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복음 강해 제3강]
아날렘프시스(Ἀνάλημψις): 십자가를 향해 얼굴을 굳게 향하시는 왕의 결연한 진격
(본문: 누가복음 9-13장)
누가복음 9장 51절은 복음서 전체의 지형도를 완전히 뒤바꿔 놓는 거대한 신학적 분수령입니다. 조엘 그린(Joel B. Green)과 존 놀랜드(John Nolland)를 비롯한 당대의 주석가들은 이 구절을 기점으로 갈릴리 사역이 종료되고, 예루살렘의 십자가 사형장을 향해 묵묵히 걸어가시는 '길(The Way)의 사역', 즉 위대한 '예루살렘 여행기(Travel Narrative)'가 본격적으로 시작된다고 입을 모아 증언합니다.
1. 아날렘프시스(Ἀνάλημψις): 죽음을 관통하여 승천으로 향하시는 굳은 결의
"예수께서 승천하실 기약(아날렘프시스)이 차가매 예루살렘을 향하여 올라가기로 굳게 결심하시고" (눅 9:51)
누가복음 9장 전반부에서 예수님은 베드로의 신앙 고백을 들으시고, 변화산에서 영광스러운 모습을 보이셨습니다. 제자들은 영광의 메시아 왕국이 도래할 것이라는 환상에 부풀어 있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시선은 전혀 다른 곳을 향하고 계셨습니다.
"승천하실 기약(아날렘프시스, ἀνάλημψις)이 차가매!"
원어 **'아날렘프시스'**는 하늘로 '들림을 받다, 승천하다(Assumption, Taking up)'라는 뜻입니다. 누가는 여기서 예수님의 고난과 죽음, 부활과 승천을 하나의 거대한 구속사적 사건으로 묶어버립니다. 영광스러운 승천(아날렘프시스)은 결코 피할 수 없는 '십자가의 처절한 죽음'이라는 관문을 통과해야만 도달할 수 있는 목적지입니다.
"예루살렘을 향하여 올라가기로 굳게 결심하시고(토 프로소폰 에스테릭센, τὸ πρόσωπον ἐστήριξεν)."
직역하면 '그의 얼굴을 부싯돌처럼 단단하게 고정하셨다'는 뜻입니다. 이사야 50장 7절의 수난받는 종의 예언을 완벽하게 성취하시는 이 결연한 진격은, 어떠한 사탄의 유혹이나 제자들의 몰이해, 바리새인들의 핍박도 당신을 골고다 언덕의 십자가 형틀에서 끌어내릴 수 없음을 보여주는 창조주의 장엄하고도 묵직한 구원의 의지입니다.
2. 스플랑크니조마이(Σπλαγχνίζομαι): 율법의 허상을 찢는 선한 사마리아인
십자가를 향해 걸어가시는 길목에서, 한 율법교사가 예수님을 시험하여 묻습니다. "선생님 내가 무엇을 하여야 영생을 얻으리이까." (눅 10:25). 예수님은 그를 향해 인류 역사상 가장 날카롭고 유명한 '선한 사마리아인'의 비유를 들이대십니다.
"마침 한 제사장이 그 길로 내려가다가 그를 보고 피하여 지나가고 또 이와 같이 한 레위인도 그 곳에 이르러 그를 보고 피하여 지나가되 어떤 사마리아 사람은 여행하는 중 거기 이르러 그를 보고 불쌍히 여겨(스플랑크니조마이)... 가서 강도 만난 자의 이웃이 되겠느냐 이르되 자비를 베푼 자니이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가서 너도 이와 같이 하라 하시니라" (눅 10:31-33, 36-37)
제사장과 레위인은 강도 만난 자를 보고 피하여 지나갔습니다. 그들은 피를 만지면 부정해진다는 종교적 율법과 제사 의식을 핑계로, 죽어가는 생명을 외면했습니다. 하나님을 가장 잘 안다고 자부하던 종교 엘리트들의 내면에는 영혼을 향한 긍휼이 완전히 메말라 있었던 것입니다.
그러나 유대인들에게 개 취급을 받던 사마리아 사람은 달랐습니다. 그를 보고 '불쌍히 여겨(스플랑크니조마이, σπλαγχνίζομαι)'. 창자가 끊어지는 듯한 맹렬한 긍휼과 자비가 그의 발걸음을 멈추게 했고, 자신의 돈과 시간을 들여 그를 살려냅니다.
존 맥아더(John MacArthur)와 필립 라이큰(Philip Graham Ryken)의 신학적 통찰에 따르면, 이 비유의 본질은 도덕적인 선행을 촉구하는 윤리 강좌가 아닙니다. 율법의 행위로 스스로 영생을 얻을 수 있다고 착각하는 율법교사의 교만을 산산조각 내는 심판의 메시지입니다. 동시에, 죄로 인해 반 죽음 상태로 버려진 우리 인류를 살리기 위해 하늘의 보좌를 버리고 친히 다가오사 자신의 살과 피를 쏟아부어 치료해 주신 **'진정한 선한 사마리아인, 예수 그리스도'**의 대속적 사역을 깊이 있게 웅변하고 있는 것입니다.
3. 아프론(Ἄφρων): 탐심의 우상을 쳐부수는 어리석은 부자의 비유
예수님의 묵직한 진리의 검은 이제 종교적 율법주의를 넘어, 인간의 심장 가장 깊은 곳에 똬리를 틀고 있는 물질주의와 탐욕의 우상을 정조준합니다.
"또 비유로 그들에게 말하여 이르시되 한 부자가 그 밭에 소출이 풍성하매 심중에 생각하여 이르되... 내 영혼아 여러 해 쓸 물건을 많이 쌓아 두었으니 평안히 쉬고 먹고 마시고 즐거워하자 하리라 하되 하나님은 이르시되 어리석은 자여(아프론) 오늘 밤에 네 영혼을 도로 찾으리니 그러면 네 준비한 것이 누구의 것이 되겠느냐 하셨으니" (눅 12:16-20)
이 부자는 세상적인 관점에서는 탁월한 경영자요, 노후 준비를 완벽하게 마친 지혜로운 사람입니다. 그의 독백 속에는 "내가, 내 곡식을, 내 곳간에, 내 영혼아"라며 철저하게 자기중심적인 인본주의의 교만이 가득 차 있습니다. 그는 물질의 풍요가 곧 영혼의 평안을 보장해 줄 것이라는 치명적인 착각에 빠져 있었습니다.
그러나 윌리엄 헨드릭슨(William Hendriksen)의 주석처럼, 하나님의 저울은 세상의 경제 논리와 완벽하게 다릅니다. 하나님은 그를 향해 "어리석은 자여(아프론, ἄφρων)!"라고 선고하십니다. 이 단어는 지능이 떨어진다는 뜻이 아니라, 만물의 주관자이신 하나님을 계산에서 완전히 배제한 채 스스로 자기 인생의 주인이 되려 한 영적 맹인이라는 무서운 정죄입니다.
생명의 주권이 하나님께 있음을 망각하고 이 땅의 재물로 영원한 장막을 삼으려는 모든 세속적 기복주의를 향해, 주님은 십자가의 고난과 영원의 무게를 들이대시며 그 허상을 산산조각 내버리십니다.
4. 아고니조마이(Ἀγωνίζομαι): 거짓 구원론을 박살 내는 좁은 문의 명령
예루살렘을 향한 진격이 깊어질수록, 구원의 조건에 대한 예수님의 말씀은 더욱 무겁고 엄위해집니다. 어떤 사람이 "주여 구원을 받는 자가 적으니이까"라고 묻자, 주님은 구원론의 핵심을 찌르는 묵직한 명령을 내리십니다.
"좁은 문으로 들어가기를 힘쓰라(아고니조마이)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들어가기를 구하여도 못하는 자가 많으리라 집 주인이 일어나 문을 한 번 닫은 후에 너희가 밖에 서서 문을 두드리며 주여 열어 주소서 하면 그가 대답하여 이르되 나는 너희가 어디에서 온 자인지 알지 못하노라 하리니... 그 때에 너희가 말하되 우리는 주 앞에서 먹고 마셨으며 주는 또한 우리를 길거리에서 가르치셨나이다 하나" (눅 13:24-26)
"좁은 문으로 들어가기를 힘쓰라(아고니조마이, ἀγωνίζομαι)!"
원어 '아고니조마이'는 투기장에서 검투사들이 목숨을 걸고 피 흘리며 싸우는 치열한 영적 전투의 단어입니다(Agonize의 어원). 구원은 교회 마당을 밟고 다녔다고 해서 자동으로 주어지는 값싼 은혜가 아닙니다.
"우리는 주 앞에서 먹고 마셨으며!"
이 말씀을 주의 깊게 보아야 합니다. 좁은 문 밖에서 쫓겨나 슬피 울며 이를 가는 자들은 세상의 불신자들이 아닙니다. 그들은 예수님과 함께 밥을 먹고, 길거리에서 설교를 들었던 자들, 즉 오늘날로 치면 주일 예배에 참석하고 성찬을 나누며 자신이 구원받았다고 확신하던 종교인들입니다!
그러나 그들의 삶에는 십자가를 향한 처절한 자기 부인(아고니조마이)과 진실한 회개가 없었습니다. R. C. 스프로울(R. C. Sproul)의 지적처럼, 예수 그리스도와의 인격적이고 십자가적인 연합이 없는 얄팍한 종교 생활은, 마지막 심판의 날 집주인(하나님)에 의해 "나는 너희를 도무지 알지 못한다"는 끔찍한 사형 선고와 함께 영원히 문이 닫히는 심판을 면치 못할 것입니다.
5. 십자가: [율법과 탐욕의 우상을 찢고 참된 구원의 길이 되신 그리스도]
강도 만난 자처럼 죄악에 찢겨 피 흘리며 죽어가던 우리 인류를 구원할 수 있는 것은, 인간이 만든 율법의 행위나 어리석은 부자의 물질적 풍요가 아닙니다. 오직 예루살렘의 골고다 언덕을 향해 얼굴을 부싯돌처럼 굳게 향하시고, 묵묵히 사형의 십자가를 지신 예수 그리스도의 대속적 죽음뿐입니다.
주님은 친히 참된 선한 사마리아인이 되사, 우리가 마땅히 받아야 할 하나님의 진노의 매를 대신 맞으시고 자신의 거룩한 살과 피를 쏟아 우리의 상처를 치유하셨습니다. 스스로 의롭다 여기는 얄팍한 종교의 껍데기를 철저히 깨뜨리고 좁은 문(십자가)으로 들어가는 자들에게, 삼위일체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영원히 마르지 않는 무한한 공급과 충만을 은혜로 부어 주십니다. 주의 종 된 여러분, 강단에서 감정과 인간의 처세술을 배제하고 오직 자아를 부인하며 십자가의 좁은 길을 걷게 하는 이 묵직하고도 절대적인 진리만을 명확하게 선포하시기를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