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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일 3: 3 소망을 가진 자마다 - 요일 3: 5 우리 죄를 없애려고
요일 3: 3 소망을 가진 자마다 - 주를 향하여 이 소망을 가진 자마다 그의 깨끗하심과 같이 자기를 깨끗하게 하느니라. ( 주를 향하여 이 소망을 가진 자마다 그의 깨끗하심과 같이 자기를 깨끗하게 하느니라. )
주를 향하여 이 소망을 가진 자마다 그의 깨끗하심과 같이 자기를 깨끗하게 하느니라. 성도들은 주의 재림과 그때 이루어질 영광스런 몸의 구속(救贖)과 변화를 소망하고 있다.
사도 바울은 로마서 8: 23-25에서, '우리 곧 성령의 처음 익은 열매를 받은 우리까지도 속으로 탄식하여 양자 될 것 곧 우리 몸의 구속(救贖)을 기다리느니라. 우리가 소망으로 구원을 얻었으매 보이는 소망이 소망이 아니니 보는 것을 누가 바라리요.'라고 말했다.
사도 요한은 성도에게 이런 소망을 가지고 있기에 주의 깨끗하심과 같이 자신을 깨끗하게 한다고 말한다. 이러한 표현(직설법)이 더 엄숙한 교훈이 된다. 그는 자신을 깨끗케 하지 않는 자는 이러한 소망이 없는 자라고 말하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가 하나님의 영광스런 자녀들이라면 죄를 짓지 말고 깨끗하고 거룩한 삶을 살아야 한다. 천국을 소망하는 자는 천국 백성답게 살고, 의의 나라를 소망하는 자는 의인답게 죄와 상관없이 거룩하게 산다.
1] 주를 향하여 이 소망을 가진 자마다.
'소망'(엘피다)는 바울 서신이나 베드로 서신에는 빈번하게 나타나 있다.
* 롬 5: 4 - 인내는 연단을, 연단은 소망을 이루는 줄 앎이로다.
* 롬 8: 24 - 우리가 소망으로 구원을 얻었으매 보이는 소망이 소망이 아니니 보는 것을 누가 바라리요?
* 고후 1: 7 - 너희를 위한 우리의 소망이 견고함은 너희가 고난에 참여하는 자가 된 것 같이 위로에도 그러할 줄을 앎이라.
* 벧전 1: 3 -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 하나님을 찬송하리로다. 그의 많으신 긍휼대로 예수 그리스도를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하게 하심으로 말미암아 우리를 거듭나게 하사 산 소망이 있게 하시며
요한복음이나 요한 서신에서는 본문에서 단 한 번 나타난다. 그러나 '그리스도인들이 그리스도께서 재림하시는 날에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께서 주시는 영생을 이루리라는 확신에 찬 기대'라는 소망의 개념은 2절에서 명백히 설명되고 있다. (Smalley).
따라서 '이 소망'은 2절에 나타난 장래의 일들에 대한 종말론적인 소망을 가리킨다. (Barker).
2] 그의 깨끗하심과 같이 자기를 깨끗하게 하느니라.
요한은 처음으로 예수의 특징을 '깨끗하심'으로 묘사하고 있다. '깨끗하심'(하그노스)는 '디카이오스'(의로운)와 거의 같은 의미로 그리스도의 정결하심이 모든 그리스도인이 힘써 따라야 할 본보기임을 시사한다. (3:7. Smalley).
* 요일 2: 1, 29 – 1 나의 자녀들아. 내가 이것을 너희에게 씀은 너희로 죄를 범하지 않게 하려 함이라. 만일 누가 죄를 범하여도 아버지 앞에서 우리에게 대언자가 있으니 곧 의로우신 예수 그리스도시라. 29 너희가 그가 의로우신 줄을 알면 의를 행하는 자마다 그에게서 난 줄을 알리라.
'깨끗하게 하느니라.'(하그니제이)는 '하그노스'(깨끗하심)와 같은 어원을 갖는 동사로 제의적 정결을 언급할 때 사용되었다.
* 출 19: 10-11 - ⑩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너는 백성에게로 가서 오늘과 내일 그들을 성결하게 하며 그들에게 옷을 빨게 하고 ⑪ 준비하게 하여 셋째 날을 기다리게 하라. 이는 셋째 날에 나 여호와가 온 백성의 목전에서 시내산에 강림할 것임이니
* 민 8: 21 - 레위인이 이에 죄에서 스스로 깨끗하게 하고 그들의 옷을 빨매 아론이 그들을 여호와 앞에 요제로 드리고 그가 또 그들을 위하여 속죄하여 정결하게 한
* 요 11: 55 - 유대인의 유월절이 가까우매 많은 사람이 자기를 성결하게 하기 위하여 유월절 전에 시골에서 예루살렘으로 올라갔더니
* 행 21: 24 - 그들을 데리고 함께 결례를 행하고 그들을 위하여 비용을 내어 머리를 깎게 하라. 그러면 모든 사람이 그대에 대하여 들은 것이 사실이 아니고 그대도 율법을 지켜 행하는 줄로 알 것이라.
그러나 본문에서는 시련을 통해서 이루어지는 거룩한 성품으로서 도덕적인 깨끗함을 의미한다. (Law, Stott, Smalley, Barker).
그리스도 안에서 소망을 가진 자는 주의 재림을 맞이하기 위하여 주의 깨끗하심과 같이 자기 자신을 깨끗하게 하려고 부단히 노력해야 한다.
* 마 5: 48 - 그러므로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의 온전하심과 같이 너희도 온전하라.
3] 성도의 신분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라고 일컬음을 얻은 것은 하나님의 놀라운 사랑으로 인한 것이다. 성도는 그 사랑이 어떤 사랑인가를 알아야 한다. 사도 요한은 1절에서 ‘보라 아버지께서 어떠한 사랑을 우리에게 주사 하나님의 자녀로 일컬음을 얻게 하셨는고’라고 했다.
(1) 하나님의 자녀라 일컬음을 받은 사랑
우리가 하나님의 크신 사랑을 알려면 먼저 우리가 그의 자녀가 되기 이전의 신분을 알아야 한다.
① 우리는 하나님과 원수 된 자리에 있었다.
골 1: 21은 ‘전에 악한 행실로 멀리 떠나 마음으로 원수가 되었던 너희를 그의 육체의 죽으심으로 화목케 하셨다’고 했다. 롬 5: 10에서는 ‘우리가 원수 되었을 때 그 아들의 죽으심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으로 더불어 화목 되었다’고 했다.
② 우리는 소망이 없던 사람이었다.
우리는 본질적으로 죽은 자로 있었기 때문에 아무런 소망도 없었던 사람들이다. 엡 2: 1은 ‘너희의 허물과 죄로 죽었던 너희를 살리셨다’고 했다.
③ 우리는 본질상 진노의 자녀들이었다.
우리는 하나님의 진노를 받을 죄인들이었다. 진노의 자녀란 하나님의 심판으로 멸망 받을 자들이란 뜻으로 골 2: 32에서 ‘본질상 진노의 자녀’이었다고 했다.
④ 우리는 죄의 종이었다.
롬 6: 17은 ‘너희가 본래 죄의 종이였다’고 우리의 신분을 밝히고 있다. 죄의 종이란 죄의 지배를 받아 죄가 시키는 대로 따라가는 신분을 말한다. 죄는 결국 하나님의 심판을 받는다.
이러한 우리를 하나님께서 그의 자녀로 삼아 주셨다. 이 사실은 너무나도 놀라운 일이 아닐 수 없다. 그래서 사도 요한은 ‘보라. 아버지께서 어떤 사랑을 주셨는가’고 묻고 있다. 도대체 더럽고 추한 신분을 가진 우리가 어떻게 하나님 자녀의 신분을 가지게 되었느냐는 것이다.
(2) 나타나신 하나님의 사랑
하나님의 사랑에 대해 정확한 말로 표현할 수 있는 사람은 없다. 인간의 언어로는 하나님의 사랑을 그대로 표현할 수 있는 수식어가 없기 때문이다. 성경에 나와 있는 하나님의 사랑 표현도 인간의 말로 표현한 것이기 때문에 지극히 큰 하나님의 사랑을 있는 그대로 표현하지 못하고 있다.
요 3: 16에 나오는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가 나타낼 수 있는 표현에 불과하다.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다’고 하셨는데 여기서 ‘이처럼’이란 말은 짧은 세 글자지만 이 우주의 공간보다 더 넓은 길이와 넓이와 깊이를 가지고 있는 말이다.
하나님의 사랑은 그의 독생자로 나타내셨다. 하나님께서 우리로 그의 자녀를 삼으시려고 독생자를 세상에 보내시고 하나님과의 화목 제물로 삼으셨다는 사실에 그 사랑을 나타내신 것이다. 이 같은 사랑을 어떤 말로 표현할 수 있을까?
이렇게 귀하신 사랑으로 우리를 당신의 자녀로 삼으신 것은 우리로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의 유업을 얻게 하려는 데 목적이 있다고 하셨다. 이 사실은 우리를 놀라게 하며 우리에게 나타내시고 우리에게 베푸신 사랑 앞에 어떻게 무엇이라 감사하며 그 이름을 찬양해야 할지 모르는 것이다.
우리의 신분은 하나님의 유업을 기업으로 받는 하나님 자녀의 권세까지 가진 사람이다. 그런데 세상은 이런 우리를 알지 못한다. 왜 그런 것입니까? 사도 요한은 1절에서 ‘그러므로 세상이 우리를 알지 못함을 그를 알지 못함이니라’고 말했다.
예수를 알지 못하기 때문에 그리스도 안에서 귀하고 놀라운 것들을 축복으로 받아 누릴 수 있는 우리를 모르기 때문이다. 우리들이 누리는 이 모든 것은 하나님의 비밀로서 그리스도 안에 숨겨져 있기 때문이다.
세상은 그리스도를 모른다. 그 안에서 누릴 수 있는 영광도 모르고 구원도 영생도 친국도 모른다. 그러므로 우리는 가장 부요한 사람들이요 가장 명예로운 사람들인데도 세상에서 무시를 당하고 살아가고 있다. 그러나 믿음이 있는 우리는 낙심하거나 후회하지 않습니다. 지금 우리가 당하는 환난의 경한 것이 장차 우리에게 나타날 영광과 족히 비교할 수 없다는 사실을 알기 때문에 소망에 흔들리지 않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이 나타나심이 되면 그대로 볼 것이라고 했다. 우리는 주를 향하여 소망을 가진 자들이기에 그리스도의 깨끗하심과 같이 우리가 죄악 된 이 세상에서 우리 스스로 정결한 양심과 진실한 믿음을 지켜 나가야 할 것이다.
요일 3: 4 죄를 짓는 자 - 죄를 짓는 자마다 불법을 행하나니 죄는 불법이라. ( 죄를 짓는 자마다 불법을 행하나니 죄는 불법이라. )
죄를 짓는 자마다 불법을 행하나니 죄는 불법이라. 죄는 불법, 곧 하나님의 법, 하나님의 계명, 하나님의 뜻을 무시하고 반대하고 거부하고 어기는 것을 가리킨다.
1] 죄를 짓는 자마다 불법을 행하나니.
본문은 영지주의자들을 염두에 둔 진술이다. 영지주의자들은 자신들을 다른 사람들과 분리하여 자신들은 죄가 없으며 불법을 행하지 않는다고 주장하였다.
이에 대하여 요한은 죄를 짓는 사람은 모두가 예외 없이 불법을 행하는 것이라고 주장함으로 영지주의의 거짓 가르침을 배격하고 있다.
2] 죄는 불법이라.
여기서 '불법'(아노미안)은 문자적으로 '율법을 범하는 것'을 의미한다. 그러나 요한이 '율법'(노모스)이란 용어를 한 번도 사용하지 않고 있는 것으로 보아 본문의 '불법'은 율법을 범한다는 의미라기보다는 오히려 하나님을 배반하려는 인간의 본성적인 불법을 의미한다. (Barker).
요한은 자기 자신들이 모든 죄로부터 자유롭다고 생각하는 영지주의자들이 사실상 하나님을 배반하는 무서운 불법을 저지르고 있다는 점을 날카롭게 지적하고 있다.
요일 3: 5 우리 죄를 없애려고 - 그가 우리 죄를 없애려고 나타나신 것을 너희가 아나니 그에게는 죄가 없느니라. ( 그가 우리 죄를 없이 하려고 나타내신바 된 것을 너희가 아나니 그에게는 죄가 없느니라. )
그가 우리 죄를 없이 하려고 나타내신바 된 것을 너희가 아나니 그에게는 죄가 없느니라.
하나님의 아들 예수께서 사람이 되어 이 세상에 오신 것은 바로 우리의 죄를 없이 하시기 위해서이었다. 그의 성육신(成肉身), 즉 말씀이 사람의 본질을 취하여 사람이 되신 목적은 우리의 죄를 대속(代贖)하시기 위함이었다.
그에게는 죄가 없으셨다. 그는 자신의 죄 때문에가 아니라 우리의 죄 때문에 죽으셨다. 그러므로 그가 우리의 죄를 없이 하기 위해 오셔서 대속 제물이 되심으로 우리가 구원을 받았을진대, 우리는 더 이상 범죄치 말아야 한다.
1] 그가 우리 죄를 없이 하려고 나타나신바 된 것을 너희가 아나니.
'죄'(하마르티아스)는 복수형이다. 이는 죄악 된 모든 행위를 포괄하는 개념이다. (Smalley, Stott).
'나타내신'(에파네로데)는 부정과거 시상이다. 이것은 과거의 특별한 역사적 사건을 나타내는 것으로 예수의 성육신이 역사적 사건임을 암시함과 동시에 이러한 역사적인 실재 사건을 기반으로 해서 예수의 '죄를 없애는 사역'이 이루어졌음을 시사한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 양으로 오셨다.
* 요 1: 29 - 이튿날 요한이 예수께서 자기에게 나아오심을 보고 이르되, 보라.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 양이로다.
모든 죄를 친히 자기 몸에 짊어지심으로써 우리 죄를 없이 하셨다(Stott).
* 사 53: 11-12 - ⑪ 그가 자기 영혼의 수고한 것을 보고 만족하게 여길 것이라. 나의 의로운 종이 자기 지식으로 많은 사람을 의롭게 하며 또 그들의 죄악을 친히 담당하리로다. ⑫ 그러므로 내가 그에게 존귀한 자와 함께 몫을 받게 하며 강한 자와 함께 탈취한 것을 나누게 하리니 이는 그가 자기 영혼을 버려 사망에 이르게 하며 범죄자 중 하나로 헤아림을 받았음이니라. 그러나 그가 많은 사람의 죄를 담당하며 범죄자를 위하여 기도하였느니라.
* 히 9: 28 - 이와 같이 그리스도도 많은 사람의 죄를 담당하시려고 단번에 드리신바 되셨고 구원에 이르게 하기 위하여 죄와 상관없이 자기를 바라는 자들에게 두 번째 나타나시리라.
* 벧전 2: 24 - 친히 나무에 달려 그 몸으로 우리 죄를 담당하셨으니 이는 우리로 죄에 대하여 죽고 의에 대하여 살게 하려 하심이라. 그가 채찍에 맞음으로 너희는 나음을 얻었나니
2] 그에게는 죄가 없느니라.
'죄가 없다'는 말씀은 3절의 '깨끗하심'과 2: 29. 3: 7의 '의로우심'과 동일한 의미이다.
* 요일 2: 29 - 너희가 그가 의로우신 줄을 알면 의를 행하는 자마다 그에게서 난 줄을 알리라.
예수의 무죄성은 초대 교회의 케리그마에는 포함되지 않았으나 신약 성경의 여러 곳에서 발견된다.
* 고후 5: 21 - 하나님이 죄를 알지도 못하신 이를 우리를 대신하여 죄로 삼으신 것은 우리로 하여금 그 안에서 하나님의 의가 되게 하려 하심이라.
* 히 4: 15 - 우리에게 있는 대제사장은 우리의 연약함을 동정하지 못하실 이가 아니요 모든 일에 우리와 똑같이 시험을 받으신 이로되 죄는 없으시니라.
* 벧전 1: 19 - 오직 흠 없고 점 없는 어린 양 같은 그리스도의 보배로운 피로 된 것이니라.
한편 본문에서 사용된 헬라어 동사는 '에스틴'(~이다)으로 현재형이다. 이것은 예수께서 지상 사역 기간만 죄로부터 자유로우셨던 것이 아니라 영원히 무죄하심을 암시한다. (Smalley).
만일 예수 그리스도께서 죄가 있다면 그분은 우리 죄를 없애지 못했을 것이다. 왜냐하면 죄 있는 자가 죄인의 죄를 감당할 수 없기 때문이다.
본래 예수 그리스도는 거룩하신 하나님으로서 죄와는 상관이 없으셨고, 또한 성육신으로 온전히 성령을 좇아 행하심으로 죄를 전혀 알지 못하셨다.
* 고후 5: 21 - 하나님이 죄를 알지도 못하신 이를 우리를 대신하여 죄로 삼으신 것은 우리로 하여금 그 안에서 하나님의 의가 되게 하려 하심이라.
* 히 4: 15 - 우리에게 있는 대제사장은 우리의 연약함을 동정하지 못하실 이가 아니요 모든 일에 우리와 똑같이 시험을 받으신 이로되 죄는 없으시니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