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십자가복음의 의미 안에 들어있는 0과 1이라는 디지털 기호를 코드로 성경말씀을 풀어내는
태승철의 오늘의 번제 <마음 실종사건>의 줄거리:
함께 있던 사랑하는 어린 자녀가 잠깐 한 눈을 파는 사이에 감쪽같이 사라져 버렸다면 그 실종 된 아이의 엄마와 아빠의 심정이 어떨지 생각만해도 정말 몸서리가 쳐집니다. 그런데 종종 실종된 사람을 뒤 늦게 찾는 경우가 있습니다. 아주 가끔은 긍정적으로 변화된 모습으로 다시 만나게 되는 경우도 있고요. 신앙인의 삶에서는 이런 종류의 실종사건이 일상의 경험이 되어야만 합니다. 날마다 의도된 마음실종이 없고는 신앙의 참 맛을 알길이 없습니다.
마음 실종사건
(고전10:23~33)
23. ○모든 것이 가하나 모든 것이 유익한 것은 아니요 모든 것이 가하나 모든 것이 덕을 세우는 것은 아니니
24. 누구든지 자기의 유익을 구하지 말고 남의 유익을 구하라
25. 무릇 시장에서 파는 것은 양심을 위하여 묻지 말고 먹으라
26. 이는 땅과 거기 충만한 것이 주의 것임이라
31. 그런즉 너희가 먹든지 마시든지 무엇을 하든지 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하라
오늘 본문의 핵심 구절은 ‘누구든지 자기의 유익을 구하지 말고 남의 유익을 구하라’라고 하는 24절 말씀과 31절 ‘먹든지 마시든지 무엇을 하든지 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하라’ 이 두 구절의 말씀을 중심으로 해서, ‘마음 실종 사건’이라는 제목으로 하나님 말씀 증거 합니다.
마음 실종 사건.
2009년에 상영된 영화 중 <정 승필 실종 사건>이라는 영화가 있습니다.
‘정 승필’이라고 하는 사람이 주인공인데, 영화배우 이 범수 씨가 이 역을 맡게 됩니다.
정 승필이 뭐하는 사람이냐 하면 펀드매니저에요.
그래서 500억 대의 자산을 지금 관리하고 있는 중입니다.
승승장구, 초스피드의 승진을 계속 하면서 아주 잘 나가는 삶을 살고 있는 사람인데, 이 분에게 약혼녀가 있습니다.
그리고 이제 이 약혼녀하고 결혼을 준비하고 있는 단계입니다.
결혼을 준비하고 있는 중에, 이 펀드매니저와 약혼자가 차를 타고 가다가 외떨어진 편의점 앞에서 차를 세우고, 담배를 사러 정 승필 씨가 편의점으로 들어갑니다.
그 약혼녀는 차에 남겨 둔 채, 혼자 편의점에 들어가서 담배를 사 갖고 나오는데, 이 정 승필 씨가 신경성 장염이 있어요.
신경성 장염을 앓아 보신 분들은 아시겠지만, 급작스럽게 화장실이 급해지는 상황이 벌어지곤 합니다.
담배를 사러 갔던 이 양반이 화장실이 너무 갑자기 급해져 가지고 약혼녀에게 말할 틈이 없어서, 편의점에 나와서 주변을 두리번거리다가, 이제 철거하기로 작정된 건물 안에 화장실이 있는 걸 발견하고 그리로 들어가게 됩니다.
시원하게 일을 봤는데 그만, 철거를 앞둔 이 낡은 건물 화장실에 갇혀 버리고 맙니다.
외딴 철거건물 화장실에 갇힌 이 정 승필 씨가 다른 사람들에게는 감쪽같이 사라져 버린 게 돼 버린 거예요.
약혼녀가 기다리다 못해서 편의점에 내려와 봤더니, 담배 사 갖고 나간 뒤로는 모른다고 그러고, 그래서 결국은 실종신고를 하게 됩니다.
정 승필 씨가 이 화장실에서 빠져 나오기 위해서 고군분투를 하고 있는 와중에, 약혼녀가 실종 신고를 하게 되면서 형사들이 가담하게 되고, 형사 중 한 명은 약혼녀를 의심하게 됩니다.
왜냐하면 약혼녀 뒤를 캐다보니까, 이렇게 실종 사건이 일어난 며칠 전에 보험설계사인 이 약혼녀가 정 승필 씨 앞으로 생명보험을 들어 놓은 겁니다, 그러니 의심하게 되지요.
그리고 또 한 명의 형사는 이 실종 사건을 자기의 승진의 기회로 삼기 위해서, 정 승필 씨가 납치되었거나 아니면 고액의 자산 관리를 하고 있는 중에 마음을 탐욕을 품게 돼 가지고, 횡령을 하면서 실종으로 가장하고 있는 것이다.
이게 매스컴에 알려지고 막 커지게 되며 난리가 납니다.
그리고 늘 이 정 승필 씨의 빠른 승진을 시샘하고 있던 직장동료들이 용의자로 의심을 받게 됩니다.
아! 천신만고 끝에 정 승필 씨가 화장실 문이 열리면서 알게 된 거에요.
여러 가지 뭐 우여곡절 끝에 나오게 되는데, 나와서 앰뷸런스에 실려서 가고 있는 동안에 첫 번째로 한 말이 약혼녀에게 ‘사랑해!’였습니다.
이게 무슨 의미가 있냐 하면, 이 약혼녀가 그렇게도 정 승필 씨가 한마디, ‘사랑해’라고 하는 말을 해 주기를 원했는데, 그냥 자기 일에 몰두하고 바쁜 이 정 승필 씨는, 죽어도 사랑한다는 말을 하지 않은 겁니다.
근데 이렇게 화장실에 갇혀서 실종된 후에 나타나서 ‘사랑해’라는 말을 하고 사람이 싹 바뀌어 버렸습니다.
결과적으로 영화의 마지막 부분을 보면, 그렇게 출세가도를 달리고 있던 정 승필 씨의 사람됨이 확 바뀌어 가지고, 집안에서 살림 사는 모습으로, 애 둘을 낳고 그 애들과 함께 앞치마를 두르고 살림 사는 모습으로 나타나게 됩니다.
완전히 변한 사람으로 등장을 하게 된 거예요.
여러분, 드라마나 영화에서 이렇게 실종된 뒤에, 아무도 모르는 채 사라진 뒤에 어마어마한 성공을 이루고서 다시 나타나는 그런 경우, 그런 드라마틱한 경우, 그거 뭐 영화나 드라마에서 많이 보지 않습니까? 변해서 나타나는 겁니다.
성경에서도 보면 요셉 이야기가 나오지 않습니까?
야곱의 입장에서 보면, 야곱의 인생에서 갑자기 사라져 버린 아들이입니다.
실종이라기보다는 죽은 것으로 여겨졌지만 어쨌든, 사라진 것은 똑같지 않아요?
그렇게 사라진 뒤에, 애굽의 총리가 돼서 다시 나타납니다.
이것과 마찬가지라는 겁니다.
신앙인의 삶에서는 매일같이 정 승필이 감쪽같이 실종 되듯이, 신앙인의 마음이 감쪽같이 실종되는 일이 나타나야만 된다는 겁니다.
그래야 신앙의 참 맛을 알게 된다는 거예요.
그러니까, 신앙이의 마음이 실종 된다는 얘기는 무슨 얘기냐 하면, 아내가 있고 남편이 있습니다, 자식들이 있고 부모님들이 계신 가정이 있습니다, 그리고 직장이 있습니다, 사업하는 사람은 사업이 있고…
그러면 사람이 살아가는 동안에 어쨌든 마음이 누구에게든, 어떤 일에든 어떤 사물에든 가 있는 거 아닙니까?
이 지구 위에 있는 무엇에든지 간에 마음이 가 있게 되어 있는 것이, 보통 사람들의 삶의 모습이고, 마음의 소재지의 현실입니다.
어디든 이 지상 위에 있는 것에 가있게 돼 있는 거예요.
근데 마음이 실종됐다는 얘기는, 아내에게서 찾아봐도 남편의 마음이 없어요, 자식들에게 가 봐도 그 아버지의 마음이 없어요, 부모님들에게 가 봐도 그 아들의 마음이 없습니다, 사업장에 가 봐도 사장님의 마음이 없어요, 직장에 가 봐도 김 과장, 김 부장의 마음이 없습니다.
이 세상에서 마음이 사라져 버린 거예요.
어디에도 마음이 없는 감쪽같이 사라져 버렸습니다.
수업시간 같은 때, 넋을 놓고 창밖을 보면 선생님이 분필 조각을 던지면서 ‘야! 이놈아 정신을 어디다 팔고 있어?’ 그러지 않습니까?
그때 ‘정신을 어디다 팔고 있어?’라는 질문에 대해서 분명히 답할 게 있을 겁니다.
여자 친구에게 마음이 가 있을 수도 있고, 이제 알바를 해야 되는데 그 알바에 대한 생각에 가 있을 수도 있고, 여러 가지에 가 있을 수 있지만, 신앙인의 마음은 ‘정신을 어디다 팔고 있어?’ 물어볼 때, 이 지상에서는 가 있는 곳이 없는 상태가 되는 것, 이 지상에서 마음이 실종되는 사건이 날마다 일상적으로 반복해서 일어나는 곳이 바로 신앙인들입니다.
근데 이 신앙인들의 실종사건에 뒤따라오는 일이 뭐냐 하면, 반드시 실종된 뒤에 그 마음이 다시 이 세상 삶의 현장으로 나타날 때는, 아~ 이게 완전히 딴 마음이 되어 있는 거예요.
정 승필 씨가 그렇~게 약혼녀가 원하는 말 한 마디를 안 하고 있다가, 실종된 뒤에 나타나서 첫 마디가 ‘사랑해’라고 하는 말이었던 것처럼, 신앙인이 이 지상에서는 찾아 볼 길이 없게끔 마음이 실종된 뒤에, 다시 이 지상의 삶으로 돌아왔을 때 나타나는 변화가 뭐냐 하면, 아! 이상하게도 죽어라 목숨 걸고 다른 사람의 유익만 구합니다.
정 승필 씨가 약혼녀에게 사랑해라는 말을 하게 된 것처럼, 어떻게 하면 다른 사람에게 유익한 삶이 될 수 있을까만 생각하게 됩니다.
거기에 또 하나 보태져 가지고, 이상하게 목숨 거는 일이 또 하나 있는데 그게 뭐냐 하면, 하나님의 영광만을 위한다.
다시 말하면 어떡하든지 하나님이 나타나는 일에 목숨 거는 그런 마음가짐으로 등장을 하게 됩니다.
도대체 마음이 이 지구 위에서 실종 된 사이에, 무슨 일이 일어났기에 이렇게 됐을까요?
요셉이 야곱의 인생에서 사라진 뒤 애굽의 총리가 돼서 다시 나타나는 것과 마찬가지로, 마음이 이 지상에서 완전히 실종된 뒤, 다시 삶에 나타날 때는 완전한 마음 성공자가 돼서 나타납니다.
사람의 성공이 두 가지가 있어요, 여러분 아십니까?
마음 성공이 있고, 몸 성공이 있습니다.
몸 성공은, 대통령 되는 게 성공이고, 재벌 되는 게 성공이고, 돈 많이 버는 게 성공이고, 건강해서 오래 사는 게 성공이고, 자식들이 좋은 대학 들어가고, 좋은 직장 구하고, 좋은 결혼하는 게 성공입니다.
근데 마음 성공은, 대통령이 되었건 안 되었건, 대통령이 되었건 노숙자이건, 아니면 감옥에 들어갔건, 대형교회 목사님이 되었건, 개척교회 목사님으로서 전전긍긍하든, 이게 상관없다는 거예요.
목사님들이 대형교회 되는 게 몸의 성공이라 그러면, 마음 성공은 무엇이냐?
광야복지에 대해 우리가 함께 말씀을 나누지 않았습니까?
그 광야복지의 내용이 이루어지는 겁니다.
마음에 진정한 만족 배부름이 있고, 진정한 기쁨이 있고, 행복감이 있어서, 내 몸이 지금 죽어도 상관이 없다는 고백이 나오게 되는 상태, 이게 바로 마음 성공이라는 거예요.
그러므로 진정한 성공은, 어떤 몸의 성공을 이루었더라도 마음 성공이 뒤따라오지 않고, 마음 성공이 지속되지 않고, 마음 성공이 확인 될 수 없다 그러면, 몸의 성공은 더욱 더 내 마음에 공허함과 허무함을 가져다주고 좌절감을 가져다주는 이유가 될 뿐입니다.
마음 성공이 있어야 몸 성공도 성공이 되고, 몸 실패도 실패가 아닌 것으로 여겨질 수 있다는 거예요.
내 마음이 기쁘고, 내 마음이 만족하고, 내 마음이 행복하면, 몸이 처한 상황이 사람들이 볼 때 실패적 상황이라도 그게 실패가 되겠습니까?
그러니까 진정한 성공은 마음 성공에 달려 있다는 겁니다.
그런데, 신앙인들이 이 세상으로부터 마음이 실종된 뒤에, 실종된 그 사이에 일어나는 일이 바로 이 마음 성공이라는 겁니다.
그래서 마음 성공을 이루고 이 세상의 삶에 나타나게 될 때 어떤 일이 일어나나 하면, 세상으로부터는 실종된 상태로부터 마음이 성공을 한 상태로 바뀌기 때문에, 세상 밖에서 성공한 마음으로 세상으로 돌아왔을 때는, 더 이상 이 세상에서 만나는 사람들로부터 자기의 유익을 구하기 위한 그 어떤 생각도, 계획도, 바람도 없어지고 맙니다.
세상 밖에서 마음이 성공을 했기 때문에, 세상 밖에 있는 이유로 만족하고 기뻐하고 행복해졌기 때문에, 실종된 이후에 세상에 다시 돌아온 마음에는, 더 이상 사람에게서 자기의 유익과 기쁨과 만족을 구하려는 마음자체가 깡그리 없어져 버리고 만다는 얘기입니다.
그리고 이 사람이 세상 바깥에서 무슨 일이 있었는지 모르겠는데, 하여간 이 세상에 살면서 이 사람에게 유일한 보태질 수 있는 기쁨이 있다 그러면, 더해질 수 있는 만족이 있다 그러면, 하나님이 자꾸자꾸 영광을 받는 겁니다.
다시 말해서, 하나님께 조명이 비치는 거예요.
이걸 다시 말하면, 하나님에 대해서 깜깜하던 다른 사람들의 마음이, 하나님을 보게 되는 겁니다.
다른 사람의 깜깜한 마음속에서, 하나님이 조명을 받게 되면서, 다른 사람의 마음이 하나님을 보게 될 때에만, 유일하게 이 세상에서 기쁨으로 보태질 수가 있다는 겁니다.
자! 그러면, 마음 성공을 실제로 이루기 위해서 우리는 날마다 의도된 마음의 실종된 사건을 일으켜 내야 됩니다.
실제로 이 지구 위에서는 어디를 찾아가 봐도, 심지어는 젊을 때 애인을 찾아가 봐도 애인에게 마음이 없어요, 애인에게도 마음이 없으면 이 지구 위에는 갈 데가 없는 거죠.
가장 강렬한 게 애인 아닙니까?
마음이 가 머물도록 가장 끈적끈적하게 잡아당기는 게 애인인데(젊을 때의 애인), 부모가 당할 수 있겠습니까 애인을? 일이 당할 수 있겠습니까?
뜨거운 연애를 하는 중에 애인이 최고 아닙니까?
근데 애인에게 조차도 없는 그 마음, 그럼 찾을 길이 없는 거지요, 지구 위에서는.
그럼 어떻게 이렇게 실질적으로 의도된 내 마음의 실종 사건을 우리가 유발할 수 있겠는가?
첫 번째, 먼저 골방으로 가는 겁니다.
골방이 의도하는 바를 아시지요?
모든 사람과의 만남을 끊고, 모든 사건의 현장으로부터 빠져 나와서 한적한 곳을 찾아갑니다.
그곳이 어디든지, 그곳이 진짜 정 승필이 들어간 화장실이라도 상관없어요, 어디든지 간에.
그리고 마음으로 십자가에서 죽으신 예수님을 바라봅니다.
면류관 쓰시고, 손과 발에 못 박히시고, 창으로 허리를 찔리셔서 찢기시고, 채찍에 맞으셔서 살갗이 너덜너덜하게 되신 그 주님을 마음으로 받아들입니다.
그분의 죽음을 바라보면서 나를 봅니다.
죄로 물든 죄로 찌들어 버린, 장아찌가 되어 버린 나를 보는 겁니다, 나를 인정하는 거예요.
화장실 거울에 내가 멀쩡하게 보여도, 말씀에 의거해서 나는 죄의 장아찌라고 하는 것을 인정하는 겁니다.
지금 내가 이 골방으로 들어오기 전까지, 내 마음이 시달렸던 문제들이 있을 것 아닙니까? 내가 만난 사람들이 있을 것 아닙니까?
죄의 장아찌이기 때문에 내가 그 사람을 만지고, 그 물건을 만지고, 그 사건과 문제를 만지면, 다~ 죄로 물들어 버립니다.
간장으로 담근 마늘장아찌를 손으로 한 번 집어 먹어 보신 적이 있습니까?
손에 닿으면 아무리 비누로 씻어도 그 마늘 냄새와 간장 냄새가 섞여 있는 그 냄새가 손에서 안 없어집니다, 게장 같은 거예요 게장, 안 없어져요 비누로 씻어도 안 없어집니다.
그런 것과 마찬가지에요.
그래서 십자가를 보고, 주님과 함께 죽어야 되는 당위성을 내 마음이 스스로 생각하고 죽어버립니다.
그런데 죽어야 되는 더 큰 이유는 뭐냐 하면, 내가 다른 문제에 마음을 뺏기고, 다른 사람에게 마음을 뺏기고 있지 않습니까?
마음의 소재지가, 마음이 가 있는 곳이 이 세상 어딘가에 있지 않습니까?
이것이야 말로 하나님에 대한 반역이고 배신입니다.
이게 바로 죄악이에요.
마음을 다 해서 하나님을 사랑해야, 마음이 다 하나님께 드려져야만 됩니다.
그래서 더 적극적인 이유로는, 내가 죄의 장아찌이기 때문에 만지는 것마다 죄로 물들기 때문에 내 마음이 생각으로라도 손을 대면 안 되는 것이고, 더욱더 적극적이고 본질적인 이유로는, 내 마음이 세상에서 실종되어야만 되는 이유는, 하나님께 마음을 다 드리고 하늘에 계신 아버지께로 가기 위해.
그동안은 세상의 문제에 가 있고, 뭐 아내에 가 있고, 남편에 가 있고, 자식에게 가 있고, 일에 사업에 가 있고, 내 건강에 가 있고… 온갖 것에 다 가 있었는데.
거기서부터 다~ 마음이 들어가 실종돼 버립니다.
어디에도 없는 실종 사건이 일어나서, 이유는 하나님께 마음을 드리기 위해서.
그러므로 세상으로부터는 실종되어 버리는 겁니다.
이렇게 실종되려고 할 때에, 실질적으로 해 보면 잘 안 될 때가 있습니다.
아무리 주님의 십자가를 마음으로 보려고 해도 자꾸 급한 세상 문제가 내 마음속에 치고 들어오고, 죽었다고 고백을 아무리 해도 고백이 겉돕니다.
정말 내가 죽은 자로서, 마음이 세상에서 실종된 자가 되어서, 정 승필이 화장실에 갇히듯이, 그리스도 안에 갇혀 버리는 일이 일어나질 않는 거예요.
이건 왜 그러느냐 하면, 이미 마음속에 이 세상의 문제나 세상의 사람이나 그 무엇인가가 너무 깊게 강하게 마음을 차지하고 있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그럼, 그럴 때 어떡합니까?
말씀을 들으셔야 됩니다, 십자가 복음의 말씀을 들으셔야 됩니다.
내가 기도가 안 될 정도로 세상에 마음이 사로잡혀 있고, 무겁게 세상이 뿌리 내리고 있을 때 말씀을 들으면 십자가 복음의 말씀이 밖에서 들려오면서, 세상이 내 마음에 들어 차 있는 상태로 파고 들어와서, 내 마음을 지배하고 있는 세상 문제, 세상사람 그 누구라도 쳐냅니다.
말씀이 쳐냅니다, 들어와 마음속에 있는 세상을.
그렇게 되면서 내 마음이 이 세상으로부터 실종될 수가 있게 됩니다.
그러므로 기도라는 것은 뭐냐?
마음 실종 사건을 의도적으로 일으키고 유지하는 거예요.
마음이 세상으로부터 실종된 상태를 유지하면서 기다립니다.
이게 성령의 역사하시기 위한, 시간을 내어드리는 거예요.
이렇게 성령님이 역사하시고, 내 마음은 실종된 상태로 유지되고 있는 동안에 일어나는 일이 바로 마음 성공입니다.
영이신 하나님, 하나님이 거하시는 천국이 영이신 하나님께서 내 애인이 되시고, 내 아버지가 되시고, 내 기업이 되십니다.
그것은 실제로 지금 이 기도하는 시간에, 세상으로부터는 실종된 내 마음이, 십자가를 통해서 실종되지 않았습니까?
그 실종된 마음이 세상 사람들은 내 마음이 어디 가 있는지 모르고 있는 사이에, 하나님으로 마음이 채워집니다.
그 증거가, 평강과 희락과 감사와 세상의 모~든 일이 깃털처럼 가볍게 느껴지는 일로 나타납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 마음에 임하신 거예요, 마음 성공이 이루어진 겁니다.
그렇게 무겁게 짓누르던 세상 문제가 깃털같이 가벼운 문제로 느껴지기 시작합니다.
이걸 경험해 보셔야 돼요.
이렇게 해서 마음 성공이 일어나고, 이제 골방 문을 열고 세상으로 딱 나가 봅니다.
보이는 사람마다 이상하게도, 전적으로 그 사람을 위한 생각만 납니다.
어떻게 하면 이 사람이 잘될 수 있을까?
내 마음이 완전히 실종된 상황에서 성공을 이루고, 온전한 배부름.
그러니까 보이지 않는 하나님이 임해서 나타나는 증거가 배부름이에요.
만족이고, 평강이고 기쁨이고.
더 이상 이 세상에서 바랄 것이 없는 상태가 된다는 얘기입니다.
그 상태에서 사람을 만나면, 아내를 만나고 남편을 만날 때 완전히 달라요.
화장실에서 실종된 시점을 기점으로, 그 전과 후의 정 승필 씨가 약혼녀에게 사랑해라고 하는 말을 하지 않던 사람이 바뀌었던 것처럼, 그 전에 아내를 사랑하고 남편을 사랑하고, 가족을 사랑하고, 자녀를 사랑할 때와, 실종돼서 마음 성공을 이룬 뒤에 자녀를 보고 가족을 볼 때 완전히 다릅니다, 완전히 달라요.
진짜 자녀의 유익을 위한다는 게 뭔지 압니다.
내 마음이 완전히 성공을 이루기 전에는, 자녀를 위한다고 하지만 내 기쁨을 위한 게 많아요.
객관적으로 자녀의 유익을 위할 수가 없어요, 내 마음이 완전히 성공해서 배부르기 전까지.
그리고 가만 따져 보니까, 이 사람에게 제일 유익한 게 무엇인가를 봅니다.
그러면 나처럼 되는 거예요.
마음이 이 지구로부터 실종 되어서, 하나님으로 배부른 마음 성공을 이루는 게 이 사람에게 제일 유익한 거거든요?
그 다른 사람을 위한 유익의 최고봉이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 것과 같은 내용이더라는 겁니다.
마음이 세상으로부터 실종됨으로써 하나님하고만 만나서, 하나님이 그 사람의 기업이 될 때에 그 사람의 최고의 유익이고, 하나님이 그 사람에게 유일한 기업이 될 때에, 하나님께 영광이 또한 돌아가게 된다는 얘기입니다.
이렇게 해서, 우상재물로부터 시작되어서 사도의 권리를 사용하지 않음을 얘기하고 진척되던 이야기가 결말을 맺습니다.
왜 먹고 마시는 일이 중요하지 않느냐, 나는 마음을 성공한 자로서, 세상에서 실종된 마음이 하늘로 성공하고, 하늘로 배부른 자로서 세상에 투입될 때에, 내가 먹고 내가 마시는 것이 문제가 아니라, 내가 만나는 그 사람의 유익을 위하는 사람이 될 수밖에 없으므로, 우상의 재물을 먹는다, 마신다 하는 이 문제가 그리 중요한 문제가 아니다.
안 먹으면 어떠냐?
다른 사람의 양심이 약한 믿음의 소유자들이, 우상재물을 먹는 것 때문에 상한다면, 마음이 상해서 하나님께로 가는 길에 방해를 받는다면, 그까짓 거 안 먹으면 그만 아니냐? 라는 얘기를 오늘 이렇게 ‘다른 사람의 유익을 구하라, 하나님의 영광을 구하라’라는 말씀으로 결론을 맺고 있는 겁니다.
다른 사람의 유익만을 구하게 됩니까? 하나님의 나타나심, 영광만을 구하게 됩니까?
그렇지 않습니까? 그러면 마음이 지구 위에서 실종되지 않은 것이고, 마음의 성공을 지구 밖에서 이루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주님의 십자가를 골방에서 붙잡고 기도함으로써, 마음이 실종되는 일이 날마다 순간마다, 정 승필 씨가 약혼녀 앞에서 감쪽같이 사라진 것처럼, 언제나 십자가를 붙잡고 그렇게 감쪽같이 실종됐다가, 나타날 때는 성공한 마음으로 나타나셔서, 남의 유익만을 구하고 하나님의 영광만이 나타나는 일을 위해 목숨 걸고 사는 하루가 되시기를 바랍니다.
기도하시겠습니다.
하나님아버지, 주님의 십자가에서 죽음을 기도를 통해 이루게 하셔서, 내 마음이 이 지구 위에서 감쪽같이 실종되게 하시며, 실종된 동안에 성공한 마음이 되어 돌아와서는, 남의 유익과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목숨 걸고 사는 삶이 되게 해 주시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아멘!
첫댓글 하나님께서 우리 마음을 잡수셨으니 하나님의 뜻이 하늘에서 이룬 것 같이 이땅에서 이루어 지기를 기도합니다.
감사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