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 행 지 : 금북정맥 10차(나본들고개~무르티고개) 충남 예산군. 서산시.
산 행 일 : 2015. 01. 10.(토)
산행코스 : 나본들고개~뒷산~한티고개~가야산 가야봉~석문봉~일락산~상왕산~가루고개 ~모래고개(서해안고속도로)~동암산~무르티고개(32번국도) (산행거리 19.5km)
산행참가 : 20백두.
<산행코스>
오래전 서해안고속도로를 달리다가 서산IC 근처에서 생각지도 못한 광경을 보았던 기억이 생생하다. 일반적으로 우리나라에는 산이 많고 농지가 적다. 특히 구릉지는 농지로 개간이 되어서 목축이 잘 발달하지 않은 것으로 알고 있고, 그래서 목장 하면 대관령목장 정도만 있으려니 생각했는데, 뜻밖의 목장풍경을 서산 인근에서 본 것이다. 그 후 서산목장의 탄생 배경 정도를 전해 듣게 되어 어림짐작만 하고 있었는데, 이번 금북정맥 산행 계획을 짜면서 보니, 금북정맥이 서산목장 가장자리를 통과하고 있다. 백두대간 산행에서 대관령목장을 보았던 기억이 떠오르며, 이번 금북정맥 산행에 대한 기대도 커졌다. 다만 푸른 목초지를 볼 수 없는 한겨울에 진행하는 산행이라 좀 아쉽기는 하였으나, 몇 해 전 석문봉 산행에서 가야산 정상을 눈앞에 두고 상가리로 하산하였던 적이 있어서, 이번에 가야산 정상도 밟을 수 있다는 기대와 함께, 여는 정맥길보다 큰 기대를 가지고 산행일을 기다렸다. 버스는 예정대로 예쁜 이름의 '나본들고개'에 도착하였고, 가야산 정상쯤에서 일출을 볼 요량으로 일출시간에 맞추어 산행 준비를 하고 버스를 나선다. 매섭게 차가운 공기가 껴입은 몇 겹의 겨울옷을 금세 무력하게 만드는 한겨울 꼭두새벽에, 2015년 백두산우회 첫 산행을 준비를 마치고, 건물 앞 공터 좌측의 금북정맥 능선을 향해, 충남의 어느 한적한 고갯마루에서 금북정맥 열 번째 산행을 시작한다.
금북능선 양쪽을 야금야금 갉아먹으며 들어오는 논밭과 주택으로, 능선길 찾기가 어려운 들머리 부근을 어렵게 찾아 오로면,
컨테이너 주택을 만나고, 다시 밭과 대나무숲을 지나 본격적인 뒷산 오름길이 시작된다. 짧은 암릉구간과 급한 오름길이 차갑던 몸에 조금씩 온기를 돌게 할 즈음에,
뒷산 갈림길에 도착하여 금북정맥은 우측으로 90도 꺾어서 한티고개로 내려가게 되는데, 백두들은 이곳에서 한티고개를 향하고, 나는 반대쪽 청색 화살표 방향 50m쯤에 있는 뒷산 정상을 가 보기로 한다. 뒷산 갈림길 옆 자그마한 나뭇가지에 '갈산지맥'이란 팻말이 걸려 있다. 아마도 뒷산에서 갈라져 남쪽 갈산면 방향으로 뻗은 연장이고개~삼준산~계봉산~갈산초등학교까지의 마루금인 듯하다. 뒷산(427m) 정상은 그저 그런 밋밋한 소나무숲에 있다. 충남 서산시 해미면 대곡리 뒤에 있는 산으로, 지도상에도 뒷산으로 표기되어 있다. 시골 웬만한 마을의 뒤쪽에 있는 산은 모두 뒷산인데..ㅉㅉ 다시 뒷산 갈림길로 돌아나왔는데, 등로 옆 수나무 둥치에 '뒷산'이란 띠지가 붙어 있다. 이 산 전체가 뒷산이기는 하지만 도대체 어디가 뒷산 정상인지? 낮이라면 확인했을 터이지만..ㅉㅉ 어둠 속에서 가야산과 원효봉의 윤곽이 나타나고, 그 우측에는 덕산온천의 불빛이 반짝이고 있다. 뒷산 내림길은 북사면이라 그런지 제법 눈이 쌓여 있어서 미끄럽고, 급격히 고도를 낮추느라 402봉과 385봉을 언제 지났는지 겨를도 없이 내려서니, 임도와 공터에 팔각정 정자가 있는 한티고개에 도착한다. <한티고개(307m)> 충남 예산군 덕산면과 서산시 해미면을 잇는 고개로, 예전에는 사람들의 왕래가 꽤나 많았다고 한다. 글자 그대로 해석하면 넓고 큰 고개라는 말이다. 신유, 기해, 병오, 병인년 박해 등 조선 후기 천주교 박해기간 동안에 이곳 내포지역에서 체포된 천주교 신자들을 해미 고을 포졸들이 압송해 가던 고개라서, 천주교의 성지순례 길이기도 하다. 천주교 신자의 입장에서 보면 넓고 큰 고개가 아닌 한이 맺힌 고개라 할 수도 있겠다. 넓은 공터 주변에는 나무 십자가가 있는 돌로 된 제단과 천주교 기념물들이 있다. 서산 아라메길 안내판도 있다. <서산 아라메길> '아라메길'이란 바다의 고유어인 '아라'와 산의 우리말인 '뫼'를 합친 말로, 바다와 산이 만나는 서산지역의 특색을 살린 걷기 길로 총연장 88km, 5개 구간으로 되어 있다.
한티고개를 뒤로하고 가야산 정상을 향해 오름길을 시작하니, 이곳도 정맥꾼들만 다니는지 거친 등산로가 이어진다. 다만 한티고개 이후로는 남사면 이어서 한동안 눈이 없어 다행이라며 오름길을 재촉한다. 가끔씩 암릉도 만나고,
조그마한 봉우리에 올라서니, 우전방으로 예산군 덕산면의 불빛이 밝아오는 동쪽 하늘과 묘한 대조를 이루고, 앞쪽으로는 가야 할 가야봉과 원효봉의 윤곽이 확연히 드러난다.
동쪽 덕숭산 방향 조망.
한서대 방향 갈림길이 있는 411봉쯤을 지나는데, 고도가 높아진 탓인지 녹지 않은 눈들이 다시 보이기 시작한다. 돌아본 뒷산 방항. 서쪽 해미읍 방향 도비산 위쪽으로 금성과 하현달이 걸려 있다. 서쪽으로 보이는 '도비산'은 서산시 들판 한가운데에 우뚝 솟아 있어서, 남은 금북정맥 서산구간 내내 볼 수 있는 산이다. 427봉쯤에 도착하니, 오늘 가야 할 가야산과 석문봉, 그리고 일락산도 살짝 보인다.
가야봉은 가야할 643봉에 가려있고 우측으로 원효봉만 보인다. 우측 덕숭산 방향. 돌아본 뒷산 방향. 좌측 가로등이 밝게 빛나는 곳이 오늘 출발한 나본들고개다. 한서대 뒤쪽 연암산(440.8m) 방향. 서쪽 해미읍 방향. 485봉을 오르다가 동쪽 덕숭산 방향의 붉은 하늘에서 일출이 언제 시작될지 몰라 계속 카메라를 가져가 본다. 산불지역이라 큰 나무는 없고 잡목들이 발목을 잡아 상당한 어려움을 겪으며 485봉으로 오른다. 가야 할 643봉 옆으로 가야봉도 살짝 보인다. 가야할 643봉 방향. 485봉 정상에서 잠시 쉼을 하며 주변 조망을 감상한다. 485봉을 뒤로하고 643봉 능선 위로 올라서며, 돌아본 뒷산 방향으로 걸어온 금북능선이 가늠된다. 뒷산과 연암산 가운데 멀리로 보이는 봉우리가 삼준산이다. 643봉으로 이어지는 능선을 지나는데, 일출이 시작되는 듯하여 등로 옆 바위로 올라서 돌아본 덕숭산 방향. 뒷산과 연암산 방향. 드디어 2014년 1월 10일의 해가 떠오른다. 살짝 당겨본 일출! 침잠해 있는 산하 위로 동그란 태양이 떠올랐다. 예산읍과 일직선으로 올해 첫 산행의 일출을 본다! 원효봉과 덕숭산 가운데로 떠오른 태양이 그동안의 추위와 어둠을 씻어내주고 있다. 가야 할 649 암봉 너머로 가야봉의 통신탑이 보인다.
해가 세상을 비추기 시작하니, 서쪽 하늘에 걸려있던 금성은 자취를 감추었고 달빛 조차도 초라해진다. 지나온 뒷산 방향의 금북능선을 한번 더 담고는, 바위를 내려와 금북길을 재촉한다.
등로 옆에는 산삼을 심어놨다는 표시와 함께 경고문도 붙어있는데, 까마득한 바위 절벽이라 그냥 준다 한들 들어갈 엄두를 내랴 싶다. 가야산이 가까워지면서 등로에는 발목이 묻힐 만큼 눈이 쌓여있지만, 다행히 표면이 살짝 얼어 있어서 걸음걸이에 그다지 지장을 주지는 않는다. 매서운 한기가 스며드는 643봉에 도착한다. 떠오른 태양이 이렇게나 뜨겁게 비추는데도 셔터를 누르는 손가락이 얼어버릴 지경이다.
가야봉 좌측으로 가야 할 석문봉도 보이고, 각종 통신시설과 중계시설이 점령하고 있는 가야봉도 지척이다. 가야봉 가는 길에 거쳐야 할 649암봉. 덕숭산 방향. 뒷산 방향의 걸어온 금북능선. 서쪽 해미읍 방향. 동북 방향 파노라마. 남서방향 파노라마.
잠시 후 손총무님도 643봉에 도착하고, 후미의 백두들도 도착하여 잠시 쉼을 하며, 주변 조망에 넋을 놓다가, 서쪽 도비산을 배경으로 기념사진을 남긴다. 649봉을 지나 가야봉 직전 안부에서 아침식사를 한다. 매서운 한기에 가져온 간식과 따스한 커피를 섞어 마시고, 서둘러 가야봉을 향한다.
안부에서 잠시 오르면 가야봉 정상을 차지한 통신시설 철망이 앞을 가로막는다. 돌아본 금북정맥 능선. 철조망 울타리가 막아선 가야봉을 지척에 두고 좌측 우회길로 들어선다. 가야산 정상은 KT중계탑과 KBS송신소 그리고 대전방송국 송신소가 점령하고 있어서 좌측 우회길로 돌아서 금북정맥을 이어간다. <가야산(伽倻山, 678m)> 정상을 통신시설물에 내어준 가야산은 충남 예산군 덕산면과 서산시 운산면, 해미면에 걸쳐 있는 산으로, 방송시설과 통신사가 점령하고 있는 주봉인 가야봉을 중심으로 원효봉(元曉峰 605m), 석문봉(石門峰 653m), 옥양봉(玉洋峰 593m) 등의 봉우리가 있으며, 신라시대에는 가야사를 짓고 중사(中祀, 나라에서 지내는 제사)를 지냈으며, 조선시대까지 덕산 현감이 봄. 가을로 고을 관원을 시켜 제사를 올렸던 곳으로, 능선을 따라 피어있는 진달래와 억새의 경치가 수려하다. 덕숭산(德崇山)과 함께 1973년 3월에 덕산도립공원으로 지정되었다. 백제때는 상왕산(象王山)이라 불렀는데, 신라가 삼국통일 이후에 이 산 밑에 가야사를 창건한 뒤로 가야산이라 불렀다고 한다. 흔히들 가야산이라고 하면 합천 해인사가 있는 가야산을 먼저 떠올리지만, 이곳 가야산도 규모가 그리 크지는 않지만 유난히 불교유적을 많이 가지고 있는 곳으로, 국보급 문화재인 일명 ‘백제의 미소’라고도 불리는 '서산마애삼존불상'을 비롯해 보원사지, 명암사지, 명종대왕태실, 개심사, 일락사, 문수사, 송덕암 등 명사찰과 명소들이 모두 이곳 가야산을 중심으로 위치해 있다. 가야봉 정상부에 도착하는 백두들. 이글거리는 태양의 도움으로 매서운 한기의 예봉은 살짝 누그려뜨려진다. 서쪽으로 서산시도 어슴프레 조망된다. 표지기가 몇 개 붙어있는 우회길로 들어서면 잡목과 웃자란 풀들이 엉켜있고, 눈까지 쌓여있어서 등로의 흔적을 찾기가 어렵다. 통신시설 울타리에서 너무 멀리도, 그렇다고 너무 가깝지도 않은 거리를 유지하며 진행한다. 암릉에 쌓인 눈에 미끄러지기도 하고, 낡은 철조망 울타리의 방해를 뚫으며 조심조심 진행한다.
우회길이 있는 사면은 철조망 안쪽에서 버린듯한 온갖 쓰레기들로 쓰레기장을 방불케 한다.
가야봉 우회길에 바라본 내포지역. <내포지역> 내포(內浦)는 ‘내륙 깊숙이 들어앉은 포구’를 말한다. 오늘날 태안, 서산, 당진, 홍성, 예산, 아산 등 가야산을 중심으로 열 고을이 바로 그곳이다. 아산만, 가로림만, 천수만에 연결된 하천을 통해 내륙 깊숙이까지 뱃길이 닿았다. 중국의 불교문화가 이곳을 통해 곧바로 백제에 전해졌는데, 태안마애삼존불, 서산마애삼존불, 예산 화전리 사면석불 등이 바로 그 흔적이다. 당시 내포지역은 한반도의 불교문화의 선진 지역이었던 것이다. 또한 이곳을 통해 백제의 불교가 일본으로 건너갔고, 천주교가 이곳 내포지역으로 들어왔다. 그리고 내포지방은 일본 천황가의 뿌리나라(根國)라고 한다. 백제가 망하자 백제의 왕족들이 이곳을 통해 일본으로 건너가 일본 황실을 이룩했다고 한다.
우회길에 들어선지 14분 만에 반대편 끝자락에 도착한다.
가야봉 정상을 휴전선 철책 경계근무하듯이 우회하여 반대편 등로로 나오면, 우측으로 원효봉 가는 계단길과, 석문봉으로 향하는 직진방향의 계단길이 있는 전망데크에 서게 된다. 천신만고 끝에 가야봉 데크목 전망대에 서니, 가야 할 석문봉으로 이어진 칼날 같은 능선과 우측 멀리로 몇해 전 백두산우회 창립기념 산행 때 올랐던 옥양봉이 시원스레 조망된다. 춥고 힘들어도 행복한 백두들!
동쪽 덕산면 방향. 가야산 데크목 전망대에서 바라본 예산군 덕산면 상가리 방향 조망. <남연군 묘> 충남 예산군 덕산면 가야산 동쪽 기슭, 상가리 오얏골에 이대천자지지(二代天子之地)라는 흥선 대원군의 부친인 남연군 이구의 묘가 있다. 대원군이 부친의 묘를 경기도 연천에서 이곳으로 이장한 후, 두 아들이 왕이 되었다 한다. 흥선 대원군은 무너져 가는 왕권을 회복시키기 위한 방법을 명당에서 찾기로 하고, 10여 년간 전국의 명산을 찾아다니다가 지관인 정만인을 만나게 되고, 정만인에게 명당자리를 부탁하니 그가 "덕산 가야산 동쪽에 2대에 걸쳐 왕이 나오는 자리가 있으니 이대천자지지(二代天子之地)이고, 광천 오서산에 만대에 걸친 영화를 누리는 만대영화지지(萬代榮華之地)가 있으니, 어느 쪽을 선택하시겠느냐"하니, 흥선은 이대천자지지를 선택했다. 흥선은 경기도 연천에 있는 남연군의 묘를 이장하기에 이르러, 연천에서 상여가 운구되어 오는데, 상여가 지나는 마을마다 주민들이 동원되었고, 마지막으로 상여를 내린 마을이 광천리 남은들 마을이다. 이대천자지지(二代天子之地)라는 명당에 남연군의 묘까지 이장한 후, 고종의 뒤를 이어 순종까지 보위에 오르게 되니, 남연군의 묘터가 예언대로 이대천자지지임에는 확실하게 맞은 셈이다.
가야봉을 뒤로하고 석문봉을 향해 데크목 계단을 내려선다. 가야 할 석문봉으로 이어지는 암릉. 돌아본 가야봉. 서산시 해미면 산수저수지 방향. 우측으로 상가리 방향 갈림길을 지나면,
앞쪽으로 멋진 609암봉이 나타난다. 609암봉을 오르며 돌아본 한서대와 산수저수지 방향. 다가온 609암봉.
가야산이 얼마큼 멀어졌는지 확인하고,
609암봉 아래에 도착하여 잠시 쉼을 한다.
609암봉 내림길은 아득하게 긴~ 눈계단길.
가야산 등산 안내도.
돌아본 가야산과 지나온 609암봉.
멋진 자연 석탑이 나타나기에 바위틈에 안전산행을 비는 조약돌 하나를 올려놓는다.
안전시설이 없었다면 꾀나 오금이 저려왔을 눈 덮힌 암릉도 지나고,
다시 상가리 방향 갈림길 이정표가 나오는데, 이번에는 상가리 방향이 쉼터라고 표시되어 있다. 석문봉으로 오르기 위해서는 반드시 잡고 가야 할 듯. 뭘?
밧줄 잡고 암릉을 올라서 돌아보니 원효봉과 가야봉 우측으로 뒷산과 삼준산도 모두 조망된다.
석문봉을 향하는 영식형.
쪼~오~기에 있는 석문봉에 앞서간 백두들의 모습이 보인다. 우전방으로 옥양봉 방향 능선이 시원스레 조망되고, 자꾸만 그림 같은 가야봉 조망을 돌아본다. 석문봉, 너~ 쫌만 기다려!
암릉길이 잠시 더 이어지더니,
태극기 휘날리는 석문봉에 도착한다. <석문봉(石門峰, 653m)> 석문이 열리는 것처럼 보인다고 해서 이름 붙여진 봉우리로, 충청남도 예산군 덕산면과 서산시 해미면, 운산면의 경계를 이루는 산이다, 인근의 가야산을 중심으로 한 덕산도립공원에 속해있는 가야산의 한 봉우리로, 가야봉으로 부터 북쪽으로 1.7km 정도 떨어져 있고, 일락산과 가깝다. 석문봉을 정점으로 옥양봉과 일락산 양쪽 봉우리로 이어진 능선 사이로 길게 형성되어 있는 용현계곡에는 산림욕장이 조성되어 있다. 역내(驛川)는 이곳 석문봉에서 발원하여 서산시로 흘러 당진읍, 고대면, 정미면을 걸쳐 퇴적평야를 이루며 기름진 평야지대를 만들었다. 전망이 매우 좋아 남쪽으로는 가야봉과 옥양봉, 북서쪽으로는 일락산이 있고, 서쪽인 해미로는 서해바다가 펼쳐진다. 동쪽 아래의 넓게 형성된 골짜기에는 예산 가야사지(伽倻寺址, 충남기념물 150호)가 있다. 정상석 뒷면에는 "내포의 정기 이곳에서 발원하다"라고 새겨져 있다.
산 정상에는 서산 해미산악회가 백두대간 종주를 기념하는 돌탑이 있다. 가야 할 일락산 방향의 금북능선.
우측 옥양봉 방향으로는 석문지맥이 분기된다. <석문지맥> 석문지맥은 안성 칠장산에서 태안의 안흥진으로 이어지는 금북정맥이 충남 서부의 예산군 덕산면과 서산시 해미면, 운산면 등 3개 면이 만나는 석문봉에서 북동쪽으로 분기하여 당진시 신평면 매산리의 아산만까지 이어지는 산줄기를 말한다. 도상거리는 약 48.3km이고 석문봉(石門峰, 653m), 옥양봉(玉洋峰, 621.4m), 서원산(書院山, 472.7m), 오봉산(五峰山, 225.3m), 몽산(夢山, 290m), 135.2봉, 국사봉(國師峰, 148m), 오룡산(五龍山, 114m), 철마산(鐵馬山, 91.8m), 망객산(望客山, 64m), 아굴산(42.1m), 석화산(石花山, 46.4m) 등을 지난다. 산줄기의 동쪽이나 남쪽으로 흐르는 물은 덕산천, 효교천, 대천천, 남원천으로 흘러들어 결국 삽교천으로 흘러들어 아산만에 이르고, 북쪽이나 서쪽의 물은 대방들천, 백석천, 서원천이 되어 황해로 스며들거나 일부는 아산만으로 흐른다.
동쪽 방향 파노라마. 서쪽 방향 파노라마. 가야산 석문봉에서 나도 증거를 남기고, 백두들의 정상 인증도 남긴다.
석문봉 이정목 앞에서, 석문봉을 뒤로하고 일락사 방향으로 금북정맥 잇기에 나선다.
석문봉까지의 암릉길에 비해 석문봉 이후는 육산의 면모를 보이며 완만한 내림길이 이어진다.
돌아본 석문봉 방향. 석문봉과 가야봉을 한 화면에 담아보고, 새벽부터 걸어온 금북능선도 가늠해 본다.
앞으로 남은 금북길에서 계속해서 좌측으로 보면서 가게 될 서산시도 뚜렷하게 조망된다.
대곡리 방향 갈림길에서 일락산 방향으로 진행하면, 갈림길이 있는 소나무 쉼터가 나오는데, 좌측 능선으로 가 보았더니 절벽위에 서게 되고, 하는 수 없이 돌아나와 우측의 내림길로 들어서면,
방금 전 돌아나왔던 절벽 아래로 통하는 등로 갈림길이 나오는데, 옆에 걸린 나무 표지판에 보원사지 방향이 사잇고개로 이어지는 금북길이다.
군데군데 설치된 벤치의 유혹을 뿌리치고 내림길을 이어가면,
좌측 도비산 방향으로 멋진 조망을 가진 벤치쉼터에 도착하니, 여러 명이 함께 쉴 수 있는 쉼터도 있고, 서산 방향의 조망을 즐길 수 있는 멋진 방갈로도 있다.
쉼터에서 내려서면 바로 사잇고개에 도착한다. <사잇고개> 충남 예산군 덕산면과 서산시 해미면을 잇는 고개로, 좌측은 일락사 가는 방향이고, 우측은 용현계곡 휴양림 내려가 길이 있다. 우측 가장자리에는 산에서는 보기 힘든 솟대가 있고, 시를 쓴 비석도 보이며 간이의자도 있다.
사잇고개에서 완만한 능선을 따르면 조망이 트인 암릉 위에 서게 되고, 석문봉 방향의 지나온 능선도 조망되며, 좌측 서산 방향으로 조망이 시원하게 트인다.
조망이 좋은 암릉에서 잠시 더 금북길을 이어가면 일락산에 도착한다. <일락산(日樂山, 521m)> 충남 예산군 덕산면과 서산시 해미면, 운산면의 경계 능선에 있는 산으로, 가야산을 중심으로 한 덕산도립공원에 속하며 석문봉의 북쪽에 위치하고 있다. 주변의 산에 비해 널리 알려져 있지 않고 정상에도 정자만 하나 달랑 있을 뿐, 주변의 나무들로 조망도 없는 별 특징이 없는 산이다. 산의 북쪽에는 백제의 마지막 임금인 의자왕 8년(648년)에 혜감대사가 창건한 개심사가 있고, 서쪽 계곡에는 통일신라시대에 창건한 일락사라는 비구니 도량이 자리를 잡고 있다. 문화재로는 개심사 대웅보전(보물 143호)과 주변에 백제의 미소로 알려진 서산마애삼존불상, 보원사지, 보원사 5층 석탑이 있다. 일출과 함께 온도가 오르며 쉼도 한결 느긋해진다.
일락산에서의 느긋한 쉼을 뒤로하고 다시금 금북길에 나서면,
좌측으로 서산 방향의 조망이 계속 따라오고,
북사면을 내려설 때에는 눈길로 변하기도 하며,
북쪽 서산 목방 방향으로 이어진 가야 할 금북길이 멀리까지 가늠된다. 청정계곡인 용현계곡의 모습. 우측 능선이 서산마애삼존불상으로 이어지는 능선이다.
소나무 숲길을 따라 완만하게 고도를 낮추며,
널찍한 수레길이 능선을 따라 이어진다.
기온이 오르면 두텁게 껴입었던 방한옷도 배낭에 갈무리한다.
삼거리 갈림길에서 마루금은 이정목의 '보원사지'방향인 우측 임도를 따라간다. 좌측은 해미면 황락리 방향으로 내려가는 콘크리트 포장도로가 있다. 갈림길 이정목. <보원사지> 서산 보원사(普願寺) 터는 몇 해 전에 갔던 서산마애삼존불 입구에서 남쪽으로 조금 더 가면 있는 곳으로, 걸어서도 15분이면 충분히 닿는다. 산에 빙 둘러싸인 강당계곡(‘너른 우묵 땅’)에 장대한 당간지주와 5층 석탑이 남아 있다. 통일신라 때 화엄 10찰의 하나였으며, 의상대사가 이끌었던 화엄종은 통일신라의 통치이념이었다. 수준 높은 내포지역의 백제 유민들은 웬만한 불교 종파에는 코웃음을 쳤을 것이다. 통일신라로선 우선 내포지역 백제 유민들의 마음부터 사로잡아야 했으리라. 보원사는 서산마애삼존석불, 개심사, 가야사 사이에 자리하고 있다. 백제 사람들의 사랑을 받던 절집과 마애석불 사이에 통일신라가 새 절을 지은 것이다. 스님이 한때 1000명이 넘었다니, 통일신라의 관심이 어땠는지 알 수 있다. 솔잎이 떨어져 깔려있는 수레길은 걷는 이를 무심의 세계로 인도한다.
호젓한 수레길을 무심하게 걷다 보니 임도삼거리를 지난다. 금북능선은 좌측의 보원사지/전망대 표시가 된 이정표 방향으로 진행하고, 우측 차단기가 설치되어 있는 임도길은 용현계곡 자연휴양림에서 올라오는 임도다. 임도삼거리 이정표. 돌아본 임도삼거리.
전망대 봉우리 갈림길에 도착하여, 금북능선으로 좌틀하여 수레길을 따라 이어지지만, 앞쪽 전망대 봉우리를 다녀오기로 한다.
전망대는 금북길에서 100m쯤 떨어진 앞쪽 봉우리에 있으며, 주변 나무를 정리하지 않은 탓에 조망이 전혀 없어 실망만 하고 다시 내려온다. 육각정자 전망대에 올라가 보았더니, 우측 서산시 방향의 조망과, 도비산 방향의 조망만 트여 있고, 북동쪽 방향 봉우리 위에는 묘지가 있다.
전망대를 내려와 갈림길로 돌아 나오니, 백두들이 다가오고 있다. 갈림길 이정표. 금북길은 자연휴양림 쪽에서 와서 개심사/보원사지 방향으로 가야 한다. <개심사(開心寺)> 예산 수덕사, 공주 마곡사, 부여의 무량사와 함께 충남의 4대사찰로 꼽히는 개심사는 대한불교조계종 제7교구 수덕사의 말사로, 대웅전을 중심으로 좌우에 신검당과 무량수각이 있고, 정면에 안양루가 있는 표준형으로 지어진, 소박하고 단아한 사찰이다. 654년(백제 의자왕 14년)에 혜감(惠鑑)스님이 절을 짓고 개원사(開元寺)라 하다가, 고려 충정왕 2년(1350년)에 처능(處能)스님이 중건하면서 개심사로 불렀다고 한다. 개심사(開心寺)는 ‘마음의 문을 여는 절집’이다. 소박한 심검당의 ‘구불텅한 기둥’이 자연스럽다. 경허와 만공선사도 이곳 개심사에 자주 머물렀다고 한다.
편안한 등로를 따라 358.8m 봉을 옆으로 스쳐지나 가면,
개심사 갈림길이 나온다. 새벽에 지났던 한티고개에서 보았던 아라메길 안내판을 여기서 또 본다. 개심사 갈림길을 지나는 백두들. 산행 다니면서 이리도 정성(돈) 들여 만든 이정표는 처음인 듯하다.
봉우리를 우회하는 수레길을 따르면,
금북능선이 분기하는 쉼터에 도착한다. 금북정맥 분기 쉼터 이정표. 금북길은 '쉼터'표시 이정표가 있는 쉼터에서 좌측 임도로 내려서야 하는데, 많은 표지기들이 달려 있기는 하지만, 무심히 걷다 보면 놓치기 십상이지 싶다. 좌측 임도로 꺾어서 서산목장으로 이어지는 수레길로 들어서는 백두들.
쉼터에서 좌틀하여 수레길을 따라 S자로 두 번 꺾어 내려오면 목장 임도로 이어지는데, 몇 가닥의 철조망으로 수레길을 막아 놓았다. 간단히 넘을 수 있는 정도라서 부담 없이 통과한다.
철조망을 넘어서면 바로 서산목장의 너른 초지가 펼쳐지고, 금북길은 목장 가장자리 능선을 따라 이어진다.
가장자리 능선 위로 이어진 목장관리용 도로를 따르는 백두들. 기대보다 훨씬 넓게 펼쳐지는 목장의 규모에 놀라며,
금북정맥 중 가장 편안한 길을 벗과 함께 걷는다.
금북능선을 넘어서도 조성된 초지로 인해 금북능선이 목장 안쪽으로 잠시 들어갔다가, 풀밭에 이정표처럼 서 있는 소나무 옆을 지나, 전면에 보이는 상왕산 봉우리 방향으로 진행한다. 서산시 방향.
초지 끝에서 철조망을 넘어 다시 수레길로 접어든다.
잠시 후 따르던 수레길은 조그만 봉우리를 우회하고,
또다른 봉우리 하나도를 더 우회하여 이어지다가,
상왕산 방향 표식 아크릴판이 있는 삼거리에서 수레길을 버리고 좌측 숲길로 진행한다. 초지와 헤어져 9분여 수레길을 따르다가 만나는 갈림길인데, 무심결에 가다가는 알바하기 딱 좋을 듯하다.
편안한 수레길과 초지를 걷다가, 업다운이 있는 능선길로 접어드니 갑자기 힘이 든다.
상왕산 도착. <상왕산(象王山, 309m)> 충남 서산시 운산면에 위치한 산으로, 정상에는 삼각점이 설치되어 있지만 별 특징 없는 봉우리를 '임금 왕(王)'자까지 붙혀 이름 지은 것을 보니 보통 산은 아닌 것 같아 확인 해 보았더니, 상왕산이 조선시대 12대 진산 중 하나였다고 한다. 멀리서 보면 코끼리 형상을 하고 있다고 해서 상왕산이란 이름을 얻었다고 한다. 그러나 산 위에 오르니 별 특징 없는 그냥 밋밋한 산일뿐이다. 상왕산 정상 인증.
상왕산을 내려서며 돌아본 가야산 방향으로. 일락산과 석문봉, 옥양봉, 가야봉이 모두 겹쳐 보인다.
상왕산을 뒤로한 지 5분여 만에 280봉을 지나며 금북길은 좌측으로 휘어지고, 좌측 나뭇가지 사이로 서산시 운산면의 고풍저수지가 내려다 보인다.
커다론 송전탑을 지나고, 돌아본 280봉.
철사줄이 울타리를 대신하고 있는 안쪽 등로를 따라 한동안 진행하는데, 우측으로는 호수만큼이나 큰 고풍 저수지가 내려다 보이고, 우전방으로 운산면도 조망된다.
중앙의 물건은 누가 일부러 만든 것 같은데..ㅉㅉ 삼거리 갈림길이 있는 206m 봉에 도착하는데, 우측 길은 고풍저수지로 이어지고, 금북길은 직좌틀하여 내림길로 이어진다. 철사줄 울타리에 수많은 표지기가 매달려 있어서 놓치지는 않을 듯하다. 잠시 후 다시 목장 초지로 내려서는데, 철조망 울타리 때문에 들어가지를 못하고, 가시덤불을 헤치며 족적을 찾다 보면,
목장 초지 옆 임도로 들어서게 된다.
목장 임도를 따라 우측으로 진행하면, 따르던 임도는 다시 숲으로 들어가고, 호젓한 임도에서 배낭털이 시간을 갖는다.
임도는 다시 서산목장 가장자리로 이어지고, 정맥길 또한 목장 가장자리 능선으로 이어진다.
콘크리트 포장도로에 철문이 나타나고, 잠겨있문을 우회하여 포장 임도로 올라선다. 가을에 왔으면 멋진 풍광이었을 듯하다.
금북능선은 목장 우측 가장자리 능선으로 이어져 송전탑을 향해 오르게 되지만, 잠시 후 또 도로로 내려서야 하므로 우리는 목장 내 콘크리트 도로를 따른다. 금북능선을 두고 도로를 따르는 백두들.
따르던 도로는 축사를 지나고, 시원스레 펼쳐진 목장길을 따라 걷는다. 목장길 따라 밤길 걸어야 되는데..ㅋㅋ
광활한 서산목장을 배경으로. <서산목장> 충남 서산시 운산면에 위치한 목장으로, 서산목장보다는 김종필목장으로 더 잘 알려진 곳이다. 一人之下 萬人之上(일인지하 만인지상)이었던 전 국무총리는 난데없는 목장개발계획을 들고 나와 조선시대 12진산(鎭山)의 하나였던 상왕산의 울창하던 숲을 베어내고 638만 평의 이 나라 최대 목장을 만들었다. 그러다가 5공 시절에 불법축재라는 판결을 받고 국가에 헌납(?)을 했다. 현재는 축협에서 씨소를 키우고 있는 목장으로 운영되고 있다. 이곳 목장 면적이 여의도의 5배에 이른다고 하며, 이곳을 지나는데 만도 1시간 반이상이나 걸렸다. 목장을 빼앗기고 속이 얼마나 아프셨을까마는, 어느 책에 이런 글귀가 나옵디다. 삼일수심천재보(三日修心千載寶) 삼일의 마음 수양은 천 수레의 보물과 같지만, 백년탐물일조진(百年貪物一朝塵) 백년을 탐해서 모은 재산은 하루아침의 티끌과 같으니라. 죽을 때 입고 가는 수의에는 주머니도 없다고 했다. 어차피 빈손으로 왔다가 빈손으로 갈 건데, 많이 베풀고 행복하게 사시구려! 그저 '이런 멋진 풍광을 보는 게 어느 분 덕'이라 생각하지 뭐. 그래야 편하니까! 목장 소녀!
이러거나 저러거나 우리는 금북정맥 길을 간다! 목장길 따라 잠시 더 진행하면, 돌아본 가야산 방향. 좌측으로 운산면 방향으로 이어지는 647번 지방도가 내려다 보이고,
가루고개가 보인다. 도로를 막아서는 철울타리 문을, 간단하게 우회하여 나오니,
목장 가운데를 지나는 가루고개에 서게 된다. <가루고개> 충남 서산시 운산면 소중리와 용장리를 잇는 647번 지방도가 지나는 고개로, 고갯마루에는 소중 1리를 알리는 표지석과 버스정류장이 있다. 가루고개 들머리로 오는 백두들.
가루고개에서 콘크리트 임도로 들어서서 오르다가 우측 비포장 임도로 올라 가면,
서산목장 초기자 끝나는 지점 봉우리에 서게 되는데, 돌아본 석문봉 방향으로 걸어온 금북능선을 가늠해 보고는, 지금까지 따라온 서산목장과는 여기서 이별을 한다.
황톳길을 잠시 따르면, 우측으로 운산면의 전경이 펼쳐지고,
잠시 후 잘 꾸며진 가족묘지에서 지나온 석문봉도 다시 한번 돌아본다.
따르던 임도는 봉우리쯤에서 다시 숲길로 바뀌고,
우측으로 또 다른 가족묘지가 나타나며, 요란한 자동차 소리와 함께 서해안고속도로가 내려다 보인다. 서쪽 서산시 음암면 방향.
잠시 후 서해안 고속도로가 지나는 모래고개에 내려선다. 모래고개 날머리. <모래고개> 충남 서산시 운산면 가좌리와 갈산리를 잇는 고개였는데, 그 위쪽으로 서해안고속도로가 뚫리면서 과거의 면모를 잃은 듯하다. 서해안고속도로 아래로 난 통로를 통과하여,
잘 꾸며진 주택 앞에서 우틀하여,
고속도로 절개지 옆 나무계단을 오르며 오늘의 마지막 봉우리인 동암산을 향한다.
완만한 오름길을 잠시 따르면, 벤치 쉼터가 있는 173봉이 나타나고,
앞쪽으로 성암저수지와 서산시가 펼쳐진다. 이미 늦어버린 산행길이니, 그냥 계속 쉽시다!
물결모양의 완만한 능선길을 조금 이어가면 동암산 정상을 지나게 된다. <동암산(銅岩山 176.3m)> 충남 서산시 운산면 갈산리와 가좌리의 경계 능선에 있는 산으로, 정상에는 벤치와 체육시설, 그리고 정맥꾼들이 걸어 놓은 표지기들이 주렁주렁 걸려 있다. 동암산 정상의 표지기들.
다정한 연인이 ~~~
좌측에 경주최씨 묘역을 지나,
묘지를 따라 내려서면,
오늘의 목적지인 무르티 고개가 나타난다. <무르티고개> 충남 서산시 운산면과 음암면을 잇는 고개로, 서산에서 당진으로 이어지는 32번 국도가 지나는 곳이다. 663년 백제가 백제의 부활을 위해 부흥운동을 하던 때에, 부흥운동군이 주류성(周留城)에서 패한 후, 그들의 가족들과 같이 최후로 모여 있었던 곳이 '무테'였는데, '무티울', '무르티고개' 등은 바로 "무테"에서 얻은 것이 아닐까 추정 된다. 무르티고개에는 지금은 문을 닫은 '서해컨벤션웨딩홀'이라는 거창한 간판을 단 건물이 있다. 건물 옆에 주차된 우리의 애마에 오르며, 춥고 길었지만 그보다 더한 조망과 행복을 받았던 산행을 마무리한다. 국도 건너편 다음 산행 들머리를 확인해 놓고,
서산시 운산면으로 이동하여 숯가마에 들어가 온 몸을 불태우고,
근처 식당에서,
긴~ 산행의 끝에 있는 희열을 마신다.
~~~ 삽시다!
묵묵히 후미를 지키며 산행한 손 지점장! 수고 많았네^^
식당 앞쪽으로 오늘의 종착지였던 '무르티고개'가 보인다.
뒤풀이를 마치고 서울로 향하는데,
깨어보니 금정이었네!
매섭게 추운 날 새벽에 시작한 산행은 어렵고 힘들어서 그만둘까를 수없이 되뇌며 한걸음 두걸음을 쌓다 보니,
세상에서 나만이 보고 즐긴 풍광과 나만이 느끼고 맛본 무념의 세계! 그래서 나는 캄캄한 밤에 배낭을 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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