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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시
죽는 날까지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럼이 없기를,
잎새에 이는 바람에도
나는 괴로워했다.
별을 노래하는 마음으로
모든 죽어 가는 것을 사랑해야지
그리고 나한테 주어진 길을
걸어가야겠다.
오늘 밤에도 별이 바람에 스치운다.*
* 윤동주 1941. 11. 20 지음. 1948년에 발간된 유고 시집『바람과 구름과 별과 詩 』에 수록됨.
섣달그믐날 이틀 전부터 눈이 내리기 시작해서 사흘 동안 눈이 내렸습니다. 쌓인 눈이 30cm가 넘습니다. 설날 새벽 눈이 그치며 기온이 떨어지기 시작해서 쌓인 눈이 그대로 쌓여 있습니다. 솔가지와 나뭇가지에 소복하게 쌓였던 눈은 거친 바람과 함께 눈보라가 되어 대부분 땅 위로 쓸려 내렸습니다. 연이 사흘 어둑하던 하늘이 설날에는 파랗게 열렸습니다. 마치 ‘죽는 날까지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럼이’ 없는 마음과도 같이 맑았습니다.
저녁이 되자 기온이 떨어지기 시작하고 맑아진 밤하늘에는 하나둘 별이 떠올랐습니다. ‘누가 하늘에 보석을 뿌렸나. 큰 보석 작은 보석 곱기도 하다’. 노천명의 시《저녁별》과도 같은 밤하늘의 별이 나타났습니다. 겨울밤의 별은 한여름 밤하늘의 은하수에 펼쳐지는 별의 숫자보다는 적어 보이지만, 그 빛은 더욱 정결하고 뚜렷해 보입니다. 시리도록 차갑고 투명한 창공의 어둠 속에는 얼어붙은 듯 붙박인 별들이 아스라이 흔들리는 별빛을 떨궈 내렸습니다. 코끝이 시린 쨍한 추위로 눈자위에 솟아난 눈물에 그 빛이 아롱지는 듯했습니다. ‘별을 노래하는 마음’으로 ‘모든 죽어 가는 것’들을 사랑해야겠다던 시인의 마음을 알 것도 같았습니다.
저녁별
그 누가 하늘에 보석을 뿌렸나
작은 보석 큰 보석 곱기도 하다
모닥불 놓고 옥수수 먹으며
하늘의 별을 세던 밤도 있었다
별 하나 나 하나 별 두울 나 두울
논뜰엔 따옥새 구슬피 울고
강낭수숫대 바람에 설렐 제
은하수 바라보면 잠도 멀어져
물방앗 소리 들은 지 오래
고향 하늘 별 뜬 밤 그리운 밤
호박꽃 초롱에 반딧불 넣고
이즈음 아이들도 별을 세는지*
* 노천명 1941.9 지음. 노천명 제2시집『窓邊』(창변, 매일신보사출판부 발간)에 실림.
윤동주는 연희전문대학 영문과 재학시절 그가 쓴 시를『하늘과 구름과 별과 詩』라는 타이틀의 시집으로 묶어 출판하려고 했습니다. 이에 앞서 그는 자신의 은사인 이양하 교수를 찾아가 의견을 구했습니다. 은사는 어둡기만 한 그 시대 상황 속에서 그 시의 출판을 만류했고 결국 그 시는 세상에 나오지 못했습니다. 그 시의 필사본 한 부는 다행히 그의 벗이자 연희전문학교 후배인 정병욱(후에 국문학자가 됨)에게 보관되어 있었습니다. 윤동주는 이후 일본의 도시샤(同志祀)대학에서 유학 중 일본 경찰에 체포되어 1945년 2월에 옥사했습니다. 정병욱이 보관하고 있던 윤동주의 시는 그의 다른 시와 함께 같은 타이틀의 유고 시집(1948년 정음사 펴냄)으로 그의 사후 3년 뒤에 출간됐습니다.
윤동주의 유고 시집《하늘과 구름과 별과 詩》는 1948년 초판본 발간 당시 모두 31편의 시가 수록되었습니다. 이 시집 초판본의 서문은 윤동주의 도시샤대학 영문과 선배이자 그를 시인으로 추천한 시인 정지용이 썼으며, 이 추모 시집의 발간을 주도한 그의 연희전문 문과 동급생이었던 강처중(당시 경향신문 기자)이 발문을 썼습니다. 이후 1983년에 증보 발간된 6판본의 시집에는 시 112편과 수필 4편이 수록되어 있습니다.
시인 윤동주는 우리나라에서 가장 사랑받는 시인 중의 한 사람입니다. 윤동주는 내가 가장 좋아하는 시인의 한 분이기도 합니다. 윤동주는 1983년과 1984년 KBS 방송애청자 1,296인이 뽑은 애송시, 애송시인 319분, 애송시 599편 중에서 2년 연속 부동의 1위를 차지했습니다. 한편 123인의 시인이 뽑은 애송시 1위에는 역시 윤동주의「서시」가, 2위에는「별 헤는 밤」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이것은 출판사「청화」에서 1985년『한국인의 애송시 Ⅰ,Ⅱ』집을 발간할 즈음에 조사된 것입니다. 아마도 오늘날의 조사가 이루어진다고 하더라도 그 결과는 마찬가지가 아닐까 생각합니다.
윤동주는 어린 시절부터 글쓰기를 좋아했습니다. 그의 고향 동간도 용정의 명동촌에서의 명동소학교 시절에는 자신을 포함한 몇몇 학우들이 만든《신명동》이라는 잡지를 만들기도 했고 평양 숭실중학교 재학시절 학생회가 발행하던《숭실활천》이라는 교지에 시를 발표하기도 했습니다. 또 용정의 광명학원 중학부를 다니면서는《카톨릭소년》이라는 어린지 잡지에 동시를 발표하기도 하고 연희전문학교 재학 중에는「조선일보」의 학생란에 산문을 쓰기도 하였으며 잡지《소년》에 시를 발표함으로써 등단을 했다고 볼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는 생전에 시인이라는 이름을 제대로 들어보지 못한 시인이었습니다. 일본 유학 전 연희전문학교 시절 「서시」,「별 헤는 밤」등 모두 18편의 시를 담은 시집을 출간하려 했지만, 스승의 만류로 그 뜻을 이루지 못했고 그의 사후에야 시인 정지용이 그의 시를 추천한 데 이어서 그의 유고 시집이 출간됨으로써 시인 윤동주의 이름이 알려지게 되었습니다.
약 20년 전인 2007년 7월이었습니다. 백두산의 식물탐사를 위해서 찾은 중국의 장백산 서편의 산행 종주를 마친 뒤에 우리 일행은 우리 동포들의 자취가 남아있고 지금은 중국 연변조선족자치주(延邊朝鮮族自治州) 지역인 백두산 북쪽의 북간도 지역을 돌아보았습니다. 중국으로부터 백두산을 오르는 거점이라고 할 수 있는 길림성 안도현읍의 서쪽으로 약 50km쯤의 연변(延邊) 아래쪽 약 10km의 거리에 있는 용정은 조선의 말기부터 일제 강점기의 시기에 이르기까지 우리 유민의 중심이 되었던 곳입니다. 우리 조국으로부터 유랑을 떠나야만 했던 한민족의 한이 서린 곳이기도 합니다. 그곳은 두만강의 지류인 해란강(海蘭江)이 흐르고 강변의 산록에 ‘일송정(一松亭) 푸른 솔’이 있는 곳이기도 합니다.
용정 시내의 중심지역에는 윤동주가 다녔던 은진중학교 등 인근 지역의 중등학교가 통합되어 지금은 용정중학교로 불리는 학교의 교정에 당시 대성중학교의 옛터와 석조 건물 하나가 남아있습니다. 이 건물은 연변시 문화재의 하나인 역사박물관으로 만주 독립군의 활동상, 시인 윤동주와 관련된 자료 등이 전시되고 있습니다. 이 역사박물관 앞에도 어김없이 그의 대표적인 시인〈서시〉가 새겨진 시비기 서 있었습니다. “죽는 날까지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럼이 없기를/ 잎새에 이는 바람에도/ 나는 괴로워했다./별을 노래하는 마음으로/ 모든 죽어 가는 것을 사랑해야지/ 그리고 나한테 주어진 길을/ 걸어가야겠다.// 오늘 밤에도 별이 바람에 스치운다.”*
* 윤동주의 《서시》는 이곳의 시비뿐만이 아니라 연세대학교 교정, 일본 도시샤대학의 교정 등지의 시비에도 이 시가 새겨져 있습니다.
* 나는 용정의 역사기념관의 전시관 2층에서 흑룡강조선민족출판사가 발행한 시집『하늘과 바람과 별과 詩』와 연변의 작가인 박민이 윤동주의 발자취와 문학 세계를 돌아보는『고향으로부터 윤동주를 찾아서』(용정중학교 역사기념관 2006년 펴냄)라는 제목의 신간 책자를 구입하고 소액의 장학금을 기부했습니다.
태평양전쟁이 터지기도 전 그는 아마도 그의 운명을 예감하고 있었는지도 모릅니다. 일본 교토(京都)의 도시샤대학(同志社大學)에서 수학 중이던 윤동주는 항일 투쟁의 사상범으로 몰려 2년의 징역형을 받고 후쿠오카형무소에 투옥 중 조국의 광복을 불과 6개월쯤 남겨둔 시점에 그의 일기를 접어야 했습니다. 1941년 11월《서시》를 썼던 때 이미 자신의 숙명을 예감한 듯 우리 민족의 정서를 일깨워주고 아름다운 시의 백미를 보여준《별 헤는 밤》등이 담긴《하늘과 바람과 별과 詩》원고를 남겨놓은 채..... 선친이 그토록 바라던 의사의 길을 걸었더라면 그의 일신은 완전히 달라졌을 테지요. 자신의 뜻대로 문학의 길을 고집한 그는 주옥같이 아름다운 시를 남겨놓고 하늘나라에서 영원히 빛나는 하나의 별, 우리의 옷깃을 스치는 한줄기의 바람이 되었습니다.
이후 한동안 잊고 지냈던 시인 윤동주의 시 세계를 다시 한번 들여다본 것은 2012년에 발간된 장편소설『별을 스치는 바람 1, 2』(이정명 지음, 은행나무 펴냄)을 통해서였습니다. 오래전에 읽었던 책이라 나는 이번 설 연휴 중 윤동주에 대한 글쓰기를 생각하며 이 소설을 다시 한번 읽었습니다. 이 소설은 윤동주가 일본의 형무소에 갇혀 있던 약 1년여 동안의 옥중 생활 중에 벌어지는 미스터리 탐정 소설과도 같은 이야기를 담고 있습니다. 이 책은 죄수들에게 가장 잔인하기만 한 한 사람의 간수가 어떻게 시인의 마음을 닮아가는지, 전쟁의 광기 속에서도 문학과 예술이 어떻게 인간의 영혼을 치유해나가는지를 잘 풀어내고 있습니다. 또 이 소설은 벗어날 수 없는 참혹한 운명과 헤어날 수 없는 절망의 수렁에 빠진 소설 속 윤동주가 인간의 원초적인 부끄러움과 내면의 아름다움, 희망을 잃지 않고 삶을 견뎌내는 고귀한 인간의 모습을 잘 그려내기도 했습니다.
어제는 영화『동주』를 보았습니다. 이준익 감독이 2016년에 만든 이 영화는 북간도 용정의 한집에서 태어나서 고향에서의 어린 시절은 물론 서울 연희전문학교와 일본 유학에서의 학교생활, 또 옥중 생활을 함께한 동갑내기 사촌지간인 윤동주와 송동규에 대한 이야기를 담고 있습니다. 행동하는 사촌형 몽규를 따르지 않고 시를 쓰는 자신을 부끄러워 하지만, 결국은 형의 용기 있는 행동에 함께하는 동주의 모습이 그려져 있습니다. 한편 동주는 이름도, 언어도, 꿈도 허락되지 않았던 일제 강점기의 시대, 군국전체주의가 전쟁을 일으키고 인간을 파괴하지만 “결국 세상을 움직이는 건 개개인의 깊은 내면의 변화들이 모이는 힘이다”라는 걸 깨닫게 됩니다. 또 세상이 얼마나 잔인한지, 인간이 얼마나 망가지기 쉬운지, 그럼에도 사람이 얼마나 강인하고 그 영혼이 얼마나 아름답게 빛날 수 있는지를 보여준다고도 하겠습니다.
윤동주에 대한 글쓰기를 생각하고 그에 관한 이런저런 것들을 접하면서 문득 윤동주가 처했던 당시의 암울한 상황과 오늘의 어지러운 시대 상황을 떠올려 보기도 했습니다. 윤동주가 처한 일제 강점기의 절망적인 상황이 군국전체주의와 식민지배의 압제 아래에 있었다면, 지금의 나의 처지는 공산 전체주의를 지향하는 이른바 종북, 친중 좌파 무리가 주도하는 자유대한민국 반체제 세력의 위협하에 있다는 생각을 해보게도 되었습니다. 마치 일제 강점기 일본의 거대한 군국전체주의 세력이 항일, 독립 투쟁을 전개하는 우리 애국자들을 참혹하게 탄압 유린했던 것처럼, 종북 친중의 검은 무리가 거대한 카르텔을 형성하여 자유대한민국을 전복시키고자 하는 반체제 세력과 대규모의 부정선거를 고발 규탄하는 애국 시민들을 교묘하게 속이면서 유린하는 것과 다르지 않다는 생각이 듭니다.
후쿠오카 형무소에서 “순진하고 무력한 것이 죄는 아니다. 하지만 그것이 죄의 빌미는 될 수 있으며, 자신을 지키지 못하는 자를 다른 누가 지켜주지 않는다”(『별을 스치는 바람 1』 p.86)』)고 항변하는 윤동주의 소설 속 말이 기억납니다. 또 그가 지녔던 조국에 대한 사무친 그리움, 못내 문학에만 안주하지 아니하고 분연히 일어섰던 항일과 독립 투쟁을 상기하게도 됩니다. 소설 속에서 그는 후쿠오카의 형무소의 울타리 안에 있던 자신은 물론 다른 모든 조선 사람들이 절망에 빠져서 포기하지 말라고 이야기합니다. “죽을 것인가, 아니면 죽지 않을 것인가, 그것이 문제로다.(To be, or not to be. That is the question.)”(전취서 2 p.33)라고 해석되는 맥베스의 말을 “가만히 있느냐, 아니면 가만히 있지 않느냐”로 달리 해석하여 용기를 가지고 행동에 나섰음을 자기 스스로에게 말합니다. 작금의 이 시대 상황에서 상식을 가진 자유대한민국의 국민 모두가 일어서야 함을 깨닫게도 됩니다.
시인 윤동주가 그립습니다. 그끄저께의 설날 밤하늘에 별이 빛나던 기억을 떠올리며 다시 한번 그의 시《별 헤는 밤》을 소리 내어 읽어봅니다.(2025.2.1.)
별 헤는 밤
계절이 지나가는 하늘에는
가을로 가득차 있습니다.
나는 아무 걱정도 없이
가을 속의 별들을 다 헬 듯합니다
.
가슴 속에 하나 둘 새겨지는 별을
이제 다 못 헤는 것은
쉬이 아침이 오는 까닭이오,
내일 밤이 남은 까닭이오,
아직 나의 청춘이 다하지 않은 까닭입니다.
별 하나에 추억과
별 하나에 사랑과
별 하나에 쓸쓸함과
별 하나에 동경과
별 하나에 시와
별 하나에 어머니, 어머니,
어머님, 나는 별 하나에 아름다운 말 한 마디씩 불러 봅니다. 小學校 때 冊床을 같이 했던 아이들의 이름과 佩, 鏡, 玉 이런 異國 少女들의 이름과, 벌서 아기 어머니된 계집애들의 이름과, 가난한 이웃 사람들의 이름과, 비둘기,
강아지, 토끼, 노새, 노루, ‘프랑시스 잠’, ‘라이너 마리아 릴케’ 이런 詩人의 이름을 불러 봅니다.
이네들은 너무나 멀리 있습니다.
별이 아스라이 멀 듯이.
그리고, 당신은 멀리 北間島에 계십니다.
나는 무엇인지 그리워
이 많은 별빛이 내린 언덕 위에
내 이름자를 써 보고,
흙으로 덮어 버리었습니다.
딴은 밤을 새워 우는 벌레는
부끄러운 이름을 슬퍼하는 까닭입니다.
그러나, 겨울이 지나고 나의 별에도 봄이 오면,
무덤 위에 파란 잔디가 피어나듯이
내 이름자 묻힌 언덕 위에도
자랑처럼 풀이 무성할 거외다.*
* 『한국인의 애송시 Ⅰ』(p.164 1985.7 청하 펴냄)
첫댓글 좋은글 잘 읽어서. 암울한 시기에
태어나 일본 형무소에서 옥사한
윤동주 시인을 다시금 생각합니
다♡
10 여 년전 용정의 같은 곳을 방문했던 추억을 떠올리게 합니다. 역사는 돈다고 하듯이 인간이 신이 아닌 이상 전체주의 독재자는 언제든지 등장하는 것이겠지요. 고대로부터 현대에 이르기까지. 시진핑, 푸틴, 김정은 등등이 오늘 날 우리를 둘러싼 동북아에 암울한 시대를 조성하고 있습니다. 무엇보다 이들을 추종하는 세력들이 이 땅에 발붙이지 못하도록 두 눈 똑바로 떠야 하겠습니다.
''윤동주에 대한 글쓰기를 생각하고 그에 관한 이런저런 것들을 접하면서 문득 윤동주가 처했던 당시의 암울한 상황과 오늘의 어지러운 시대 상황을 떠올려 보기도 했습니다.'' 순우님 ᆢ 존경합니다 ᆢ윤동주 시인의 조국 사랑하는 마음 못지않게 당신은 대한 민국을 사랑합니다 ᆢ 많은 것을 배우고ᆢ새롭게 마음을 바짝 잡게해주셨습니다.ᆢ 고맙습니다 ᆢ사랑합니다 ᆢ윤동주 박사님ᆢ
네ㅡ 감사합니다 ᆢ순우님ᆢ 혹독한 추위는 대통령 실에 따뜻한 봄을 예약하는 것이 아닐까요? 겨울을 대비해서 많은 장작을 준비한 순우님처럼, 국민들도 모두 새로운 봄을 위해 찬 바람에도 모두 싸우고, 열망하고 있습니다. 그 꿈이 꼭 이루어질 것을 확신하고 있습니다. 좋은 글 감사드립니다.사랑합니다 ᆢ♡♡♡