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조들은 권주가로 주흥을 즐겼다.
대표적인 권주가는 송강 정철의 ‘장진주사(將進酒辭)’가 아닌가싶다.
‘한 잔 먹세 그려, 또 한 잔 먹세 그려. 꽃 꺾어 산(算) 놓고, 무진 무진 먹세 그려'는 풍류와 멋이 넘친다.
술꾼들이 술 마시는 명분을 만들듯 송강도 술을 즐기는 네 가지 이유, 기주유사(嗜酒有四)를 만들었다.
첫 번째 이유가 불평일야(不平一也)로 마음이 편치 못할 때 마신다.
두 번째가 우흥이야(遇興二也) 흥에 겨워 마시고,
세 번째는 대객삼야(待客三也) 손님 접대를 위해 마신다는 것.
네 번째 이유가 걸작이다. 난거인권사야(難拒人勸四也)로 권하는 잔을 뿌리칠 수 없어 마신다니 핑계치고는 절묘하다.
현실과 이상의 갈등을 술로 달랬던 송강은 46세 때 술을 끊었다.
‘누가 내게 즐기던 술 왜 끊었느냐 묻는다면/ 술에 묘함 있는 줄을 몰라 끊었다고 하리/
내가 어른 된 이후로 지금까지 삼십 년간/ 아침 저녁 시시 때때 술잔 들어 마셨건만/
내 맘 속의 시름 아니 없어지고 그대로니/ 술에 묘함 있다는 말 나는 믿지 않는다네.’
술은 시대의 아픔과 근심걱정을 잠시 잊게 해 줄 뿐 묘약이 아님을 뒤늦게 깨달았다. 권주가는 도도한 취흥의 저변에 한과 슬픔이 서리어 있다. ‘장진주사’도 따지고 보면 술로써 인생무상을 위무한 노래다.
‘명사십리 해당화야 꽃 진다고 설워 마라. 명년삼월 봄이 오면 너는 다시 피려니와 가련하다
우리 인생∼’ 어릴 적 잔치 집에서 많이 듣던 토속적인 권주가도 낭창낭창한 가락 속에 비장함이 스며있다.
‘마시자, 마시자’로 시작되는 베르디의 오페라 곡 ‘축배의 노래’도 신명나는 가락이지만 두 주인공의 엇갈린 운명의 예고다. 술자리가 잦은 12월, 피 할 수 없는 게 건배사다.
돌아가며 한 사람씩 건배사를 하는 자리가 많다보니 은근히 신경 쓰인다.
건배사 모음 책이 있는가하면 건배사를 모은 ‘치어 업 건배사’ ‘스토리 건배사 100’ 같은 스마트폰 응용 앱까지 등장했다. 건배사는 술잔 속에 빛나는 센스다. 유머가 담긴 따뜻한 메시지로 일사불란하게 잔을 부딪치게 만든다는 게 녹록치 않다. 노년들 술자리에서 따끈따끈한 건배사라며 ‘명품백’(명퇴조심, 품위유지, 백수방지)이나 ‘멘붕’(만날 붕붕 뜹시다)을 외치면 “치매 끼 있는 것 아니냐”고 핀잔받기 십상이다.
그렇다고 ‘구구팔팔이삼사’(99세까지 팔팔하게 살다가 이틀만 앓고 사흘 만에 죽자)와 ‘빠삐따’(모임에 빠지지 말고 삐치지 말고 따지지 말자)는 신라시대 건배사로 구닥다리 취급 받는다. 분위기에 걸 맞는 건배사가 어려운 이유다.
인터넷을 검색하다보니 “술잔은 비우고∼”라고 하면 “마음은 채우고”로 화답하는 건배사가 솔깃하게 와 닫는다. 대구(對句)와 운율이 그럴듯하다. ‘마당발’(마주 보는 당신의 발전을 위하여)도 무난해 보인다.
건배사 보다 중요한 건 절주의 미학이다. 흥청망청 마시다보면 이성(理性)이 비틀거리게 마련이다. ‘꽃은 반만 피었을 때 가장 아름답고 술은 적당히 취했을 때 가장 아름답다’는 ‘채근담’의 명구를 되새기며 술자리에 나가자.
-교차로 칼럼 2013년 12월 6일 이규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