박국 선지자는 이런 자국의 현실이 도저히 견디기 어려워 하나님께 이런 남 유다를 보고만 계십니까? 하고 물으니 하나님께서 아니다 반드시 바벨론을 들어서 심판을 하겠다 답하시니 다시 하박국 선지자가 하나님께 어찌 불의한 바벨론을 택한 이스라엘을 심판하시는데 사용하실 수가 있습니까? 하고 다시 묻는 하박국 선지자의 두 번째 질문에 대한 대답이 바로 하박국서 2장 4절의 하나님의 말씀이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절대로 바벨론을 옳게 여기지 않으신다고 하시면서 바벨론도 반드시 심판을 받게 될 것을 말씀하십니다. 그렇지만 하나님께서 인정하시는 의인은 비록 나라가 멸망하는 현실을 보며 모든 불의가 판을 치는 것을 보면서도 이렇게 정의로운 심판을 하실 하나님을 믿고 그리고 하나님께서 하실 악의 척결을 믿고 의로운 세상을 건설하실 하나님을 믿고서 이런 믿음을 바탕으로 하루하루 불의에 물들지 않고 견디면서 정의롭게 산다는 것입니다. 이 하박국서의 의인은 믿음으로 산다는 의미는 이렇게 어려운 현실 속에서 굿굿하게 정의롭게 하나님을 믿고 삶을 살아간다는 의미입니다. 이 하박국서의 내용을 로마서 1장 17절에 인용해서 말씀하고 있으니 이런 하박국서의 의미를 올바로 이해를 하고 믿음으로 산다는 의미도 이해를 해야 합니다.
그리고 다시 4장 17-22절에서 아브라함의 어떤 믿음이 의롭게 인정을 받는 믿음인지 설명을 하고 있습니다.
롬 4:17. 기록된 바 내가 너를 많은 민족의 조상으로 세웠다 하심과 같으니 그가 믿은 바 하나님은 죽은 자를 살리시며 없는 것을 있는 것으로 부르시는 이시니라
18. 아브라함이 바랄 수 없는 중에 바라고 믿었으니 이는 네 후손이 이같으리라 하신 말씀대로 많은 민족의 조상이 되게 하려 하심이라
19. 그가 백 세나 되어 자기 몸이 죽은 것 같고 사라의 태가 죽은 것 같음을 알고도 믿음이 약하여지지 아니하고
20. 믿음이 없어 하나님의 약속을 의심하지 않고 믿음으로 견고하여져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며
21. 약속하신 그것을 또한 능히 이루실 줄을 확신하였으니
22. 그러므로 그것이 그에게 의로 여겨졌느니라
더도 덜도 말고 이 말씀대로 믿고서 의롭다 인정을 받게 된 것입니다. 75세에 부름을 받고 100세가 될 때까지 한결같이 믿은 믿음을 보시고 의롭다 하신 것입니다. 이렇게 아브라함의 의롭다 인정을 받는 한결같은 믿음과 하박국의 의로운 삶을 사는 믿음이 하나님으로부터 의롭다 인정을 받는 믿음임을 우리는 반드시 알아야 합니다. 빙산의 일각이 아니라 빙산의 숨어 있는 부분을 반드시 이해를 해야 믿음으로 의롭게 된다는 의미를 비로소 올바로 이해하게 되는 것입니다.
로마서 3장 21-22절의 이신칭의는 어디에서 갑자기 튀어나온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의의 표현으로 예수님의 대속의 희생이 있게 되고 이 예수님의 십자가와 보혈의 공로를 믿는 것으로 의롭다 인정을 받게 되는 것과 그리고 이 하나님의 독생자를 희생시키면서 죄인을 용서하시고 구원하시는 것은 하나님의 인간에 대한 사랑에서 비롯이 되는데 이 인간은 죄가 그대로 있는 정말로 사랑할 구석이 없는 인간에 대한 하나님의 사랑이기에 이렇게 예수님의 사역을 통해서 하나님의 사랑을 확실히 알 수가 있게 된다고 했습니다. 즉 십자가 사건은 하나님의 인간에 대한 확실한 사랑의 증거가 된다고 하셨습니다.
우리는 로마서 3장 21-22절의 이신칭의를 하나님의 의의 표현으로서 십자가 사건과 그리고 하나님의 과거에 지은 죄에 대한 간과와 이에 대한 예수 그리스도의 대속의 사역과 그리고 하나님께서 이렇게 하신 것이 자신의 의로우심과 예수님을 믿는 사람을 의롭게 하시는 분이심을 나타내려 하심으로 이해를 했습니다. 로마서 3장 21-26절의 말씀을 중심으로 이 내용을 확인할 수가 있었습니다. 그리고 이를 통해서 죄에 대한 하나님의 틀림없는 심판과 모든 인류의 최후 심판이 반드시 존재함도 알 수가 있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의롭게 되는 믿음이 어떤 믿음인지 하박국서 2장 4절과 로마서 4장 17-22절의 설명을 통해서 어떤 불의가 판을 치는 세상이라도 하나님께서 인정하시는 의인은 하나님을 믿고 정의로우신 하나님의 심판을 믿고 굿굿하게 하루하루 믿음의 삶을 사는 사람이라는 것을 알아보았고 아브라함의 믿음에 관해서 그분의 25년간 믿을 수 없는 상황을 의심치 않고 변함없이 믿는 한결같은 믿음이 의롭다 인정을 받는 믿음임도 역시 확인을 했습니다.
그리고 이신칭의와 하나님의 의로우심을 나타내려 하심과 하나님의 사랑의 확실한 증거로서 모든 죄인을 위한 예수님의 대속에 대해서도 알아보았습니다.
이렇게 빙산의 내면을 살펴보듯이 이신칭의의 온전한 의미를 살펴보았습니다. 오직 믿음이라는 이신칭의를 이렇게 올바로 살핌을 통해서 이신칭의는 하나님의 의로우심을 나타내는 십자가 사건과 예수님의 피 흘리심이 있고 이는 하나님의 죄인인 온 인류에 대한 사랑의 확실한 증거가 됨을 알게 됨으로써 예수를 믿는다는 의미가 죄인을 구원하신 하나님의 의와 사랑을 믿는다는 의미가 되며 이는 구원을 받은 우리가 세상에서 살면서 정의롭게 살고 사랑을 실천하면서 살아서 그분의 공덕을 온 세상에 전하고 그분의 의와 사랑을 찬양해야 됨을 분명히 나타내고 있습니다.
그리고 우리가 의롭다 인정을 받으려면 하박국과 같이 믿고 아브라함과 같이 믿어야 함을 분명하게 설명하는데 이는 불의한 세상에서 정의롭게 살아야만 되며 또 주님에 대한 믿음이 어떤 경우가 있든지 변치 않고 한결같이 장시간 믿어야 됨을 알게 되었습니다. 로마서 21-23절의 말씀을 보고 새로운 진리를 발견해서 이를 소개하고 이에 환호하고 이를 믿는 것은 올바른 일이나 이렇게 이 구절의 올바른 의미를 로마서를 통해서 살펴보고 이신칭의의 숨은 의미와 그리고 이신칭의가 되는 믿음의 강도나 혹은 믿음의 연륜에 대해서 올바로 이해하고 실천하는 것이 진정한 이신칭의가 되는 길임을 확실히 알게 되었습니다. 이를 통해서 행위와 믿음의 논쟁도 더 이상 필요가 없게 되었으니 이신칭의의 올바른 이해를 통해서 행동하는 정의롭게 사는 믿음과 세월이 가도 변치 않는 믿음이 요구됨을 보았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사랑과 정의로우심의 발로의 이신칭의의 이해를 통해서 구원받은 하나님의 백성의 정의로운 삶과 사랑을 실천하는 사람이 구원받는 백성의 의무인 하나님의 사랑과 의를 전하고 그분의 공덕을 높이고 찬양하는 길임도 보았기 때문입니다.
이제 야고보서와 로마서의 행함과 믿음에 있어 조화가 되며 개신교와 천주교의 행위 구원이냐 믿음 구원이냐의 논쟁도 별로 의미가 없음을 알게 되었습니다. 믿음이라는 의미 안에 이렇게 정의롭게 사는 행동하는 믿음과 일시적인 믿음이 아닌 세월이 가도 변치 않는 믿음임을 통해서 역시 어떤 환경이 닥쳐도 이에 굴하지 않고 믿음을 지키는 것이 역시 행동해야 되는 일임도 보았습니다. 그리고 이신칭의는 하나님의 의와 사랑의 발로로서 존재하는 것이기 때문에 이를 알고 이를 통해서 의롭게 되는 하나님의 백성은 구원을 받은 자로서 정의롭게 살고 사랑을 실천하며 살아야 하는 존재임도 보았기에 행위 따로 믿음 따로가 있을 수가 없음도 확인했습니다. 로마서 16장 중에서 1-8장은 교리 부분이고 9-16장은 이렇게 행동하라는 가르침입니다. 사랑을 실천하고 정의롭게 살아야 됨을 우리의 삶의 다양한 영역에서 설명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과 이웃을 사랑하는 것은 믿음 하나만으로 되는 일이 절대로 없고 모두가 행동이 요구되는 일입니다. 사랑은 믿음만으로 되는 것이 아니고 반드시 행동이 뒤따라 와야 되는 일입니다. 누가를 사랑할 때 어떤 사람도 오직 믿음 하나 만을 가지고 사랑할 수가 절대로 없습니다. 사랑을 하게 되면 그 대상을 보고 싶고 같이 있고 싶고 또 그 대상에게 잘 해주고 싶은 것이 사실입니다. 오직 믿고 행동을 하지 못하게 하는 사랑은 죽어도 할 수가 없습니다. 사랑하는 사람에게 믿기만 하고 만나지 말라고 하면 이는 그들을 죽이는 것이 될 것입니다. 이렇게 사랑은 완벽하게 행동이 바로 뒤따라서 오게 되어 있습니다. 모두가 아시는 바와 같이 하나님의 첫째 계명이 하나님을 마음을 다하고 힘을 다하고 뜻을 다해서 사랑하라고 했고 둘째도 이와 같으니 우리의 이웃을 우리의 몸과 같이 사랑을 해야 합니다. 이는 하나님을 위해서 우리의 행동이 반드시 있어야 함을 말하고 이웃의 사랑을 위해서도 반드시 우리가 행동을 해야 됨을 말하고 있습니다.
자녀를 사랑하는데 만나지도 못하고 자녀를 위해서 아무것도 해 주지 못하면 부모는 너무나 큰 고통을 겪게 됩니다. 사랑할 대상을 위해서 행동하지 않는 것은 도리어 고통이 됩니다. 이런 의미를 이해할 때 모든 일에 행동이 반드시 따라와야 되는 하나님의 나라의 일에 오직 믿음이면 된다는 이야기가 얼마나 어리석은 이야기인지 알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믿음 하나만으로 된다는 이야기는 사랑하고자 하는 사람에겐 고통이 되는 이야기 임도 알 수가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절대로 하나님의 나라를 건설함에 있어서 행위와 믿음을 분리할 수가 없습니다. 믿음은 의롭다 인정을 받는 믿음은 반드시 실천 즉 사랑과 정의의 행함이 있어야 함을 확실히 알게 되었기에 누가 오직 믿음이라 해도 혹은 믿음만 있으면 구원도 받고 천국도 간다 해도 이를 따라갈 필요도 마음도 없게 됨을 온 천하게 고하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자녀를 오직 믿기만 하고 그 자녀를 위해서 행동할 필요가 전혀 없으니 그냥 믿기만 하면 된다 하면 이 세상에서 그렇게 자녀를 믿고 방치하는 부모는 한 명도 없을 것입니다. 그리고 남녀가 서로 사랑을 죽도록 하는데 그냥 상대방을 믿기만 하고 아무런 행위도 할 필요가 없으니 그냥 믿는 상태로만 살아라 하면 이들은 그렇게 하라는 사랑을 죽어도 받아들이지 못하고 수단과 방법을 다해서 사랑하는 상대방을 만나고 그를 위해서 자신을 희생할 것입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이렇게 부모의 사랑과 연인의 사랑과 비교를 해도 절대로 그 강도가 약하지 않은 의의 나라요, 사랑의 나라요, 그리고 믿음 즉 신뢰의 나라로서 언제나 의롭게 살고 언제나 누구에게나 사랑을 불과 같이 실천하고 그리고 서로 신뢰가 있는 관계가 되게 믿음을 지키는 나라입니다.
이 나라를 세우기 위해서 이 땅에 세우기 위해서 예수님께서 오셨고 피를 흘리시고 십자가에서 못이 박혔습니다. 우리를 구원하신 목적도 이런 나라를 세우기 위함입니다. 하나님의 백성은 모두가 이렇게 주님의 나라를 건설하는데 모든 수고를 아끼지 말아야 하고 그 나라에 충성을 해야 되고 그 나라를 기다려야 하고 그 나라를 모든 것 위에 두어야 하는 것입니다. 이 나라를 세우는데 득이 되는 신학이 어떤 신학인지 깊이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어떤 개인이 어떤 조직을 수십억 수백억 혹은 그 이상의 자신의 모든 재력을 다 투입해서 세우는데 어떤 조직원 중에서 잘났다 하는 이가 나서서 우리 조직은 오직 믿기만 하면 되는 조직입니다. 조직을 세우는데 필요한 행위를 할 필요는 없습니다. 오직 믿기만 하면 조직에서 성공하고 조직이 잘 되고 그리고 상도 받을 수가 있다고 하면 이렇게 주장하는 조직원을 가만히 두고 볼 그 조직의 운영자나 주인은 이 세상에 한 명도 없을 것이 분명합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나라를 이 땅에 행동함으로써 특히 사랑을 실천하고 정의롭게 살면서 건설을 해야 되는데 오직 믿기만 하면 천국도 보장이 되고 구원도 받습니다. 그리고 행위로 그렇게 되는 것이 아닙니다. 법도 지킬 필요도 없고 사랑도 정의도 실천할 필요가 없습니다. 오직 믿음으로 모든 일이 다 가능합니다. 이렇게 하면서 하나님의 나라를 세운다고 하면 누가 이런 사람들을 믿을 수가 있습니까? 그런데 나는 교회에서 믿음 생활을 하고 천국에 가려고 하고 주님의 뜻을 받든다고 하면서 과연 어떻게 믿고 어떻게 오늘도 행하고 있는지 깊이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조직의 주인에게 그 사람은 원수가 될 것입니다. 하나님 나라를 세우기를 원하시는 우리의 주인은 이런 신학자 목사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시겠습니까?
주님의 나라는 의와 평강과 희락의 나리이고 의와 사랑과 그리고 믿음의 나라이기도 합니다. 이 나라의 구성원이 된 것은 예수님의 피와 십자가의 죽으심 때문입니다. 이는 또한 하나님의 사랑과 의의 표현이기도 합니다. 오늘 나는 어떤 주장을 따라서 어떻게 살아야 합니까? 내가 예수를 믿는 하나님의 백성입니까? 아니면 세상에 오늘도 나가서 믿지 않는 분들과 구분됨이 없이 그냥 섞어서 막 살아야 되는 사람입니까?
저는 35년 전에는 예수님도 성경도 그리고 교회도 그리고 사랑도 정의도 조금도 몰랐던 사람입니다. 오직 육신의 주장에 따라서 나 자신에게 조금이라도 덕이 되게 유익이 되게만 살았던 철저하도록 이기적인 사람이었습니다. 성경에서 말하는 사랑에 대해서 아는 바가 전혀 없던 사람이었고 당연히 냉혹하게 무정하게 타인을 대하며 죄를 매일 밥을 먹듯이 짓던 흉악한 죄인이었습니다. 그리고 이렇게 죄를 지으면서 죄가 죄인지도 모르고 스스로 의롭게 산다고 굳게 믿었던 사람입니다. 제가 정의요 제가 흠이 없는 온전한 사람으로 스스로 누구 앞에서도 의연할 수가 있다고 믿었던 사람입니다. 제 죄와 잘못된 믿음과 잘못된 저에 대한 판단을 인식하지 못하고 누가 예수를 믿어라 하면 나 자신을 믿지 왜 예수를 믿냐 하면서 겁도 없고 거칠 것도 없이 기고 만장해서 살던 사람이었습니다. 이렇게 하나님의 가르침과 1% 도 관계가 없던 제게 김 성수 장로님께서 오직 성경책만 한 권 주는 행동이 있었습니다. 말도 없으셨고 오직 성경책만 주셨습니다. 그런데 이 성경책이 저의 마음을 거울과 같이 비추었습니다. 말씀에 비췬 제 마음은 제가 알고 믿던 마음이 아니었습니다. 사랑이 없는 교만하고 자랑하기 좋아하고 이기적이고 성질이 급하고 냉랭하고 성을 잘 내고 그리고 참을 성이 전혀 없는 사람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 말씀으로 저를 찾아오셔서 저의 본 모습을 보게 하셨습니다. 제가 제가 알고 믿던 좋은 사람이 절대로 아니라 흉악한 죄인임을 보게 하셨습니다. 그리고 회개하게 하셨습니다. 약 5년간 회개하고 예수님에 대해서 교회에서 배우고 그리고 1991년 5월 19일에 예수 그리스도 이름의 세례를 받았습니다. 그리고 다음 해에 성경에 기록된 절차대로 신림동 선민 교회에서 예수님께 불을 받았습니다. 그리고 복음을 전하는 증인의 삶을 살았습니다. 쉬지 않고 전하고 쉬지 않고 성경을 정리하고 신학을 하고 목사가 되었습니다. 목회는 하지 못하고 모든 서도와 같이 세상에서 일을 하면서 이렇게 전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저는 이런 과정에서 죄를 멀리하려고 했지만 완전히 죄를 멀리하지 못하고 불순종하기도 했고 크게 징계를 받기도 했습니다. 오직 하나님께 늘 인내하시고 용서하심으로 이렇게 배우고 전하게 된 것입니다. 그리고 이런 저를 많은 분들과 교회에서 도와주었습니다. 제 공로는 없습니다. 오직 선하고 의로우신 하나님께서 은혜를 베푸시고 우리 주 예수님께서 늘 동행하시고 격려하시고 성령님께서 모든 것을 다 가르쳐 주심으로 저는 쉽게 기쁘게 이렇게 전합니다. 오직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의 공로입니다. 영원토록 주님의 이름만 높임을 받으시고 찬양을 받으시기 원합니다. 할렐루야!!
여러 날에 걸쳐서 쓴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