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왕기상 19 장18절 )
그러나 내가 이스라엘 가운데 칠천인을 남기리니 다 무릎을 바알에게 꿇지 아니하고 다 그 입을 바알에게 맞추지 아니한 자니라
자기 지위를 지키지 아니하고 자기 처소를 떠난 천사(하늘의 사람)를 이미 묵상해 보았습니다. 이번에는 하나님께서 남겨 놓으셨다는 칠천인에 대하여 묵상해 보고자 합니다. 칠천인……무슨 말일까? 칠천 명의 사람들일까? 아니면 칠천 이라는 사람들일까? “칠천인”을 묵상해 봄에 있어서 관건은 일반적으로 우리가 알고 있는 칠천 명의 사람을 하나님께서는 말씀하시는 것인가? 아니면 “칠천”이라는 영적인 사람을 말씀 하시는가? 에 대한 논쟁이 있을 수 있습니다. 저는 칠천 명이라는 사람의 수가 아니라 칠천이라고 하는 영적인 사람을 말하는 것이라고 봅니다. 그래서 이런 관점에서 제가 글을 쓰고 있다고 말씀 드립니다.
우리가 보는 구약 성경은 히브리어로 쓰여진 것을 헬라어로 번역하고 헬라어로 쓰여진 것을 영어로 번역하고 영어로 번역한 것을 중국어인 한문으로 번역하고 한문으로 번역한 것을 한글로 번역한 것을 우리가 보는 한글 성경입니다. 저는 처음에는 한문 칠천인이 한문 七天人 인줄 알았으나 七千人 이었습니다. 하늘천(天)이 아니라 일천천(千)이었습니다. 이상해서 무엇을 千(일천천)으로 번역 하였는지 보았습니다. 히브리어 에레프(알레프,알렙)를 한문 성경에서 七千으로 번역한 것이고 한글로 번역할 때에 “칠천인”이라고 번역한 것입니다. 그렇다면 이 번역이 바른 번역일까요? 히브리어 에레프(알레프,알렙)는 히브리어 알파벳의 첫 글자로서 황소 머리 모양의 알파벳으로 주인을 본받고 배우는 것을 의미하는 단어 입니다. 이를 숫자로 표시한다면 “일천”이라는 수로도 합니다. 그러므로 수로 보기보다는 하나님을 본받고 배운 사람으로 보는 것이 보다 더 원어에 합당한 번역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히브리어 에레프(알레프,알렙)를 한문 하늘천(天)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일천천(千)으로 번역함으로 우리로 하여금 사람의 수인 칠천인으로 이해하게 한 것입니다.
(창세기1장26절-27절)
(26)하나님이 이르시되 우리의 형상을 따라 우리의 모양대로 우리가 사람을 만들고 그들로 바다의 물고기와 하늘의 새와 가축과 온 땅과 땅에 기는 모든 것을 다스리게 하자 하시고
(27)하나님이 자기 형상 곧 하나님의 형상대로 사람을 창조하시되 남자와 여자를 창조하시고
(요한 계시록14장1절-5절)
(1)또 내가 보니 보라 어린 양이 시온 산에 섰고 그와 함께 십사만 사천이 서 있는데 그들의 이마에는 어린 양의 이름과 그 아버지의 이름을 쓴 것이 있더라
(2)내가 하늘에서 나는 소리를 들으니 많은 물 소리와도 같고 큰 우렛소리와도 같은데 내가 들은 소리는 거문고 타는 자들이 그 거문고를 타는 것 같더라
(3)그들이 보좌 앞과 네 생물과 장로들 앞에서 새 노래를 부르니 땅에서 속량함을 받은 십사만 사천 밖에는 능히 이 노래를 배울 자가 없더라
(4)이 사람들은 여자와 더불어 더럽히지 아니하고 순결한 자라 어린 양이 어디로 인도하든지 따라가는 자며 사람 가운데에서 속량함을 받아 처음 익은 열매로 하나님과 어린 양에게 속한 자들이니
(5)그 입에 거짓말이 없고 흠이 없는 자들이더라
(요한계시록13장15절-8절)
(15)그가 권세를 받아 그 짐승의 우상에게 생기를 주어 그 짐승의 우상으로 말하게 하고 또 짐승의 우상에게 경배하지 아니하는 자는 몇이든지 다 죽이게 하더라
(16)그가 모든 자 곧 작은 자나 큰 자나 부자나 가난한 자나 자유인이나 종들에게 그 오른손에나 이마에 표를 받게 하고
(17)누구든지 이 표를 가진 자 외에는 매매를 못하게 하니 이 표는 곧 짐승의 이름이나 그 이름의 수라
(18)지혜가 여기 있으니 총명한 자는 그 짐승의 수를 세어 보라 그것은 사람의 수니 그의 수는 육백육십육이니라
이런 맥락에서 창세기1장26절-27절의 말씀은 짐승인 우리를 가르쳐 칠천인의 사람을 만드는 것을 말씀 하시는 것이고 요한 계시록14장1절-5절의 말씀은 하나님의 가르침이 마쳐진 사람을 말하는 것입니다. 즉 칠천인(일곱째 날, 하늘의 사람)을 말하는 것이고 이를 다른 말로 하면 백 사십사 천(십사만 사천) 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왜 백 사십사 천 이냐고요? 원어에는 그렇게 쓰여져 있습니다. 이 또한 영적인 숫자를 아라비아 수로 보고 백사십사 천을 수로 표시해서 십사만 사천(144,000)으로 번역한 것입니다. 칠(일곱)천(날,하늘)이라는 사람을 칠(일곱)천(명)의 사람을 말하는 것으로 번역한 것과 같은 우를 범한 것입니다.
아합왕 때에 갈멜산에서 백성들이 보는 가운데 엘리야가 바알 선지자 사백 오십인과 아세라 선지자 사백인과의 영적 전쟁에서 이겼음에도 불구하고 아합왕이 엘리야마저 죽이려고 하고 백성 들은 수수방관 하자 광야로 도망하여 숨자 하나님이 엘리야를 찾아오셨을 때 여호와의 선지자가 자신만 남았는데 자신마저 아합왕이 죽이려고 한다고 하자 하나님께서 엘리야에게 하신 말씀이 내가 이스라엘 가운데 칠천인을 남기리니 다 무릎을 바알에게 꿇지 아니하고 다 그 입을 바알에게 맞추지 아니한 자니라 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그래서 이번에는 무릎을 바알에게 꿇지 아니하고 다 그 입을 바알에게 맞추지 아니한 자에 대하여 묵상해 보겠습니다. 바알은 남자인 우상신입니다. 성경에서의 남자는 말씀(씨)을 가르치(뿌리)는 사람입니다. 그러므로 무릎을 바알에게 꿇지 않았다는 것은 바알(가르치는 남자)을 숭배하지(섬기지) 않은 것을 말합니다.
그 입을 바알에게 맞추지 아니한 자라는 말은 바알이 가르친 말이 하나님의 말씀이라고 공감하지 않았다는 의미입니다. 그런데 여러분은 어떻습니까? 가르치는 목사나 신부의 가르침에 공감하여 그들이 어디로 인도하든지 따라가고 있지 않습니까? 짐승의 인을 맞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목사나 사람은 하나님(영)이 아니지 않습니까? 그러므로 짐승의 표 육백육십육의 인을 맞는 것입니다.
반면에 다 무릎을 바알에게 꿇지 아니하고 다 그 입을 바알에게 맞추지 아니한 자인 칠천인(七天人)은 백사십사 천이라는 하나님의 인 맞은 사람은 말하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백사십사 천의 인 맞은 사람은 어린 양이 어디로 인도하든지 따라가는 자며 사람 가운데에서 속량함을 받아 처음 익은 열매로 하나님과 어린 양에게 속한 자들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을 본 받고 배운 자들이라는 말입니다.
(창세기3장1절)그런데 뱀은 여호와 하나님이 지으신 들짐승 중에 가장 간교하니라 뱀이 여자에게 물어 이르되 하나님이 참으로 너희에게 동산 모든 나무의 열매를 먹지 말라 하시더냐
사람이 어떻게 짐승이냐고요? 여러분은 말하는 뱀을 본 적이 있나요? 당연히 없겠지요? 저는 너무나 많이 보이는 데요? 어떻게 된 것일까요? 만일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이 하나님께서 창조 하신 세상과 같다면 태초에도 지금도 뱀이 말하고 다녀야 합니다. 뱀도 뱀의 말을 한다고요? 아멘 입니다. 그렇다면 하와도 뱀이겠네요. 뱀의 말을 알아듣고 공감하여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열매를 따 먹었으니까요? 저의 말이 지나친 가요?
저는 어떤 사람의 영이 뱀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에덴 동산에서 하와를 가르친 사람이 뱀의 영을 가진 사람이라는 말입니다. 그리고 열왕기상 19 장18절에서 말하는 칠천인이 아닌 무릎을 바알에게 꿇고 그 입을 바알에게 맞추는 자라고 할 것입니다 왜냐하면 바알(뱀)이 인도하는 대로 어디든 가는 자이기 때문입니다. 반면에 칠천인은 무릎을 바알에게 꿇지 아니하고 다 그 입을 바알에게 맞추지 아니한 자
인 하나님을 본받고 배워서 백 사십사 천의 인 맞은 자인 여자와 더불어 더럽히지 아니하고 순결한 자로서 어린 양이 어디로 인도하든지 따라가는 자며 사람 가운데에서 속량함을 받아 처음 익은 열매로 하나님과 어린 양에게 속한 자들이고 그 입에 거짓말이 없고 흠이 없는 자들이기 때문입니다.
첫댓글 칠천인....
칠천명의 사람이 아니다.
일곱째 하늘의 사람이다.
하늘이 일곱이라고?
질문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여기에서 하늘은 우리가 생각하는 하늘이 아니다.
하나님을 본받고 배우는 하늘을 말하는 것이다.
이를 성경응 창세기 1장에서 일곶날의.창조로 말씀하고 있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