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야금 산조(정남희제 황병기류)저자황병기출판이화여자대학교출판부 | 2010.5.20.페이지수152 | 사이즈 210*297mm판매가서적 14,250원
저자
황병기 가야금 연주가
1936년 서울에서 태어난 황병기는 중학3년생이던 1951년 부산 피난 중에 처음으로 가야금을 만나 그 인연을 58년간 이어왔다. 처절했던 6.25전쟁과 전후 시대의 분위기 속에서도 그는 담담하게 자아를 지키듯 가야금을 지켰고 가야금 또한 그를 지켰다. 중고등학교를 거쳐 대학시절까지 김영윤·김윤덕·심상건·김영제 등 당대 최고의 명인들에게 궁중음악 ‘정악’과 민속음악 ‘산조’를 두루 사사받았다. 경기고를 거쳐 서울대에서 법학을 전공한 그가 1959년 졸업과 동시에 서울대 음대 국악과에서 학생들을 가르칠 때만해도 평생의 업으로 삼아야 할 것이 가야금인지 깨닫지 못했다. 하지만 영화사 대표, 출판사 대표 등 사업가로 살아가던 시절에도 저녁이 되면 가야금을 찾았고 그러던 중, 1974년 이화여자대학교 국악과 교수 제의를 받게 된 계기로 그의 삶은 온전히 가야금의 삶이 된다. 창작의 차원에서 가야금을 바라보게 되면서, 1962년 창작곡 ‘숲’, ‘가을’, ‘석류집’ 등이 탄생되었고, 조선후기음악의 경계를 허물고 옛 신라인들에게 곡을 위촉받았다고 상상하며 완성한 ‘침향무’를 발표하여 국내는 물론 세계 문화인들이 사랑하고 인정하는 음악가로 이름이 나게 되었다. 국악뿐 아니라 서양음악을 완벽히 이해하고 흡수한 황병기의 작품세계는 한국음악의 차원을 넘어서 세계적 현대음악으로 평가되기도 한다. 젊은 시절부터 미국, 유럽, 러시아 등 세계 각국으로부터 초청을 받아 다녔던 해외 연주여행 또한 그의 예술혼을 불태우는 데 큰 역할을 했다. 한국을 대표하는 음악가로서 1990년 평양 범민족음악회 '서울전통음악연주단' 단장으로 평양을 방문한 후, 같은 해 '90서울통일음악회' 집행위원장을 맡아 북한 예술인들을 남한으로 초청하여 분단국가의 예술인으로서의 역할에 헌신하기도 했다. 또한 백남준, 윤이상, 존 케이지, 예후디 메뉴인, 장한나 등 국내외 예술가들 및 학자들과의 교류도 활발하게 해왔다.
출처 : 인터넷 교보문고
목차
001. <일러두기>
002. 부호설명
003. 조율법
004. 구음법
005. <악보>
006. 다스름
007. 진양조
008. 중중모리
009. 엇모리
010. 자진모리
011. 휘모리
012. 단모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