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와 창작 노트
1. 독자의 신뢰를 얻어내지 않으면 안된다.
작가가 자신의 작품을 통해 독자와 만남에 있어 가장 중요한
것은 그 독자로부터 신뢰를 받는 일이다. 독자에게서 신뢰를
얻어내기 위해선 이야기를 보다 실감나게 할 수 있는 정보나
지식을 풍부히 하지 않으면 안된다. 독자가 다 아는
이야기로서는 신뢰는커녕 그 작품을 끝까지 읽게 만들기도
힘들다.
독자는 작품을 손에 넣는 순간부터 작가를 단순한
이야기꾼으로 생각지 않고 만능의
철학자,사상가,사학자,사회학자로 생각하는 법이다. 이때 작가가
할 일은 자신을 그처럼 대단하게 생각하는 독자에게 실망을
줘서는 안된다는 것이다.
이문열은 독자들의 지적인 욕구를 적절한 방법으로 만족시킬
줄 아는 탁월한 작가다. 장편 <황제를 위하여>나 중편
<금시조>등을 읽고 어찌 이 작가를 신뢰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이 작가의 엄청난 독서의 축적이 그러한 신뢰를 얻어내는 바탕이
되었다. 자신의 축적된 독서지식을 자신이 쓰는 소설에 적절히
이용할 줄 알아야 된다. 그것은 취재의 치열성과 이미 얻은
재료의 적절한 배분과 그 활용에 달렸다.
작가의 능청스러움, 시치미떼기, 현학적이면서도 결코
얕보이지 않는 가히 전문가다운 의연함- 그런것이 모두 작품을
쓰기 위해 작가가 취재에 기울인 노력과 결과로서의 재료의 양과
가치에 비례한다.
2. 취재의 열성, 정보와 지식에 의해 소설은 숨쉰다.
유재용은 그의 중편 <달빛과 폐허>를 쓰기 위해
<철원군지>,<한국고고학개론>,<한국의 살림집>을 구입해다
읽었다. <군지>는 작품의 배경이 되는 민통선 안쪽 철원 땅을
실감나게 그리기 위해서였고, <한국고고학개론>은 사적 탐사반에
끼어 민통선 북방에 들어가는 작중인물에게 철원지방의 선사시대
역사지식을 불어넣기 위해서였다. <한국의 살림집>은 작중화자의
증조부가 옛날 유명한 대목을 들여 집을 짓던 장면을 재현하기
위해서도 한국 전통가옥의 발전사와 그 구조 등을 알아야했던
것이다.
필자의 졸작 <아베의 가족>에서 미국에 이민간 사람들의
생활을 그리기 위해 <미군과의 20년>,<코메리컨의 낮과
밤>,<미국에 산다> 등 세권의 책을 사서 읽었다. 미국에
안가고도 간것처럼 능청을 떨자니 그 방법밖에는 없었다.
취재는 열심히 그리고 넓고 깊이 할수록 좋다. 풍부하고
다양하게, 확실하고 정확하게, 심증이 아닌, 실증할 수 있는
분명한 사실을 취재할 일이다. 별것아닌 실수로 독자에게서
신뢰를 잃어선 안된다. 소설이 거짓말 이야기이되 사실 이상의
진실된 세계의 창조라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서라도 그 방면의
정보와 지식을 갖춰 전문가나 다름없는 식견으로 독자를
압도하지 않으면 안된다.
소설을 쓰려는 당신은 들꽃 이름 하나라도 제대로 쓰기 위해서
생물도감이나 들꽃에 관한 책을 가까이해야 한다.
3. 창작노트= 당신의 가능성,좋은소설을 쓰겠다는 당신과의 약속
어떤 공책을 이용하든 창작노트는 당신 기억의 창고이며
상상력에 불을 당기는 가스라이터이다.
고원정은 메모광이다. 수시로 메모된 카드를 어느날 구상중인
작품별로 분류,정리한다. 그 카드를 정리하는 단계가 바로
구상이 완료되는 시점이다. 그의 집필 속도가 비교적 빠른것도
이미 정리된 카드 속 내용이 그대로 원고지에 옮겨지기
때문이다. 그는 단편 한편을 쓰기 위해 30-40장 정도, 중편의
경우 1백장의 메모된 카드가 필요하단다. <빙벽>을 위해서
독서카드에 메모된 분량은 약3천장이며 계속 취재, 메모중이다.
또한 당신의 일기장, 그보다 좋은 창작노트는 없다. 독서가
버릇이듯 창작노트를 신봉하는 버릇 기르기를 작가수업의 신조로
새겨둘 일이다.
출처:아이나이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