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 감사
골로새서 3:17, 12-17 마태복음 11:25
데살로니가전서 5:18
체부동교회(體府)
顯於幼者感謝, 太十一章二十五.
凡事感謝, 데살前五章十八절.
言行則主感謝上帝, 골三章十七.
救於死亡感謝上帝, 롬七章 二十四節.
信有感謝, 若無感謝, 是死的宗敎也. 故信有感謝而後可謂宗敎生活也. 今日若時間餘裕, 則人人看証, 言其生活則主必悅聞也. 然時間不足故余代全會而言感謝, 遺憾萬千也. 言世界之感謝則不戰條約成立, 國與國戰爭從此永絶, 豈非感謝乎? 日軍縮方在會議中, 姑未知成否, 然必成立乃已也. 亦爲感謝, 而四十年支那呻吟於專制之下, 而今革命完成, 亦東亞之幸. 今雖有反舊運動, 此革命完成過程中也. 露西亞亦在解放中, 豈非感謝乎? 言朝鮮之感謝則夏間旱經太甚, 似不得一粒之穀矣, 今大地秋成, 果木有拳大之果, 田野菜穀漸熟, 南鮮有三割減收, 其可免凶云, 豈非感謝乎? 敎育日進, 圖書館男女讀書者每日滿員, 經濟上皆言必死而天不孑遺, 乃能衣之食之, 豈非感謝乎? 若言本敎會之感謝則某敎友得男, 某敎友得財, 某敎友大病中得生, 某學生卒業, 某靑年遊學, 某學生進上級, 吾敎會感謝全不可形言. 以靈的言之則無退敎者, 無冷心者, 無背信者, 又機關各自競爭, 日日進步, 豈非感謝乎? 主曰顯於幼者感謝云. 吾等果幼者矣. 經濟也, 政治也, 知識也, 皆幼兒也. 主使之拔罪惡中, 得救援, 豈非感謝乎? 吾等之感謝不可形言. 如是感謝而尤益受恩矣. 年前美國債物盂新鮮, 言我信主而富, 各處請捬病書電來積, 朝朝夫妻會于事務室, 一一開封見之, 必祈禱于主而立施, 故我之營業益益進步云, 古者幼瑟離可之事, 亦皆感而受恩者也, 不見蜜房之蜂乎? 取蜜于花木之中, 而貯之房內, 曰是我之能, 可乎? 神若收其萬紫千紅之花, 則何得蜜粉乎? 甚愚矣. 故吾之幸, 皆在神恩之內.
어린이에게 나타내심에 감사 마태복음 11:25.
범사에 감사 데살로니가전서 5:18.
언행에 주를 힘입어 하나님께 감사 골로새서 3:17.
사망에서 구원하심을 하나님에 감사 로마서 7:24.
신앙에는 감사가 있습니다. 감사가 없으면 이는 죽은 종교입니다. 그러므로 감사가 있은 뒤에라야 종교 생활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오늘 시간의 여유가 있으면, 각 자 간증(看証)으로 말하게 되면, 주께서 기뻐 들으실 것입니다. 그러나 시간이 부족하여 제가 교회 전채를 대신하여 감사함을 말하게 되어서, 아쉽고 유감스러운 감정이 천만 가지나 됩니다.
세계 문제에 대하여 감사함을 말하자면, 부전조약(不戰條約)이 성립되어 나라와 나라 사이에 전쟁이 이로부터 영구히 없어지게 되었으니 어찌 감사하지 않겠습니까? 일본 군대의 축소에 대한 군축(軍縮)도 바야흐로 지금 회의 중에 있는데, 이것이 성공할지는 아직 모르지만 반드시 성립되면 이 역시 감사할 일입니다.
지난 40년 간, 중국은 전제주의 아래서 신음하였는데, 지금 혁명이 완성되었으니, 이 역시 동아시아의 다행스러운 일입니다. 지금 옛 것으로 돌아가자는 반구운동(反舊運動)이 있지만, 이는 혁명이 완성되는 과정의 하나입니다. 러시아도 역시 해방 중에 있습니다. 이 어찌 감사할 일이 아니겠습니까?
우리 조선에 대하여 감사할 일은, 지난여름, 심한 가뭄이 들어서 한 톨의 곡식도 못 얻을 것 같았지만, 지금 대지에 가을 곡식이 익어가고, 과일 나무에 주먹만 한 과일이 달렸으며, 들판에는 야채와 곡식이 점점 익어가고 있습니다. 그리하여, 조선의 남쪽인 남선(南鮮)에는 3할의 감수(減收)를 예상해서 흉년은 면하였다고 하니 이 어찌 감사할 일이 아니겠습니까?
교육도 날마다 진보하여 도서관에는 남녀 독서자가 매일 만원입니다. 경제적인 문제에 있어서는 모두 다 죽겠다고 말하지만, 하나님께서 버리지 않으시고, 모두 입히고 먹이시니, 이 어찌 감사하지 않겠습니까? 우리의 교회에 대하여 감사함을 말하면, 어떤 교우는 아들을 얻었고, 또 어떤 교우는 재물을 얻었으며, 어떤 교우는 큰 병을 이기고 살아났으며, 어떤 학생은 졸업을 했고, 어떤 청년은 유학을 떠났고, 어떤 학생은 상급학교에 진학을 했습니다. 우리 교회에 대한 감사를 이루 다 형용하여 말할 수 없습니다.
영적(靈的)인 문제에 대하여 볼 때, 교회에서 쫓겨 난 자도 없고, 냉정한 마음을 가진 자도 없고, 배신자도 없으며, 또 여러 기관(機關)에서 경쟁적으로 날마다 진보하니 이 어찌 감사하지 않겠습니까?
주님은 ‘어린 아이에게 나타내심을 감사하라’고 하였습니다. 우리는 어린 아이와 같습니다. 경제나 정치나 지식에 있어서 다 어린 아이와 같습니다. 주님께서는 우리를 죄악 가운데서 빼어내어 구원을 얻게 하였으니 어찌 감사하지 않겠습니까? 우리들의 감사함은 이루 형용하여 말할 수 없습니다. 이와 같이, 감사는 더 많은 은혜를 받게 됩니다.
몇 해 전에, 미국의 채물 우신선이라는 사람이 ‘내가 주를 믿어 부자가 되자, 각처에서 어려움을 구원해 달라는 편지와 전보가 와서 쌓였습니다. 그래서 우리 부부는 아침마다 편지를 일일이 뜯어보고 주님께 기도한 뒤에 즉시 도와주었더니 나의 사업은 더욱 더 진보하였다’고 하였습니다. 옛날 유슬리가(幼瑟離可)의 일도 역시 은혜를 받은 자였습니다.
벌꿀집의 벌을 보지 않았습니까? 꽃나무에서 꿀을 따다가 벌집 안에 쌓아놓고 ‘이것이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다.’라고 하면 옳은 말이겠습니까? 하나님이 만일 온갖 색깔의 꽃을 거두어들인다면 어디서 꿀을 만들 꽃가루를 가져 올 수 있겠습니까? 매우 어리석은 이야기입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행복은 모두 하나님의 은혜 안에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