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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년 봄이 찾아왔다. 나는 자전거를 타고 한강변으로 나가는 일이 많아졌다. 한강변에 나가면 봄바람이 살랑살랑 불어오고, 온갖 꽃들이 다투어 피어나고, 나무들마다 싱그러운 잎으로 아름다웠다. 신록이 우거진 숲 그늘에 앉아 하늘을 바라보면서 나는 봄을 노래하는 우리 가곡들을 불러보곤 하였다.
그때 문득 그런 생각을 하게 되었다. 나도 한번 가곡을 만들어볼까. 내가 좋아하는 시에 내가 곡을 붙여 우리 가곡을 만들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그렇게 하려면 우선 공부를 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우선 내가 음악이론과 작곡에 대한 기초적인 공부라도 하지 않고서는 작곡을 할 수 없을 것 같았다.
그날 저녁부터 나는 당장 공부를 시작하였다. 나의 오랜 독학(獨學)의 습관대로 기초적인 작곡이론에 관한 책을 몇 권 사서 읽고, 유튜브와 인터넷 강의를 통해 작곡을 시작하기 전 가장 기본이 되는 음악의 3요소인 리듬, 멜로디, 화성에 대한 공부를 하였다. 음계와 스케일, 조표와 조성, 박자 등을 배웠다. 음악공부를 마치 옛날 고시공부하듯 그렇게 열심히 하였다. 그러자 아내는 “지금이라도 피아노를 배우면 당신은 금방 배울 거야”라고 하면서 거의 50년이 다 된 바이엘 악보 교재를 꺼내 놓았다.
나는 일단 아내가 준 피아노 바이엘 교본의 머리말을 자세하게 읽어보았고, 하루 종일 피아노 앞에 앉아 연습을 시작하였다. 나는 아내가 가르쳐준 대로 바이엘 1번부터 치기 시작하였다. 아내는 피아노를 치기 위해서는 ①손가락은 피아노의 건반 위치에 다섯 손가락이 위치하여야 하고, ②눈은 악보를 보며 읽어야 하고, ③귀로는 메트로놈의 소리를 들으며 박자를 세어야 한다고 하였다. 그리고 아내는 손가락으로 피아노음을 하나씩 짚을 때마다 박자를 도, 둘, 셋, 레, 둘, 셋, 미, 둘, 셋, 이런 식으로 숫자를 입으로 세면서 피아노를 치라고 하였다.
하지만 나는, 눈은 피아노 건반에 가 있고, 귀에는 메트로놈 소리가 들리지 않았으며, 아내처럼 박자를 입으로 세는 것이 더 헷갈리는 것 같았다. 그런데 희한한 것은 내가 비록 악보를 보는 것은 서툴렀어도 귀로는 비교적 음을 정확하게 듣는다는 것이었다. 그러므로 비교적 단순하고 쉬운 곡은 몇 번 치고 나면 그 음을 외워서 건반을 짚는 것이 가능했다. 다만 곡을 외우면서도 손은 서툴러서 손가락은 우왕좌왕 허둥대고 있었다.
그래도 나는 피아노를 치는 것이 즐거웠다. 그래서 유튜브를 보며 음악이론도 공부하고 피아노 강습도 받았다. 음악이론을 공부하다보니 음악의 역사가 궁금했고, 음악의 역사를 공부하다보니 클래식음악을 아는 것이 중요하다고 하였다. 그러자 큰딸이 클래식음악에 대한 책을 사다주었다. 나는 그 책에 나와 있는 클래식 음악을 열심히 들었다. 그리고 음악공부를 하면 할수록 수많은 위대한 음악가들의 생애와 그들이 남긴 빛나는 음악을 듣는 것이 너무 행복하였다.
그러던 6월의 어느 날 나는 내 시집에 있는 「목련이 지고」라는 제목의 시를 다듬어 가사를 써보았다. 그리고 틈만 나면 자전거를 타고 한강공원으로 나가 봄 햇살을 받으며 벤치에 앉아 녹음이 짙어가는 나무들을 바라보며 이 가사를 흥얼거려보곤 하였다. 그렇게 입속으로 가사를 흥얼거리다보니 노래의 멜로디가 자연스럽게 떠올랐고, 처음에는 제멋대로 바뀌던 선율도 차츰 자리를 잡는 느낌이었다.
이렇게 해서 나의 첫 가곡의 멜로디가 완성되었다. 이 곡의 가사는 내 시집에 있던 위의 원시(原詩) 「목련이 지고」를 토대로 한 것이지만, 제목을 「봄꽃편지」로 바꾸었고, 작곡을 하는 과정에서 가사도 많은 부분을 수정한 것이었다. 또한 이 가곡은 통절가곡(通節歌曲)이 아니라 유절가곡(有節歌曲) 이었다. 이 가곡의 완성된 가사는 이러하였다.
봄꽃편지
(1절)
목련이 지~고/ 라일락이 피었다고
그녀에~게서/ 편지가~ 왔네
그대 돌아올 날/ 기다리고 있다고
사랑으로 그리움~담아/ 편지가 왔네
오, 내 사랑, 그~대 나의 모든 것
언~제까지나/ 그~대만을 기다려요
나 오늘도 그대 그~리며/ 편지를 씁니다.
(2절)
장미꽃 만발하고/ 해당화도 피었다고
달빛 어린 언덕에서/ 답장을 쓰네
돌아갈 그 날이/ 얼마 남지 않았다고
밀려오는 그리움~담아 답장을 쓰네
오, 내 사랑, 그대 나의 생명이야
영~원토록 그~대만을 사랑하리
봄꽃향기 가득한~밤에 편지를 씁니다.
(반복) 봄꽃향기 가득한 밤에~
편지를 씁니다.
결국 이 시의 1절은 연인이 화자(話者)에게 보낸 편지를 받았다는 내용이고, 2절은 화자가 연인에게 답장을 하였다는 내용이었다. 그러나 이렇게 완성한 「봄꽃편지」는 박경규선생님이 처음 작곡하신 「봄 편지」와 가사가 비슷한 것인데다, 내가 기성작곡가도 아니면서 작곡을 한다는 것이 왠지 그 분께 결례를 하는 것 같아서 조심스럽고 죄송한 마음도 들었다. 그래서 그 분께는 차마 말을 하지 못하였다.
나는 집에 오자마자 아내에게 내가 제멋대로 만든 멜로디를 불러 주었다. 내가 난생처음 가곡을 만들어본 순간이었다. 아내는 노래를 듣더니 “어디서 많이 듣던 가락인데?” 하면서 시큰둥하였다. “그래? 그렇게 이상해?” 나는 풀이 죽은 나머지 그냥 잊으려고 하였다. 그러자 아내는 그런 내가 측은해 보였는지 웃으며 말하였다. “당신이 그렇게 좋은 노래라고 생각되면 악보로 한번 적어 봐요” 하였다.
나는 즉시 문구점으로 달려가서 작곡노트 한 권을 사왔다. 그리고 내가 머릿속에서 확정한 멜로디를 피아노로 한 음씩 짚어가면서 작곡노트에 음표를 그려나갔다. 신기한 것은 어떤 음을 짚었을 때는 피아노소리가 이상하게 들렸고, 그 음은 결국 반음을 올리거나 내려야 정확하게 맞는다는 사실을 깨달은 것이었다. 그래서 음표에 샾(#)이나 플랫(b)을 붙여 멜로디를 완성하였다.
물론 이 초안악보는 처음에는 아무런 조표(調標)도 붙지 않은 그저 다장조(C Major) 악보였으나 음악이론을 어느 정도 배운 후에는 마장조(E Major)로 바꾸었다. 나는 이렇게 악보를 완성하고 나서 아내에게 악보대로 연주를 해보라고 하였다. 아내는 피아노를 쳐본지 하도 오래되어 잘 못 친다면서도 금세 곡을 연주하였다. 나는 아내가 연주하는 곡을 여러 번 듣고 잘못된 음과 박자를 수정하는 방법으로 악보를 완성하였다. 아내는 몇 번 연주를 해보더니 혼잣말로 한마디 하였다. “피아노로 쳐보니 멜로디가 생각보다 괜찮은데?”
이로써 나의 첫 가곡 「봄꽃편지」가 완성되었고, 그 후 우여곡절 끝에 구광일 작곡가를 만나 그가 이 악보를 편곡하고 3단 악보를 완성해 주었다. 하지만 이 가곡은 성악가를 정하지 못하여 아직 정식으로 녹음을 하지는 못하였다.
https://youtu.be/f9_HmGZU5AY?si=tjQkI97sa7o-vk1-
첫댓글
그러니요
한강변을 자전거로 달리시면서
일지속에 오늘의 음악은
아내분의 덕으로
감사한 좋은 곡들이 주신 선물인가 봅니다
축하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