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第二十六回 歌扊扅百里認妻 獲陳寶穆公證夢
제26회: 빗장 노래를 불러 아내를 찾고, 진보(陳寶)를 얻어 진목공이 꿈으로 징험하다.
話說,秦穆公深知百里奚之才,欲爵為上卿。百里奚辭曰:「臣之才,不如臣友蹇叔十倍。君欲治國家,請任蹇叔而臣佐之。」穆公曰:「子之才,寡人見之真矣,未聞蹇叔之賢也。」奚對曰:「蹇叔之賢,豈惟君未之聞,雖齊、宋之人,亦莫之聞也。然而臣獨知之。臣嘗出遊於齊,欲委質於公子無知,蹇叔止臣曰:『不可。』臣因去齊,得脫無知之禍。嗣游於周,欲委質於王子頹,蹇叔復止臣曰:『不可。』臣復去周,得脫子頹之禍。後臣歸虞,欲委質於虞公,蹇叔又止臣曰:『不可。』臣時貧甚,利其爵祿,姑且留事,遂為晉俘。夫再用其言,以脫於禍,一不用其言,幾至殺身,此其智勝於中人遠矣。今隱於宋之鳴鹿村,宜速召之。」
한편, 진목공이 백리해의 재주를 깊이 알고 그를 상경으로 삼으려 했다. 백리해가 사양하면서 말하기를, “신의 재주는 제 벗인 건숙에 비해 열 배나 모자랍니다. 군주께서 나라를 잘 다스리려면 건숙에게 맡기고 제가 돕도록 하십시오.” 하였다. 진목공이 말하기를, “그대의 재주는 과인이 보았으니 알겠으나, 건숙의 현명함에 대해서는 아직 들어보지 못했습니다.” 했다. 백리해가 대답하기를, “건숙의 현명함은 어찌 군주께서만 모르신다고 하겠습니까? 비록 제나라나 송나라 사람들도 역시 그에 대해 알지 못합니다. 그러나 신이 홀로 그것을 압니다. 신이 일찍이 제나라에 갔을 때 제나라의 공자 무지(無知)에게 출사하려고 했으나 건숙이 신을 말리며 말하기를, ‘안 된다.’고 했습니다. 신이 제나라를 떠났기 때문에 후에 무지가 당한 화를 피할 수 있었습니다. 곧이어 주나라로 가서 왕자 퇴를 모시려고 했으나 역시 건숙이 다시 신을 제지하여, ‘안 된다.’고 했습니다. 신이 다시 주나라에서 떠났기에, 얼마 후에 왕자 퇴가 반란을 일으켰다가 혜왕에게 살해당한 화를 피할 수 있었습니다. 그 뒤에 신이 우(虞)나라에 돌아가서 우공에게 출사하려고 했는데, 건숙이 또다시 ‘안 된다.’고 말렸습니다. 신이 그때 너무 가난하여 벼슬과 녹봉을 탐하여 잠시 머물러 우공을 섬기다가 결국 진(晉)나라의 포로가 되었습니다. 다시 그의 말을 들었더라면 화를 면하게 되었을 텐데, 한번 그의 말을 듣지 않아 몸을 죽이게 되었습니다. 이것은 그의 지혜가 보통 사람들보다 월등히 뛰어나다는 사실을 말합니다. 지금 건숙은 송나라의 명록촌(鳴鹿村)에 숨어 지내고 있습니다. 속히 사람을 보내 불러오십시오.” 했다.
穆公乃遣公子縶假作商人,以重幣聘蹇叔於宋。百里奚另自作書致意。公子縶收拾行囊,駕起犢車二乘,徑投鳴鹿村來。見數人息耕於隴上,相賡而歌。歌曰:「山之高兮無攆,途之濘兮無燭。相將隴上兮,泉甘而土沃。勤吾四體兮,分吾五穀。三時不害兮,饔飧足。樂此天命兮無榮辱!」縶在車中,聽其音韻,有絕塵之致,乃嘆謂御者曰:「古云『里有君子,而鄙俗化。』今入蹇叔之鄉,其耕者皆有高遁之風,信乎其賢也。」乃下車,問耕者曰:「蹇叔之居安在?」耕者曰:「子問之何為?」縶曰:「其故人百里奚有書,托吾致之。」耕者指示曰:「前去竹林深處,左泉右石,中間一小茅廬,乃其所也。」
진목공이 공자 집을 상인으로 분장시켜 많은 폐백을 가지고 송나라로 보내어 건숙을 모셔오도록 했다. 백리해가 따로 자기의 뜻을 편지에 써서 공자집에게 주었다. 공자집이 행낭을 수습하여 송아지가 끄는 수레 두 대를 몰고 송나라의 명록촌을 향해 출발했다. (긴 여행 끝에) 몇 사람들이 밭두둑 가에서 밭 갈기를 쉬면서 번갈아 노래를 부르고 있었다. 노래에 이르기를, “산은 높구나. 올라갈 수가 없네. 길은 진창이구나. 등불도 없네. 서로 함께 언덕에 오름이여, 샘물은 달고 땅은 기름지네. 내 몸을 부지런히 움직여 일함이여, 나에게는 오곡이 있도다. 세끼를 걱정하지 않는구나. 아침밥과 저녁밥이 족하도다. 이 천명을 즐김이여, 영화도 없지만 굴욕도 없도다.” 했다. 공자 집이 수레 안에서 그 노래를 듣고 세속 먼지가 묻지 않은 운치를 느끼고 탄식하며 마부에게 말하기를, “옛말에 ‘마을에도 군자가 있어 비속한 풍습을 교화한다.’고 했는데 오늘 건숙이 사는 동네에 이르니 밭 가는 사람도 모두가 고상한 은자의 풍이 있어서, 과연 그가 어질다는 것을 믿을 수 있겠다.” 하고, 수레에서 내려 밭 가는 농부들에게 묻기를, “건숙 선생이 사는 집이 어디입니까?” 하니, 밭 가는 사람이 말하기를, “무슨 일로 찾으십니까?” 했다. 공자 집이 말하기를, “옛친구 백리해가 편지를 써서 나에게 전해 달라 부탁했습니다.” 하니, 밭 가는 사람이 지시하며 말하기를, “앞으로 가시면 대나무숲이 나오고 왼쪽에는 우물이 있고 오른쪽에는 바위가 있을 것입니다. 그 중간에 작은 초가집이 한 채 있는데 그곳이 건숙 선생이 사는 곳입니다.” 했다.
縶拱手稱謝。復登車,行將半里,來至其處。縶舉目觀看,風景果是幽雅。隴西居士有隱居詩云:「翠竹林中景最幽,人生此樂更何求?數方白石堆雲起,一道清泉接澗流;得趣猿猴堪共樂,忘機麋鹿可同遊。紅塵一任漫天去,高臥先生百不憂。」縶停車於草廬之外,使從者叩其柴扉。有一小童子,啟門而問曰:「佳客何來?」縶曰:「吾訪蹇先生來也。」童子曰:「吾主不在。」縶曰:「先生何往?」童子曰:「與鄰叟觀泉於石樑,少頃便回。」縶不敢輕造其廬,遂坐於石上以待之。童子將門半掩,自入戶內。須臾之間,見一大漢,濃眉環眼,方面長身,背負鹿蹄二隻,從田塍西路而來。縶見其容貌不凡,起身迎之。
공자 집이 손을 모아 감사를 표하고 다시 수레에 올라 반 리쯤 가니 그곳에 닿았다. 공자 집이 눈을 들어 살펴보니 풍경이 과연 그윽하고 아름다웠다. 농서(隴西)거사가 은거하는 시를 지어 이르기를, “푸른 대나무 숲속 경치는 가장 그윽한데, 인생에 이런 즐거움 외에 더 무엇을 구하랴? 사방에 쌓인 흰 돌 위에 구름이 일고, 한 가닥 맑은 샘물은 흘러 실개천에 들어간다. 이 취향을 알면 원숭이와 함께 즐길 수 있으며, 세상일 잊고 사슴과 같이 노닐 수 있네. 세속의 먼지는 하늘 저편에 버려두고, 선생은 높이 누워 근심 걱정이 없네.” 했다. 공자 집이 초가집 밖에 수레를 멈추고 종자를 시켜 사립문을 두드렸다. 조그만 동자 하나가 문을 열고 묻기를, “어디서 오신 손님이십니까?” 하니, 공자 집이 말하기를, “나는 건숙 선생을 찾아뵈러 왔네.” 했다. 동자가 말하기를, “선생은 계시지 않습니다.” 하니, 공자 집이 말하기를, “선생은 어디에 가셨는가?” 했다. 동자가 말하기를, “이웃 노인들과 함께 돌다리에 냇물을 보러 갔습니다. 조금만 있으면 곧 돌아오실 것입니다.” 했다. 공자 집이 감히 그 집에 들어가지 못하고 돌 위에 앉아 기다렸다. 동자가 사립문을 반쯤 가려 놓고 집 안으로 들어갔다. 잠시 후에 큰 사내가 보였는데 눈썹은 짙고 둥그런 눈에, 얼굴은 네모지고 키가 큰데, 등에 사슴 다리 두 개를 지고 밭두둑 서쪽길에서 다가왔다. 공자 집이 그 용모가 비범함을 보고 몸을 일으켜 맞이했다.
那大漢即置鹿蹄於地,與縶施禮。縶因叩其姓名。大漢答曰:「某蹇氏,丙名,字白乙。」縶曰:「蹇叔是君何人?」對曰:「乃某父也。」縶重複施禮,口稱:「久仰!」大漢曰:「足下何人?到此貴幹?」縶曰:「有故人百里奚,今仕於秦,有書信託某奉候尊公。」蹇丙曰:「先生請入草堂少坐,吾父即至矣。」言畢,推開雙扉,讓公子縶先入。蹇丙復取鹿蹄負之,至於草堂。童子收進鹿蹄。蹇丙又復施禮,分賓主坐定。公子縶與蹇丙談論些農桑之事,因及武藝。丙講說甚有次第,縶暗暗稱奇,想道:「有其父方有其子,井伯之薦不虛也。」獻茶方罷,蹇丙使童子往門首伺候其父。少頃,童子報曰:「翁歸矣!」
그 큰 사내가 사슴 다리를 땅에 내려놓고 공자 집과 인사를 했다. 공자 집이 그의 성명을 물으니, 그 사람이 대답하기를, “성은 건(蹇)이고 이름은 병(丙)이며, 자는 백을(白乙)이라고 합니다.” 했다. 공자 집에 말하기를, “건숙 선생과는 어떤 사이인가요?” 하니, 그 사람이 대답하기를, “저의 부친입니다.” 했다. 공자집이 다시 예를 올리면서 말하기를, “오랫동안 뵙기를 바랐습니다.” 하니, 그 사람이 말하기를, “귀하는 누구시기에 이곳까지 오셨습니까?” 했다. 공자 집이 말하기를, “옛날 친구 백리해라는 분이 지금 진(秦)나라에서 벼슬을 살고 있는데, 저에게 편지를 써서 주며 부친에게 전해 달라는 부탁을 받고 오게 되었습니다.” 했다. 건병이 말하기를, “선생께서는 초당에 들어가셔서 잠시 앉아계시면 저희 부친께서 곧 오실 것입니다.” 했다. 말을 마친 건병이 사립문을 밀쳐 열고 공자 집을 먼저 집 안으로 들어오게 했다. 건병이 다시 사슴 다리를 지고 초당에 이르니, 동자가 사슴 다리를 받아서 들였다. 건병이 다시 예를 올리고 손님과 주인이 자리를 나누어 앉았다. 공자 집과 건병이 농사와 누에 치는 일로 이야기를 시작하여 무예로까지 이어졌다. 건병의 말이 조리가 아주 정연하여 공자 집이 마음속으로 칭찬하면서, 생각하기를, “그 아버지에 그 아들이니 정백(백리해)이 추천한 것이 헛말이 아니구나.” 했다. 내온 차를 마시고 나서, 건병은 아이를 시켜 문 앞에 나가서 부친을 기다리게 했다. 조금 후에 아이가 알리기를, “할아버지께서 돌아오십니다.” 했다.
卻說,蹇叔與鄰叟二人,肩隨而至,見門前有車二乘,駭曰:「吾村中安得有此車耶?」蹇丙趨出門外,先道其故。蹇叔同二叟進入草堂,各各相見,敘次坐定。蹇叔曰:「適小兒言吾弟井伯有書,乞以見示!」公子縶遂將百里奚書信呈上。蹇叔啟緘觀之。略曰:「奚不聽兄言,幾蹈虞難。幸秦君好賢,贖奚於牧豎之中,委以秦政。奚自量才智不逮恩兄,舉兄同事。秦君敬慕若渴,特命大夫公子縶布幣奉迎。惟冀幡然出山,以酬生平未足之志。如兄戀戀山林,奚亦當棄爵祿,相從於鳴鹿之鄉矣!」
한편, 건숙이 이웃에 사는 두 노인과 어깨를 나란히 하고 집 앞에 이르러 문 앞에 수레 두 대를 보고 놀라서 말하기를, “우리 마을에 어찌 이와 같은 수레가 와있는가?” 했다. 건병이 문밖으로 나가 먼저 그 까닭을 말했다. 건숙이 두 늙은이와 함께 초당에 들어가 각각 서로 만나 차례대로 앉았다. 건숙이 말하기를, “제 자식이 말하기를, 내 아우 정백의 편지를 전하러 오셨다고 했는데, 편지를 보여주십시오.” 하니, 공자 집이 곧 백리해의 편지를 드렸다. 건숙이 편지의 봉함을 뜯고 보니, 대략 이르기를, “이 백리해가 형의 충고를 듣지 않아 우나라에서 재난을 당했으나 다행히 진(秦)나라 군주가 현사를 사랑하여 목동 사이에서 저를 속량하여 진나라의 정사를 맡겼습니다. 제가 스스로 헤아려 보니 재주와 지혜가 형에게 미치지 못함을 알고 형을 천거하여 진나라 군주를 같이 모시려고 했습니다. 진나라 군주가 형을 경모하기를 마치 목마른 자가 물을 찾는 것 같이 하여, 대부 공자 집에게 폐백을 내려 형을 모셔오라고 했습니다. 바라건대 빨리 산에서 나오셔서 평생에 펴 보지 못한 뜻을 베풀기 바랍니다. 만약 형이 산림에 연연하여 세상으로 나오지 않으신다면 이 백리해도 벼슬과 봉록을 버리고 그곳 명록촌으로 들어서 형과 함께 살겠습니다.” 했다.
蹇叔曰:「井伯何以見知於秦君也?」公子縶將百里奚為媵逃楚,秦君聞其賢,以五羊皮贖歸始末,敘述一遍。「今寡君欲爵以上卿,井伯自言不及先生,必求先生至秦,方敢登仕。寡君有不腆之幣,使縶致命。」言訖,即喚左右於車廂中取出徵書禮幣,排列草堂之中。鄰叟俱山野農夫,從未見此盛儀,相顧驚駭,謂公子縶曰:「吾等不知貴人至此,有失迴避。」縶曰:「何出此言?寡君望蹇先生之臨,如枯苗望雨。煩二位老叟相勸一聲,受賜多矣!」二叟謂蹇叔曰:「既邦如此重賢,不可虛貴人來意。」
건숙이 말하기를, “정백(백리해)이 어떻게 해서 진나라 군주를 만나게 되었습니까?” 하니, 공자 집은 백리해가 백희의 몸종으로 진나라로 가던 중 초나라로 도망쳤다는 것과, 진나라 목공이 그가 어질다는 말을 듣고, 염소 가죽 다섯 장을 초나라에 주고 속죄시킨 전후 사정을 상세하게 설명하고, 말하기를, “지금 저희 군주께서 백리해에게 상경의 벼슬을 내리려 했으나 정백이 자신은 선생에게 못 미친다고 말하면서 반드시 선생을 진나라로 모셔와야만 비로소 벼슬에 오르겠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저희 군주께서는 얼마간의 예물을 내려 주시면서 저에게 건숙 선생을 모셔오라는 명을 내리셨습니다.” 했다. 말이 끝나자, 공자 집이 좌우에 있던 종자들에게 명하여 수레의 짐칸에 있던 모시는 글과 예물들을 꺼내어 초당에 늘어놓게 하였다. 이웃에 사는 노인들은 모두 산야에 사는 농부들이라 이와 같은 성대한 예물을 본 적이 없어 서로 돌아보며 놀라워하다가 공자 집에게 말하기를, “우리는 귀인께서 여기에 온 줄 모르고 실례했으니 피하여 돌아가겠습니다.” 하니, 공자 집이 말하기를, “어찌 그런 말씀을 하십니까? 우리 군주께서 건숙 선생을 모시고 싶은 마음은 마치 메마른 모가 비를 기다리는 것과 같습니다. 두 분 노인께서도 한 마디 권하여 이 예물을 받게 해 주십시오.” 하니, 두 노인이 건숙에게 말하기를, “그 나라에서 이렇게 어진 이를 중히 여기니 귀인이 온 뜻을 헛되게 하지 마십시오.” 했다.
蹇叔曰:「昔虞公不用井伯,以致敗亡。若秦君肯虛心仕賢,一井伯已足。老夫用世之念久絕,不得相從。所賜禮幣,望乞收回,求大夫善為我辭!」公子縶曰:「若先生不往,井伯亦必不獨留。」蹇叔沉吟半晌,嘆曰:「井伯懷才未試,求仕已久,今適遇明主,吾不得不成其志。勉為井伯一行,不久仍歸耕於此耳。」童子報:「鹿蹄已熟。」蹇叔命取床頭新釀,盞之以奉客。公子縶西席,二叟相陪,瓦杯木箸,賓主勸酬,欣然醉飽。不覺天色已晚,遂留縶於草堂安宿。次早,二叟攜樽餞行,依前敘坐。
건숙이 말하기를, “지난날 우공은 정백을 쓰지 않아 패하여 망했습니다. 만약에 진나라 군주가 진정으로 마음을 비우고 어진 이를 대한다면 정백 한 사람만으로도 족합니다. 이 늙은이가 세상에 쓰일 생각을 끊은 지가 오래라 명을 따를 수 없습니다. 하사하신 예물은, 원컨대 도로 거두어 가시기 바라며, 대부께서도 제가 사양하는 뜻을 이해해 주시기 바랍니다.” 했다. 공자 집이 말하기를, “만약 선생께서 가지 않으신다면 정백도 또한 혼자서 진나라에 머물지 않겠다고 했습니다.” 하니, 건숙이 한참 망설이다가 탄식하며 말하기를, “정백이 가슴에 품은 뜻을 펴보지 못하고 벼슬을 구한 지 오래였다가 이제 밝은 군주를 만났는데 내가 그 뜻을 못 이루게 할 수가 없습니다. 정백을 위하여 함께 가겠으나 머지않아 다시 돌아와 농사를 지을 것입니다.” 했다. 동자가 알리기를, “사슴 다리가 이미 익었습니다.” 하니, 건숙이 상머리에 새 술을 내오게 하고, 술잔에 술을 따라 손님을 대접했다. 공자 집이 서쪽에 앉고 두 늙은이가 그 옆에 앉아 도기 잔에 나무젓가락으로 주인과 손님이 술을 권하고 따르며 흔연히 취하고 배불리 먹었다. 어느덧 해가 저물어 마침내 공자 집은 초당에서 편안히 잤다. 다음 날 아침 두 노인이 술병을 들고 와서 전별하려고 어제처럼 자리에 순서대로 앉았다.
良久,公子縶誇白乙之才,亦要他同至秦邦。蹇叔許之。乃以秦君所贈禮幣,分贈二叟,囑咐看覷家間:「此去不久,便再得相敘。」再吩咐家人:「勤力稼穡,勿致荒蕪。」二叟珍重而別。蹇叔登車,白乙丙為御。公子縶另自一車,並駕而行。夜宿曉馳,將近秦郊,公子縶先驅入朝,參謁了秦穆公,言:「蹇先生已到郊外。其子蹇丙,亦有揮霍之才,臣並取至,以備任使。」穆公大喜,乃命百里奚往迎。蹇叔既至,穆公降階加禮,賜坐而問之曰:「井伯數言先生之賢,先生何以教寡人乎?」
한참 뒤에 공자 집이 백을(건병)의 재주를 칭찬하고 또한 그도 함께 진나라로 데려가고 싶다고 하니, 건숙이 허락했다. 이에 건숙이 진나라 군주가 하사한 예물들을 두 노인에게 나누어주고 자기의 집을 살펴봐 달라고 부탁하기를, “이번에 가는 것은 오래 걸리지 않을 것이니 곧 다시 만날 것이오.” 하고, 다시 집안사람들에게 분부하기를, “농사에 힘써서 논밭을 황폐하게 만들지 말아라.” 했다. 두 노인이 건숙에게 몸을 잘 보중하라는 말과 함께 이별을 고했다. 건숙은 수레에 타고 백을(건병)이 수레를 몰았다. 공자 집은 다른 한 대의 수레에 타고 나란히 몰아서 갔다. 밤이 되면 자고 날이 밝으면 수레를 몰아서 진나라 교외에 가까워지자 공자 집이 먼저 진나라 조정에 달려 들어가 진목공을 알현하고 말하기를, “건숙 선생이 이미 도성 밖에 당도하였습니다. 그의 아들 건병도 재주가 비범하여 신이 같이 데리고 왔는데 일을 맡길 만합니다.” 하니, 목공이 크게 기뻐하여 즉시 백리해에게 맞이해 오도록 명했다. 건숙이 도착하니 목공이 계단을 내려와 예를 갖추어 맞이하여 자리를 주어 앉게 하고 묻기를, “정백이 여러 번 선생의 현명함을 말했습니다. 선생은 무엇으로 과인을 가르쳐 줄 것입니까?” 했다.
蹇叔對曰:「秦僻在西土,鄰於戎狄,地險而兵強,進足以戰,退足以守。所以不列於中華者,威德不及故也。非威何畏,非德何懷;不畏不懷,何以成霸?」穆公曰:「威與德二者孰先?」蹇叔對曰:「德為本,威濟之。德而不威,其國外削;威而不德,其民內潰。」穆公曰:「寡人欲布德而立威,何道而可?」蹇叔對曰:「秦雜戎俗,民鮮禮教,等威不辨,貴賤不明,臣請為君先教化而後刑罰。教化既行,民知尊敬其上,然後恩施而知感,刑用而知懼,上下之間,如手足頭目之相為。管夷吾節制之師,所以號令天下而無敵也。」
건숙이 대답하기를, “진(秦)나라는 서쪽 땅에 치우쳐 있어 융적(戎狄)과 이웃하여 지세는 험하고 병사는 강합니다. 나아가면 족히 싸울 수 있고 물러서면 족히 지킬 수 있습니다. 그런데 중원의 제후들 반열에 같이 서지 못함은 주군의 위엄과 덕이 그곳에 미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위엄이 없으면 어찌 두려워하겠으며, 덕이 없으면 어찌 품어 따르게 할 수 있겠습니까. 두려워하지도 않고 품어 따르게 할 수도 없는데 어찌 패업을 이룰 수 있겠습니까?” 했다. 진목공이 말하기를, “그렇다면 위엄과 덕 중 어느 것부터 먼저 행해야 합니까?” 하니, 건숙이 대답하기를, “덕을 근본으로 삼고 위엄으로 그들을 지도해야 합니다. 덕이 있으나 위엄이 없으면 그 나라는 외부의 침입을 당하게 되고, 위엄은 있으나 덕이 없으면 그 백성들이 안에서 무너뜨립니다.” 했다. 진목공이 말하기를, “과인은 덕을 펴고 위엄을 세우고 싶습니다. 어찌해야 되겠습니까?” 하니, 건숙이 대답하기를, “진(秦)나라는 오랑캐 풍속이 섞여 있어서 백성들이 예법을 잘 모르고, 계급과 위엄이 분명하지 못하고 귀천이 분명하지 않습니다. 신이 청하옵건대 주군을 위해서 먼저 백성들을 교화시킨 후에 형벌을 분명히 행해야 합니다. 교화가 실시되면 백성은 그 윗사람을 존경할 줄 알게 됩니다. 그런 후에 은혜를 베풀면 감사할 줄 알게 되며, 형벌을 쓰면 두려워할 줄을 알게 됩니다. 이렇게 되면 윗사람과 아랫사람 사이가 마치 손과 다리와 머리와 눈과 같이 서로 맞아 돌아갑니다. 이것은 관이오가 군사 조직을 통제하여 천하를 호령하여 적수가 없는 이유입니다.” 했다.
穆公曰:「誠如先生之言,遂可以霸天下乎?」蹇叔對曰:「未也。夫霸天下者有三戒:毋貪,毋忿,毋急。貪則多失,忿則多難,急則多蹶、夫審大小而圖之,烏用貪?衡彼己而施之,烏用忿?酌緩急而布之,烏用急?君能戒此三者,於霸也近矣。」穆公曰:「善哉言乎!請為寡人酌今日之緩急。」蹇叔對曰:「秦立國西戎,此禍福之本也。今齊侯已耄,霸業將衰。君誠善撫雍渭之眾,以號召諸戎,而征其不服者。諸戎既服,然後斂兵以俟中原之變,拾齊之遺,而布其德義。君雖不欲霸,不可得而辭矣。」
진목공이 말하기를, “참으로 선생의 말씀대로 하면 마침내 천하를 제패할 수 있습니까?” 하니, 건숙이 대답하기를, “아직 충분치 않습니다. 무릇 천하를 제패하고자 하는 자는 세 가지 계율을 지켜야 합니다. 탐하지 말고, 화내지 말며, 조급히 서두르지 말아야 합니다. 탐하면 잃는 것이 많고, 화를 내면 화를 낼수록 일이 더욱 어려워지며, 조급하게 서두르면 빠뜨리는 것이 많게 됩니다. 대저 일을 처리할 때는 크고 작은 것을 잘 살펴서 추진해야 하니, 어찌 욕심을 부릴 수 있습니까? 상대와 자기를 저울질해서 베풀어야 하니, 어찌 분노할 수 있습니까? 천천히 할 것과 급히 할 것을 짐작해서 펴야 하니, 어찌 조급할 수 있습니까? 주군께서 이 세 가지 계율을 능히 지키신다면 패업을 이루는 데 가깝다고 할 수 있습니다.” 했다. 진목공이 말하기를, “훌륭하신 말씀이십니다. 청컨대 과인이 현재 급히 해야 할 일과 천천히 해야 할 일을 깨우쳐 주시기 바랍니다.” 하니, 건숙이 대답하기를, “진(秦)나라는 서융의 땅에 나라를 세웠는데 이것이 나라를 운영하기에 따라 화가 되기도 하고 복이 되기도 합니다. 지금 제환공은 이미 늙었고 그가 이룩한 패업도 장차 시들어질 것입니다. 주군께서 진실로 옹(雍)과 위(渭) 땅의 백성들에게 덕을 베풀고, 여러 오랑캐를 감화시킨 다음에 복종하지 않는 자를 정벌하십시오, 여러 오랑캐를 복종시킨 다음에 군사들을 모아놓고 중원에서 변동이 있기를 기다려서 제나라가 남긴 것을 줍고 덕과 의를 펴십시오. 그러면 주군께서 비록 패업을 원하지 않으시더라도 사양하지 못할 것입니다.” 했다.
穆公大悅曰:「寡人得二老,真庶民之長也!」乃封蹇叔為右庶長,百里奚為左庶長,位皆上卿,謂之「二相」。並召白乙丙為大夫。自二相兼政,立法教民,興利除害,秦國大治。史官有詩云:「子縶薦奚奚薦叔,轉相汲引布秦庭。但能好士如秦穆,人傑何須問地靈。」穆公見賢才多出於異國,益加採訪。公子縶薦秦人西乞術之賢,穆公亦召用之。百里奚素聞晉人繇余負經綸之略,私詢於公孫枝。枝曰:「繇余在晉不遇,今已仕於西戎矣。」奚嘆惜不已。
진목공이 크게 기뻐하며 말하기를, “과인이 얻은 두 노인은 참으로 뭇 백성들의 어른이로다.” 했다. 진목공이 즉시 건숙을 우서장(右庶長)으로, 백리해를 좌서장(左庶長)으로 삼아 지위를 상경으로 하고 이상(二相)이라고 불렀다. 아울러 건숙의 아들 백을(건병)도 불러서 대부로 삼았다. 두 사람의 재상이 진(秦)나라 정사를 맡아 법을 세우고 백성들을 교화하고 이익을 일으키며 해악을 제거하니 진나라가 크게 다스려졌다. 사관이 시를 지어 이르기를, “공자 집은 백리해를, 백리해는 건숙을 천거하여, 재상으로 발탁하여 진나라 조정에서 정치를 폈네. 오직 선비 좋아하기를 진목공처럼 했다면, 인걸들이 어찌 인생을 지배하는 땅의 신령에게 물었겠는가?” 했다. 진목공은 어진 인재가 다른 나라에서 많이 배출됨을 알고, 더욱 인재들을 구해오게 했다. 공자 집이 진(秦)나라 사람 서걸술(西乞術)의 현명함을 천거하니, 목공이 역시 불러 기용했다. 백리해가 평소에 진(晉)나라의 요여(繇余)가 경륜을 지녔음을 알고 몰래 공손지를 불러 상의하니, 공손지가 말하기를, “요여는 진(晉)나라에 있을 때 불우하여 지금은 서융에서 벼슬을 살고 있습니다.” 했다. 백리해가 한탄하며 아까워하기를 마지않았다.
卻說,百里奚之妻杜氏,自從其夫出遊,紡績度日。後遇饑荒,不能存活,攜其子趁食他鄉。展轉流離,遂入秦國,以澣衣為活。其子名視,字孟明,日與鄉人打獵角藝,不肯營生。杜氏屢諭不從。及百里奚相秦,杜氏聞其姓名,曾於車中望見,未敢相認。因府中求澣衣婦,杜氏自願入府澣衣,勤於搗濯,府中人皆喜,然未得見奚之胊也。一日,奚坐於堂上,樂工在廡下作樂。杜氏向府中人曰:「老妾頗知音律,願引至廡,一聽其聲。」府中人引至廡下,言於樂工,問其所習。杜氏曰:「能琴亦能歌。」乃以琴授之。杜氏援琴而鼓,其聲淒怨。
한편, 백리해의 처 두(杜)씨는 그의 지아비가 떠난 후 베를 짜며 세월을 보냈다. 그 후에 기근을 만나 살 수가 없어서 아들을 데리고 타향에서 걸식을 했다. 여러 나라를 전전하다가 마침내 진(秦)나라로 들어와 빨래꾼이 되어 살고 있었다. 그 아들은 이름이 시(視)이고 자는 맹명(孟明)인데 매일 시골사람들과 사냥을 나가 무예를 다투고 생계를 위해 힘쓰지 않았다. 두씨가 여러 번 타일렀으나 듣지 않았다. 이윽고 백리해가 진나라의 재상이 되자 두씨도 그 성명을 들었다. 일찍이 수레를 탄 백리해를 바라보았으나 감히 확인할 수는 없었다. 그때 마침 재상 부중에서 빨래하는 여자를 구하여서, 두씨가 자원하여 부중으로 들어가 빨래를 했다. 두씨가 부지런히 옷을 두드리고 빠니, 부중 사람들이 모두 좋아했다. 그러나 부중에서 백리해를 먼발치에서도 보지 못했다. 하루는 백리해가 당상에 앉아 있고 악공이 행랑에서 연주하고 있는데, 두씨가 부중의 사람들에게 말하기를, “저도 음악을 좀 압니다. 저 행랑 가까이 가서 저 소리를 한번 듣고 싶습니다.” 하니, 부중 사람들이 그녀를 행랑 아래에 데려다주고 악공에게 소개했다. 악공이 그 배운 바를 물으니, 두씨가 말하기를, “거문고도 탈 줄 알고 노래도 부를 수 있습니다.” 했다. 이에 거문고를 주니, 두씨가 거문고를 끌어다가 연주했는데 그 소리가 슬프고 원망스러웠다.
樂工俱傾耳靜聽,自謂不及。再使之歌,杜氏曰:「老妾自流移至此,未嘗發聲。願言於相君,請得升堂而歌之。」樂工稟知百里奚,奚命之立於堂左。杜氏低眉斂袖,揚聲而歌。歌曰:「百里奚,五羊皮!憶別時,烹伏雌,舂黃齏,炊扊扅。今日富貴忘我為?百里奚,五羊皮!父梁肉,子啼饑,夫文繡,妻澣衣。嗟乎!富貴忘我為?百里奚,五羊皮!昔之日,君行而我啼,今之日,君坐而我離。嗟乎!富貴忘我為?」百里奚聞歌愕然,召至前詢之,正其妻也。遂相持大慟。良久,問:「兒子何在?」杜氏曰:「村中射獵。」使人召之。
악공이 귀를 기울여 조용히 듣더니 자기도 못 미치겠다고 말했다. 다시 노래를 부르게 하자 두씨가 말하기를, “노첩은 유랑하여 이곳까지 왔는데 아직 노래를 불러보지 못했습니다. 원컨대 상국에게 말씀드려 당에 올라가 노래를 부르게 해주십시오.” 했다. 악공이 백리해에게 아뢰니 백리해가 당 왼쪽에 서게 했다. 두씨가 눈을 깔고 소매를 여미고 목소리를 높여 노래를 불렀다. 노래에 이르기를, “백리해, 염소 가죽 다섯 장. 이별할 때 기억나는가? 암탉 잡아 삶고, 누런 기장을 찧고, 빗장을 때어 밥을 지었다. 오늘은 부귀하니 나를 잊었는가? 백리해, 염소 가죽 다섯 장. 아버지는 진수성찬인데, 아들은 배가 고파 우는구나! 지아비는 비단옷인데 아내는 옷을 빠는구나! 아! 부귀하니 나를 잊었는가? 백리해, 염소 가죽 다섯 장. 옛날에 그대가 길을 떠날 때 나는 흐느껴 울었다. 오늘 그대는 앉아 있고 나는 떨어져 있네. 아! 부귀하니 나를 잊었는가?” 했다. 백리해가 노래를 듣고 깜짝 놀라 앞으로 불러서 물어보니 바로 그의 아내였다. 마침내 서로 부둥켜안고 크게 울었다. 한참 지난 후 백리해가 묻기를, “아들은 지금 어디 있소?” 하니, 두씨가 말하기를, “시골에서 사냥을 합니다.” 했다. 백리해가 곧 사람을 시켜 불러오게 했다.
是日,夫妻父子,再得完聚。穆公聞百里奚妻、子俱到,賜以粟千鍾,金帛一車。次日,奚率妻子孟明視朝見謝恩。穆公亦拜視為大夫,與西乞術、白乙丙並號將軍,謂之「三帥」,專掌征伐之事。姜戎子吾離,桀驁侵掠,三帥統兵征之。吾離兵敗奔晉,遂盡有瓜州之地。時西戎主赤斑見秦人強盛,使其臣繇余聘秦以觀穆公之為人。穆公與之遊於苑囿,登三休之台,誇以宮室苑囿之美。繇余曰:「君之為此者,役鬼耶,抑役人耶?役鬼勞神,役人勞民!」穆公異其言,曰:「汝戎夷無禮樂法度,何以為治?」
이날, 부부와 아들이 다시 만나서 모여 살게 되었다. 진목공이 백리해의 처자가 모두 왔다는 소식을 듣고 조 천 종(1종은 열 섬)과 금과 비단 한 수레를 보냈다. 다음날 백리해가 그 처와 아들 맹명시(孟明視; 百里視)를 데리고 왕을 뵙고 고마움을 표했다. 진목공이 또한 맹명시를 대부로 삼았다. 서걸술, 백을병(蹇丙)과 함께 맹명시를 장군으로 삼아 ‘세 장수’라고 하고, 정벌 사업을 전담하게 하였다. 이때 강융(姜戎)의 군주 오리(吾離)가 군사를 이끌고 사납게 침략해 오자 세 장수가 군사를 거느리고 싸워서 물리쳤다. 싸움에서 패한 오리는 진(晉)나라로 도망쳤다. 마침내 과주(瓜州)를 모두 차지했다. 그때 서융(西戎)의 군주 적반(赤斑)이 진(秦)나라가 강성해지고 있음을 알고, 그의 신하인 요여(繇余)를 사신으로 보내 진목공의 사람됨을 살펴보게 하였다. 진목공이 요여를 후원으로 데리고 가서 삼휴대(三休臺)에 올라 궁궐과 후원의 아름다움을 자랑하였다. 요여가 말하기를, “군주께서는 이 모든 것을 짓는데 귀신을 부리셨습니까? 아니면 사람을 부리셨습니까? 귀신을 부리셨다면 귀신들에게 수고를 끼치셨고, 사람을 부리셨다면 백성들을 괴롭혔습니다.” 했다. 목공은 그 말을 이상하게 여겨 말하기를, “그대의 나라 융이(戎夷 ; 오랑캐)는 예악과 법도가 없는데 무엇으로 나라를 다스리는가?” 했다.
繇余笑曰:「禮樂法度,此乃中國所以亂也!自上聖創為文法,以約束百姓,僅僅小治。其後日漸驕淫。借禮樂之名,以粉飾其身;假法度之威,以督責其下。人民怨望,因生篡奪。若戎夷則不然。上含淳德以遇下,下懷忠信以事其上。上下一體,無形跡之相欺,無文法之相擾。不見其治,乃為至治。」穆公默然,退而述其言於百里奚。奚對曰:「此晉國之大賢人,臣熟聞其名矣。」穆公蹴然不悅曰:「寡人聞之,『鄰國有聖人,敵國之憂也。』今繇余賢而用於戎,將為秦患奈何?」奚對曰:「內史廖多奇智,君可謀之。」
요여가 웃으면서 말하기를, “예악과 법도는 중원의 나라들을 혼란에 빠뜨리고 있습니다. 옛날의 성군들도 법을 글로 만들어 백성들과 약속을 하여 근근이 다스릴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후세에 이르러서는 군주가 점점 교만하고 음탕해져서 예악이라는 이름만 내세우고 그 몸을 장식하고 거짓된 법도로 위엄을 부리며 밑의 사람들을 닦달하였습니다. 그 결과 백성들이 원망하고 찬탈하는 일도 생겨났습니다. 그러나 오랑캐는 그렇지 않습니다. 윗사람은 순박한 덕으로 아랫사람들을 대하고 아랫사람들은 충성과 신의로써 윗사람들을 섬깁니다. 상하가 한결같아 서로 속이지 않습니다. 글로 쓴 법을 서로 어기는 일이 없어서 다스려야 할 것도 보이지 않으니 지극한 다스림이 되었습니다.” 했다. 진목공이 아무 대답도 못하고, 물러나와서 백리해에게 그 말을 전하니. 백리해가 대답하기를, “그 사람은 진(晉)나라 출신의 아주 어진 사람입니다. 신은 그의 이름을 익히 들었습니다.” 했다. 진목공이 기쁘지 않은 기색으로 말하기를, “과인은 ‘이웃 나라에 성인이 있으면 상대국의 근심거리다.’라는 말을 들었소. 지금 요여가 현명한데, 융(戎)나라에 쓰이고 있어서 장차 우리나라의 화근이 되니 어찌하겠소?” 하니, 백리해가 말하기를, “내사(內史) 요(廖)가 기발한 지혜가 많으니 주군께서 그와 계책을 상의하십시오.” 했다.
穆公即召內史廖告以其故。廖對曰:「戎主僻處荒徼,未聞中國之聲。君試遺之女樂,以奪其志。留繇余不遣,以爽其期。使其政事怠廢,上下相疑,雖其國可取,況其臣乎?」穆公曰:「善。」乃與繇余同席而坐,共器而食,居常使蹇叔、百里奚、公孫枝等,輪流作伴,叩其地形險夷,兵勢強弱之實。一面裝飾美女,能音樂者六人,遣內史廖至戎報聘,以女樂獻之。戎主赤斑大悅,日聽音而夜御女,遂疏於政事。繇余留秦一年乃歸。戎主怪其來遲,繇余曰:「臣日夜求歸,秦君固留不遺。」
진목공은 즉시 내사 요(廖)를 불러 그 일을 상의하니 요가 대답하기를, “오랑캐 군주는 궁벽하고 황량한 곳에 살고 있어 아직 중국의 번화한 음악을 모릅니다. 주군께서 시험삼아 여자와 음악을 보내어 그 뜻을 빼앗아 보십시오. 요여를 억류시켜 보내지 말고 적당한 시기까지 이곳에 붙들어 두십시오. 오랑캐 군주가 정치를 폐하고 게을러지게 하여 상하가 서로 의심하게 되면 그 나라도 취할 수 있게 됩니다. 하물며 그 신하야 문제가 되겠습니까?” 했다. 진목공이 말하기를, “좋은 계책이로다!” 하고, 이에 진목공은 요여와 같은 자리에 앉으며 같은 그릇에 담아 먹고, 항상 건숙, 백리해. 공손지 등이 번갈아 가면서 짝이 되어 그 지형의 험하고 평탄함과 군사력의 강약 실상을 물었다. 한편으로 미녀와 음악에 능한 여섯 사람을 선발하여 치장해서 내사요(廖)를 답례 사절로 보내어 그 여자들을 오랑캐 군주에게 바쳤다. 오랑캐 군주 적반(赤斑)이 크게 기뻐하여 날마다 낮에는 노래를 듣고, 밤에는 미녀를 사랑하기에 바빠 마침내 정사에 소홀해졌다. 요여가 진(秦)나라에 머문 지 1년 만에 돌아가니, 오랑캐 군주가 늦게 돌아온 요여를 괴이하게 생각했다. 요여가 말하기를, “신이 밤낮으로 귀국하려 했지만, 진(秦)나라 군주가 굳이 머물러 두고 보내 주지 않았습니다.” 했다.
戎主疑其有二心於秦,意頗疏之。繇余見戎主耽於女樂,不理政事,不免苦口進諫。戎主拒而不納。穆公因密遣人招之。繇余棄戎歸秦,即擢亞卿,與二相同事。繇余遂獻伐戎之策。三帥兵至戎境,宛如熟路。戎主赤斑不能抵敵,遂降於秦。後人有詩云:「虞違百里終成虜,戎失繇余亦喪邦。畢竟賢才能干國,請看齊霸與秦強。」西戎主赤斑,乃諸戎之領袖,向者諸戎俱受服役。及聞赤斑歸秦,無不悚懼,納土稱臣者,相繼不絕。穆公論功行賞,大宴群臣。群臣更番上壽,不覺大醉,回宮一臥不醒。
오랑캐 군주는 그가 진(秦)나라에 딴마음이 있다고 의심하여 의도적으로 그를 멀리하였다. 요여는 오랑캐 군주가 미녀와 음악에 빠져 정사를 돌보지 않는 것을 보고 간곡하게 간했으나, 오랑캐 군주는 간언을 물리치고 받아들이지 않았다. 진목공이 비밀리에 사람을 보내 요여를 데려왔다. 요여가 오랑캐를 버리고 진(秦)나라로 들어오자, 진목공은 즉시 요여를 아경(亞卿)에 임명하여, 두 재상인 건숙과 백리해와 함께 국정을 돌보게 하였다. 요여가 마침내 오랑캐를 정벌하기 위한 계책을 목공에게 바쳤다. (요여의 계책에 따라) 세 장수가 군사를 거느리고 마치 익숙한 길처럼 오랑캐 국경에 이르렀다. 오랑캐 군주 적반이 대항하지 못하고 마침내 진(秦)나라에 항복했다. 뒷사람이 시를 지어 이르기를, “백리해의 말을 듣지 않던 우공은 결국 포로가 되었고, 오랑캐 군주도 역시 요여를 잃더니 나라가 망했다. 필경 현명한 사람만이 나라를 다스릴 수 있으니, 패자가 된 제환공과 강성해진 진(秦)나라를 보아라.” 했다. 오랑캐 군주 적반은 여러 오랑캐 종족의 우두머리로 옛날부터 여러 오랑캐 종족들이 복종하고 있었다. 적반이 진(秦)나라에 항복하였다는 소문이 퍼지자 여러 오랑캐 종족들은 진(秦)나라의 위세를 두려워하여, 영토를 바치고 신하가 되고자 하는 자들이 줄을 이었다. 진목공이 공을 논하고 상을 주며 여러 신하를 위해 큰 잔치를 열었다. 군신들이 번갈아 가면서 진목공의 장수를 빌며 술을 권하자 모르는 사이에 크게 취했다. 궁으로 돌아온 진목공은 자리에 누워 잠이 들었으나 오랫동안 깨어나지 않았다.
宮人驚駭,事聞於外。群臣皆叩宮門問安。世子罌召太醫入宮診脈,脈息如常,但閉目不能言動。太醫曰:「是有鬼神。」欲命內史廖行禱。內史廖曰:「此是屍厥,必有異夢。須俟其自復,不可驚之。禱亦無益。」世子罌守於床蓆之側,寢食俱不敢離。直候至第五日,穆公方醒,顙間汗出如雨,連叫:「怪哉!」世子罌跪而問曰:「君體安否?何睡之久也?」穆公曰:「頃刻耳。」罌曰:「君睡已越五日,得無有異夢乎?」穆公驚問曰:「汝何以知之?」世子罌曰:「內史廖固言之。」
궁인들이 놀랐고 이 일이 바깥에 알려졌다. 여러 신하가 궁문을 두드리며 목공의 안부를 물었다. 세자 앵(罃)이 태의를 궁 안으로 불러 진맥을 보도록 했다. 목공의 맥에는 이상이 없었고 단지 눈을 감고 몸을 움직일 수 없을 뿐이었다. 태의가 말하기를, “이것은 귀신이 붙은 것입니다.” 했다. 세자 앵이 내사 요를 불러 하늘에 기도를 올리라고 하자 내사 요가 말하기를, “이것은 시궐(尸厥 ; 기절)이니 틀림없이 꿈을 꿀 것입니다. 반드시 스스로 깨어나기를 기다려야지 절대로 놀라게 하면 안 됩니다. 제가 기도를 올려도 아무런 소용이 없습니다.” 했다. 세자 앵이 침상 곁에서 침식을 같이하며 감히 떠나지 못했다. 닷새가 되어서야 진목공이 깨어나 이마에서 땀을 비처럼 흘리면서 연이어 외치기를, “괴이하구나!” 했다. 세자 앵이 무릎을 꿇고 묻기를, “아버지께서 몸은 편안하신지요. 무슨 잠을 그리 오래 주무셨습니까?” 하니, 진목공이 말하기를, “잠깐 잔 것 같다.” 했다. 세자 앵이 말하기를, “아버지께서는 잠이 드신 지 이미 닷새째가 되었습니다. 기이한 꿈을 꾸지 않으셨는지요?” 하니, 목공이 놀라면서 묻기를, “너는 그것을 어떻게 알았느냐?” 했다. 세자 앵이 말하기를, “내사 요가 그럴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했다.
穆公乃召廖至榻前,言曰:「寡人今者夢一婦人,妝束宛如妃嬪。容貌端好,肌如冰雪。手握天符,言奉上帝之命,來召寡人。寡人從之。忽若身在雲中,縹緲無際。至一宮闕,丹青炳煥,玉階九尺,上懸珠簾。婦人引寡人拜於階下。須臾簾卷,見殿上黃金為柱,壁衣錦繡,精光奪目。有王者冕旒華袞憑玉幾上坐。左右侍立,威儀甚盛。王者傳命:『賜禮!』有如內侍者,以碧玉斝賜寡人酒,甘香無比。王者以一簡授左右,即聞堂上大聲呼寡人名曰:『任好聽旨,爾平晉亂!』如是者再。婦人遂教寡人拜謝,復引出宮闕。寡人問婦人何名。
목공이 즉시 내사 요를 침상 앞으로 불러들여 말하기를, “과인이 방금 꿈속에서 한 부인을 만났는데 비빈과 같은 몸치장을 하고 단아한 용모와 백설같은 피부에 손에는 천부(天符 ; 하늘이 준 신표)를 들고 상제의 명을 받들라고 말하며 가까이 오더니 나를 불렀다. 나는 그 사람을 따라가니, 갑자기 몸이 구름 속에 있는 것 같아 아득히 끝이 없었다. 한 궁궐에 이르니 단청이 빛나고 계단이 아홉 자인데 그 위에 구슬발이 걸려 있었다. 부인이 나를 인도하여 계단 아래에서 절을 올렸다. 잠시 후 발이 걷히면서 전상에 황금 기둥과 비단에 수놓은 장막이 보이고 밝은 빛이 눈길을 사로잡았다. 어떤 왕이 면류관을 쓰고 화려한 곤룡포를 입고 옥으로 만든 탁자에 몸을 기대고 앉아 있었다. 좌우에는 시종이 매우 위엄있는 자세로 서 있었다. 왕이 명령하기를, ”예를 베풀라.“ 하니, 시종이 벽옥 잔에 술을 따라 나에게 주었는데 그 향기가 감미롭기 그지없었다. 왕이 죽간을 하나 좌우에게 주니 곧 당상에서 큰소리로 내 이름을 불러서 말하기를, ”‘임호(任好 ; 진목공의 이름)야, 내 말을 들어라! 너는 진(晉)나라의 난을 평정해야 한다.’ 하고 다시 반복하였다. 부인이 나에게 감사의 절을 올리라고 하더니, 다시 나를 이끌고 궁궐에서 나왔다. 내가 그 부인에게 이름을 물었다.
對曰:『妾乃寶夫人也。居於太白山之西麓。在君宇下,君不聞乎?妾夫葉君,別居南陽,或一二歲來會妾。君能為妾立祠,當使君霸,傳名萬載。』寡人因問:『晉有何亂,乃使寡人平之?』寶夫人曰:『此天機不可預洩。』已聞雞鳴,聲大如雷霆,寡人遂驚覺。不如此何祥也?」廖對曰:「晉侯方寵驪姬,疏太子,保無亂乎?天命及君,君之福也!」穆公曰:「寶夫人何為者?」廖對曰:「臣聞先君文公之時,有陳倉人於土中得一異物,形如滿囊,色間黃白,短尾多足,嘴有利喙。陳倉人謀獻之先君。
그 부인이 대답하기를, ‘첩은 보부인(寶夫人)인데 태백산의 서쪽 기슭에 살고 있습니다. 군주님의 땅에 살고 있는데 군주께서는 제 이름을 들어보지 못하셨습니까? 첩의 부군은 엽군(葉君)이라고 하는데 따로 남양에 삽니다. 1,2년에 한 번씩 첩을 만나러 옵니다. 군주께서 첩을 위해서 사당을 지어 주시면 마땅히 군주를 패자(霸者)가 되게 하여 이름이 만세에 전하게 할 것입니다.’ 했다. 과인이 묻기를, ‘진(晉)나라에 무슨 변란이 있기에 과인에게 평정하라고 합니까?’ 하니, 보부인이 말하기를, ‘이것은 천기(天機)라 미리 누설하면 안 됩니다.’ 했다. 이윽고 닭 우는 소리가 들리더니 마치 벼락같은 큰 소리가 나서 깜짝 놀라 꿈에서 깨어났다. 이것이 무슨 조짐이냐?” 했다. 내사 요가 말하기를, “신이 듣기로, 선군 문공(文公) 때에 진창(陳倉) 사람이 흙 속에서 이상한 짐승을 잡았는데 모양이 볼록한 주머니 같고 빛깔은 황백색이고 꼬리가 짧고 발이 많으며 주둥이가 날카로웠습니다. 진창 사람이 그것을 선군에게 바치려고 했습니다.
中途遇二童子,拍手笑曰:『汝虐於死人,今乃遭生人之手乎?』陳倉人請問其說,二童子曰:『此物名蝟,在地下慣食死人之腦,得其精氣,遂能變化。汝謹持之!』蝟亦張喙忽作人言曰:『彼二童子者,一雌一雄,名曰陳寶,乃野雉之精。得雄者王,得雌者霸。』陳倉人遂舍蝟而逐童子,二童子忽化為雉飛去。陳倉人以告先君,命書其事於簡,藏之內府,臣實掌之,可啟而視也。夫陳倉正在太白山之西,君試獵於兩山之間,以求其跡,則可明矣。」穆公命取文公藏簡觀之,果如廖之語。因使廖詳記其夢,並藏內府。
길에서 두 동자를 만났는데, 박수를 치고 웃으면서 말하기를, ‘‘너는 죽은 사람을 욕보이더니 이제 산 사람의 손에 잡혔구나’ 했다. 진창 사람이 듣고 그 내력을 묻자 두 동자가 말하기를, ‘이것은 고슴도치인데 땅속에서 죽은 사람의 뇌를 먹고 살기 때문에 그 정기를 얻어 능히 사람으로 변화할 수 있습니다. 당신은 조심해서 끌고 가십시오.’ 했다. 갑자기 고슴도치가 주둥이를 길게 내밀어 사람의 말을 하기를, ‘저 두 동자는 한 쌍의 꿩입니다. 이름을 진보(陳寶)라 하는데 들꿩의 정령이 변한 것입니다. 수컷을 얻는 자는 왕이 되고 암컷을 얻는 자는 패자(霸者)가 될 수 있습니다.’ 했다. 진창 사람이 고슴도치를 버리고 두 동자를 잡으려고 하자 두 동자는 홀연히 꿩으로 변하더니 날아가 버렸습니다. 진창 사람이 이 일을 선군에게 고하자 선군께서는 명을 내려 그 일을 죽간에 써서 궁중 창고에 보관하게 했습니다. 지금 신이 그것을 관리하니 열어 볼 수 있습니다. 대저 진창이라는 곳은 태백산 서쪽에 있어서 주군께서 시험 삼아 두 산 사이에서 사냥하시면서 그 자취를 찾아보시면 밝힐 수 있을 것입니다.” 했다. 진목공이 명을 내려 문공이 보관해 놓은 죽간을 가져오게 하여 읽어보니 과연 내사 요의 말과 같았다. 그리하여 내사 요에게 자기의 꿈을 상세하게 기록하여 궁중 창고에 보관하도록 했다.
次日,穆公視朝,群臣畢賀。穆公遂命駕車,獵於太白山。迤邐而西,將至陳倉山,獵人舉網得一雉雞,玉色無瑕,光采照人。須臾化為石雞,色光不減。獵者獻於穆公。內史廖賀曰:「此所謂寶夫人也。得雌者霸,殆霸徵乎?君可建祠於陳倉,必獲其福。」穆公大悅,命沐以蘭湯覆以錦衾,盛以玉匱。即日鳩工伐木,建祠於山上,名其祠曰:寶夫人祠。改陳倉山為寶雞山。有司春秋二祭。每祭之晨,山上聞雞鳴,其聲徹三里之外。間一年或二年,望見赤光長十餘丈,雷聲殷殷然,此乃葉君來會之期。葉君者,即雄雉之神,所謂別居南陽者也。至四百餘年後,漢光武生於南陽,起兵誅王莽,即漢祚,為後漢皇帝,乃是得雄者王之驗。
다음날, 진목공이 조회를 열어 군신들이 축하를 받은 뒤에, 즉시 명을 내려 수레를 타고 태백산에 사냥을 나갔다. 구불구불 서쪽으로 가서 진창산에 이르렀는데, 사냥꾼의 그물에 꿩 한 마리가 잡혔다. 그 꿩은 전신이 옥빛에 흠 하나 없이 광채가 찬란했다. 조금 있으니 그 꿩은 돌로 변했으나 광채는 변하지 않았다. 사냥꾼이 그것을 목공에게 바쳤다. 내사 요가 축하하기를, “이것은 바로 보부인입니다. 암컷을 얻으면 천하의 패자(霸者)가 된다고 했으니 어찌 패자의 징조가 아니겠습니까? 주군께서 이곳 진창에 사당을 짓는다면 반드시 그 복을 얻을 것입니다.” 했다. 진목공이 크게 기뻐하며 그 돌꿩을 난초 달인 물로 목욕을 시키고 비단 이불에 싸서 옥으로 만든 궤에 넣었다. 그날로 목수를 모아 벌목을 하여 산 위에 사당을 짓고 사당 이름을 보부인사(寶夫人祠)라고 했다. 진창산을 보계산(寶鷄山)으로 고치고, 봄과 가을에 두 번 제사를 지내기 위해 제관을 두었다. 제사 지내는 날이 되면 새벽에 산 위에서 닭 우는 소리가 들렸는데 그 소리가 3리 밖에까지 들렸다. 그리고 일 년이나 이 년에 한 번씩 산 위에서 붉은빛이 높이가 10여 장까지 솟구치는 것이 보이고, 우레가 은은히 들렸다. 이것은 곧 엽군이 보부인을 만나기 때문이라고 했다. 엽군은 곧 수꿩의 신이라 소위 남양(南陽)에 별거하는 보부인 남편이다. 이후 400여 년 후에 한나라 광무제(光武帝)가 남양에서 태어나서 군사를 일으켜 왕망(王莽)을 죽이고 다시 한나라를 부흥하여 후한의 황제가 되었다. 이것은 곧 수꿩을 얻은 자가 왕이 된다는 것의 징험이다.
畢竟秦穆公如何定晉亂,再看下回分解。
마침내 진목공은 어떻게 진(晉)나라 내란을 평정할까? 다음 회를 다시 보면 풀릴 것이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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