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2. 열 명의 문둥병자(十癩)
누가복음 17:11-19
7월 4일 (수요)
主上京之時迫矣. 適過加利理一洞, 洞中有十癩矣. 一洞十癩指罪惡之巢窟. 洞人不務衛生, 病相傳染, 故如是之多也. 故一人犯罪非止一人也, 人相傳染, 城內詩洞號曰妓村, 村非本妓村, 而一人置妓, 人人置之, 故謂之妓村也. 一人好讀, 人皆效之, 家家讀書. 谷中有蘭, 谷皆化爲蘭. 前也此洞之人甚不潔, 互相傳染, 故癩至十人之多, 不滅何爲也? 今幸見救主, 救主遠在, 猶呼此人之心, 主不擇遠近能施恩, 故如是在遠而呼也. 細看聖書之內, 主醫王臣之子, 又醫百夫長之僕, 主皆在遠而醫之也. 此十癩抑聞此乎? 此人之心, 主雖在遠, 我雖在遠, 若得主之許諾, 可愈病云. 故如是遠呼也. 主不擇空間而能愈之, 吾等亦信之者也. 又高聲而呼愈體其篤信也. 其愈發之心如水在筩, 噴出乃已也, 其聲必高呼也. 요한 在野呼號者亦以此也,吾人心有不平又有苦痛, 不得不發子哭之痛, 痛顔淵之死故也. 心有所不平則鳴, 物不得其平則鳴, 水激石而鳴, 風摳樹而鳴, 皆有不平故也. 今此人心有苦痛, 向主不得不發其聲必高也, 主熟知其信仰, 命曰 示爾身於祭祀也. 此人蒙恩必耀人可也. 不告祭祀則不能與同行, 人皆疑之. 吾人犯罪得救, 必看證可也. 然後可與人同行同坐, 亦可以參聖座也. 人若不言得救則, 人皆疑之, 自服看証後, 人能信之, 此人若不看証則人皆疑之. 恐其傳病不與相從也. 愈病則益也, 故必誇示也云. 主曰九人安在? 異邦人能歸榮也. 此指久信者蒙恩不誇, 初信者蒙必誇, 此所以相異也. 九人指吾先信之人, 進敎已久, 故一見恩光卽尋常視之, 一人指初信者, 一見恩光不誇不休也. 사마리아女人如此也. 吾人當於此愼之可也.
주님께서 급히 예루살렘으로 올라가실 때, 마침 갈릴리의 한 마을을 지나는 데 마을 안에 열 명의 문둥병자가 있었습니다. 한 마을에 문둥병자가 열 명이나 있다는 것은 그 마을이 죄악의 소굴이라는 것을 지적해 주는 것입니다. 곧 마을 사람들은 위생에 힘쓰지 않고 병을 서로 전염시켜서 이렇게 많게 된 것입니다. 그와 같이 한 사람이 범죄 하면 범죄자가 한 사람에 그치지 않고 서로 전염됩니다.
도성 안의 청계천 근처에 기생 동네인 기촌(妓村)이 있습니다. 이 마을은 본래 기촌이 아니었는데 어떤 한 사람이 기생을 두자 집집마다 기생을 두게 되어 기촌 이라고 불러지게 된 것입니다. 어떤 한 사람이 독서를 좋아하면 사람들이 모두 본받아서 집집마다 책을 읽게 됩니다. 산골자기에 난초가 있으면 그 골짜기는 난초 골자기로 바뀝니다.
전에 이 마을 사람들이 매우 불결하여 병을 서로 전염시켜 주었기 때문에 한 마을에 문둥병자가 열 명이나 되었으니 마을이 멸망하지 않고 어떻게 되었겠습니까? 지금 다행스럽게도 구주께서 멀리서 보게 되었습니다. 구주께서는 멀리 있어도 이 사람들의 마음을 불러냈던 것입니다. 주님은 멀고 가까운 것을 상관하지 않으시고 은혜를 베푸시기 때문에 이와 같이 멀리 있으면서도 부르신 것입니다.
<성경>을 자세히 살펴보면 주님은 왕의 신하의 자식도 고쳐주셨고, 또 백부장의 종도 고쳐주셨습니다. 이러한 일들은 모두 주님이 멀리 계시면서 고쳐주신 것입니다. 그런데 열 명의 문둥병자가 이 부르심을 듣지 못하였겠습니까? 이 사람들의 마음은 ‘주님께서 비록 멀리 계시고, 자신들이 비록 멀리 있더라도 주께서 허락하신다면 병이 나을 수 있다고 생각한 것입니다. 그래서 이와 같이 멀리서 부른 것입니다. 주님께서는 공간을 가리지 않고 병을 낫게 할 수 있으므로 우리도 역시 주를 믿는 것입니다.
또 큰 소리로 병을 낫게 해 달라고 부르짖는 것은 그 돈독한 신앙을 본받은 것입니다. 그 병을 낫도록 하는 마음은 마치 물이 통 안에 들어 있는 것 같아서 뿜어져 나와야 끝나는 것과 같이 그 소리를 마음속에서 분출시켜 크게 부르짖는 것입니다. 요한이 들판에서 큰 소리로 부르짖은 것도 이 때문이었습니다.
우리의 마음에 불평이 있고, 또 고통이 있으면 어쩔 수 없이 밖으로 터져 나오게 됩니다. 공자도 고통을 울음으로 표현하였는데 사랑하는 제자 안연(顔淵)이 죽었기 때문이었습니다. 사람은 마음에 불평이 있으면 울게 되고, 물건도 평탄하지 못하면 울게 되는데 곧 물은 돌에 부딪치면 울고, 바람은 나무에 부딪치면 웁니다. 모두 평탄하지 못한 까닭입니다.
지금 여기 사람들의 마음에는 고통이 있습니다. 주님을 향하여 부득불 높이 그 소리를 내야 합니다. 주님께서는 그 신앙을 익숙히 알기 위하여 명령하기를 ‘네 몸을 제사장에게 보여 주라’고 하셨습니다. 이 사람은 반드시 은혜를 입었으니 반드시 사람들에게 밝혀야 됩니다. 제사장에게 밝히 고하지 않으면 함께 동행 할 수가 없어 사람들이 모두 의심하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범죄를 하고 구원을 받으면 반드시 간증을 해야 합니다. 그런 뒤에 다른 사람과 같이 가고 같이 앉을 수 있습니다. 또한 거룩한 자리에도 참여할 수가 있습니다. 사람이 만일 구원을 받은 것을 말하지 않는다면 사람들이 모두 의심합니다. 자복하고 간증해야 사람들이 믿게 됩니다. 이 사람이 만일 간증하지 않으면 사람들이 모두 의심하고 그 사람의 죄가 전염병처럼 전해 질까봐 서로 상종하지 않습니다.
병이 나으면 유익하기 때문에 반드시 자랑하여 보여 주어야 한다고 하였습니다. 주께서 이르기를 ‘아홉 사람은 어디 있느냐?’ 하였는데 이 이방인도 능히 하나님에게 영광을 돌렸기 때문입니다. 이는 오래 믿은 신자는 은혜를 입고 자랑하지 않는데 처음 믿는 사람은 은혜를 받고 반드시 자랑한 것을 지적한 것으로 이것이 서로 다른 까닭입니다.
아홉 사람은 먼저 믿는 사람을 가리킨 것입니다. 교회에 나온 지 오래 되었기 때문에 어찌 보면 은혜와 영광을 평범하게 생각하는 것 같습니다. 한 사람은 처음 믿는 사람을 지적한 것입니다, 한번 영광 받은 뒤에 자랑하지 않고는 배길 수가 없었던 것입니다, 사마리아 여인이 이와 같이 했습니다. 우리는 이런 경우에 마땅히 신중하여야 합니다.
마태복음 13:18-23
오원선(吳元善) 씨
吾等願不如磽田之苗, 當如沃土之苗. 前日逢盜, 初聞而忿, 更思以信克之, 反家見之, 其中重要品尙在, 猶爲感謝, 逢盜之後, 家夫曰君逢盜而猶欲出入乎? 余曰逢盜而不禮拜可乎? 其後諸試難入. 李壽卿氏眼昏不能讀經, 家中多試, 蒙恕多生, 故暫看証, 家中率親弟而居故多不便, 而猶蒙容恕, 我欲善而人謗之, 常常反省曰 我不足常常容恕, 同氣之間亦如是, 常常無言之中, 常有憾情而可互相論議, 互相容恕, 最爲思之榮. 余前日多病而藥不去口, 而信主後, 病離身, 身常健康, 感謝不已也.
尹吉孫, 曺明擔,
우리들의 소원은 돌밭에 뿌려진 씨의 싹과 같은 것이 아니고 마땅히 옥토에 뿌려진 씨의 싹과 같은 것입니다.
지난날 도둑을 당한 사실을 듣고 처음에는 분하였는데 신앙으로 극복하기로 다시 생각하였습니다. 집에 돌아와서 살펴보니 그 중에 중요한 것은 아직 남아 있어 오히려 감사하였습니다. 도둑을 만난 뒤에 남편[가부家夫]이 말하기를 ‘도둑을 당하고 나서도 외출을 하려고 하느냐’고 하였습니다. 나는 대답하기를 ‘도둑 만났다고 해서 예배를 안 드리면 되겠소.’하였습니다. 그런 뒤로 여러 가지 시험이 나에게 들어오기 어려웠습니다.
이수경(李壽卿) 씨는 눈이 어두워 <성경>을 읽을 수 없었습니다. 집안에서 많은 시련이 있었으나 용서 받을 바가 많았기 때문에 간증을 했습니다. 집에서 친정 동생을 데리고 살았으므로 많이 불편하였으나 오히려 용서를 받았습니다. 나는 잘하려고 하나 사람들이 비방하면 늘 반성하기를 ‘나는 부족하나 늘 용서를 받았다. 형제인 동기간에도 이와 같이 반성하여 늘 무언중에 서운한 느낌이 있으나, 가히 서로 논의하여 용서하는 것이 생각 속에서 가장 큰 영광이 되었다’고 했습니다.
나는 지난날 병이 많아서 약이 입에 떠난 때가 없었습니다. 그러나 주님을 믿은 후에 병은 몸에서 떠나고, 몸은 늘 건강하게 되어 그 감사함이 그지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