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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망의 순례> -책자 소개글
영남 지방 신앙의 요람지인 신나무골에 처음 신자들이 산 것은 을해박해 때로 여겨지는데, 신나무
골성지는 박해 시대의 교우촌이며 경상도 선교 활동의 거점으로 샤스탕 신부와 다블뤼 신부, 리델
신부가 사목 활동을 하였다. 1849년부터 1861년 6월까지 12년간은 최양업 신부가 신나무골을 방
문하여 성사를 집전하였다
신나무골 성지의 유래 -출처 대구대교구 성건성당 카페 성건장터게시판
신나무골은 대구에서 서북 방향으로 20km가량 떨어진, 외지고 깊숙한 산골로 외부인의 눈을 벗어난 마을이어서 박해 시대 교우촌의 적지였다. 신나무(단풍나무)가 많아서 붙은 이름이라고 한다.
임진왜란 때 천혜의 피난지이기도 했던 이 곳에 교우촌이 이루어지기 시작한 것은 이웃인 한티 교우촌과 같이 1815년 을해박해 당시였던 것으로 보인다. 을해박해는 경상도 북부지역인 청송의 노래산, 진보의 머루산, 일월산 산중의 우련전과 곧은정 등의 교우촌에 살던 신자들이 박해를 만나 200여 명이 경주와 안동 등지의 관아에 체포된 사건을 말한다. 체포된 신자들 중 많은 수가 배교를 하고 석방되거나 옥사했지만 33명은 끝까지 신앙을 지켜 대구 감영으로 이송되어 옥사하거나 처형되었다. 이때 체포된 신자들의 가족들이 박해로 살던 곳에서 쫓겨나 대구 감영에서 멀지 않는 이곳에 숨어들어 은신하고 옥바라지를 한 곳으로 학자들은 추측하고 있다.
구전(口傳)에 의하면 신나무골의 첫 신자는 김해김씨(金海金氏)라고 하는데, 순교자 김종한 안드레아의 가정이라고 한다. 그후 김종한의 가정은 충청도 고향쪽으로 이사를 갔다고 전한다. 한편 당시 이곳에서 가까운 부근의 달성군 하빈 낙골에 살던 이재건 요셉의 모자가 신나무골 신자들에게 천주교 진리를 배워서 세례를 받았으나 문중의 박해로 대구의 새방골로 갔다가 민묵골에 안착했다고 한다. 또 1827년 정해박해 때도 상주와 안동, 봉화 등지에 살던 신자들이 포졸들에게 체포되어 대구의 경상감영으로 이송되어 와서 문초를 받고 감옥에 갇혔을 때 그의 가족들이나 신자들이 신나무골에 피난 와서 살면서 감옥에 갇힌 신자들을 돌보았다고 전한다.
증언에 의한 천주교 신자의 입촌은 김해김씨 김현상(金顯祥) 요아킴이다. 그는 1837년에 서울에서 가족을 이끌고 낙향해서 신나무골로 피난을 왔다. 그러나 1839년 기해박해를 계기로 다시 칠곡 지방의 더 깊은 산골인 한티 교우촌으로 피난을 갔으며 그후 1850년경에는 대구 읍내 가까운 새방골로 이사를 갔었다.
1860년 경신박해 때는 인근의 칠곡 읍내에 살던 배정모(裵正模, 일명 裵孫伊) 이선희(李先伊)가족이 신나무골로 피난을 왔다가 얼마 후에 한티성지로 가서 가족이 순교했다. 그리고 1866년 병인박해 때는 신나무골과 대구 인근의 신자들이 모두 더 깊은 산골인 한티로 피난을 갔었다가 1868년 무진박해 때에 그곳에서 40여명이 장렬하게 순교하였다.
대구 경북지역 사목의 요람
1831년 조선 교구 창설 후 1837년부터는 파리 외방전교회 소속 샤스탕(Chastan) 신부가 신나무골과 언양 등지에 머물면서 한반도 남쪽 지역을 맡아서 순회 전교를 하기 시작했다. 1839년 기해박해로 샤스탕 신부가 순교한 후에는 다블뤼 신부가, 1849년부터 1861년 6월까지 12년간은 최양업 토마스 신부가 신나무골을 방문하여 성사를 주곤 했다.
최양업 신부가 과로로 쓰러진 후에는 다시 다블뤼 신부와 리델 신부가 이 지역을 맡아 오다가 1866년 병인박해 일어나면서 신나무골의 신자들이 사방으로 흩어졌다. 하지만 박해가 잦아들면서 신자들은 다시 신나무골로 모여들었고, 한·미통상수호조약(韓美通商守護條約)이 맺어진 1882년부터는 삼남 지방 선교에 독보적 역할을 한 아킬레 로베르(Achille Paul Robert, 金保祿) 신부가 순회 선교를 시작했다. 그는 특별히 경상도 지역 선교를 위해 1885년 후반 신나무골에 사제관을 지어 정착했다. 로베르 신부는 1886년 한불조약으로 신앙의 자유가 어느 정도 보장되자 이곳 신나무골을 거점 삼아 활발한 전교 활동을 펼쳤다. 당시 대구의 유력한 신자인 서상돈 아오구스티노는 김 신부를 적극적으로 돕는 한편 김 신부의 사촌 여동생이며 순교자 서태순 베드로의 외동딸인 서 마리아를 신나무골에 보내어 김 신부를 적극 돕게 했다.
영남지방 복음화에 헌신했던 로베르 신부는 교육 사업에도 큰 관심을 기울여 이른바 연화 서당이라 불리는 학당을 설립했다. 1883년 세워진 이 학당은 1920년 신동에 초등학교가 설립될 때까지 신학문과 구학문 그리고 천주교 교리도 함께 가르쳤다. 신나무골 학당은 1855년에 설립된 배론 신학교를 제외하고는, 1884년 서울에서 설립된 계성 학교의 전신인 한한(韓漢) 학교와 함께 천주교 내에서는 가장 일찍 신학문을 가르쳤던 신식 학교였다.
이미 1885년 대구 계산 본당이 설립되었지만 바로 시내로 들어갈 정세가 되지 못하여 이곳 계속 남다가 1887년 한불수호조약이 비준·공포되어 신앙의 자유가 한층 나아지자 로베르 신부는 이듬해 대구의 포교 활동을 위해서 대구로 떠났다. 신나무골에 3년을 기다린 후였다. 그는 대구로 가서 현 계산성당을 지었다. 로베르 신부가 대구지역 선교를 떠난 뒤에는 1887년 말에 이곳에 온 보드네 사베리오 신부가 20개월 머물면서 경상도 북부 지방과 전라도 일부 지방을 맡아 선교 활동을 하였다. 그는 1889년 3월에 이곳을 떠나 전라도 완주군 소양면 대성동(일명 대승리)에 성당을 짓고 사목하였다. 이것이 현 전주 전동성당의 시작이었다.(전주 전동 성지 참조)
이어서 조득하 조조 신부가 1889년부터 1890년까지 12개월 동안 신나무골에서 조선말과 풍습을 배우는 한편 선교 활동을 하다가 1890년에 경상남도 지방의 선교를 책임 맡아서 부산의 영도섬 조내기(청학동 성당)로 갔다. 현 범일본당의 시작이었다.
이어서 1894년에는 파이야스 하경조 신부가 신나무골에서 사목하다가 동학란이 끝난 1895년 2월 신나무골을 떠나 인근의 왜관 가실로 가서 그해 9월에 가실성당을 설립하였다.
위의 사실을 미루어보면 신나무골 성지에 머물며 조선의 풍속을 익히며 사목의 역량을 닦은 외국인 사제들이 대구 경북지역 뿐만 아니라 전주 지역, 부산 지역으로 가서 그곳의 사목의 기초를 닦았기에 신나무골은 대구경북 지역뿐만 아니라 호남 지역, 부산 지역 선교의 요람이 라고 볼 수도 있다.
<성지개발 과정>
1973년 성지 개발 기금을 모금하면서 시작된 신나무골 성역화는 1977년 제1차 사업을 완수하며 이곳에 대구 천주교 요람지 기념비를 세웠다. 이어 2차 성역화 사업의 일환으로 1984년 한국 천주교회 창립 200주년을 맞아 성 베네딕도회 왜관수도원의 주선으로 순교자 이선이 엘리사벳의 묘를 이곳으로 이장했다. 원래 순교자 이선이 엘리사벳의 유해는 1860년 경신박해 때 포졸들에게 쫓기다 체포되어 한티에서 순교한 뒤 대구시 북구 읍내동(안양동) 산 21번지의 선산에 모셔져 있었다. 그리고 대구 지역 첫 본당 터를 복원하여 2차 개발을 완료했는데, 이때 로베르 신부의 사제관과 신나무골 학당(명상의 집) 등을 복원하고, 마당 한쪽에 로베르 신부의 흉상도 건립했다.
대구대교구는 2018년 2월 28일 기존의 복원 사업을 통해 성지 내에 복원했던 로베르 신부 사제관과 대구 본당 초가를 철거하고 3차 신나무골 성지 개발에 들어가 2019년 5월 2일 한옥 성당 봉헌식을 올렸다. 성당 바로 옆에는 로베르 신부와 세 명의 파리 외방전교회 선교사들이 머물던 초갓집 사제관을 복원하고, 순례자들이 쉴 수 있는 공간도 마련했다. 성당 외벽에는 로베르 신부의 일대기와 대구 교회 관련 역사를 담은 김옥수 신부(부산교구)의 타일 성화를 설치해 순례자들의 성지에 대한 이해를 돕고 있다.
신나무골은 1894년 왜관 가실 본당 소속 공소였다가 1926년 왜관 본당에 소속되었고, 1968년 신동 본당이 설립된 후에는 다시 신동 본당에 속하게 되었다. 신나무골 성지는 그동안 성 베네딕도회 왜관수도원이 관할하며 1, 2차에 걸쳐 개발한 바 있고, 2015년에 대구대교구로 이관되었다.
-출처: 대구대교구 성건성당 카페 성지순례 28-(2) 신나무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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