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십자가복음의 의미 안에 들어있는 0과 1이라는 디지털 기호를 코드로 성경말씀을 풀어내는
태승철의 오늘의 번제 <천사는 전도 안한다>의 줄거리:
천사는 전도 안합니다. 성령님도 직접 전도 하시진 않습니다. 축구팀 감독이 골 넣지 안는 것과 같습니다. 성령님이 사용하시는 사람이 전도 합니다. 그러나 아무나 사용하시진 않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내게서 전도가 이루어지지 않으면 복음의 효능 역시 내 안에서 소멸 된다는 것입니다. 내게서 전도가 이루어지려면, 즉 성령님이 나를 전도를 위해 사용하시려면 어떤 조건이 충족 되어야 할까요?
천사는 전도 안한다
(행11:1~18)
1. 유대에 있는 사도들과 형제들이 이방인들도 하나님의 말씀을 받았다 함을 들었더니
2. 베드로가 예루살렘에 올라갔을 때에 할례자들이 비난하여
3. 이르되 네가 무할례자의 집에 들어가 함께 먹었다 하니
4. 베드로가 그들에게 이 일을 차례로 설명하여
15. 내가 말을 시작할 때에 성령이 그들에게 임하시기를 처음 우리에게 하신 것과 같이 하는지라
16. 내가 주의 말씀에 요한은 물로 세례를 베풀었으나 너희는 성령으로 세례를 받으리라 하신 것이 생각났노라
17. 그런즉 하나님이 우리가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을 때에 주신 것과 같은 선물을 그들에게도 주셨으니 내가 누구이기에 하나님을 능히 막겠느냐 하더라
18. 그들이 이 말을 듣고 잠잠하여 하나님께 영광을 돌려 이르되 그러면 하나님께서 이방인에게도 생명 얻는 회개를 주셨도다 하니라
오늘 우리가 함께 읽은 말씀 중심으로 <천사는 전도 안 한다>라는 제목의 하나님말씀 증거 합니다.
‘천사는 전도 안 한다’
영국에 굉장히 많은 축구팀이 있습니다.
그 중에서 제일 유명한 것이, 박 지성선수가 뛰던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인데, 그 팀에 20년을 넘게 감독직을 맡고 있는 분이 바로 알렉스 퍼거슨이라는 감독입니다.
1999년에 엘리자베스 여왕이 이 알렉스 퍼거슨 감독에게 기사작위를 수여합니다.
이유는 트레블(treble)을 성취했다는 것입니다.
treble이란 프로 축구대회가 3개가 있는데, 그 3개 대회를 모두 다 우승했다는 뜻입니다.
대단한 거지요.
그런데 이렇게 treble을 달성하고, 20년이 넘도록 감독직을 수행하면서,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팀이 치른 경기가 1,000 경기가 넘는데, 이 감독 퍼거슨은 단 한 골도 안 넣었습니다.
이게 감독이에요.
이런 것과 비슷하게, 천사는 전도를 절대 안합니다.
천사 뿐만이 아니에요. 천사가 전도 안하는 것은 그렇다고 해요.
문제는, 우리가 자칫 오해하기 쉬운데, 성령님도 전도 안하십니다.
그리고 진짜 오해하기 쉬운 것은, 사람이 전도한다고 생각하잖아요? 사람도 전도 안합니다.
말씀을 전하라는 말씀이 성경 속에 기록되어 있어요.
또 내 증인이 되리라고도 말씀하셨습니다.
그런데, 실제로 사도행전에 들어와 가지고, 복음이 전달되어지는 과정을 현미경으로 가만히 들여다보니까, 천사가 전도 안하는 것은 물론이고, 성령님도 직접적으로 전도 안하시고, 사람도 자기가 전도하는 게 아니더라는 얘기에요.
지금 고넬료와 관계되는 이야기가 계속되고 있어요.
이 백부장 고넬료에게 천사가 나타나지 않았습니까? 그 얘기가 오늘도 반복되고 있어요.
베드로가 예루살렘에 있는 유대인 교인들에게 자기가 경험한 일들을 보고하는 과정에서, 고넬료 이야기가 다시 나오는데, 천사가 나타나서 고넬료에게 욥바에 있는 베드로를 청해서 구원을 얻을 수 있는 말씀을 들으라고 계시를 하십니다.
전 이게 의문이 가는 거예요.
왜 천사가 나타나서 베드로를 청해서 말씀을 들으라고 할까?
그냥 천사가 곧바로 고넬료에게 복음을 전해주면 되지 않습니까?
하늘에 계신 하나님의 아들인 예수께서 이 땅에 내려 오셨다가, 십자가에 죽으시고 부활하셔서 다시 승천 하셨는데, 네가 그 예수님을 믿으면 구원을 받는다고 천사가 말하면 되잖아요.
왜 천사는 전도하지 않습니까? 베드로를 불러다 들으래요.
성령님도 마찬가지입니다.
빌립이 에티오피아 내시에게 전도하는 과정을 보면, 지금 에티오피아 내시가 이사야서 성경을 읽고 있습니다, 그러면 그 읽고 있는 가운데 이사야서에 나오는 이 고난 받는 자가 바로, 예수 그리스도를 말하는 것이라고 성령께서 왜 직접 이야기를 안 하시는 겁니까?
뭐 때문에 이렇게 복잡한 절차를 거쳐 빌립을 데려다놓고, 빌립으로 얘기하게끔 하는 겁니까?
빌립 또한 에티오피아 내시를 자기가 전도한 것이 아니고 성령에게 이끌려서 왔어요.
베드로도 성령님이 가이사랴에서 사람이 와서 너를 찾으면, 그 사람들을 따라 가라는 계시를 주셔 가지고 그래서 따라 가게 된 겁니다.
그러니까 베드로가 전도한 것도 아니고, 빌립이 전도한 것도 아니고, 성령님이 전도한 것도 아니고, 천사가 전도한 것도 아니에요.
성령께서 사람을 통해서 전하시니까, 사람이 전도한다는 말도 맞기도 하고, 틀리기도 하고.
성령님께서 역사하셔야 전달이 되는 거니까, 성령님께서 전달하신다는 말이 맞지만, 직접 전달하신 것도 아니에요.
결국은 어떻게 얘기할 수 있느냐?
내 안에 받아들여진 복음이 흘러가야 되는 겁니다.
성령님께서 그 복음에 흐름을 부여하십니다.
그 흐름이 막혀 버리면 어떤 일이 일어나느냐.
내게 복음이 들어 왔잖아요?
그런데 내게 들어온 복음이 반드시 흘러가야 되는데, 이 복음의 흐림이 막혀 버릴 때 나타나는 일이, 내 안에 받아들여진 복음의 그 복된 기능과 효과가 다 사라져 버립니다.
약효가 사라진 약, 쓰레기 아닙니까?
그런 것처럼 복음의 효과가 사라져 버리면서 복음 자체가 내 안에서 소멸되어 버려요.
계~속 흘러가야, 타인에게로 계~속 흘러가야, 내게 복음이 효과를 발휘합니다.
다시 말해서, 복음의 흐름이 있을 때 내가 복 가운데 들어가서 살 수가 있습니다.
마치 이런 것과 마찬가지죠.
아버님이 사시던 마을에, 이미 지금 아버님은 고인이 되셨습니다마는, 샘물이 있었어요, 샘물.
그 샘물을 길어 오시곤 하셨는데, 그 마을 사람들이 샘물이 너무 아까우니까 샘물에다가 수도 파이프를 박고 잠가놓았습니다.
그랬더니 어떤 일이 벌어졌느냐? 사람이 마실 수 없는 물이 되었습니다, 균이 들끓게 된 거죠. 그래서 수도 파이프를 다시 빼버리고 흘려보냈습니다.
흘려보냈을 때 다시 마실 수 있는 물로 회복이 되었습니다.
복음이 똑같은 거라는 거예요.
내 안에 들어온 복음이 흐름을 타고 흘러가지 않으면, 복음의 능력과 효과가 내 안으로 계속 흘러 들어오지를 않습니다.
흘러 나가지 않으면, 새롭게 신선하게 복음이 능력을 나타내고, 복음이 효과를 나타내고, 복음이 기능을 발휘하지를 않는 거예요, 내 안에서.
그러면 어떻게 해야 성령님께서 내 안에 들어온 복음이 타인에게로 흘러갈 수 있도록 흐름을 부여할 수 있느냐, 이게 문제라는 거예요.
내가 복음을 받아 들였다 그래서, 무조건 내 안에 있는 복음이 바깥으로 흘러 나가는 게 아닙니다.
내 안에 들어온 복음에 성령님께서 흐름을 부여하실 때, 내가 입을 열고 복음을 말하게 되는 일이 일어나는 거예요.
그러나 내가 복음을 전하겠다고, 의욕을 발동한다고 되는 게 아닙니다.
그럼 나는 뭐하는 거냐?
내 안에 들어온 복음이 성령님에 의해서 흘러갈 수 있도록, 이 복음의 흐름을 방해하는 요소들을 제거해 버리면 되는 거라는 거예요.
그러면 복음은, 우리 인간의 입장에서 보자면, 우리 의욕을 가지고 복음을 전하는 게 아니라, 내 안에 들어온 복음이, 내가 복음이 흘러갈 수 있도록 장애물만 제거하면, 장벽만 깨버리고 나면, 복음은 흘러가게 되어 있습니다.
그러니까 이게 바로 어저께 말한 바나나 전도의 계속인 거예요.
내가 전하는 게 아니라, 내 안에 들어온 복음이 흐름을 타고 흘러가게 되는데, 그 흐름을 부여하신 분이 성령님이시고, 나는 단지 뭘 하느냐 하면, 성령님께서 때를 따라서 장소에 따라서 내 안에 들어온 복음의 흐름을 부여 하실 텐데, 나는 장벽을 제거하면 된다 이겁니다.
그건 내가 해야 되는 일이라는 거예요, 장벽을 제거하는 일.
그게 바로 오늘 본문에 나오는 일에요.
고넬료에게 일어난 경험.
고넬료를 통해서 복음이 이방인에게 전파될 때, 성령님께서 유대인에게 임했던 것과 똑같이 임한다는 경험을 한 베드로의 경험이, 유대에 있는 기독교인들에게 보고가 되면서 어떤 일이 일어났습니까?
유대인 기독교인에게 있어서의 이방인에 대한 생각, 이 장벽이 깨어져 나갑니다.
왜 이 작업이 필요하냐?
베드로가 자기 고넬료에 대한 경험을 이야기할 때, 18절에서 ‘그들이 이 말을 듣고 잠잠하여 하나님께 영광을 돌려 이르되 그러면 하나님께서 이방인에게도 생명 얻는 회개를 주셨도다 하니라’
아마도 말을 그렇게 했을 거예요, ‘아이구! 하나님께서 이방인에게도 이 복음을 듣게 하셨네~ 성령을 부어주셨네~, 그럼 뭐 할 수 없지!’ 이런 마음이 들었을 거예요.
이게 뭐냐 하면, 이방인이 복음을 받아들였음에도 불구하고 복음자체가 유대인 선민에게만 해당되는 것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많이 있었다는 얘기입니다.
그래서 베드로를 비난합니다, 이방인의 집에 가서 함께 먹고 함께 유숙했다고.
그리고 그러면서 복음을 전했다고 비난을 하는 거예요.
이 이방인의 장벽이 깨어져 나간다는 겁니다.
이 본문이 뜻하는 바가 뭡니까?
이게 바로 어저께 말씀드린 바나나 전도에서의 알맹이와 껍데기 이야기가 오늘도 확증적으로 반복되고 있는 거라는 겁니다.
어떻게 해야 내 안에 들어온 복음이 성령님에 의해서 흐름이 주어져서, 흘러나가 타인에게로 흘러 들어갈 수가 있느냐?
장벽을 깨야 된다는 겁니다.
이 장벽은 어떻게 생기는 겁니까? 껍데기 의식에 의해서 장벽이 생긴다는 거예요.
내가 유대인이다, 혈통적으로 유대인의 나라, 유대족속 가운데 태어났다라고 하는 이 혈통, 이 혈통이라는 것은 내 몸과 내 살과 내 피를 형성하는 겁니다.
그러니까 인간이 이 땅에서 살 때 가장 기본적인 것이라 할 수도 있어요, 혈통이라는 게.
껍데기 의식인데 그러므로 이 몸, 살과 피와 뼈로 이루어진 이 몸이 혈통적으로 이해될 수 있는 것이기 때문에, 이 몸이 있기 때문에 생긴 이 모든 게 다 껍데기인 거예요.
이 세상에서 이 몸이 있음으로써 내게 주어지는 모는 것이 다 껍데기라는 겁니다.
이 껍데기 의식이 철폐되어야 복음이 흐름을 탈 수 있고, 복음이 흘러 들어가야 내 이웃도 구원을 얻을 수 있을 뿐만 아니라, 나 자신에게도 복음이 효과를 낸다는 거예요.
복음효과를 낸다는 게 뭡니까?
내 마음이 복음을 받아들일 때 몸이 있기 때문에 접촉할 수 있는 모든 것에 대한 유착상태로부터 떨어져 나오는 겁니다.
그럴 때 내 마음이라는 알맹이가, 몸이 있기 때문에 관계되어지고 접촉하게 되는 모든 것들로부터 떨어져 나와서 하나님께로 드려질 수가 있습니다.
바나나를 우리가 통째로 씹어 먹지를 않고 껍질을 벗겨서 알맹이를 먹듯이, 하나님은 나의 알맹이 마음만 받으십니다.
내 마음이, 이 세상의 그 어떤 것에든지 간에, 아브라함의 경우 백 살에 난 이삭에게 유착이 되어 있으면, 안정된 고향 땅에 유착이 되어 있으면 그 마음을 받으실 수가 없습니다. 그러니 떠나라 하시고, 이삭을 바치라 하시는 겁니다.
알맹이 마음을 받으시게 되면, 그 마음에 천국이 소유되게 되고, 하나님아버지가 아버지로서 소유되게 되고, 거기에 행복과 기쁨이 주어집니다.
이게 바로 복음인 거예요.
이 복음이 계속 효과를 발휘 하려면, 이 복음이 전해져야 된다는 거예요.
흘러나가야 된다는 겁니다.
흘러나갈 때, 성령님께서 흘러나가게 하시는 거예요.
때를 따라 장소를 따라 성령님께서 입을 열어 복음을 말하게 하시니까, 내가 의욕을 부릴 필요가 없는데, 단지 내게 필요한 게 뭐냐 하면, 내게서 알맹이와 껍데기가 구분되었던 것처럼, 타인을 바라볼 때도 알맹이와 껍데기를 구분해서 보라 이겁니다.
이것만 있으면 된다는 거예요.
이것만 있으면 내 안에 들어온 복음이 흐름을 타고 그 사람에게로 들어갈 수 있다는 거예요. 그 사람을 내가 알맹이와 껍데기로 구분해서 보고 있으면…
이게 무슨 얘기일까요?
요즘 이북의 미사일 도발 때문에, 미국도 중국도 일본도 그리고 당사자인 우리 한국, 아주 신경이 곤두서 있습니다.
김 정은이가 만으로 27인가 그렇대요, 정확하게 모르겠지만 30이 안된 걸로 알아요.
물어봅니다, 여러분에게.
기독교인으로서, 이 남한 땅에서 생길 수 있는 대북정책 중에 최고의 정책이 뭐 같습니까?
믿는 사람으로서 한 번 얘기해 보세요, 최고의 정책이 뭐 같아요?
미국과 함께 군사훈련을 하는 겁니까, 중국에 접근해서 중국이 이북보다 우리 쪽을 더 친하게 만드는 겁니까, 경제적인 제재를 가하는 겁니까, 어떤 거라고 생각하십니까?
아니에요, 다.
남한 땅에 있어서 김정은이라고 하는 젊은이를 만날 수도 없고, 얼굴을 볼 수도 없지만, 김정은이라는 그 사람에게서 알맹이와 껍데기를 구분해내는 겁니다.
그러면 자연적으로 김정은을 위해 기도가 나오게 됩니다.
김정은의 마음이 지금, 이북의 공산당의 주석이라고 하는 자리, 이북 공산당의 최고 권력자라는 자리에, 이 껍데기에 불과한 여기에 마음이 유착되어 있습니다.
권력을 유지하려고 합니다.
대내적으로, 대외적으로 자기의 권좌를 공고히 하려고 합니다.
그래서 발버둥치는 과정 중에 미사일 도발을 유발 시킵니다.
안으로는 결집을 원하고, 밖으로는 문제를 터트리면서 안에서의 자기 위치를 공고히 하려는 거예요.
이렇게 껍질에 붙어 있습니다.
이 인간이 지금 알맹이가 껍데기에 유착되어 있어 가지고 악한 일을 하고 있는 겁니다.
이것을 분리를 시켜버리는 것입니다.
저 사람도 내가 그랬던 것처럼, 내가 껍데기에 유착되어 있던 상태에서, 십자가 복음을 통하여 그 유착 상태가 떨어짐으로써 내 마음의 알맹이가 하나님께 도달할 수 있었던 것과 마찬가지로, 지금 저 껍데기, 북한의 최고 권력자라고 하는 저 껍데기로부터 마음이 분리가 돼서 알맹이 마음만 될 수 있으면, 나와 똑같이 그 알맹이가 십자가를 통해서 정화되고 깨끗하게 되고 눈처럼 희어져서 하나님 아버지가 받으실 수 있는 알맹이가 될 수 있는 거예요, 김정은도.
또 아베 수상, 정말 가까이 있으면 꿀밤을 한 대 때리고 싶을 정도로 얄밉게 놀아요, 뭐 안하무인입니다, 안하무인.
역사도 없고, 이웃 나라도 없고 자기 멋대로 말하는 거예요.
그런데 그 사람을 바라볼 때 분리시키는 겁니다.
그렇게 지금 까부는 이유가, 수상 자리라는 껍데기에 붙어있어 가지고, 마음이 유착된 채로 하나님께 드려질 수 있는 마음이, 세상에 묶여서 지금 뒹굴고 있는 건데 자기는 그걸 모르는 거예요.
더러운 자리로, 교만한 자리로, 안하무인 자리로 뒹굴고 있는데 그걸 모르는 겁니다.
그래서 아베 수상을 볼 때, 그 껍데기와 마음의 알맹이를 분리시켜 보는 거예요.
주님께서 막달라 마리아를 치유하시고, 막달라 마리아가 부활하신 예수님을 첫 번째로 만난 1호 그리스도인이 됩니다.
막달라 마리아가 누구에요? 여러분.
창녀라고 그래요, 창녀.
그 타이틀만으로도 인간사회 속에서 그늘로 버려진 인간입니다.
그런데 거기다가 일곱 귀신이 들렸던 사람입니다.
쓰레기도 잠시 방 안에 둘 수 있는 쓰레기가 있고, 잠시라도 방 안에 둬서는 안 되고, 그 즉시 발생 하자마자 밖으로 버려야 될 쓰레기가 있어요.
이것은 반드시 빨리 밖으로 치워 버려야 될 인간쓰레기입니다.
근데 주님께서 그 막달라 마리아를, 껍데기와 알맹이 마음을 분리시켜서 보십니다.
지금 마음이 몸에 유착이 되어 있기 때문에 귀신도 들리고 창녀도 하고 있는 겁니다.
주님을 만나서 막달라 마리아가 몸에서 마음이 분리 됩니다, 유착상태를 떠나게 됩니다.
그리고 부활하신 예수님을 첫 번째로 만나는 제1호 그리스도인이 됩니다.
김태희 씨, 장동건 씨, 바라볼 때 어떻게 바라봅니까?
어떻게 김태희 씨와 장동건 씨에게 우리가 복음을 전할 수 있는 기회를 잡을 수 있습니까? 내 마음의 장벽을 없애야 돼요.
김태희가 예뻐서 톱스타다, 장동건 씨가 잘생겨서 톱스타다.
이 껍데기에서 알맹이를 분리해 놔야 됩니다.
그 잘생긴 외모 때문에 스타로서 군림하고, 많은 사람의 인기를 받고, 세상에서 엘리트적 삶을 살아가고 있지만 껍데기에요, 껍데기에 마음이 붙어 있는 겁니다.
끝까지 자기의 외모에 붙어 있는 상태로 살아간다면 안 된다는 거예요.
분리시켜서 봅니다.
이건희 씨에게 어떻게 내 안에 들어온 복음이, 정말 감히, 이건희 씨에게 ‘나처럼 되세요!’ 라는 말과 함께 복음이 흘러 들어갈 수가 있습니까?
성령님께서 어떻게 내 안에 들어온 복음이 이건희 씨에게 흘러들어갈 수 있도록 흐름을 부여하실 수가 있습니까?
그 많은 재산, 세계적인 삼성그룹이라는, 그 그룹의 회장이라는 자리가 껍데기인 걸 알고, 그 껍데기로부터 이건희 씨의 마음의 알맹이가 분리되어야 산다는 생각을 갖고 이건희 씨를 바라볼 때, 성령님께서 내 안에 들어온 복음이 이건희 씨에게 흘러들어갈 수 있는 흐름을 때를 따라 장소를 따라, 그 때가 되면 부여하시고 흘러들어가게 하실 것입니다.
전도는 내가 하는 것도 아니고, 성령님이 직접 하시는 것도 아니고, 천사가 하지도 않습니다.
성령님께서는 복음의 흐름을 부여하십니다.
내가 막지 말아야 합니다.
막지 않기 위해서는, 사람을 볼 때 십자가를 통하여 분리 되어지는 알맹이와 껍데기를 미리 볼 수 있어야 하고, 내 스스로가 껍데기 의식에 붙잡혀 버리면 복음은 흐름을 상실해 버리고 맙니다.
성령님께서 흐름을 부여하실 수가 없다는 겁니다.
마음 알맹이와 마음 이외의, 이 세상에서 몸이 있기 때문에 주어지고 있는 껍데기를, 나에게서처럼 다른 사람에게서 분리될 수 있다는 가능성을 갖고 사람을 볼 때, 내 안에 들어온 복음은 성령님에 의해서 흐름을 부여받게 되고, 흐름을 따라서 타인에게로 들어갈 수 있게 될 것이고, 그것이 현상적으로 보면, 내가 입을 열어 복음을 전하는 순간이 될 것입니다.
기도하시겠습니다.
하나님아버지, 복음을 받아들이게 돼서 너무 감사합니다.
그러나 이 복음이 흘러 나갈 수 없을 때, 내 안에서 조차도 그 효능이 상실되고 소멸되어버림을 우리가 잊지 않고, 누구를 만나든지 바나나와 같은 존재인 것을 기억하게 하셔서, 복음에 흐름이 부여되고, 복음이 누구를 만나든지 그들에게로 흘러 들어갈 수 있는 복된 전도의 삶이 내 것이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