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종(2018,9,20)수정안)
여산송씨 유래 개요
여산송씨의 시조 송유익(宋惟翊)은 고려 16대 예종때 사람으로 진사와 증 은청광록대부, 추밀원부사로 증손에서 정렬공 송송례(宋松禮)는 문하시중에 오르셨다. 공께서는 상장군으로 두 아들 송염(琰), 송분(玢)과 함께 100여년의 무신정권을 종식시키고 고려의 왕정을 회복시켰으며 그 공으로 고려 원종께서 좌명공신, 광정대부, 추밀원부사, 시조묘제를 왕실에서 모시는 동지사로 모시도록 사은 하셨으며, 대대로 후손들이 창대한 번영과 높은 벼슬을 하였고, 조선 중종 때까지 약 3백 년 이상 가문이 크게 번창 하였다.
송씨의 선계는 중국 경조출신으로 당나라에서 호부상서를 지낸 송주은(宋柱殷)으로 신라 49대 헌강왕 때 귀화한 것으로 알려져 있으며 그의 7세손 송순공의 후손 송자영이 슬하에 3형제를 두셨는데 첫째 유익(惟翊)은 여산송씨의 시조가 되었고 둘째 천익(天翊)의 후손에서 은진군 송대원(大原)을 시조로 하는 은진송씨, 셋째 문익(文翊)은 서산송씨의 시조가 되었으며 우리나라 송씨의 연원을 이루었다. 현재 한국의 송씨는 여산, 은진, 진천, 야성 등 20본 총68만명 정도로 그중 여산 송씨는 약 30만명으로 가장 많은 현신 석학을 배출하였다.
조선 태종을 사냥 길 호환의 위기에서 구하신 충정공 송거신과 세종대왕의 모후가 되시는 원경왕후는 여산송씨 7世 宋璿의 외손녀요, 단종의 왕후로 정민공 송현수의 여식인 定順王后도 우리 가문을 크게 빛냈으며, 단종조 절신 충강공 宋侃은 매월당 김시습과 함께 칠 현신으로 추앙받아 숙모전과 재동서원에 배향되었고, 영의정 宋軼의 여식은 부친 남편 아들이 동시대 3정승을 지냈고, 軼의 孫 문단공 寅은 중종의 부마로 학문이 깊어 宣祖의 諮問役과, 퇴계,남명,율곡과 교유하였고, 율곡이 조선에서 성리학을 논할만한 사람은 익필 한필 형제뿐이라고 극찬했던 구봉 송익필선생은 조선의 산림 시3걸,8문장가,3대명문장가,예학의 비조로 사계 김장생, 사계의 제자로 우암 송시열이 배출되었으며, 율곡 우계 송강과 道友之交의 畏友요, 우계 율곡과 함께 조선 유학 기호학파의 터를 닦았으며, 요순의 도를 실천한 학자였다.
임진왜란 때 장렬하게 순절한 동래부사 충렬공 송상현을 추모하는 우리나라 최대규모의 도심광장이 부산시에 조성되어있으며 송공단과 충렬사에서는 해마다 불천위 제향이 봉행된다. 부산포해전 승리의 주역 송여종, 동주공 송극명의 후손 송남생외 6인의 임란공신도 동래전투에 합류하였으며, 송간의 후손에서 선조에게 정충록을 하사받은 동방의 악비장군 충양공 송순례, 권율 이순신 휘하에서 공을 세운 대립, 희립 형제를 비롯 임란 공신이 무려 46인이나 나오셨다. 경상관찰사와 이조판서를 역임하시고 청백리로 알려진 송천희, 임란 때 평양감사를 지내신 송언신 공께서는 송문 최초의 족보(1606년)를 만드셨다. 설촌공 송시철의 증손 송인명도 영조의 신임으로 탕평책실시에 공을 세운 정승집안으로 유명하다.
판소리계의 중시조로 알려진 송흥록, 송만갑 선조는 그 문하에서 임방울, 박동진 박초월 송순섭 등 기라성 같은 명인 명창들이 끝없이 배출되었다. 근현대 인물로는 내각수반(총리) 송요찬과 송호림, 송응섭 장군이 나라에 공을 세웠으며, 우리 송문은 정렬공 송례의 손자대를 기준하여 1926년부터 원윤공, 밀직공, 소윤공, 지신공, 정가공파의 전국 5파로 맥을 이어오고 있다. 여러 충신절사 도덕문장과 명현중 특별히 25위를 영호재 경내 시양사에 별도로 모시고 매년 4월 2일에 춘향대제로 봉행하고 있으며, 우리후손들은 報本崇祖, 宗親敦睦, 永垂後昆을 종훈으로 하여 전통을 이어가고 있다. 총1269자 (제목포함=1292자)
2016년 12월 1일 여산송씨대종회장 (글 송남석)
여러번 고쳐 다시 올린 최종안 입니다.
첫댓글 송요찬은 내각책임제 때의 "수반"으로 국무총리와 같은 자리지만 "내각수반"으로 부르지 않는지요 ?
한 번 돌에 새기면 쉽게 수정하기 힘들므로 다른 내용도 한번 같이 검토해 보겠습니다.
처음에는 내각수반으로 썼는데 그게 맞지만 요즘 쓰지않은 용어로 생소한 느낌이 들어 ( )안에 넣을까? 내각수반이란말을 앞에 쓸까,뒤에 넣을까? 하다가 일단 이렇게 써놓고 최종결정은 양측 회의때 논의결정코자합니다. 내각수반(총리)로 쓸까 생각중입니다.
전체적으로 이번에는 여산송씨의 연원과 혁혁한 조상들의 면모가 잘 나타났다고 생각합니다. 다만 몇가지 점을 지적한다면 다음과 같습니다. 송요찬 님은 내각수반(=국무총리)이라고 쓰면 될 것 같습니다. 또한 몇가지 글자에 한자가 없어서 처음 읽는 사람은 얼른 그 뜻을 알기 어려울 것 같습니다. 비석 면적 때문에 그런 것 같습니다만, 다음의 글자들은 괄호를 만들어서 한자를 넣으면 어떨까요. 즉, '선계, 단조절신, 송공단, 충렬사, 관 제향, 내외종, 산림시 3걸, 제 율곡문' 등의 글자들입니다. 그리고 매월당은 누구인지 모르는 사람이 많을 것입니다. 그래서 매월당 김시습으로 쓰되, 이 것도 괄호 한자를 넣으면 좋을 것 같습니다.
1. 글자 수의 제약이 있다면 본문 아래서 위로 세째줄을 원윤공, 밀직공,...정가공파 등 5파로 분파 맥을...
또, 세종대왕의 모후, 단종왕후, 정민공 현수의 여식, 등 빼도 의미전달에지장이 없는 조사는 생략하셔도 좋을 듯..
2. 충신석학을 다 열거를- 많은 충신과 학자들이 배출되어(젊은 층이 쉽게 이해, 학자라는 표현 옛날에도 사용) 또는
충신절사, 도덕문장이 있어...로
3. 충렬공 송상현을 추모하는 우리나라에서 가장 큰 도심광장인 송상현 광장이 부산시청 인근에 조성되어.
4. 임난-임란으로
지금까지 그냥 저의 생각입니다. 문장이란 같이 다듬으면 더 윤기가 날 수도 있습니다. 짧은 글재의 무뢰를 해량...
삭제된 댓글 입니다.
고맙습니다. 좋은 지적에 감사드리고요, 송강과도 도우로서 절친했고 말년에 광주에서 유거에 도움을 주신분입니다.
부족한 글 한 문구가 여운님의 노고에 누가되지 않을까 조심스럽고 염려가 됩니다. 지금 내 한몸 부모님과 선조님께서 주신 것이라 생각하면 모든게 다 고맙고, 宗中史 하나하나에 애착이 가지않을 수 없습니다.. 여러사람의 중지를 모은다는 것은 그 무엇보다 가치가 있으니 최종 문안까지 모두 같이 연구, 검토, 공부하면 좋겠습니다.-虛步-
부산사람치고 송상현 공 모르면... (인근 경남의 여러 도시 - 김해, 양산, 창원, 울산에서 부산과 관련 있거나 와 본적이 있는 분들 -) 임란의 첫 접전지(싸움터)에서 경상 좌병사 이각 등 지레 겁을 먹고 자신의 안위를 위해 줄행랑을 친 여러 군신들과 달리 결코 비굴하지 않고 목숨을... 지방문화재인 청주 충렬사 소장 동래부순절도를 보면 송상현 부사곁에 동주공 후손 송봉수(무과급제), 향리 송백의 이름이 적혀 있으며, 당시동래의 전투에 참전하여 순절한 여송 후손 여섯분이 충렬공과 함께 동래 충렬사에 배향되어 불천위제사를 해마다 부산시에서 봉행하고 있습니다.
최종으로 수정된 글을 앞에 올려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