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1-1. 효열부 이귀옥 4289.3월 별세(1956년)-신문로 2가 18관사
여식(女息) 신영(信永)의 집에서 속회 모이는 고로 여식의 원을 인하여 나도 참석되었다. 정동교회는 나의 20년 동안 예배하던 교회인 고로 마음에 잊을 수 없는 고로 늘 생각하고 기도하였다. 동 회중(會中)에 이명원(李命遠) 씨도 참석하였다. 예배를 필한 후에 나는 이명원 씨를 보고 나의 사랑하는 친우 이광(李光)씨에게 전도하라고 부탁하였다.
이명원 씨는 이광(李光)씨의 당숙(堂叔)인 고로 부탁하였더니 뜻밖에도 이광 씨의 질녀(姪女) 이귀옥(李貴玉)의 참서(慘逝)를 전하고 자기도 이양(李孃)의 종조(從祖)로서 양의 원서(寃逝)를 생각하고 그 장례식에 왕래하였다고 말하여 양의 역사를 이야기하고 오인(嗚咽)을 금치 못한다.
그리하여 이광 씨를 방문하고 양의 역사를 다시 들었다.
양은 이광 씨의 중형(仲兄)의 딸로서 일찍이 전(田)씨 가문(家門)에 출가하여 자녀 3남매를 낳아 기르다가 불행하게도 삼남매를 다 저승의 길로 보내고 그 후 계속하여 가부(家父) 전전(田君)도 별세하고 연로 하신 시모(媤母)만 남아 있으며 빈곤한 생활을 유해 오다가 시모 역시 병으로 신음하였다.
양의 형편이 본래에도 의지할 곧 없는 고로 시가(媤家) 족속들이며 또는 친정 이씨 족속들이 그 정황을 불쌍히 여기고 재가를 권하였다. 전씨(田氏) 근친들이 그의 노모를 부양하기로 하고 양에게 재삼 권하였다.
시모는 이 소식을 듣고 양에게 말하기를 네가 재가하면 나는 독수(獨水) 자살하겠다 하는지라. 양이 말하되 어머님 안심하십시오. 병모(病母)를 두고 어디를 가오릿까. 저는 털끝만큼도 그런 맘이 없습니다. 대답하고 그 후로는 더욱이 노모의 마음을 위로하며 구걸하며 성심으로 봉양하였다. 있을 집조차 없어 병모를 업고 다니며 셋방살이를 하노라고 그 고생은 말할 수 없었다. 또 병모는 장세(長朑)중에 있어 대소변을 받아내기에 고심하였다. 더군다나 남의 집에 있으며 독한 냄새를 풍기지 않으려고 애를 썼던 것이다. 그러다 병모는 마침내 병서(病逝)하고 양은 단신으로 있다가 4289년 3월 ?일 별세하였다.
양은 가위(可謂) 절부(節婦)이고 또 효부이다. 오늘 세상에 보기 드문 절부(節婦)이다. 오늘은 양반을 무시한다. 소위 양반이란 자가 망국인물인 고로 그 가치가 타락하였다. 그러나 이르는 바 양반도는 그렇지 않다. 나라에 충성하는 것과 부모에게 효하는 것과 부부간 정열을 지키는 것이 양반도(이다. 남은 것 없이 모다 타락된 오늘에 오즉 이귀옥(李貴玉) 양이 특색을 가지고 떠났으니 효부(孝婦)라 이귀옥, 열부(烈婦)라 이귀옥
<현대한국어 편집>
151-1. 효열부 이귀옥, 1956년 3월 별세 - 신문로 2가 18번지
딸 신영의 집에서 속회가 열려 나도 참석하게 되었다. 정동교회는 내가 20년 동안 예배드리던 교회라 마음에 잊을 수 없어 늘 생각하고 기도하곤 했다. 그 모임에 이명원 씨도 참석했다. 예배를 마친 후 나는 이명원 씨에게 내가 사랑하는 친구 이광 씨에게 전도해 달라고 부탁했다.
이명원 씨는 이광 씨의 당숙이라 부탁했더니, 뜻밖에도 이광 씨의 조카딸 이귀옥의 비극적인 죽음을 알려주었다. 자신도 이귀옥의 종손으로서 그녀의 억울한 죽음을 생각하며 장례식에 다녀왔다고 말하며 그녀의 이야기를 전하다 흐느끼고 말았다.
그래서 이광 씨를 방문해 그녀의 이야기를 다시 들었다.
그녀는 이광 씨의 형의 딸로, 일찍이 전 씨 집안에 시집가 세 자녀를 낳아 키우다가 불행하게도 세 자녀를 모두 먼저 보내고, 그 후 계속해서 아버지 전 씨마저 별세하고 노쇠한 시어머니만 남아 빈곤한 생활을 이어갔다. 시어머니는 병으로 고통받고 있었다.
그녀의 처지가 본래 의지할 곳 없는지라, 시댁 식구들과 친정 이씨 집안 사람들이 그 상황을 불쌍히 여겨 재혼을 권유했다. 전 씨 친척들은 그녀의 노모를 부양하기로 하고 재삼 재혼을 권했다.
시어머니는 이 소식을 듣고 딸에게 말했다. "네가 재혼하면 나는 홀로 자살하겠다." 이에 그녀는 대답했다. "어머님, 안심하세요. 병든 어머니를 두고 어디로 가겠습니까? 저는 조금도 그런 마음이 없습니다." 그 후로는 더욱 어머니의 마음을 위로하며 간절히 봉양했다. 갈 곳 없어 병든 어머니를 업고 다니며 셋방살이를 하느라 그 고생은 말로 다 표현할 수 없었다. 또한 어머니가 중병을 앓는 동안 대소변을 받아내느라 애썼고, 남의 집에 있으면서 악취를 풍기지 않으려 애를 썼다. 결국 시어머니는 병으로 세상을 떠났고, 그녀는 홀로 남아 1956년 3월 어느 날 별세했다.
그녀야말로 진정한 절부이자 효부이다. 오늘날 보기 드문 절부다. 요즘은 양반을 무시한다. 소위 양반이란 자들은 나라를 망친 인물들로 그 가치가 타락했다. 하지만 진정한 양반도는 그렇지 않다. 나라에 충성하고, 부모에게 효도하며, 부부 간의 정절을 지키는 것이 양반도다. 모든 것이 타락한 오늘에 오직 이귀옥만이 특별한 모습을 보이고 떠났으니, 그녀는 효부요 열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