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주권국가의 신하 노릇하기
(군부 반란세력을 견제하기 위한 책략)
방원이 아버지 이성계의 집을 다녀간 바로 그날 궁성에서 어전회의가 열렸다. 9살 어린 창왕을 용상에 앉혀놓고 하는 회의다. 회의는 문하시중 이색(李穡)이 주도했다.
좌중의 대신들을 휘둘러보던 이색이 회심의 미소를 지으며 입을 열었다.
"이번 하정사(賀正使)에는 내 직접 다녀와야겠소이다. 이숭인을 부사, 전리정랑 이방원을 서장관 삼아 다녀올 테니 그리 아시오.“
군소리 내지 말라는 이색의 폭탄선언이었다. 의견을 구하는 회의가 아니라 결정을 통보하는 회의다.
왕과 신하들은 서로의 얼굴을 바라보며 어안이 벙벙할 뿐 아무 말도 못했다. 60세의 노구를 이끌고 장장 8천리 금릉(남경)을 왕복하는 사신 길을 직접 다녀오겠다는 문하시중(門下侍中) 이색의 발언은 가히 메가톤급이었다.
이번 하정사는 금릉에 있는 천자(天子)에게 새해 인사를 올리는 것이 명분이지만 최근의 위화도 회군과 우왕을 폐하고 창왕을 옹립하게 된 배경을 설명해야 한다.
그러잖아도 공민왕의 죽음에서부터 의혹의 눈초리를 보내고 있는 명나라에게 노련한 외교술이 필요한 시기였다.
이렇게 막중한 임무를 수행해야 하는 사신에 이색이 가겠다고 나선 것이다.
감국과 신탁통치가 무엇이 다를까?
젊고 유능한 인재가 많음에도 이색 자신이 직접 이방원을 대동하고 명나라를 다녀오겠다고 한 배경에는 2가지의 숨은 그림이 있었다.
첫째는 명 태조 주원장에게 직접 전할 비장의 메시지가 있었다.
고려 감국(監國)이다. 주권국가의 신하로서는 위험천만한 발상이다.
두 번째는 자신이 없는 동안에 있을 수 있는 이성계의 책동을 미연에 방지하겠다는 포석이 깔려있었다. 군부세력에서 일고 있는 '이성계 추대론'이다. 자신이 조정을 비우고 있는 동안 이성계 세력이 창왕을 폐하고 이성계를 왕으로 추대하려는 음모에 쐐기를 박아두기 위하여 이방원을 차출한 것이다.
"전리정랑의 일은 내가 결정할 일이 아니오니 본인으로 하여금 말씀드리도록 하겠습니다."
"부시중(副侍中)도 알아두셔야 할 일이기에 말씀드리는 것입니다."
묘한 의미를 함축하고 있는 이색의 말에 이성계는 언짢았다.
회군의 진정성은 커녕 반란의 상습성에 무게 중심을 두고 있는 이색의 눈초리가 안면에 와 닿을 때 벌레가 기어가는 듯한 불쾌한 느낌이었다.
비록 왕명을 어기고 회군하여 최영 장군을 숙청하고 우왕을 폐했지만 국가의 원로 대접으로 이색을 문하시중에 밀어올린 사람이 이성계다. 그 장본인으로부터 말로 표현하기 어려운 '모욕과 견제를 당하고 있다'라고 받아들인 이성계는 선택이 잘못되었음을 느꼈다. 인사가 잘못되었다고 토로하는 심정이 이와 같지 않았을까.
인물은 인재 흉년에 빛난다
이로 미루어 보아 혁명 와중에 있는 고려 조정에서 문신(文臣)들의 발언권이 예상보다 강력했음을 의미한다. 왕명을 거역하고 회군한 세력이 멀쩡히 살아있는 조정에서 이렇게 나올 수 있다는 것은 대단한 뱃심이다. 자기 관리에 철저하고 도덕성으로 무장한 선비만이 펼칠 수 있는 기개다.
우리나라 현대사에서 최고회의 의장이나 국보위 상임위원장에게 이런 배짱으로 나온 민간 관료가 있었는지 의아스럽다. 남산이나 서빙고가 두려워 엄두를 내지 못했을 것이다.
명나라 사행 길에 이방원을 데리고 가겠다는 이색의 발표는 이성계에게 유쾌하지 않은 일이었다. 태평성대라면 이제 약관 21세의 정5품 관리가 비록 정사(正使)나 부사(副使)는 아니지만 천자(天子)를 알현하는 사신에 발탁되었으니 개인은 물론 가문의 영광이었다.
하지만 이번 사행 길에 이방원을 포함시킨 것은 그의 능력을 인정해서 라기 보다 문하시중이 없는 동안 이성계의 모반을 방지하기 위한 인질이었다는 것을 간파한 이성계는 노회한 이색에게 희롱당하는 기분이었고 벌레 씹은 심정이었다.
이성계는 두 번 놀랬다. 사행단을 이끌고 직접 금릉(남경)에 다녀오겠다는 이색의 발언에 뒤통수를 얻어맞은 듯했다. 도대체 지금이 어느 때인데 이색이 명나라에 들어가겠다는 것인지 도무지 이해가 안됐다.
두 번째는 방원의 말이 적중하는 데서 오는 전율이었다. 방원의 정보력에 놀라울 뿐이었다.
미더움과 두려움이 교차했다. 방원은 그 비밀을 어떻게 알아내고 미리 귀띔을 해줬단 말인가? 이성계는 앞 통수를 얻어맞은 듯했고 귀신에 홀린 듯했다.
고려와 중국과의 관계는 작은 나라가 큰 나라를 섬기는 사대관계이며 조공국 관계였다. 원나라가 대륙의 맹주로 군림할 때는 원나라의 부마국(駙馬國)이 되어 머리를 조아렸고 신흥강국 명나라가 대륙의 패자로 떠오르자 친명, 배명을 오락가락하며 갈팡질팡했다.
결과는 친명으로 귀결됐지만 고려의 치부를 드러낸 행태였다. 약소국의 살아남기 위한 몸부림이며 비굴함이다.
철령위를 세우겠다는 명나라의 통보에 요동을 정벌하겠다고 출병한 것이 불과 5개월 전이다. 명나라의 입장에서 보면 명(命)에 반발하며 기어오른 셈이다.
비록 위화도에서 회군하여 국경을 넘지는 않았지만 소국이 대국을 넘본다는 것만으로도 괘씸죄에 해당한다. 거기에 더하여 상국의 허락 없이 왕을 마음대로 갈아치웠으니 대국의 자존심을 건드렸을 것이다.
아침저녁으로 죽 끓듯이 변하는 것이 명 태조 주원장의 성격이다. 어떻게 나올지 예측불허다. 북방에서는 원나라와 치열하게 전투를 벌이고 있다. 전쟁피로증에 신경이 날카로워져 있다. 더구나 그의 심복 좌승상 호유용을 처형하면서 연루자 1만 명을 죽인 주원장은 정신상태가 피폐해져 있었다.
고려의 사신이 연금되거나 처형될 수도 있는 상황이었다.
이러한 호구에 이색이 들어가겠다니 기이한 일이다.
이성계는 언젠가 이 문제가 거론되어 자신에게 명나라에 들어가 줄 것을 요구하는 의견이 모아지면 단연코 거절할 심산이었다. 헌데 자청해서 이색이 들어가겠다니 그 속셈을 알 수가 없었다.
이색의 복안도 복안이려니와 그와 함께 떠나는 아들 방원이 무사히 다녀올까 그것도 걱정이었다.
아무래도 무슨 복심(腹心)이 있는 것만 같았다.
기개 있는 선비가 군부세력에게 띄우는 마지막 승부수 이색은 혁명세력에게 처음이자 마지막 승부수를 띄웠다.
하정사(賀正使)+주청사(奏請使) 카드다. 사신으로 떠나기 직전 이색은 이숭인을 불렀다.
"우리가 금릉으로 떠난 직후, 별도의 사신이 떠나서 우리보다 먼저 황제를 알현하는데 차질이 없도록 하시오."
"네, 분부대로 밀직사 강준백을 정사, 이방우를 부사로 선정하였습니다.
심양 길을 피하고 지름길을 택하여 먼저 당도하도록 조치했습니다."
"부사에 이방우라… 절묘하군요. 인물을 잘 골랐습니다."
이방우가 누구인가. 바로 이성계의 맏아들이다. 이색 진영에서는 하정사에 이방원, 주청사에 이방우를 대동하여 이성계를 2중으로 견제하겠다는 심산이었다.
"황제를 알현하는 소임에 착오가 있어서는 아니 됩니다."
"고려 국왕이 친조(親朝)하라는 명을 꼭 받아내라 하였습니다.“
무서운 책략이다. 아무리 사대관계에 있는 중국과 고려의 관계라 해도 9살 어린 왕이 8천리 길 남경에 찾아가 황제 앞에 머리를 조아려 왕으로 인정받고 눈도장을 받아야 한다는 것이다.
아차하면 고려라는 나라를 통째로 명나라에 갖다 바치는 위험천만한 발상이다. 군사반란세력 앞에 바람 앞에 등불처럼 위태로운 고려를 지키기 위한 고육책이지만 주권국가로서는 선택해서는 아니 될 하등 책략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