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 석순 반년간지 청향 원고 5편
1.
성자의 길
제25권
16. 너희 말이 내 귀에 들린 대로 너희에게 행하리라 (민 4:28)
I will do to you the very thing I heard you say.
정해진 일이 없다고 손 놓을 수 없습니다
아침부터 서둘러 나가도 이르지 않아
무엇을 할까, 어디로 갈까, 무엇을 말할까
걱정없이 일어나는 일은 아무것도 없어
다만 깨닫지 못하고 일어나는 하찮은 생각 때문이라
삶이란 경건합니다 함부로 하지 마세요
따뜻한 차 한 잔은 온몸을 녹이고
목마른 데 어찌 그 한 잔이 값지지 않겠나요
내뱉은 한 마디 다시 들이진 못해!
대가는 언제나 도사리고 틈을 노립니다
두려움이 커지면 병 나고 못 버립니다
하루 종일 숨막히게 살지 마세요
틈을 두고 사세요
항상 조급하면 갈 길이 멀어집니다
그렇게 하니 그렇게 되지 합니다
주님은 평등하시니까요
나를 버리는 자는 내지른 말같이 버려집니다
아무도 아니 도우니 광야의 바람이 됩니다
그렇게 안 되도록 크게 눈 뜨고 귀를 열어
주님의 말씀을 보고 들으세요, 복이 들어 옵니다.
2.
기다림이 없었다면 (行跡)
동지 섣달 달 흘러가듯
섣달 그믐이 차갑다 더라
말라 비틀어진 빛 바랜 이파리 하나
떨어질 듯 바람에 흔들려
새벽이 더욱 싸늘하다
가로등 불빛 아래
등산객이 등을 굽힌 채
산길을 올라간다
울퉁불퉁한 돌길이 편치가 않구나!
등이라도 있었더라면 좋았을 텐데
아쉽기만 해 고개 떨군다
다시 돌아가면 집문 열려 들어갈까?
하늘 위로는 기러기들
산 넘어 가며 소리친다
아주 먼 발치로 날아가 가물 가물거린다.
3.
저버린 약속
그 길은 곧거나 평탄하지만 아니하며
험난하고 고통이 깔려 있어
늙은이 지팡이로는 언제나 힘 겹다
거꾸로 심어 논 방향 표지판 때문에
가끔 역주행을 불러들여
심기를 불편스럽게 한다
대 놓고 하겠다 선뜻 나섰지만
아무도 따라오려 아니하니
함부로 할 일은 아닌 것 같다
밀려오는 풍랑은 만만치 않으며
거역도 못 하였지만 아주 외롭기만 하누나.
4.
봄 오는 데로 나가면
오는 대로 서 있지 말고
어서 대청 마루로 오르렴
경칩에 꿈틀거리는 새 봄이 모두 솟았구려
지난 겨울 춥다 하며 떠났던
속 모를 나그네, 힐금거리며 다가와
아주 추울 때 떠났다 이제 왔다 고
냇가의 버들, 먼저 일어나 수선 떨며
얼었던 냇물, 잘 지냈지 묻고는
옆집 순이네 조잘대듯 갈 길 재촉한다
먼 발치에서 돋아나는 때 이른 들풀들
먼저 소식 받았다 부시럭 거리고
비둘기 떼지어 녹은 땅 뒤집어 헤 짚는다.
봄 오는 데로 나가면
기다리던 사랑하는 이 만나게 되겠네.
5.
딸꾹질
훔쳐 먹은 게 있었나, 웬 딸꾹질이야
엊저녁 먹은 맛있던 밤참
너무 탐했던가
민망하게 맛나서 그랬던가?
갑자기 옛날 남 몰래 먹었던
인절미가 떠올라 그랬나
너무 맛나 마구 먹어 혼났었지
가을 바랜 잎 하나 떨어질 때
바스락바스락 소리 내어
중학생 때 잃어버린 만년필 그리워라
한 동안 걱정 없어 좋았었는데
아프다는 전갈에 소스라치게 놀라
그만 잘 해 줄 걸, 생각 나 딸꾹거렸던가?
휴가 때 통행금지 사이렌 듣고
조용한 창경원 돌담 혼자 걸었을 때
검문소 지나면 어쩌지 했던 생각하면
딸깍딸깍 딸꾹질 났었지, 그땐.
그러나 아주 옛날이라
가물가물 하기만.
김 석순
아호 南淳峰
경희대 영문학과
중앙일보사 부국장
한울문학 문인협회 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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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감사합니다
귀한 시인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