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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늘의 말씀 : 천국은 침노하는 자의 것이라(마태복음 11:1~19)
* 본문요약
세례 요한이 옥에서 제자들을 예수께 보내어 오실 그이가 맞는지를 묻습니다.
이에 예수님은 지금 보고 들은 것을 가서 전하라고 하시고는
여자가 나은 자 중에 세례 요한이 가장 큰 자이나, 천국에서는 가장 작은 자라도 요한보다 크다고 말씀하십니다.
그리고 세례요한 때 이후로 천국은 침노하는 자의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예수님은 장터에서 놀이를 하는 아이들이 피리를 불어도 춤추지 않고
애곡을 하여도 가슴을 치지 않는 모습을 보시고,
이 세대가 이와 같다고 말씀하십니다.
그들이 요한이 금식할 때에는 귀신이 들렸다고 하고,
예수께서 먹고 마시니 먹기를 탐한다고 비난하기만 했기 때문입니다.
찬 양 : 313장(새 524) 갈 길을 밝히 보이시니
433장(새 383) 눈을 들어 산을 보니
* 본문해설
1. 세례요한의 질문과 예수님의 답변(1~6절)
1) 예수께서 열두 제자에게 명령하기를 마치시고, 그 근방의 여러 동네에서 가르치시며
복음을 전파하시려고(전도하시려고) 그곳을 떠나셨습니다.
2) 요한이 감옥에서, 그리스도께서 하신 일들을 전해 듣고 제자들을 보내어
3) 예수께 물어보게 했습니다.
“오실 그이가 당신이오니이까, 아니면 우리가 다른 이를 기다리오리이까?”
4) 예수께서 대답하셨습니다. “너희는 여기에서 보고 들은 것을 요한에게 가서 알려라.
5) 소경이 보고, 절름발이가 걸으며, 문둥병자가 깨끗함을 받으며, 귀머거리가 들으며,
죽은 자가 살아나며, 가난한 자에게 복음이 전파된다 하라.
6) 누구든지 나로 인하여 실족하지 아니하는 자(나에게 의심을 품지 않는 자)는 복이 있도다.”
- 요한이 감옥에서(2절) :
갈릴리의 분봉왕 헤롯 안티바스가 로마에 있는 동생 헤롯 빌립을 방문하여 동생의 아내 헤로디아를 유혹합니다.
그 후에 자기 아내와 이혼하고 동생의 아내 헤로디아를 꾀어 자신과 결혼하게 했습니다.
요한은 이 일을 비난했다가 감옥에 갇혔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요한은 예수님이 구약에서 예언한 그리스도이신지를 묻는 것입니다.
- 오실 그이가 당신이오니이까(3절) :
세례 요한은 마태복음 3:12에서 “손에 키를 들고 자기의 타작마당을 정하게 하사 알곡은 모아 곡간에 들이고
쭉정이는 꺼지지 않는 불에 태우시리라”하고 선포하였습니다.
그러므로 그는 예수님이 무서운 권세로 세상의 악한 자를 벌하실 줄 알았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이 조용하고 겸손하게 하나님 나라의 복음을 전하기만 하시자
요한은 예수님이 구약에서 예언한 그 메시야가 맞는지,
또 다른 누군가가 와야 하는지에 대하여 혼란을 느낀 것입니다.
- 나를 인하여 실족하지 않는 자는 복이 있도다(6절) : 스칸달리스데
‘실족하다’에 해당하는 ‘스칸달리스데’는
‘길 가는 도중에 무엇인가에 부딪쳐 넘어지다, 또는 그것에 걸려 비틀거리다’라는 뜻을 가졌습니다.
요한은 예수님이 흉악한 침략자 로마와, 유대인 중 바리새인과 사두개인 같은 악인들을 벌하고
다윗 시대를 열어주시리라 생각했는데, 그런 일은 전혀 하시지 않고
오직 복음만 전하시자 예수님에 대하여 혼란에 빠진 것을 두고 하신 말씀입니다.
예수님 앞에서도 자기 주관이나 자기 고집을 꺾지 않는 자들은
예수님의 하시는 일이나 예수님의 말씀에 실족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은 주님이 하시는 일과 주께서 하신 말씀에 실족하지 않는 자가 복되다고 말씀하십니다.
2. 세례요한에 대한 예수님의 평가(7~15절)
7) 요한의 제자들이 떠나자, 예수께서 무리에게 요한에 대하여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너희가 무엇을 보려고 광야에 나갔더냐? 바람에 흔들리는 갈대냐?
8) 아니면 무엇을 보려고 나갔더냐? 부드러운(좋은, 화려한) 옷을 입은 사람이냐?
부드러운(좋은, 화려한) 옷을 입은 자들은 왕궁에 있느니라.
9) 그러면 너희가 어찌하여(무엇을 보려고) 광야에 나갔더냐?
선지자를 보기 위함이었더냐? 옳다.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그는 선지자보다 더 나은 자니라.
10) 성경에 기록하기를 ‘보라, 내가 내 사자를 네 앞에 보내노니,
그가 네 길을 네 앞에서 준비하리라’(말라기 3:1)라고 하신 것이
바로 이 사람을 두고 하신 말씀이니라.
11)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하노니,
여자가 낳은 자 중에 세례 요한보다 더 큰 사람이 일어난 적이 없도다.
그러나 하늘나라에서는 극히 작은 자라도 저보다(요한보다) 더 크니라.
12) 세례 요한의 때부터 지금까지 하늘나라는 침노를 당하나니,
침노하는 자는 빼앗으리라(침노하는 자는 그 나라를 차지하게 되리라).
13) 모든 선지자와 율법이 예언한 것은 요한까지이니
(모든 선지자와 율법이 예언한 것은 요한에게서 끝이 났으니),
14) 만일 너희가 그 예언을 즐겨 받을진대(그 예언의 말씀을 기꺼이 받아들이기를 원한다면)
선지자와 율법이 장차 오리라고 예언한 엘리야가 바로 이 사람 요한이니라.
15) 귀 있는 자는 들을지어다!
- 바람에 흔들리는 갈대냐(7절) :
바람에 흔들리는 갈대는 세상의 흐름에 따라 이리 저리 자기의 소신을 바꾸는 사람,
오직 자기의 안위와 이익만을 위해 살아가는 사람을 가리킵니다.
그러나 세례 요한은 죽음 앞에서도 소신을 꺾지 않았던 사람입니다.
그러므로 세례 요한은 흔들리는 갈대가 아니었습니다.
- 부드러운 옷 입은 사람이냐(8절) : 말라코스
‘부드러운’에 해당하는 ‘말라코스’는 ‘부드러운’이라는 뜻 외에
‘사치스러운, 방탕한, 나약한’이라는 뜻을 가졌습니다.
부드러운 옷은 귀족이나 정치가, 왕족을 일컫는 말입니다.
이 옷은 가는 린넨 실로 만들어진 고가품(高價品)이었습니다.
요한은 사치와 방종으로 쓸모없게 된 사람도 아니었습니다.
- 선지자를 보려더냐(9절) :
요한은 백성들로 하여금 자기의 죄를 깨닫게 했고, 권세가들의 추한 모습을 적나라하게 노출시켰습니다.
그러므로 그 누구보다도 훌륭한 선지자였습니다.
- 여자가 낳은 자 중에 세례 요한보다 큰 이가 없다(11절) :
여자가 낳은 자는 구약 시대에 살았던 모든 사람들을 말합니다. 그러므로 이 말은
세례 요한이 구약 시대의 인물들 중 가장 훌륭한 자라고 평가하시는 것입니다.
- 천국에서는 극히 작은 자라도 저보다 크니라(11절) :
여기에서 말하는 천국은 죽어서 가는 완성된 천국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시작된 신약의 백성들을 말합니다.
예수님은 일단 세례 요한이 구약에서 가장 위대한 자라고 평가하셨습니다.
그러나 세례요한은 구약을 대표하는 사람으로 짐승의 피로 정결함을 얻은 자들이고,
예수님으로 말미암아 새로 하나님의 백성이 된 자들은 예수님의 피로 거룩함을 입어 하나님의 자녀가 된 자들입니다.
이런 의미에서 지극히 작은 자라도 하나님 나라 운동에 참여한 신약의 백성들은
그보다(구약의 백성인 요한보다) 크다고 말씀하는 것입니다.
- 천국은 침노를 당하나니(12절) :
천국은 침략하듯 적극적인 열정으로 천국을 소망하는 자가 들어갈 수 있는 곳입니다.
3. 결혼식과 장례식 놀이의 비유(16~19절)
16) 이 세대를 무엇에 비유할까?
이 세대의 사람들은 마치 아이들이 장터에 앉아서 다른 아이들을 불러서
17) ‘우리가 너희를 향하여 피리를 불어도 너희가 춤추지 않고,
우리가 울어도(곡을 해도) 너희가 가슴을 치지 않았다’하고 말하는 것과 같다.
18) 요한이 와서 먹지도 않고 마시지도 아니하매 그들이 말하기를 귀신이 들렸다 하더니,
19) 인자가 와서 이렇게 먹고 마시니 말하기를
‘보라, 먹기를 탐하고 포도주를 즐기는 자요, 세리와 죄인의 친구로다’하는구나.
그러나 지혜는 그 행한 일로 옳다는 것을 입증하는 법이니라.”
- 피리를 불어도 춤추지 않고 ➠ 결혼식 놀이(17절) :
신랑과 신부와 피리 부는 자와 춤추는 자로 각기 역할이 분담이 되면
둥글게 서서 피리 소리에 맞추어 마치 결혼식 피로연을 연상하게 하는 춤을 추는 놀이입니다.
그런데 피리를 부는 역할을 맡고 싶었던 아이들이 춤추는 역할을 맡으니
빈정이 상하여 춤추기를 거부한 것에 비유하신 것입니다.
- 곡을 해도 가슴을 치지 않고 ➠ 장례식 놀이(17절) :
죽은 메뚜기를 가져다 놓고 장송곡을 부르면 다른 아이들이 그 곡조에 맞추어 가슴을 치며 통곡을 하는 놀이입니다.
여기에서도 역시 장송곡을 부르는 역할을 맡기를 바랐던 아이들이 가슴을 치며 통곡하는 역할을 맡으니
화가 나서 가슴을 치기를 거부하는 장면에 비유를 하신 것입니다.
- 요한이 먹지도 않고 마시지도 아니하니(18절) :
위의 비유에서 장례식 놀이(슬픈 놀이)에 해당하는 것.
- 인자가 와서 먹고 마시매(19절) :
위의 비유에서 결혼식 놀이(즐거운 놀이)에 해당하는 것.
그들은 하나님께서 하시는 일이 슬픈 놀이이든 즐거운 놀이이든 상관없이
모두 다 참여하기를 거부하며 비난만 하고 있다는 것을 말씀하신 것.
- 세리와 죄인들의 친구로다(19절) :
유대 랍비 문서에는 “만일 세리가 어떤 집에 들어가면 그 안의 모든 것이 다 부정하다”는 조항이 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아예 이런 죄인들과 더불어 음식을 먹고 포도주를 마시기까지 하셨으니
그들이 예수님을 향하여 먹기를 탐하고 술을 즐기는 자라고 비난한 것입니다.
- 지혜는 그 행한 일로 옳다함을 받는다(19절) :
세례 요한이나 예수님이나 혹은 예수님의 제자나 상관없이 누구든
다른 사람의 평가에 상관없이 그들이 행한 일로 평가를 받는다는 것을 말씀하는 것입니다.
사람들이 세례 요한에게 미쳤다고 하더라도 그는 선지자 중에 가장 훌륭한 자로 주께로부터 평가를 받았고,
예수님보고 먹기를 탐하고 술을 즐기는 자라고 공격해도
주님은 십자가와 부활의 모든 사역을 완벽하게 이루신 메시야이시고 우리의 구주이십니다.
* 묵상 point
1. 천국은 침노하는 자의 것입니다.
1) 침노하는 자는 그 나라를 차지하게 되리라(12절)
예수님은 세례 요한의 때부터 지금까지 천국은 침노하는 자들의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천국이 침략을 당한다니 이게 무슨 말입니까?
또 천국은 침노하는 자들의 것이라니 더욱 알 수 없는 말입니다.
예수님의 이 말씀은 얼핏 듣기에는
천국도 누군가로부터 침략을 당하는 허술한 부분이 있는 것처럼 들리지만,
예수께서 하시는 말씀은 천국은 마치 전쟁을 하는 자들처럼
적극적인 열망을 가지고 찾고 부르고 소망하는 자들의 것이라는 말씀입니다.
예수님은 간절한 마음으로 천국을 구하는 자들에게 천국을 주겠다고 하셨는데
여기에서는 간절히 원하는 자가 얻는다는 것을 침노하는 것이라 표현하신 것입니다.
침략하는 자들처럼 적극적으로 하나님 나라를 구하고 찾는 자들에게
주께서 새로운 기쁨을 주셔서 그 기쁨으로 하나님을 섬기게 하십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은 ‘천국은 침노하는 자들의 것이라’하고 말씀하셨습니다.
➠ 침략하는 자들처럼 간절한 마음으로 천국을 찾고 구하는 자
주께서는 처음부터 우리가 주님의 말씀을 다 지키지 못할 것임을 알고 계셨습니다.
만일 그럴 수 있었다면 주께서 십자가에 달리지 않으셨을 것입니다.
우리가 말씀대로 살지 못하니, 그 죄 짐을 대신 지고 십자가에 달리신 것입니다.
그러나 최소한 침략하는 자들처럼
간절한 마음으로 천국을 구하고 성령을 사모하는 일은 해야 합니다.
이런 자들에게 하나님 나라의 기쁨과 평강을 내리시겠다고 약속하셨기 때문입니다.
● 묵상 :
그러므로 천국에 대한 말씀을 들어도 듣는 둥 마는 둥 하는 자들이나,
천국을 얻기보다는 세상의 것을 얻기에 더 분주한 자들은
결단코 하나님 나라 백성이 될 수 없습니다.
당신이 만일 천국에 들어가지 못한다면
그것은 당신이 죄를 많이 지었기 때문이 아니라
천국을 별로 원하지 않는 자였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묵상을 할 때마다 항상 내 마음 중심에 무엇이 있는지,
내가 진짜 바라고 소원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점검하고 또 점검해야 합니다.
2) 천국에서는 가장 작은 자라도 그(세례 요한)보다 크다(11절)
세례 요한은 구약의 모든 사람들 중에 가장 큰 자이지만,
이 땅에 하나님 나라 운동에 참여하고 있는 신약의 백성들은
지극히 작은 자라도 그(세례 요한)보다 더 크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이것은 예수님으로 인하여 시작된 하나님 나라 운동이
얼마나 크고 복된 일인지를 말씀하는 것입니다.
주께서 주신 복음의 말씀으로 주님의 백성 된 이들은
하늘나라를 상속받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기 때문입니다.
● 묵상 :
그러므로 무엇보다도 예수님을 믿어 하나님의 백성이 되고,
예수님과 함께 이 세상 사람들을 하나님의 백성 되게 하는
하나님 나라 운동에 참여하십시오.
이것이 사람이 할 수 있는 일들 중에 가장 영광스럽고 위대한 일입니다.
2. 예수님으로 인하여 실족하지 않는 자는 복이 있다
1) 예수께 대하여 혼란을 느낀 세례 요한(3~6절)
감옥에 갇혀 있던 세례요한이 제자들을 보내어 예수께 “오실 그이가 당신입니까?
아니면 우리가 다른 이를 더 기다려야 합니까?”하고 물어보게 하였습니다.
세례요한은 메시야가 오시면 악인들은 벌하시고
의인에게는 복을 내리시는 심판을 내리실 줄 알았습니다.
그런데 자기가 저 악한 왕인 헤롯에게 붙잡혀 있는데도
그를 벌하시지 않고 복음만 전하시는 것이 이상해서 물어보게 한 것입니다.
이에 예수께서는 지금 보고 들은 것을 가서 요한에게 전하라 하시고는
“누구든지 나로 인하여 실족하지 않는 자는 복이 있다”하고 말씀하십니다.
위의 2절의 본문해설에서 말한 바와 같이
요한은 지금 갈릴리의 분봉 왕 헤롯 안티바스가 불의하게 동생의 아내를 빼앗아
자기의 아내로 삼은 것을 비난했다가 감옥에 갇혀 있습니다.
세례 요한은 만일 예수님이 구약에서 예언된 메시야가 맞다면
헤롯왕의 이런 사악한 일을 그냥 보고만 계시지는 않을 것이라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이 일에는 아무런 말씀도 하지 않으시고
하늘나라의 복음을 전파하기만 하십니다.
이에 요한은 예수님이 메시야가 맞다면
어찌하여 이 일에 아무런 말씀을 하지 않으시는지 의심이 생긴 것입니다.
이에 제자들을 보내어 당신이 그리스도가 맞는지를 묻게 한 것입니다.
2) 믿음이란 ➠ 나의 생각, 나의 소신을 버리고 주님의 말씀을 받아들이는 것
예수님을 믿는다는 것은 나의 생각, 나의 소신을 버리고
예수님의 말씀을 따라 살리고 고백하는 것을 뜻합니다.
이전에 가졌던 소신이 아무리 훌륭한 것이었다고 생각하고 있을지라도
예수님을 믿고 세례를 받는 순간 자신의 소신은 쓰레기처럼 버리고,
그 자리에 예수님의 말씀을 채우고 사는 것이 믿음입니다.
3) 내 생각과 말씀 사이에서의 갈등 ➠ 믿음이냐 세상이냐 선택해야 하는 때
그러나 때때로 버렸다고 생각했던 나의 소신이 꿈틀거리고 나올 때가 있습니다.
이런 때에 우리는 예수님의 말씀과 나의 소신 사이에서 갈등을 겪게 됩니다.
믿음의 사람들은 이 갈등에서 언제나 예수님의 말씀 편을 택합니다.
하지만 끝내 내 소신을 버리지 못하고 예수님의 말씀을 버리게 된다면
본문에서 예수께서 경고하신 대로 주님의 말씀 때문에 실족하는 자가 되고 맙니다.
● 묵상 :
나의 생각이 아무리 훌륭해도 예수님보다 더 훌륭할 수는 없습니다.
예수님의 말씀이 이해가 되지 않는다면 그것은 내가 훌륭해서가 아니라
내가 지혜가 부족하기 때문입니다. 이것을 분명히 알고 주님의 말씀을 대하여야 합니다.
이 점에서 결코 실수를 해서는 안 됩니다.
말씀을 보고 느끼는 갈등은 언제나 내 뜻과 주님의 뜻이 서로 부딪칠 때 일어납니다.
이런 때에 당신은 어느 쪽을 택합니까? 나의 생각입니까, 주님의 말씀입니까?
나의 생각을 선택한다면 그것은 곧 주님과의 결별을 선언하는 것임을 기억해야 합니다.
3. 무엇을 보려고 광야로 나갔느냐
세례 요한의 제자들이 돌아가고 난 후에
그 앞에 모인 무리들에게 예수께서 하신 말씀입니다.
1) 바람에 흔들리는 갈대냐 : 시대의 흐름을 잘 타서 성공한 사람들(7절)
바람에 흔들리는 갈대란
세상에서의 부귀와 명성을 얻기 위해 시대의 흐름을 타는 자를 말합니다.
흔들리는 갈대가 주님 보시기에는 형편없는 자이지만,
세상사람 보기에는 훌륭하게 성공한 사람들처럼 보입니다.
그가 세상의 흐름을 타서 얻은 부귀와 명예이지만,
그는 열심히 힘써서 얻은 부귀와 명예라고 말합니다.
사람들은 그의 말에 박수를 보내며 환호합니다.
세례 요한은 그런 자가 아니었습니다. 그는 제사장의 가문에서 태어난 자로
그저 그 시대의 흐름에 조용히 따르기만 해도
세상에서의 부귀와 명예가 보장된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그런 삶을 버리고 광야로 나가 말씀을 전하는 자가 되었습니다.
그러므로 세상의 눈으로 볼 때는 참으로 어리석은 자로 보이지만,
예수님은 구약의 모든 선지자보다 가장 뛰어난 선지자라고 말씀하셨습니다.
2) 부드러운 옷 입은 사람이냐 : 왕족이나 귀족(8절)
부드러운 옷은 귀족이나 정치가, 왕족, 혹은 세상에서 성공한 자들을 일컫는 말입니다.
그 시대의 사람들에게 스타가 된 자들입니다.
세례 요한은 헤롯왕의 잘못을 공격하지만 않았어도
그 시대의 최고 귀족으로 살아갈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세례요한은 말씀에 충성된 자가 되기 위해
그 시대의 최고의 엘리트로 사는 것을 포기했습니다.
● 묵상 :
세상 사람들은 부드러운 옷으로 포장된 모습만 봅니다.
그러나 우리는 부드러운 옷 속에 감추어진 흔들리는 갈대의 모습을 볼 수 있어야 합니다.
세상의 화려함으로 포장된 그 실체의 모습이 무엇인지,
하나님 보시기에 그는 누구인지를 볼 수 있어야 합니다.
4. 흔들리지 않고 부드러운 옷을 입지 않은 참 선지자(목사)
1) 그러면 오늘날 흔들리지 않고 부드러운 옷을 입지도 않은 참 선지자(목사)는 누구입니까?
오늘날 시대의 흐름에 이리저리 휩쓸리지도 않고
돈이나 권력이나 명예의 욕망에 빠지지도 않는 참 목자는 누구입니까?
이 점을 논할 때 먼저 결단코 흔들리지 않아야 할 것이 무엇인지를 명확히 해야 합니다.
왜냐하면 선지자(목사)도 어느 부분에서는 흔들릴 수밖에 없는 연약한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 사도 바울도 힘들어할 때가 있었습니다.
바울이 고린도에 갈 때 큰 두려움에 빠져
마케도니아에 있던 디모데와 실라에게 급히 자기에게 오라고 명한 적이 있었습니다.
그가 감옥에 갇혀 외로워할 때에는
브리스길라와 아굴라 부부가 옥에서 그와 함께 거하여 그의 외로움을 달래주었습니다.
바울도 때로 화를 냈고,
바울도 때로는 이런 저런 갈등으로 인하여 죽음의 고통까지 겪기도 했습니다.
이처럼 하나님의 일꾼들도
때로 아주 사소한 일로도 흔들리고 외로워하고 견디기 힘들어하기도 합니다.
2) 그러나 결코 흔들리지 말아야 할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예수님이 누구신지, 그를 믿는 믿음의 자리에서는
어떤 경우에서도 흔들리지 말아야 합니다.
이것은 목사뿐 아니라 평신도도 마찬가지입니다.
이 믿음에서 흔들리면 하나님의 도우심도 받지 못하고
영영 죄에 빠져 멸망당하는 자가 되기 때문입니다.
● 묵상 :
믿음의 자리까지 흔들리는 자가, 세상을 얻기 위해
믿음의 자리까지 훼손시킨 자가 흔들리는 갈대요 부드러운 옷을 입은 자들입니다.
흔들리는 갈대나 부드러운 옷을 입은 자들이 되지 않도록 기도하십시오.
어떤 일이 있어도 흔들리지 말아야 하고 결단코 실수해서는 안 되는 부분,
그것은 바로 믿음의 자리입니다. 이것만큼은 결코 양보해서는 안 됩니다.
5. 무엇을 기대하고 설교를 듣습니까?
1) 너희가 무엇을 기대하고 광야로 나갔더냐(9절)
“무엇을 기대하고 광야로 나갔더냐”하신 예수님의 질문은
“무엇을 기대하고 설교를 듣느냐”하는 질문과 같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설교를 들을 때 마음에 감동이 있기를 원합니다.
유머가 있어서 듣기에 지루하지 않고 재미있는 설교,
설교의 문체가 매끄럽고 논리적이어서 듣기에 편하고 이해가 잘 되는 설교,
늘 듣는 설교가 아닌 신선하고 새로운 느낌을 주는 설교,
우리의 삶의 답답함을 풀어줄만한 삶의 문제를 다루는 설교를 원합니다.
➠ 예수님은 이런 설교를 원하는 자들에게 다음과 같이 말씀하십니다.
① 재미있는 유머를 원하는 자는 개그맨이나 만담가를 찾으라.
② 매끄럽고 논리적인 것을 듣기 원하는 자는 대중 연설가를 찾으라.
③ 신선하고 새로운 느낌을 주는 글은 문학가나 시인, 평론가들을 찾으라.
④ 우리의 삶의 답답함을 풀어줄 만한 삶의 문제들은 상담전문가를 찾으라.
2) 예수님은 “선지자를 보기 위함이었더냐 옳다”하셨습니다.
우리는 설교자에게서 선지자의 모습을 기대해야 합니다.
선지자는 그 시대를 향한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는 자입니다.
그러므로 매끄럽고 논리적인 설교보다, 재미있고 지루하지 않은 설교보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시는 복음의 말씀 듣기를 기대해야 합니다.
하나님 나라 백성으로 사는 길에 대한 말씀을 듣기를 기대해야 합니다.
건강한 신앙의 인격을 갖는 자가 되게 하는 말씀을 듣기를 기대해야 합니다.
● 묵상 : 당신은 무엇을 기대하고 설교를 듣습니까?
6. 나의 놀이가 아니라 주님의 놀이에 참여하십시오.
천국은 침노하는 자의 것이라 하신 것은
간절히 원하고 사모하는 자에게 주신다는 것을 표현한 것이라고 했습니다.
그것을 7~9절에서는 말씀을 듣는 자세로 말씀하셨습니다.
천국을 간절히 사모하는 자는 어린아이처럼 말씀을 간절히 듣는다는 것입니다.
여기 16~19절에서는 두 번째로
천국을 사모하는 자는 하나님께서 하시는 일에 참여한다고 말씀하십니다.
그것을 본문에서는 ‘놀이판’으로 표현했습니다.
1) 저자거리에서의 아이들의 놀이를 보시는 예수님(16~17절)
예수께서 저자거리를 지나실 때에
아이들이 결혼식 놀이와 장례식 놀이를 시작하려 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한참 서로의 역할을 나눌 때에는 언성을 높이며 열심히 하더니
막상 놀이가 시작되려 하자 파장이 되어버렸습니다.
일부의 아이들이 자기들이 맡은 역할에 불만을 품고
놀이에 참여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위 단어해설 참조).
2) 예수님은 그 시대의 사람들을 향하여 이 아이들과 같다고 말씀하십니다.
세례 요한이 먹지도 마시지도 않는 금식의 경건의 모습을 보여줄 때에는
귀신이 들렸다며 그 일에 참여하지 않더니,
이제는 예수께서 먹고 마시며 장차 누리게 될
천국의 잔치를 미리 경험하는 기쁨의 경건을 보이시니
이제는 먹기를 탐하며 술을 즐기는 자들이라고 비난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 그들은 하나님께서 어떤 일을 하시든 하나님의 일에 참여하지 않는 자들입니다.
그들의 관심은 오직 자기 자신에 관한 일들뿐이기 때문입니다.
자기들이 직접 주관하는 놀이에는 열심히 참여하지만
남이 주관하는 놀이에는 참여할 수 없다는 것이 그들 생각입니다.
다른 사람이 주관하는 놀이에는 참여하지 않아도 되겠지만,
문제는 하나님께서 주관하시는 놀이에도 관심을 보이지 않고 있다는 것입니다.
● 묵상 : 하나님께서 주관하시는 놀이판에 참여하십시오.
오늘날 많은 교회들이
자기와 자기 집단만을 위한 놀이판을 키우기에만 관심을 갖고 있습니다.
그 어디에도 하나님께서 주관하시는
하나님 나라의 놀이판에 관심을 갖는 자들을 찾아보기 어렵습니다.
당신의 삶의 놀이판을 주관하는 자가 누구입니까? 당신입니까? 아니면 하나님이십니까?
당신의 삶의 놀이판을 하나님께서 주관하게 하십시오.
7. 주님의 놀이에 참여하지 않은 자들에게 내려지는 심판
1) 역할이 마음에 들지 않아도 하나님의 명령이라면 순종해야 합니다.
아이들끼리야 마음에 맞지 않으면 그 놀이를 중단할 수 있습니다.
이런 일은 얼마든지 일어날 수 있는 일입니다.
하지만 그 놀이판에서 피리를 부는 분이
저쪽 마을의 어린이들이 아니라 우리의 왕이신 하나님이시라면 이야기가 달라집니다.
주께서 마련하신 놀이판은 천국의 놀이판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맡은 그 역할이 마음에 들지 않아도 춤을 추어야 합니다.
그 놀이판에서 애곡하는 이가 저쪽 마을의 어린이가 아니라 우리의 하나님이시라면
우리는 역시 내 마음에 들지 않아도 가슴을 치며 애곡하여야 하는 것입니다.
2) 그러나 너무나도 많은 사람들이 예수를 믿어도
여전히 자신이 삶의 주인공이 되고 싶어 합니다.
내가 주님의 뜻을 이루는 하나님 나라의 도구가 되려하지 않고,
하나님께서 내 삶의 목표를 이루도록 나를 도와주시기를 바랍니다.
그러니 세계에서 가장 기도를 많이 하는 나라라는 평가에도 불구하고
그 어디에서도 믿는 자의 신실한 모습을 찾기 어려운 나라라는 평가도
함께 받고 있는 것입니다.
● 묵상 :
나의 목표를 이루기 위해 주께서 나를 도와달라고 기도할 것이 아니라,
내가 주님의 뜻을 이루기 위해 힘써 일하는
주님의 일꾼이 되게 해 달라고 기도해야 합니다.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위해 기도하십시오. 이것이 바른 기도입니다.
* 기도제목
1. 흔들리는 갈대를 찾지도 말게 하시고,
나도 흔들리는 갈대가 되지도 말게 하옵소서.
2. 주님의 말씀처럼 천국을 소망하여
천국을 침노하는 자가 되게 하옵소서.
3. 주께 부르심을 받고 세움을 받고 보내심을 받는
신실한 능력의 종이 되게 하옵소서.
4. 주께서 인도하시는 하나님 나라의 놀이판에
열심히 참여하게 하옵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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