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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의 경륜을 소개합니다(2)
1. 하나님의 경륜을 소개하다
2. 하나님의 경륜은 하나님의 뜻(계획)이다!
3. 하나님의 경륜에 대한 ‘지방교회’의 견해
4. 구속사적 관점에서 본 하나님의 경륜을 재고함
5. 나가는 말
1. 하나님의 경륜을 소개하다
나는 지난 2016년 2월부터 10주 동안 ‘하나님의 경륜’에 대하여 설교를 했다.
그리고 2021년 1월 이 설교를 책으로 출판했다. 제목은 동일하다: ‘성경이 보여주는 위대한 서사시, 하나님의 경륜’.
나는 2017년 9월 ‘하나님의 경륜을 소개합니다(1)’라는 글을 써서 위 내용을 종합적으로 정리했다.
나의 책은 설교집을 묶은 것이기 때문에 다른 사람들이 하나님의 경륜을 어떻게 이해하는지에 대하여 소개하지는 않았다. 이유는 먼저 이 용어, ‘하나님의 경륜’이라는 말 자체도 생경한데 다른 진영의 사람들의 생각을 소개한다는 것은 더욱 어려운 이야기가 될 수 있겠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다른 사람들의 생각을 헤아리기 전에 먼저 나 자신부터 개념을 명확하게 정리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이제 출판을 앞두고 생각해 보니, 다른 사람들은 ‘하나님의 경륜’을 어떻게 생각하는지 찾아보고 나의 생각과 비교해 보는 것이 좋겠다. 돌이켜 보면, 내가 처음 이 주제를 10주 동안 설교하고 그 이후로 계속 이 용어를 말하고 더 나아가 교회의 목표로 정하고 이 주제를 굳게 붙잡았을 때 교우들은 매우 낯설어 했다.
2. 하나님의 경륜은 하나님의 뜻(계획)이다!
하지만 하나님의 경륜은 하나님의 계획이다. 에베소서 3장 9절에 나오는 ‘하나님의 비밀의 경륜’에서 경륜(經綸)이라는 단어는 헬라어로는 오이코노미아(oikonomia)인데, 이를 ‘계획’으로 번역한 성경은 공동번역, 새번역, 현대인의성경이다. 영어성경은 이 단어를 administration(경영, 통치: NIV, NASB)이나 plan(계획: RSV, NLT)으로 번역했다. 킹제임스성경(KJV)은 독특하게 경륜이라는 말을 fellowship(교제)라고 옮겼다. 나는 ‘하나님의 경륜’을 하나님의 마스터플랜(God’s Master Plan)이라고 옮겼다. 이 세상을 경영하시는 하나님에게는 청사진(靑寫眞, blueprint) 같은 것이 있을 것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우리는 성경을 통해 하나님의 뜻을 배우는 사람들이다. 성경은 하나님의 뜻을 우리에게 계시하여 준다. 예수님도 하나님의 뜻을 구하라고 하셨고 그렇게 하나님의 뜻을 실현하는 삶 가운데 하나님의 나라가 임한다고 가르치셨다. 예수님은 아예 하나님의 뜻을 행하는 것을 자신의 양식으로 삼으셨다고 말씀하셨다(요 4:34). 얼마나 예수께서 하나님의 뜻을 진지하게 생각하셨는지를 보여주는 대목이다.
나는 청년 시절에는 ‘하나님의 뜻을 분별하는 법’에 대한 책을 읽었다. 신앙을 진지하게 생각하던 시절, 나를 향한 하나님의 뜻이 무엇일까 매우 궁금했다. 때로는 신령하다는 은사자들에게 하나님의 뜻을 알려 달라고 기도를 받으러 다니기도 했다. 삶에 예기치 않은 재난이 닥쳤을 때 나는 하나님의 뜻을 버리고 다른 길로 가는 바람이 이런 일이 일어난 것은 아닌가 하고 속으로 두려워했다.
그 후 신학교에 입학하여 신학을 배우면 하나님의 뜻에 대하여 좀 더 명확하게 이해할 수 있으리라 생각했다. 하지만 그렇지 않았다! 목회자로서 나는 어떤 사역을 해야 하고 어떤 말씀을 전해야 하는지 확신이 서지 않을 때가 많았다. 하나님의 뜻은 언제나 나에게 안개와 같은 것이었다. 그래서 나는 전도서에 나오는 지혜자의 말처럼 ‘사람은 장래의 일을 알지 못하며’(전 10:14)는 ‘하나님이 사람에게 장래의 일을 알지 못하게 하셨다’(전 7:14)는 말씀에서 위로를 얻기도 했다. 나는 하나님의 뜻을 나의 미래에 대한 하나님의 계획으로 생각하는 면이 많았다. 어릴수록 자기중심적으로 사고하기 마련이다.
그러다가 나는 새로운 그림을 발견했다. 그것은 ‘하나님을 경험하는 삶’(하경삶, 헨리 블랙커비)이라는 책에 그려진 커다란 도표였다.
이 그림에서 굵고 곧게 뻗은 화살표는 온 세상과 모든 시대를 관통하는 하나님의 영원한 뜻을 의미한다고 생각했다. 사람의 과제는 하나님을 설득하여 나의 뜻을 이루는데 있지 않고, 하나님의 뜻을 이해하고 나를 설득하여 나의 생각을 하나님의 뜻에 맞추는 것이다. 이 그림은 하나님의 경륜이 어떤 의미인지를 보여주는 가장 멋진 그림 중 하나라고 나는 생각한다.
나는 오랫동안 ‘하나님의 뜻’을 알고자 하기보다는 ‘나를 향한 하나님의 뜻’을 알려고 했던 것 같다. 나만 그런 것 같지 않다. 내가 하나님의 경륜을 소개할 때 상당히 많은 사람들은 공감하지 않은 것 같았다. 지금 당장 급한 문제와 마음의 불안 등에 붙들리면 차분히 하나님 앞에서 그분의 뜻을 생각해 볼 여유가 없을 것이다.
3. 하나님의 경륜에 대한 ‘지방교회’의 견해
나는 기본적으로 하나님의 경륜을 ‘이 세상을 위한 하나님의 계획’이라고 생각한다. 하나님이 만드신 것은 ‘하늘과 땅’이다. 하늘과 땅은 성경이 피조세계 전체를 언급할 때 사용하는 표현이다. 그래서 하늘과 땅은 곧 이 세상을 가리키는 말이다. 그러면 ‘새 하늘과 새 땅’은 새로운 세상(new world), 또는 새롭게 지음 받은 세상이라는 말이다.
하나님의 모든 관심사는 하나님이 만드신 이 세상에 있다고 나는 확신한다. 시편 기자는 이렇게 노래했다: “땅과 거기에 충만한 것과 세계와 그 가운데에 사는 자들은 다 여호와의 것이로다” (시편 24:1). 하나님은 ‘이 세상’이 아닌 ‘저 세상’에 관심을 가지신 분이 아니다. 하나님은 언제나 자신이 지으신 이 세상에 관심을 기울이신다. 그리고 그것을 돌보시고 가꾸시며 새롭게 하시려고 끊임없이 일하고 계신다(요 5:17). 이 세상이 모두 자기 것이기 때문이다. 그런 이유로 하나님이 세상을 그토록 사랑하시는 것은 당연하다! (사람만 사랑하시는 것이 아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경륜은 이 세상을 지으신 하나님의 이 세상에 대한 경영 원론(principles of administration)이다. 경영학 원론(principles of business administration)이 기업 경영에 대한 이야기라면 하나님의 경륜은 하나님이 이 세계를 어떻게 경영하시는가에 대한 이야기라고 할 수 있다. 그리고 성경이 그것을 말한다고 나는 생각한다. 그러므로 성경 전체의 이야기는 이 세상을 경영하시고 통치하시는 하나님의 활동에 대한 이야기다. 그래서 나는 책 제목을 ‘성경이 보여주는 위대한 서사시, 하나님의 경륜’이라고 정했다.
하나님의 경륜이라는 말을 가장 먼저 사용한 사람은 사도 바울이지만(엡 3:3, 9: 딤전 1:4), 오늘날 이 용어는 그리스도인들이 자주 사용하는 말은 아니다. 이 용어를 가장 많이 사용하고 중요하게 여기는 그룹은 ‘지방교회’(local church)다. 지방교회는 워치만 니(Watchman Nee)와 위트니스 리(Witness Lee)에 의해 창시된 기독교 단체다. 지방교회가 가르치는 하나님의 경륜은 ‘주의 회복’(The Lord’s Recovery)이다. 여기서 말하는 회복이란 사탄에 의해서 상실된 것을 회복하는 것이다.
지방교회에서 말하는 하나님의 경륜은 ‘하나님 자신을 사람 속에 공급하여 사람을 회복하는 계획’이다. 하나님이 사람 안에 자신을 공급하시기 위해 삼위일체로 계신다. 지방교회는 삼위일체를 삼일성(三一性)이라고 부르는데, 이는 하나님의 사랑이 아들의 은혜 안에서 성령의 교통을 통해서 사람에게 부어진다는 말이다(고후 13:13). 그렇게 해서 사람의 영 안에 하나님이 충만하게 거하시면 그의 혼과 양심에 하나님의 생명이 증가한다. 그 결과 사람은 회복되어 예수님의 모습과 같아지는 수준으로 성장하게 된다. 지방교회는 예수님의 성육신도 ‘하나님의 아들이 사람이 되심은 사람을 하나님과 같게 만들기 위함’이라고 가르친다.
참고:
이와 같이 ‘회복’을 중요하게 여기는 지방교회는 하나님의 나라(왕국)를 하나님의 다스림이 표현되는 곳이라고 이해한다. 그리고 그런 하나님의 나라는 본래 예수님 안에만 있었는데, 사람이 회개하고 예수님을 영접하면 사람의 영 안에 하나님의 영이 들어와서 사람 안에 하나님의 나라(왕국)가 임한다고 믿는다. 이렇게 보면, 지방교회가 생각하는 하나님의 나라는 사람의 인격 안에 있다. 그리고 그 인격들이 모인 교회가 하나님의 나라가 되며, 그것이 완성되면 새 예루살렘이 된다.
나는 한 때 워치만 니의 글을 읽었다. 청년 시절, ‘영에 속한 사람’이라는 책은 기독교 서점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필독서 같은 것이었다. 그의 대표적인 책, ‘정상적인 그리스도인의 생활’(The Normal Christian Life)은 그리스도 안에서 새롭게 된 자신을 알지 못하고 비정상적으로 불안해하고 율법주의적인 삶을 사는 사람들에게 무엇이 정상적인 그리스도인의 삶인지를 일깨워주려는 책이다.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그 책에서 위안을 받았던 까닭은 그만큼 불안해하는 신앙인이 많았다는 뜻이다.
내가 좋아했던 작가 프랭크 바이올라(Frank Viola)도 워치만 니의 책을 읽고 많은 감화를 받았다고 한다. 프랭크는 자신의 블로그에 워치만 니의 서적들을 별도로 소개한다. 프랭크의 블로그(Beyond Evangelical)는 기독교 웹사이트 중에 상위 블로그 10위 안에서 자주 볼 수 있다. 워치만 니의 서적들은 나의 선배 목회자들의 서고에서 흔히 볼 수 있었다. 그의 가장 큰 공헌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서도 자신이 어떤 존재인지, 자신이 얼마나 안전한지, 그리고 자신이 얼마나 부요한지를 알지 못하여 고민하는 사람들에게 영적인 정체성과 그리스도인이 물려받은 영적인 유업을 파악할 수 있게 한 점이다.
하지만, 지방교회가 말하는 하나님의 경륜, 하나님의 나라(왕국), 그리고 구원은 사람의 영혼과 교회에 국한되는 측면이 강하다. 그 가르침은 사람들에게 영적인 것을 일깨워주는 장점이 있지만 이 세상의 가치와 삶의 고귀함에 대하여 바르게 평가할 수 있는 눈을 가로막는 장애물이 될 수 있다고 나는 우려한다. 사실 나의 청춘 시절에 신앙에 심취하여 세상에서의 삶을 편협하게 바라보게 된 원인이 바로 그런 가르침 때문이라고 나는 되돌아본다.
지상과 천당, 육체와 영혼, 세속과 거룩, 세상과 교회, 육신적인 것과 영적인 것으로 모든 것을 나누어 바라보며 전자는 열등하고 후자가 더 중요하다는 생각이 있다. 오늘날 이런 사상을 이원론(二元論, dualism)이라고 부른다. 가장 대표적인 이원론은 영지주의(靈知主義 Gnosticism)다. 지방교회는 영지주의를 배격한다고 주장하지만 사람의 영혼에 하나님의 나라(왕국)이 임함으로 회복이 일어나며, 그 회복을 위해 하나님이 자신을 사람에게 분배하여 주는 것을 하나님의 경륜으로 이해하는 그 주장이 지방교회의 편협한 생각을 잘 보여준다.
사실 나는 오랫동안 이런 생각에 깊이 심취해 있었다. 그래서 오로지 교회 중심의 삶을 최고의 가치로 여기고 살았다. 그 결과 이 세상에서 한 인간으로 가치 있게 사는 삶을 매우 편협하게 생각했다. 지구와 환경과 정치와 과학, 학문활동, 경제활동, 그리고 문화활동 등에 다양한 인간의 활동에 대하여 정당한 가치를 부여하지 못하고 오로지 천당에 들어가는 것, 영적인 사람이 되는 것, 그리고 교회를 성장시키는 것, 선교에 동참하는 것을 지상 최고의 목표로 여기고 살았다. 이것은 지금의 기독교회가 반드시 극복해야 할 ‘신앙의 인식지체현상’이다. 학계에서는 이런 현상의 원인이 근본주의적 신학에 있다고 평가한다. 하나님이 경영하시는 것이 단지 사람의 영혼이나 교회뿐이겠는가! 하늘은 하나님의 보좌요 땅은 그의 발등상이 아닌가!
나에게 좀 더 넓은 시야를 가질 수 있게 도와준 이가 톰 라이트(N. T. Wright)다. 그의 글을 읽으면서 나는 얼마나 내가 편협한 생각에 갇혀 있었는지 깨닫기 시작했다. 이 모든 오류의 시작은 ‘하나님 나라(천국)’에 대한 오해에서 비롯되었다. 다음의 글들은 나의 독서 여정과 그 과정에서 깨닫게 된 것을 정리한 것이다.
참고:
4. 구속사적 관점에서 본 하나님의 경륜을 재고함
하나님의 경륜이 성경 전체를 관통하는 하나님의 계획이라면, 성경을 읽을 때 지침이 되는 관점을 제공하는 것도 될 것이다. 성경을 어떻게 읽을 것인가에 대하여 수많은 주장들이 있다. 나는 신학대학원(M.Div)에서 이런 말을 들었다: ‘그리스도인들은 구약성경을 유대인들과는 다른 관점으로 읽는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구약성경을 Christian Old Testament라고 불러야 한다.’ 나와 동기들이 존경해 마지않는 장국원 교수로부터 나는 이 말을 들었다.
구약성경은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이야기라는 말씀은 요한복음에서 발견된다(요 5:39). 예수께서는 제자들에게 자신의 고난과 부활에 대해서 구약성경이 미리 말씀하고 있다고 풀어 주셨다(눅 24:27). 사도들의 설교와 복음서가 소개하는 예수님의 이야기를 보면 구약성경의 인용이 매우 자주 나타난다. 그들은 복음을 전할 때, 예수님의 사건이 구약성경에서 미리 예언된 것이며 그 예언대로 모든 일이 이루어졌으며, 자신들이 이 일에 증인이라고 말했다. 그것은 나사렛 예수가 하나님이 약속하신 그리스도시라는 것을 증거하는 방식이었다.
바울의 글을 보면 하나님이 이 모든 것을 창세 전에 미리 정하셨다고 한다(엡 1:4~5). 신약성경 전체는 기본적으로 유대인들에게 예수 그리스도의 이야기를 소개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구약성경을 인용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성경을 통해서 하나님의 구원이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어떻게 이루어지는지를 설명하려는 것이다. 여기서부터 자연스럽게 ‘구속사적인 성경해석’이 나온다. 즉, 하나님이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세상을 구원하시는 계획이 창세기부터 어떤 방식으로 미리 제시되었는지를 파악하려는 관점으로 구약성경을 읽는 것이다.
사도들의 메시지를 읽으면서 우리는 하나님이 어떻게 그 언약을 신실하게 성취하셨는지를 깨닫는다. 그런 깨달음은 우리에게 하나님의 인자와 긍휼에 대한 감사를 낳는다. 구약성경에서 예수님에 대한 이야기가 어떻게 미리 예표되었는지를 사도들의 글에서 읽으면서 우리는 자연스럽게 구약성경을 읽을 때 그런 증거들을 찾으려고 노력하게 된다. 그러다 보면 억지로 꿰어 맞추는 일들도 발생한다. 그런 일이 있을 때마다 우리의 이성에는 불편한 주름이 생긴다.
나는 장국원 교수가 신학생들인 우리들에게 Christian Old Testament라는 말을 한 까닭을 생각해 보았다. 그것은 구약성경을 읽을 때 그저 학문적으로만 접근하여 유대인들과 같이 되지 말라는 충고가 아니었나 생각해 본다. 독일에서 신학공부를 하신 분으로서 우리를 위하여 그런 말씀을 하셨다고 나는 이해한다. 하지만 동시에 모든 것을 예표론적 알레고리로만 이해하려 들면 성경이 우리의 길을 안내하는 길에 큰 제한을 두는 셈이 될 것이다. 정작 장국원 교수 자신은 고대근동학에 전문가로서 성경을 다양한 각도에서 생각해 보도록 우리에게 자극과 감동을 주었다.
나의 이성의 얼굴에 생긴 주름을 미소로 바꾸어 준 학자는 톰 라이트다. 그가 소개하는 성경의 역사는 5막으로 이루어진 드라마다. 그것은 창조, 타락, 이스라엘, 예수, 그리고 교회로 이루어진 서사시다. 그의 책, ‘성경과 하나님의 권위’에서 톰 라이트는 예수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을 이스라엘 이야기의 절정으로 소개한다. 어떤 열성적인 신자는 그의 책을 세세하게 정리했다. 그 책을 읽으면서 나는 비로소 성경에서 불연속성과 연속성이라는 두 가지 상반된 관점을 아우르는 새 관점을 갖게 되었다. 또한 세대주의적으로 시대를 구분하여 각 시대마다 다른 얼굴을 보여주는 하나님에 대한 이상한 이야기를 바로잡을 수 있게 되었다.
특히 톰 라이트의 글에서 좋았던 점은 이원론적인 염세사상을 극복하고 하나님이 아름답게 지으신 세상을 관리하고 다스려 다시 충만하게 하는 대리인으로 살아갈 꿈을 가지게 된 것이다. 그 꿈은 천상에 올라가서 누릴 세상에 대한 꿈이 아니라 지금 여기에서 누리는 삶의 행복과 보람이며, 주님이 다시 오셔서 장차 만물을 새롭게 하시는 날 우리가 물려받게 될 새로운 세상에 대한 기대를 말한다.
로마서에서 사도 바울은 복음의 가치를 언급하면서 유대인들이 하나님의 뜻에 대하여 어떤 오해를 했으며, 아브라함이 어떻게 의롭다하심을 받았는지 설명했다. 나아가 바울은 창세기의 아담에까지 그 기원을 찾아 예수 그리스도의 삶과 사역을 설명했다. 그리고 율법의 본래 기능을 바르게 이해하지 못한 사람이 겪게 되는 고통과 성령 안에서 그리스도인이 하나님의 사랑과 은총 안에 살아가는 비결을 소개한다. 그리고 동족인 유대인들에게 대한 권면과 희망을 피력한다. 이토록 심오한 글을 쓴 다음에 사도 바울은 이렇게 소감을 말한다: “깊도다 하나님의 지혜와 지식의 풍성함이여, 그의 판단은 헤아리지 못할 것이며 그의 길은 찾지 못할 것이로다”(로마서 11:33).
5. 나가는 말
본래 나는 신학적인 글을 쓰려고 한 것은 아니었다. 성경을 더 바르게 이해하려는 마음뿐이었다. 나는 신학자도 아니며, 박사학위도 없다. 다만, 어린 시절부터 성경을 읽고 듣고 배워온 내가 목회자가 되어 강단에서 설교를 할 때, ‘이것이 과연 그러한가?’ 하며 탐구하고자 하는 마음으로 구도의 길을 걸어갈 뿐이다. 그 과정에서 깨닫고 발견한 것을 글로 정리한 것이다. 말은 거창하게 ‘하나님의 경륜’이라 했지만, 하나님의 지식과 판단을 어찌 사람이 헤아릴 수 있겠는가!
우리 모두 구도의 길동무로서 서로를 가르치고 서로에게 배우는 것 아닐까 생각한다. 사도 바울은 교회에게 이렇게 권면한다: ‘그리스도의 말씀이 여러분 가운데 풍성히 살아 있게 하십시오. 온갖 지혜로 서로 가르치고 권고하십시오.’ (골 3:16a, 새번역성경). 그렇게 우리는 공동체 안에서 함께 조금씩 성장해 갈 것이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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