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계 이야기
석현수
운명이 송두리째 바뀌는 전환점이 더러 있으니 사람에게 그러하듯 시계에게도 마찬가지다. 더욱 재미있게 하는 것은 시계의 영욕榮辱에 따라 영화와 굴욕을 누리는 사람들이 있는가하면, 시계에게 그 역할을 빼앗겨 비운을 맞아야 하는 닭이란 동물도 있다. 몽당하고 고장 난 시계 머리 하나를 서랍에 간직하는 이유며 거꾸로 매달은 시계가 어디에 있는지 알아보자.
옛날에는 시계 하나 잃었다 하면 온 동네가 들썩 거릴 정도였고 학생들에게는 아예 사치품으로 여겨 등교 시 가져 오지 못하도록 하는 금지목록 속에 들어 있었다. 아마도 분실하면 불어 닥칠 후 폭풍을 생각하면 그럴 수도 있겠다 싶고, 어쩌면 학생 서로들 간에 위화감을 없앤다는 목적이 있지도 않았을까 생각해 본다. 지금으로 치면 승용차를 몰고 등교하려는 학생을 선생님이 만류해야하는 해프닝에나 해당되지 않을까. 한때 부의 상징이 되어 장롱 속에 꼭꼭 숨어 살아 지내기도 했던 귀중품들이 시계나 반지쯤이 아니었겠는가.
지금은 초등학교 학생들도 손목에 차고 다니는 흔한 생활 용품이 되었다. 심지어 학교 운동장에 떨어져 있다 해도 주어서 주인을 찾아 줄 만한 그런 정도의 물건으로 보지는 않는다. 마치도 길바닥에 떨어진 동전 같은 대접을 받고 있다. 선생님들의 말을 빌리면 세면장에서 손을 씻고 가는 학생들이 놔두고 간 습득물 시계 때문에 골치를 앓는다고 한다. 지난 시절 어렵사리 공부해 왔던 선생님들의 판단에는 시계는 귀한 것이라 생각하고 애써 주인을 찾아주려고 하고, 정작 주인이어야 할 잊은 어린이는 한 자루 연필 정도로도 생각하지 않는다.
아직도 스위스 시계를 단연 최고로 치고 있긴 하지만 그 나라에서도 시계는 사양 사업이다. 수제품이라는 라는 상표가 붙으면 양복이든 구두든 골프채든 간에 비싸 지기 마련이다. 시계가 손쉬워진 것은 디지털화와 이에 따른 대량생산의 결과라 생각된다. 디지털시계를 처음 창안한 사람은 제일 먼저 시계의 고장 스위스를 찾았다고 한다. 그는 새로운 형태의 시계모양을 내 밀며 이곳저곳을 부탁을 하고 다녔지만 종래의 시계로도 최고의 대접을 받고 살던 스위스 사람들에겐 달라진 모양새의 새로운 디지털 개념이 반갑지 않았던 것이다. 그래서 창안자는 눈물을 머금고 일본으로 건너가게 되고 거기서 카시오 회사를 만나게 된다. 지금은 시계 산업의 70 퍼센트가 디지털화되어 시장을 선도하고 있다하니 일본 사람들의 앞을 보는 안목이 스위스 보다는 한수 위였던 것 같다. 디지털화로 수작업에서 공장 대량생산으로 넘어 갈 수 있는 길이 열린 덕분에 시계는 귀중품에서 생활 용품으로 우리 곁에 있게 되고, 이제는 초등학생 에게 조차도 별로 대수가 되지 못하는 일회용품 화 시대를 맞이한 것이다.
몇 해 전 독일 여행도중 우연한 기회에 뻐꾸기시계 본고장을 방문한 적이 있다. 아직 내 집에는 뻐꾸기 울음소리 내는 괘종시계를 달아본 적은 없다. 그러나 주위에 뻐꾸기시계 타령하는 사람들을 많이 보아온 터라 그 명성은 익히 알고 있었다. 뻐꾸기시계 하나 벽에 못 걸면 사람 행세 못하던 시절이 있었지 않았던가. 이곳을 여행하고 난 후 나는 시계의 자존심이 영 영 사라져 버린 것이 아니 구나 했다. 마을 이름은 쇼나크Schonach라고 했고, 쇼나크는 프랑크푸르트에서 기차로 몇 시간을, 다시 자동차로 갈아 타야하는 정도의 오지에 있었다. 지금은 뻐꾸기시계Kuckckshhren 바람으로 마을 사람들이 밥을 먹고 산다. 금상첨화로 사람 높이를 훨씬 넘는 원조 시계를 보기위해 찾아드는 방문객이 이어져 있어 관광 명소로도 되어 있다. 따르릉 괘종 소리 대신에 뻐꾸기가 쪼르르 나와 시간을 알리고 들어가는 시계 덕분에 쇼나크는 더 이상 독일 산골의 작은 마을이 아니다.
시계는 닭의 운명 또한 송두리째 바꾸어 놓았다. 홰를 치며 울어 새벽을 알리던 닭의 역할은 어지간한 시골 배경의 사람이 아니고는 오늘 도시 사람들에게는 도무지 생경스런 이야기가 되어 버렸다. 시간을 알리는 역할을 자명종시계란 놈이 턱하니 자리를 빼앗아 가 버리니, 닭들은 대량 영양 소스로 전락하여 삼계탕이나 튀김용으로 팔려나가는 가금류로만 인식되고 있지만 이들이 시계대용을 했다는 것을 아는 이는 흔치 않다. 시계에게 그 역할을 빼앗긴 닭은 ‘아우슈비츠 Auschwitz ’의 대량 학살을 감수해야만 했다. 옛 3공 시절 민주화를 부르짖던 ‘김영삼’ 이 ‘박정희’ 대통령을 향해 항변하던 “닭의 목을 비틀어도 새벽은 온다.”는 것을 다시 문민정부시절 ‘김영삼’ 대통령을 향해 ‘박철언’이 또 다시 항변해야 했던 물고 물렸던 정치사를 읽으려면 닭과 새벽의 연관을 이해를 해야 하는 이런 풍자성의 명문장들도 구문이 되어 점점 사라질 것이다.
캘린더에 하루하루 쐐기 표를 칠해가며 전역일자를 기다리는 군 복무 병사들에게도 시계는 시간을 떠나보내는 유일한 낙이다. 시계가 돌지 않고 멈춘다고 세월조차 따라 멈춰 버린다면 얼마나 큰 소동이 일어날까. 누구나 군 복무 기간 중 한번 쯤 들어봄직한 우스갯소리가 있다. ‘국방부 시계를 거꾸로 매 달아 놓아도 세월을 간다.’ 고 했다. 이 소리를 들으면 시간만 때우는 식의 극한 매너리즘에 빠져 무기력해지려는 젊은이들이 생각나서 측은하다는 생각이 들곤 했다. 하지만 뉘가 알 수 있을까, 그들의 위치에 있어보지 않고서야 그들의 애환을 이해하지 힘들지 않을까.
몸체만 달랑 남은 시계 하나를 지금도 서랍 속에 소중이 간직하고 있다. 암으로 죽어가던 친구가 죽기 전 본인이 끼고 있던 시계를 나에게 선물로 주었던 것이다. 생전에 가장 아끼고 소중히 했던 것을, 가장 사랑하는 친구에게 남기고 싶다는 의미가 담겨져 있는 시계다. 브랜드명은 명품 시티즌 시계다. 친구가 죽은지는 벌써 이십 년이 다 되어 가지만 아직도 그 시계는 우정의 의미 그대로 내게 살아있다. 우연치 않는 기회에 진품 명품 감정을 해 보았다. 결과는 뜻밖으로 이것은 홍콩에서 건너온 모조품이었다. 친구는 명품으로 여기고 오래 동안 애지중지 손목에 차고 다녔고, 그래서 죽기 전 명품 하나를 내게로 주었으니, 나는 친구의 마음을 기려 귀중하게 모셔 놓는다.
잃어버렸던 가짜 진주 목걸이를 진품인 줄 알고 이를 변상해 주기 위해 평생을 보낸 이의 허망한 이야기가 모파상의 ‘진주 목걸이’이다. 이와는 반대로 비록 지금은 멈춰서 버린 모조품 시계지만 사랑하는 친구가 생전에 진품으로 알고 아꼈던 명품 시계의 자존심을 내가 지켜 줘야한다는 의미로 달랑 얼굴만 남은 몽당 시계뭉치를 서랍 속에 오래 오래 간직하고 있는 것이다.
첫댓글 모든 건 변하고 또 변해가는가 봅니다.
문명은 더 획기적이고 편리하고 세련된 것을 만들어 내고
이전의 것들은 현재의 영향을 받는 알고리즘의 연속~
삶도 그런 것 같습니다.
역시 앞서가는 분, 작가님의 챗 지피티글을 신문에서 읽었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