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회 2,1-11; 마르 9,30-37
예수님께서는 예루살렘으로 향하시며 이제 많은 군중을 가르치시지 않고 주로 제자들을 가르치십니다. 두 번째로 수난 예고를 하시는데요, “사람의 아들은 사람들의 손에 넘겨져 그들 손에 죽을 것이다.”라고 말씀하십니다.
“넘겨져”(paradidomi)라는 말은 초대 교회가 예수님의 수난을 이해했던 핵심적 단어였습니다. 유다는 예수님을 종교지도자들에게 넘겨주고, 그들은 빌라도에게 예수님을 넘겨줍니다. 또한 빌라도는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으라고 넘겨줍니다. 이렇게 남의 손에 연이어 넘겨지는 것은, 예수님의 지위가 바닥에까지 떨어졌다는 것을 의미하는데, 이는 오늘날까지 많은 의인이 겪는 일이기도 합니다. 사람들이 감히 예수님을 넘겨줄 수 있었던 이유는 로마서에서 바오로 사도가 말한 바와 같이 하느님 아버지께서 우리 모두를 위해 예수님을 내어주셨기, 즉 넘겨주셨기(로마 8,32; paredoken) 때문입니다.
그러나 제자들은 예수님의 말씀을 이해하지 못하고 ‘길에서’ 논쟁을 합니다. ‘길에서’(en te hodo)도 무척 중요한 말인데요, 그리스도 제자의 길이라는 상징적인 의미를 지닙니다. 예수님께서 사람들의 손에 ‘넘겨질’ 것이고 죽을 것이라는 말씀을 하셨음에도 불구하고 제자들은 스승을 따르는 그 ‘길에서’ 누가 가장 큰 사람이냐를 놓고 논쟁합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을 혼내시지 않고 “첫째가 되려면, 모든 이의 꼴찌가 되고 모든 이의 종이 되어야 한다.”고 가르쳐 주십니다. 이어 어린이 하나를 데려다가 그들 가운데 세우십니다. 어린이(paidion)라는 말에는 종(주로 paidiske; 오늘 복음에서는 diakonos)이라는 뜻도 포함되어 있었기 때문에, 자연스레 연결이 됩니다. “이런 어린이 하나를 내 이름으로 받아들이면 나를 받아들이는 것이다.” 당시 아무런 권리가 없는 약한 존재로서 ‘어린이’는 앞에 나온 ‘꼴찌’나 ‘종’과 같은 의미입니다.
저는 신학생 때에 어떻게 해야 꼴찌가 될 수 있을지 자주 고민했습니다. 나중에 첫째가 되기 위해 그런 것은 아니었구요, 다만 예수님께서 자꾸 꼴찌가 되라고 하시는데, 꼴찌가 되기는 참 어려웠습니다. 암만 봐도 제가 중간은 되는 것 같아서요.
그러다가 40일 피정을 하면서 제 밑바닥을 보고 나서는 더 이상 꼴찌가 되기 위해 노력할 필요가 없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왜냐하면 제가 꼴찌라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입니다. 하느님의 은총에도 불구하고 계속해서 넘어지고 반항하고 있는 제 뒤에 아무도 없었고 제 밑에도 아무도 없었습니다. 제가 정말 꼴찌였습니다. 마음이 무척 아프고 하느님께 죄송했지만 해방감이 더 컸습니다. “아! 내가 진짜 꼴찌구나!” 너무나 기뻐서 길 가는 사람 아무나 붙잡고 “그거 아세요? 제가 꼴찌예요.”하고 자랑하고 싶을 지경이었습니다. 무엇이 되기 위해 더 이상 노력할 필요가 없었고, 제가 누구인지만 깨달으면 된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샤를 드 푸코 성인은 “예수님께서 어찌나 낮은 자리로 오셨는지, 아무도 그분보다 더 낮은 자리를 차지할 수 없었다.”고 말씀하십니다. 예수님께서는 사람들 손에 ‘넘겨지셨기’ 때문에 낮은 자리를 차지하셨습니다. 유다의 손에서 종교지도자들의 손으로, 빌라도의 손으로, 사형집행인의 손으로 넘겨지시면서 예수님은 낮은 자리로 향하셨습니다. 마침내 십자가 위에서 예수님은 가장 낮은 자리에 임하시게 됩니다. 십자가형은 너무나 가혹하고 고통스러웠던 형벌이었던 나머지, 로마 제국에 대드는 중죄인이 아니면 함부로 십자가형에 처하지 않았습니다. 예수님께서는 가장 낮은 자가 받는 형벌로 돌아가셨습니다.
그러므로 예수님 제자의 길을 걷는 이는 오늘의 복음 환호송을 마음에 새겨야 합니다. “나는 주님의 십자가 외에는 어떠한 것도 자랑하지 않으리라. 십자가로 말미암아 내게서는 세상이 십자가에 못 박혔고 세상에서는 내가 십자가에 못 박혔노라.”(갈라 6,14) 23년 전 오늘, 제가 사제서품을 받았는데요, 제가 서품 성구로 택한 말씀이 오늘 복음 환호송의 말씀이어서 깜짝 놀랐습니다. 서품 기념일 축하해 달라고 이 말씀을 드리는 것이 아니구요, 첫 마음 잃지 않고 살아가게 해 달라고 기도해주시기를 청합니다. 저의 첫 마음은 바로 오늘 복음 환호송의 말씀입니다.
꼴찌가 되기 위해 노력 중인 분이 계시다면, 계속 노력하시기를 빕니다. 어느 순간 꼴찌임을 깨달으신다면, 축하드립니다. 만일, 원치 않았는데 지금 가장 밑바닥에 있는 것처럼 느껴지신다면, 오늘 1독서의 말씀을 되뇌시길 권해드립니다. “금은 불로 단련되고 주님께 맞갖은 이들은 비천의 도가니에서 단련된다. 질병과 가난 속에서도 그분을 신뢰하여라. 그분을 믿어라, 그분께서 너를 도우시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