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월 25일(화) 본당 설정 25주년 기념 열한 번째 성지순례로 보좌신부님을 비롯해 63명의 신자가 손골 성지순례를 다녀왔다.
손골 성지는 기해박해를 전후해서 박해를 피해 천주교 교우들이 모여 살았던 교우촌으로 사십여 명의 교우들이 살았던 것으로 추정한다. 손골은 처음 입국한 선교사들이 이곳에 숨어들어 신자들과 함께 살면서 언어와 풍습을 익히며 선교활동을 준비하였던 곳이다. 병인박해(1866)가 일어나자 손골에 머물던 성 도리(1839-1866) 신부님과 경기 남부지역의 선교 책임자였던 성 오메트르 베드로(1837-1866) 신부님이 체포되어 순교하였다. 손골 성지에서는 두 신부와 손골 순교자들을 기념하고 공경한다.
성지로 출발하기 전 주임 신부님께서는 우리 삶의 최고의 행복은 주님을 만나는 일이므로 오늘도 주님을 만나는 최고의 행복을 위하여 주님을 닮는 하루가 되는 은총이 주어지기를 바란다면서 강복해 주셨다.
광교산 동쪽 자락에 있는 손골 성지는 버스에서 내려 야트막한 언덕의 주택가 골목을 걸어 들어가야 한다. 손골성지는 산속 깊은 골짜기를 찾아 들어가는 느낌으로 박해시기에 신자들이 산속에 모여 교우촌을 형성하여 살았던 느낌이 확연하게 드는 곳이다. 비가 온다는 예보 때문에 하늘이 잔뜩 흐려있어 우리는 성지에 도착하자마자 단체 기념사진부터 찍었다.
이어서 광교산 등산로 입구에 설치된 십자가의 길에서 기도를 바치기 시작하자 우산을 써야 할 정도의 가랑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농작물을 생각하면 비가 많이 내려야 하는데 가뭄 해갈에는 턱없이 부족한 비였다.
십자가의 길 기도를 마치고 성당으로 내려오니 호평성당 꾸리아 소속 레지오 단원들이 보좌신부님과 함께 성지순례를 왔다.
미사를 봉헌하러 들어간 성당은 크지 않지만 아담하고 예쁘다. 특히 성 도리 신부님과 성 오메트르 베드로 신부님의 일생을 표현한 스테인드글라스가 눈에 띈다. 이곳 성지가 두 신부님을 공경하고 기념하고 있음을 말해주고 있다.
미사는 성지 신부님, 우리 본당 이찬희 신부님, 호평성당 신부님 공동집전으로 봉헌됐다.
성지 신부님은 “모든 피조물에게 복음을 선포하여라”라는 마르코복음 말씀에 대해 강론해주셨다. 신부님은 하느님의 말씀이 세상이 말하는 것보다 더 좋다고 생각하면 당연히 하느님의 말씀을 실천해야 하며, 우리가 하느님을 믿는 이유는 하느님은 틀릴 수가 없기 때문이라고 하셨다. 마르코 복음사가는 사도들과 자신의 삶을 통해서 예수님이 우리에게 명하신 것을 실천하는 것이 얼마나 기쁘고 즐거운 일인지를 경험했다고 하셨다. 복음이 쓰인 이유는 바로 복음사가들이 느낀 기쁨과 구원이 우리의 것이 되게 하려는 것이므로 그 누구도 하느님의 말씀과 구원은 무관하지 않다고 하셨다. 또 우리가 기억하는 순교자들도 단순히 죽었기 때문이 아니라 그분을 믿었기 때문에 순교자가 된 것이므로 우리는 이 본질적인 것들을 기억하고 실천하도록 노력해야 한다고 하셨다.
미사 후 우리는 성당 아래층에 순교성인들의 유해가 모셔져 있는 순교자들의 방에 들어가 성인들의 삶을 묵상하고 기도하는 시간을 가졌다. 프랑스에서 먼 한국 땅까지 와서 목숨을 바친 신부님들의 믿음과 사랑을 배우고 본받아 우리들의 영혼 또한 하느님에 대한 사랑으로 가득 차게 되기를 기도했다.
이어서 성 도리 신부님과 성 오메트르 신부님의 유품과 서간이 보관되어 있는 손골 기념관을 관람하였다. 기념관에 전시되어 있는 도리 신부님과 오메트르 신부님이 부모님과 친구들에게 쓰셨던 편지를 읽어가면서 하느님의 뜻이 이루어지도록 기도를 부탁할 만큼 조선에 파견시킨 하느님의 높은 뜻을 사랑하며 순교로 믿음과 사랑을 증거하셨던 참된 목자들이었음에 가슴이 뭉클했다.
순례를 마치고 버스를 타기 위해 골목길을 걸어 나오는데 어디선가 향긋하고 그윽한 라일락 향기가 발걸음을 붙잡았다. 달콤하고 향긋하나 천하지 않은 기품있는 냄새였다. 코끝으로 향기를 들이키자 그윽한 향이 가슴에 스며들었다. 라일락이 기품있는 향기를 품어내듯이 우리 또한 세상에 그리스도의 향기를 품어내는 귀한 자녀가 되게 해달라고 청하면서 발걸음을 옮겼다.
첫댓글 여성 소공회장님! 주일에 사전 답사 다녀오시고, 수고 많으셨습니다.
봄향기 가득안고 행복한 하루 보내셔요^_^