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맹률'이란 문자를 읽지 못하는 사람이 차지하는 비율을 말한다. 한국인의 문맹률은 3% 이하로 세게에서 가장 낮은 수준이다. 한편, '문해력'이란 문장을 읽고 직관적인 의미와 함께 맥락을 이해하는 능력을 말한다. 그런데 한국인의 문해력은 전세계 200여 개 국가 중에서 130위 밖에 위치하고 있다. 블로그 https://21erick.org/column/9277/ 를 보면 65세 이하 한국인의 문해력은 세계 평균인 3점 이하에 해당하는 인구가 91%를 넘는다고 말한다. 참으로 참단한 결과가 아닐 수 없다.
전세계에서 가장 낮은 문맹률을 가진 나라의 문해력 평가가 어떻게 상중하로 구분할 때 중급과 하급의 경계선에 위치할까? 그것은 크게 두 가지 측면에서 생각해볼 수 있는데, 첫번째는 어렸을 때부터 이데올로기에 노출되면서 모든 사물을 우리편과 나쁜편으로 이분화하는 사고에 길들여져 있기 때문이라고 볼 수 있다. 심지어 기독교인도 교회를 깨부수자는 말에는 아무 말 안하다가, 미국 얘기만 나오면 깨부셔야 할 대상이라고 열변을 토한다.
두번째는 도대체 '공부'를 하지 않는데 있다. 오늘날 우리 사회의 지도자들은 대학 다닐 때 공부를 해본 적이 없다. 공부와는 담 쌓고 정치적, 그것도 극좌화된 이데올로기 투쟁에 앞장섰기 때문이다. 당연히 실력이 없으니 취업이나 사업에 성공할 리 만무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회 지도층으로 권력과 돈을 거머쥐고 있으니, 누가 공부하려고 하겠는가?
이런 편향된 사고는 어떤 문제를 초래하는가? 누군가가 심혈을 기울여 쓴 글을 전혀 이해하지 못하고, 누군가가 열변을 토하는 주장을 전혀 이해하지 못한다. 더 기가 막힌 사실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신은 상대방이 쓴 글이나 주장에 대해 다 알고 있다고 착각한다. 예를 들어 '종의 기원'이라는 책을 서점에서 만져보지도 않았어도 진화론을 다 안다고 우긴다. 그리고는 자신의 무식이 탄로나면 상대방이 자신의 인격을 모독한다고 행패를 부린다. 심지어 그런 수모를 당한 사람을 결집하여 무식을 탄로나게 한 사람을 집단적으로 매도한다.
이런 사회에 희망을 주려면 무엇을 해야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