갈수록 서민으로 사는 즐거움 줄어드는 따분한 나라
왜 이렇게 국민의 세세한 일상까지 정부가 간섭해야 하는 건지.
연일 어두운 정책과 뉴스가 가정과 사회를 덮고 있습니다. 40년 창작생활을 한 소설가의 문학적 상상력이 만들 수 있는 미래 영상 역시 암울한 것들뿐입니다.
엽기적인 사건, 분통터지는 사고만 일컫는 게 아닙니다. 이혼율 증가, 출산율 저하, 가정의 해체, 가족 개념의 상실, 1인 생활자 증가, 가정교육의 실종 등등…
표를 얻는 데 혈안이 된 정치인들의 포퓰리즘은 당장을 위해 온갖 수사(修辭)를 다 동원하여 대책도 없고 선거가 끝난 뒤엔 지키지도 않는 복지를 내세워 기대를 부추기고, 불신과 혼란을 조성하고 있고, 경제를 살리겠다는 정부는 기껏 생각해 낸다는 게 금융대출 완화 따위 혀끝에서나 잠시 노는 (그러다가 곧 쓴맛으로 변할) 당분으로 개개인을 모두 빚쟁이로 만들어 온 국민을 경제노예로 만들어가고 있습니다.
보다 심각한 것은 정부가 개개인의 일상을 너무 세밀한 부분까지 (돌본다는 개념이겠지만) 간섭하다보니 국민의 얼굴에서 현격하게 웃음이 사라져 가고 있는 것입니다.
차 한 잔 마시면서 지금 우리나라가 가고 있는 방향을 보십시다. 진정한 개인의 자유나 낭만, 인간다움이 넘치는 사회(국가)로 가고 있는 게 맞습니까?
교육정책은 왜 그렇게 갈팡질팡하며 우민화를 지향하는지 획일화 평준화에 매달립니다. 새로 등장하는 대통령마다 교육 혁신을 내세우는 것은 의례적이 되었는데, 엊그제는 수능에서 영어시험을 쉽게 하여 망국풍토인 사교육을 없애겠다고 또 흔들고 있습니다.
온 세계가 대한민국의 기적은 뜨거운 교육열에 그 원동력이 있었다고 극찬하는데, 정작 당사국인 우리나라에서는 이를 부정하기라도 하듯 교육열을 망국병이라고 진단하고 평준화 우민화로 대전환을 시도하는 모양새입니다. 문제를 쉽게 하여 대입 수능 만점자가 대거 생겨나면 유난히 극성스러운 경쟁 심리까지 사라져 대한민국이 우애와 평등을 구가하는 지상낙원이 될 것이라 믿는 것일까요? 그렇게 되면 서울대나 연고대 등 젊은 꿈이 열망하는 유명대학의 신입생 선발이 줄서기나 뺑뺑이로 이루어질까요? 아니면 전국의 모든 대학 수준이 우열 없이 평준화되어 어떤 학교를 나와도 차별받지 않는 이상적인 사회가 지금 집권자들의 임기 내에 구현될까요?
교육의 평준화 대학의 평준화가 구현되면 대기업 입사나 정부 고위 관료가 되는 것도 선착순이나 뺑뺑이 돌리기로 바뀌는 건가요? 삼척동자도 천만의 말씀! 하며 깔깔거릴 일입니다. 아예 시험을 없앤다 해도 선발기준은 새롭게, 얼마든지 새롭게 만들어질 것이고 만들어져야만 하는 일입니다. 속된 말로 청와대 근무를 아무나 할 수는 없지 않겠습니까?
또 있습니다. 아니 또 있는 정도가 아니라 헤아릴 수 없이 많습니다. 도대체 여성의 권익은 어디까지 높아져야 세계에서 유일하게 여성가족부가 있는 나라의 정부를 만족시킬까요?
인간세상은 남녀가 어울려 살도록 되어 있고, 그래야 활력도 살아나고 보기에도 좋습니다. 가르치지 않아도 아는 것이 남녀의 어울림은 음양의 조화입니다. 남자는 양이고 여자는 음입니다. 남자는 능동적이고 여자는 수동적인 것이 타고난 애초부터의 성질입니다.
국어사전에도 나와 있듯 능동이란 스스로 작용(시작)하는 것이요, 수동이란 그런 작용을 받아 움직이는 (반응하는) 것입니다. 건드리고 반응하면서 짝을 찾는 것이 인간답기도 하거니와 에너지가 생성되는 기초행위일진대 이것의 싹을 아예 잘라버리는 느낌이 드는 것은 반취가 특별해서일까요? 가장 최근의 정의는“남자가 말로든 행동으로든 여자에게 수치심을 느끼게 하면 그것이 성희롱이요, 성추행이라는 겁니다.
주변을 보면 남자들은 현저히 위축되었고 여자들은 그런 분위기를 즐기면서도 속으로는 아무도 손을 내밀지 않는 것에 대해 서운함을 느낄 때가 많아 보입니다.
아직 사회적 지위와 재력을 갖고 있는 (전직 검찰총장이나 국회의장, 현직 대학교수처럼 상위계층) 일부 특수계층의 남자 중에는, 그런 사회적 변화나 놀랍게 높아진 여자의 인권을 인정하지 않으려는 사람들이 있어 보입니다. 하지만 그들에게도 아마 곧 닫칠 겁니다. 왜냐하면 여자들은 그런 남자 주변에 모여들게 되어 있고, 사람의 능력과 감정은 한계가 있어 여러 명의 여성에게 똑같이 대해줄 수 없기 때문입니다. 질투하는 사람이 생겨나거나 소외감을 느끼는 여성이 돌아서서 급소를 찔러버리면 치명적인 칼이 되는 것입니다.
그래도 남자들은 아름다운 여자 앞에 서면 자제력을 잃고 불나방이 되어버립니다. 죽을 줄 모르고. 한국 남자님들. 한 순간에 모든 것을 잃고 곤욕을 당할지도 모를 위기가 하루에도 몇 번씩 덮쳐오는 시대를 어떻게 하면 무사히 넘길 수 있을까요? 목불(木佛) 같은 사람이 되어야겠죠? 태워도 사리가 나올리 없는….
나라에 돈도 없다면서 아이들 급식은 왜 정부가 나서서 챙겨야한다며 갑론을박 소란을 피우는지 모르겠습니다. 사람의 형성은 음식에 좌우됩니다. 타고난 체질에 따라 맞는 음식, 안 맞는 음식이 있어 개개인 호불호 차이가 현저합니다.
대개는 가정마다 식구들이 즐겨먹는 음식이 있고, 그것이 그 가족 고유의 체질에 맞는 음식이라고 보아 틀림이 을 겁니다. 보다 중요한 것은 어릴 때 가정교육의 가장 큰 수단 또한 음식이라는 점입니다. 손발 얼굴 깨끗이 씻고 단정한 모습으로 감사하며 밥상에 앉는 예절부터 가르치는 게 사람 교육의 시작이어야 합니다.
그런 것을 보육원에서 먹고, 유치원에서 먹고, 초등학교, 중학교에서 평균적인 영양식단에 의한 단체급식으로 먹게 만들다니요. 인간성의 획일화 내지 평준화라도 실험하자는 건거요? 아니면 복지라는 커튼 뒤에서 새로운 사회주의로 가는 실험이라도 하는 건가요?
하긴 젊은 부부들이 대개 결혼 초부터 맞벌이가 아니면 감당할 수 없는 빚쟁이가 되어 있는 지금 같은 상황에서 한가하게(?) 가정교육 운운한다는 게 한가한 이야기처럼 들릴지 모르겠습니다. 아이들 밥 차려주고 도시락 챙겨줄 여유가 없어진 지 오래인데 말입니다.
국민 최대의 기호식품 - 혐오식품이라 할 사람도 있겠지만 - 담배와 술에 정책은 왜 그렇게 지저분합니까.
새해부터는 담배 피울 수 있는 공간이 아예 희박해졌습니다. 구멍가게 같은 식당, 포장마차, 커피점, 호프집, 당구장, 기원 등등 아무 곳에서도 담배를 피울 수 없게 된 것입니다. 피우다 적발되면 과태료 10만원! 혹시나 고지서 발부하다 살인이라도 일어나지 않을까 걱정됩니다. (개인만이 아닙니다. 해당업소 업주에게는 170만원인가 부과한다고 합니다.)
그렇게 흡연을 반강제로 막으면서 담배 값은 두 배로 올렸고, 담배 소비에 의해 얻어지는 세금을 2조~3조로 예상, 정부 예산을 편성하는 이상한 나라입니다.
술은 또 어떻습니까? 기회 있을 때마다 반복하는 말이지만 대한민국처럼 아무 곳에서나 술을 팔고 또 마실 수 있는 나라는 세상 어디에도 없습니다. 그러는 한편에서 도심 곳곳의 대로를 무시로 차단하고 음주단속을 하는 나라 또한 세계에 드뭅니다.
주기도문에 있죠. …우리를 시험에 들지 말게 하옵시고 다만 악에서 구하옵소서… 물론 대한민국이 기독교 국가는 아닙니다만 왜 이렇게 국민의 즐거움을 앗아가고 시험에 들게 하는지 묻고 싶습니다. 누구에게 물어야 할까요?
《국제시장》이라는 영화가 연말연시 극장가의 화제가 되어 관람을 했습니다. 1949년생인 반취도 마치 지난 삶을 돌아보는 것 같았습니다. 지금 와서 젊음을 줄 테니 다시 살겠느냐 물으면 한마디로 거절할 만큼 어렵고 힘든 세월이었습니다.
그러나 다시 돌이켜보면 그렇게 어렵던 시대였지만 인문(人文)이 있었고 낭만이 있었습니다.
인문은 존재를 중요시하고 능력과 성품, 현재적 소망과 행복을 귀중하게 여기는 정신이요 낭만은 형식보다 정신에 우위성을 부여하는 의미로, 다양성을 인정하며 느낌, 충동, 열정 등으로 자유로운 창조력을 표현하는 콘셉트입니다.
지금 세상은 오로지 찬란한 황금에 연연하여 유랑하는 사람들뿐인 것 같습니다. 심성이 바짝 메마른데다 온 국민이 여성화되어가면서 저만 챙기고 영악해지고 있습니다.
가난해도 즐겁고 훈훈한 사회로 나아갈 수는 없을까요? 경제 살리기, 안전한 사회, 튼튼한 안보, 다 좋습니다만 2015년을 맞는 지금, 국민에게 절실한 것은 즐거운 삶이 아닐까 생각해봅니다. 즐거움이 없는 삶은 따분할 뿐이기 때문입니다.
첫댓글 귀한 말씀입니다. 즐거움이 있는 삶을 만들어 가요.
하하하하하! 을미년에는 우리 서민도 편안하게 살 수가 있을 것입니다.
너무 비관적으로 보지 앟는 것이 어떨까요?
그래도 봄은 오고 꽃은 필 것이니까요! 하하하하하하!
그럼요. 그래도 웃고 사는 반취입니다
"지금 와서 젊음을 줄 테니 다시 살겠느냐 물으면 한마디로 거절할 만큼 어렵고 힘든 세월이었습니다."
저는 직접 겪지는 않았지만 맘에 찡하게 와닿습니다.
공감하며 읽었습니다. 그래도 덕인회가 있잖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