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억 속에 추억 더하기
나는 강릉여고를 좋아하지 않았다. 입학하고 얼마되지 않아 바뀐 입시제도 때문에 이 학교를 선택한 것이 후회스러웠다.
하지만 얼마 후 학교 교지 '화부산'의기자를 하게 되면서 학교에 대한 애착이 생겼고 강경옥 만화가의 '별빛 속에'와 '배철수의 음악캠프'를 사랑하는 나와 내 친구들은 야간자율학습(야자) 후 학교 정원에 앉아 밤하늘을 보며 에이스크레커에 커피를 찍어 먹는 게 즐거움이었다.
"함영선!! 영삼씨 왔다 영삼씨..."
야자를 하기 전 주변 하숙집에 월식을 하러가는 무리들이 나의 절친 영선이를 부른다.
하얗고 풍성한 꽃이 활짝 핀 목련나무 밑으로 빡빡머리를 한 자전거에 기대어 창피한 듯 숨기듯이 보온도시락을 들고 여학생들 사이로 수줍게 서있는 남자, 나라를 지키는지 동사무소를 지키는지 모르겠는 그는 방위병이었고.
내 절친 함영선의 오라버니.
그때 여고에는 남학생들이 일 년에 한번 학교 축제 때나 들어와 볼 수 있었던 시절이기에 잘 생기지 않았어도 친구의 오빠라면 누구나 창밖으로 내다보며 흐뭇해 하였을 것이다. 소집해제를 하기 전까지 우리의 힘들고 지루했을 야자시간은 기분 좋은 설레임으로 시작했다.
저녁을 먹지 않고 버스를 타고 시내로 향한 적이 있다.(딱 한 번!)
그날 점심시간에 열 명의 친구들은 어떤 만화책을 고를까 고심하고 고뇌하며 돈을 모으고 읽는 습관과 당번을 뽑는다.
이런 ...뒷 번호 뽑아 기분도 나쁜데 대여 당번까지 걸린 최악인 날이었다.
그래도 야자시간 몰래 앞의 친구가 빨리 읽기를 기다리다 한 권을 받았을 때의 느낌은 롤러코스터 타기 전의 심장의 쿵쾅 거림이랄까?
지금은 없는 세상 그리운 훼미리의 핫도그가 버거킹 버거보다 맛있었고
좌석번호 없는 중앙극장의 영화는 화려한 CGV보다 인간적이었다.
설탕 맛이 진한 학교 자판기 커피가 스타벅스 카라멜마끼야또보다 달콤 했고
목 빠지게 기다려 받아 본 흑백의 만화책은 인터넷 웹툰보다 화려했으며
카세트테이프로 듣던 신승훈 노래가 BTS보다 감미로웠던 그때.
나는 고등학교나 대학교 시절을 그리워하지 않았다. 생각해보면 그리워하지 않은 것이 아니라 내 기억 속의 추억을 꺼내 보지 않았던 것 같다.
전화기 밖에 없던 시절이라도 친구들과 통화하며 수다를 떨었건만 '톡' 한번이면 끝날 요즘 친구와 연락을 해본지가 언제더라?
오늘은 나의 친구들에게 전화를 해야겠다. 그때의 나로 돌아가 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